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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0차 고조선유적답사회 정기 답사>
몽골 서부 카라코롬에서 알타이 산맥, 흡스콜까지…….
2014년 7월31일 목요일 ~ 8월10일 일요일(9박11일) 총 이동거리 약3,076km
우리 민족의 발상지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 남쪽 흡스콜 호수와 초원, 사막, 험준한 산악의 대자연이 어우러진 성스러운 땅 몽골을 답사하였습니다. 몽골 서부 고비 사막을 건너 알타이 산맥까지 답사하는 루트는 무척 어렵고 험하여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코스인데 지인인 신익재 씨가 몽골 웅고트 인쇄소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어, 안내를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답사단은 4년 전(2010. 6. 11 ~ 6. 18) 몽골 동부를 답사하였고 이번에 탐사하는 몽골 서부 지역은 실크로드 초원의 길이며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의 길입니다. 이 지역은 만년설과 에들바이스가 피고 쌍봉낙타, 야크, 말, 양이 사는 거칠고 험한 사막과 고산지대로 칭기즈칸의 후예들의 기계와 삶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2014. 10. 18 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 안동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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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단원 총 23명> 단장: 김석규, 회장: 안동립, 총무: 김남석, 김건철, 남원호, 이선노, 윤명도, 안종화, 김정석, 김세환, 서승, 이수환, 최성미, 천소영, 유병권, 강명자
(몽골 현지) 안내: 신익재, 통역: 저리거1, 윤성구, 운전4: 저리거2, 애기, 부르테, 따쿠나
환전: 우리나라 1,000원이 몽골 돈 1,200원 정도이며, 몽골은 수입에 의존하여 물가가 한국과 비슷함.(화패 단위: 투그릭Tg)
<사전 준비물> 텐트, 매트리스, 슬리핑백, 방한복, 야외용 건조 식량, 컵라면, 햇반, 고추장, 건빵, 미숫가루, 김, 껌, 사탕, 초콜릿, 과자, 일회용 커피, 물티슈, 일회용 컵, 숟가락, 젓가락, 일회용 그릇, 통조림(김치, 참치, 꽁치), 김치, 침낭, 비상약품, 세면도구, 선크림, 모자, 선글라스, 모기약, 휴지, 비닐봉투, 비닐장갑, 상비약 등 한국에서 준비하고
몽골 현지에서 버너, 가스, 냄비, 부식, 쌀, 야채 등을 구입. (대형 캐리어 8, 박스4)
<항공편> 비행시간: 3시간10분. 시차: -1시간 늦음. 차량: 5대(5인승).
출국: 7월31일(목) OM306 몽골항공 밤 11시55분 출국~8월1일 새벽 2시25분 칭기즈칸 공항
귀국: 8월10일(일) OM305 오후 6시20분 몽골항공 출국~8월10일 10시25분 인천공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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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31일 저녁 7시30분 인천공항에 원정 준비물을 가득 실고 E카운터 앞에 임시 주차하고 먼저 도착한 김건철 선생님과 최성미 원장님이 마중을 나와 짐을 내리고 주차를 하고 오니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분들이 속속 도착을 한다.
여름휴가 기간이라 공항이 무척 붐빈다. 밤늦은 비행이라 이것저것 챙기고 정리하니 시간이 훌쩍 지난다. 11시 50분에 비행기가 이륙 인천과 수도권의 야경이 대단히 아름답다. 좀 지나니 황해 밤바다에 어선들의 불빛이 촘촘하게 빛난다. 비행기는 어두운 밤바다를 지나 서쪽으로 날아간다.
#1일차 2014년 8월 1일 금요일 새벽 2시30분경 몽골 칭기즈칸 공항 (E106°45‘46″, N47°51'11", h=1,282m)에 무사히 도착한다. 수속하고 나오니 밤바람이 무척 쌀쌀하다. 공항에 대기 중인 신익재 사장과 4개월 만에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고 차량을 점검하니 4대 6명씩 타면 되는데 문제는 10일간 먹을 식량을 싣고 갈 공간이 없다. 모여서 토론 끝에 차를 한대 더 불러오기로 협의하여 현지 여행사에 급히 연락하여 차를 한대 더 부르고, 차량에 인원을 분산하여 승차, 잠시 기다리니 차가 와서 짐을 싣고 하라호름(카라코룸)으로 출발하였다.(아침 5시15분)
울란바트로 시 광역까지는 4차선 도로이며, 22톨게이트 통과 후 2차선으로 좁아든다. (5시52분, E106°44‘22″, N47°53'12", h=1,224m) 바로 초원이 나타나고 끝없는 평원에 직선도로 사방이 확트인 목가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화물차만이 가끔 지나며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70℃로 심하여 도로가 패인 곳이 많아 차량이 곡예 운전을 한다. 80~100km 속도로 달린다. 최근에는 농사를 짓는 곳도 늘어나 유채꽃이 한참 이어진다.
밤을 꼬박 새우고 출발하여 피곤하지만 차창으로 스치는 풍광에 잔잔한 미소가 흐르며 향기가 나는 듯하다.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강가에 주차 공간이 있어 30여분 쉬면서 컵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최근 한국과 교류가 활발하여 한몽 그린벨트 조성지와 인천 숲에 나무가 잘 자란다. 7시33분 작은 솜(마을)을 지난다.
넓고 광활한 대지에 가끔 보이는 양이나, 소, 게르 정도가 보이며 끝없이 서쪽으로 달린다. 이 길이 실크로드 초원길이며 칭기즈칸의 서역 정벌길이다.
포장도로에서 올기 호수로 가는 비포장 갈림길(320km E102°57‘52″, N47°53'00", h=1,334m)에 표지판이 나와 이곳에서 뒤따라오는 차량을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몽골 여행객을 3명을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게 인사하고 몽골 술을 한잔 권하여 마시면서 어울리다보니 후미 차량이 도착한다.
(오래된 일본 제품 4륜 구동 차량이라 최고 속도가 80~90km로 달릴 수 있으며, 에어컨도 나오질 안아 포장도로에서 속도가 느리지만 사막과 비포장 길에서는 사정없이 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이 태운 차량은 잦은 고장과 고무 패킹 같은 것이 노후되어 흙먼지가 엄청나게 들어와 여행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까지 온 길은 포장도로로 쉽게 왔으나 지금부터 고비사막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비포장의 시작이다. 20km쯤 가니 올기 호수(E102°49‘07″, N47°13'16", h=1,297m)가 나온다. 울란바트로 시민의 여름 피서지로 많이 온다고 한다. 내륙의 바다로 호숫가에서 가족들이 호수에서 즐겁게 수영을 한다. 고무보트 놀이와 낚시와 수영을 하는데 물이 깨끗하다. 준비해온 삼겹살을 구워서 점심을 먹었다. 인원이 많아 식사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점이 있어 운행에 지장을 준다. 초원의 바람이 무척 세다.
몽골인 들은 경칭을 쓰지 않고 또 강이나 호숫가에서 소변을 보면 격한 반응을 보인다. 4년 전에 답사 왔을 때는 칭기즈칸의 대법령(예케-자사크 Yeke Jasag)을 몰랐다. 소개하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노인과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돌봐 주어라’ ‘모든 종교를 차별 없이 존중해야 한다.’ ‘대칸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경칭 대신 이름을 불러라’ ‘간통한 자와 고의로 거짓말을 한 자, 물에 오줌을 눈자는 사형에 처한다’」 등 칭기즈칸은 대법령으로 유목민을 통치하여 현대에 사는 몽골 사람들도 관습처럼 따른다.
우리도 호숫가에서 발을 담그며 쉬다가 남쪽으로 출발하였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연, 광활하게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에 가슴이 확 트인다. 오전에 흐리고 바람 불더니 오후에는 따가운 햇살에 에어컨을 틀어야 된다.
25km 비포장을 달리니 투르크 박물관(E102°49‘07″, N47°13'16", h=1,331m)이 초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다. 이곳에서 투르크(돌궐) 비석과 유물이 나와 터키에서 박물관을 짓고 돈을 지원하여 카라코룸까지 도로도 포장을 하였다고 한다. 입구에 터키 국기가 게양되어있다. 입장료와 사진 촬영비를 별도로 50,000 투그릭을 달라고 하여 전시장만 둘러보고 나오는 문 입구에 있는 석상만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 초원 길 포장도로를 50km 달리며 칭기즈칸의 대륙 정벌의 꿈을 꾸며 하라호름 까지 달린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몽골제국의 첫 수도인 하라호름(카라코룸)을 보려고 4년 만에 이곳에 온다는 마음에 설랜다.
하라호름에서 도로 공사 중 AD 731년에 설치된 돌궐 문자비와 AD 734년에 설치된 당나라 문자비가 발굴되어 하라호름(카라코룸)의 위치를 찾았다고 한다.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가 1228~1238년에 카라코룸 수도를 건설하고 그 중심에는 ‘투멩암갈랑’ 이라는 궁전을 세웠다. 그 후 구육 왕, 뭉크 왕 시대에도 몽골제국의 수도였으나 울란바트로로 수도를 옮겨 이후 폐허가 되었다.」 하라호름(카라코룸)을 기점으로 고비 사막과 알타이 산맥을 넘어 세계를 지배했던 왕궁의 위용은 모두 사라지고 1585년 에르데니조(Erdenezuu) 사원(E102°50‘32″, N47°12'01", h=1,419m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건설되었다. 가로400m, 세로400m 성채로 사방에 성문이 있으며 108개의 스투바(Stupa)가 둘러쳐져있다. 성문을 들어가니 여러 채의 사원들이 보이며 곳곳에 활불과 부처님이 모셔져있다. 간절한 소원을 비는 몽골인 들이 기도를 보며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곤함이 드러난다. 대초원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사원의 크기와 화려한 외관 그 예술성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사원 북문을 나와 500m쯤에 북서쪽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가운데는 비석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돌 거북을 많이 볼 수 있다.
에르덴쥬 사원을 나와 라호름(카라코룸)박물관(E102°50‘22″, N47°11'41", h=1,431m)에서 초원의 생활과 문화를 관람하고, 남근석(E102°51‘10″, N47°11'11", h=1,467m)이 있는 언덕으로 갔다. 남근 모양이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재미있다. 남근석이 향하는 방향에 여자의 음부 모양인데 그 지기를 달래기 위하여 남근석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하라호름(카라코룸)시 서쪽 오레혼 강(Orhon l.) (한가이 산맥에서 발원하여 바이칼 호-안가라 강-예니세이 강-북시베리아 저지-카라 해-북극해까지 흐른다.) 강변에 있는 드림랜드 캠프장(E102°47‘22″, N47°11'35", h=1,424m)을 찾아서 게르를 빌렸다. 3~4명이 잘 수 있는데 침대가 있고 공동 화장실과 샤워 실이 있다. 게르에 여장을 푸는데 흐리고 바람 불더니 소나기가 한참 내린다. 요즈음 하루에 한번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저녁을 하기 위하여 캠핑 도구를 챙기려 차량을 찾으니 타어어 수리를 한다고 말없이 차량 5대 모두 가버렸다. 한 시간 후에 통역인 저리거 씨와 운전수 들이 나타난다. 첫날부터 운전수들의 일방적인 행동에 참으로 난감하다.
일부는 취사 준비를 하고 버너에 불을 붙이고 밤늦게 저녁을 해 먹었다. 식당이 없어 많은 인원이 밥 먹는 일이 문제이다. 여행 내내 걱정이다.
게르 안이 추워서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야 잠을 잘 수 있다. 난로 불붙이는 것이 무척 어렵다. 연기가 나와 한참 고생 끝에 불을 붙였다. 게르 안이 훈훈해지며 더워진다. 눅눅하던 이불이 뽀송뽀송해진다. 게르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 별이 솟아져 내린다. 초승달 사이로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백양목이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귓가에 들린다. 별이 내리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내 마음에 흐른다. 게르에 타는 장작은 매캐한 냄새를 내며 타닥타닥 타고 있다. 통신이 되질 안으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른채 우리 일행은 피곤하여 초원에서 잠든다.
[1일자 운행 시간: 06시00분~20시27분(14시간 23분 운행), 이동거리: 411km]
척박한 땅에 사는 이들의 여유로움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2일차 2014년 8월 2일 토요일 드림랜드 캠프장 출발(t=10:10)
잠자리에 들면서 글을 적어 보았다.
'별이 솟아지는 카라코롬에서’
초저녁 솟아진 소나기 사이로 별이 솟아진다.
백양목 나뭇가지에 걸리듯 초승달이 떠오른다.
게르 옆으로 흐르는 오논 강 물소리 바람 소리와
난로에 피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며 매캐하게 코끝을 자극한다.
허공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내 마음에 흐른다.
(*카라코롬 마켓에서 주류를 천막으로 덮어놓아서 물어보니 매월 1일에 술 판매 금지로 음주 금지법을 만들어 음주시 벌금이 20만 원 정도 인데 몽골 국민들이 지킨다고 함.)
난로에 피워둔 장작불은 꺼지고 밤새 바람 불고 소낙비까지 내려 추위에 떨었다. 침대 주변에 거미가 수십 마리 들어와 있다. 곤충들도 추워서 게르에 기어 들어온 것 같다. 산책 겸 캠프장 밖을 나와 강가를 걷는 사이 대지에서 강열한 태양이 떠오른다. 아침밥을 급히 준비하여 먹고 짐을 챙겨 나선다.
차량 출발 전에 오늘의 일정과 몽골인 운전수를 소개하고 있는데 주차장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임병혁씨 외 2인 자르항에 간다고 한다. 서로 인사, 격려하고 고비 사막으로 출발하였다.
카라코롬 시내를 통과 남서쪽으로 달린다. 한때는 이곳이 초원 실크로드로 대상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교통과 무역 중심지이고 쿠빌라이 칸이 세계 정복의 꿈을 이룬 도시로 번영을 누렸는데 과거의 영화는 몇 점의 유적만 남기고 사막의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다. 잠시 지나는 여행객 마음에는 아쉬움만 남는다.
울란바트로 가는 갈림길(E102°57'39", N47°07'32", h=1,482m, t=11:19)과 호찌르트 시를 지나니 비포장이 시작된다. 길이 없다. 고비 사막 평원에 여러 갈래의 자국을 따라 달린다. 마치 말 달리 듯 차량이 춤을 춘다. 먼지와 담배 연기에 정신이 없다. 운전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니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여행 내내 어려움을 격고 있다.
오보(돌을 쌓아놓고 가운데 나무나 돌을 꽃아 놓은 오보가 고개 마다 설치되 있는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등댓불 같은 역할을 한다. 멀리 보이는 오보를 따라가면 마을로 가는 길이다.)를 지나고 지름길(E103°06'30", N46°36'43", h=1,750m, t=13:35:41)로 내려와 포장도로 갈림길에서 후미 차량을 기다리니 차가 오질 않아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조금 더 가서 교량(t=14:26:00)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출발한다.
하늘과 맞닿은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 포장과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가끔 대형 화물차나 승합차들이 구름 위를 달리듯 지나간다.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60~70도 이상을 견디어야하니 도로의 훼손이 심하다. 빠른 보수가 어려운지 차량이 곡예를 하듯 차선을 넘나들면서 도로의 파인 부분을 피해 다닌다. 후미 차량을 기다리려고 물가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며 걱정을 하다가 인접한 마을로 이동 통화가 되는 지역에서 다른 운전수와 통화가 되었는데 일행 모두가 아르웨이헤이르 시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후미 차량이 앞질러 간 것을 모르고 우리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몽골에는 도시 지역으로 가야만 통신이 된다. 일반 도로나 평원 사막에서는 통화가 되지 않는다.)
40여분 달려 요금소(E102°49'45", N46°20'41", h=1,715m, t=15:33:42)를 지나 아르웨이헤이르 시에 도착하여 식당에 가니 일행 모두가 무척 걱정을 하고 있다. 다음부터는 후미 차량을 기다리지 말고 지도 상에서 목적지를 정하여 운행하기로 하였다.
점심으로 호소로(말고기 군만두)와 보츠(찐 고기만두)를 시켰는데 문제는 한적한 도시 작은 식당에 23인분 음식을 주문 받으면 그때부터 고기를 다져 만두를 만들어 튀기고 쩌 내는데 일행은 마냥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도착하니 두 시간 만에 음식이 나오고 있다. 우리의 급한 일정은 모르고 식당 주인은 느긋하다. 그래도 호소로는 참 맛있다.
늦은 점심으로 호소로를 한개 먹고 다음 목적지인 바얀홍고르 시로 향하여 출발한다. 일정이 너무 늦어 마음이 급하다. 오늘도 구름이 많은 것을 보면서 어젯밤에는 소나기가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벌판에서 만나는 비는 순간적으로 와디(건천)로 모여 물이 급류를 이룬다. 최근 뉴스에 차량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야영지 입지 조건으로 주의 하여야 한다.
한 시간 쯤 달리니 우측 언덕에 게르가 있어 방문하였다. (E102°39'36", N46°00'50", h=2,033m, t=18:11:44) 낮선이의 방문에도 아이들은 게르 밖에서 땅에 뒹굴며 놀고 있고 말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게르에서 나와 반긴다. 아이락(마유주로 맛을 보니 약간 신맛이 나는 데 막걸리와 요구르트의 중간으로 먹을 만 했다.) 4병을 8,000투구릭을 주고 샀다. 척박한 땅에서 살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잊지 않는 이들의 여유로움을 보면서 참 행복이 무엇인가 의문이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한 봉지 주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고비 사막에서 길을 잃다…….
몇 시간을 달려도 같은 풍경이 차창을 스쳐지나간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대평원에 가끔 염소, 양, 소들을 방목하는데 목동이 보이지 않고 개가 앞뒤로 한 마리씩 다니는데 이들이 길을 인도하고 집으로 몰고 온다고 한다.
작은 마을을 지나 언덕에 고인돌(E101°34'56", N45°55'49", h=1,971m, t=19:29:34)이 보여 차를 세웠다. 돌 제단위에 찌그러진 오토바이 기름통을 올려놓았는데 사고가 난 것인지 아님 무언가를 기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언덕 아래에 전망이 좋은 곳에 게르가 몇 채 있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동내 청년이 타르박(큰 쥐로 토끼 크기 임)을 한 마리 가져와 사서 그 자리에서 운전수들이 나눠 먹는다. 조금 주어 먹어보니 고기가 무척 기름지고 부드럽다. 맛은 닭고기 같이 맛있다. 타르박은 양 10마리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하며 무척 좋아한다.
최근에 도로를 포장하여 바얀홍고르 시 까지는 지루하지만 쉽게 갈 수 있다.
바얀홍고르 시에 도착하여 주유하고 슈퍼마켓(E100°42'51" N46°11'04", h=1,822m, t=21:01:10)에 들러 식수와 야채 등을 구입하였다. 북위46°로 백야 현상은 아니지만 8시가 넘어도 태양이 있어 운행 일정을 더 많이 할 수 있어 집행부가 모여서 간단한 회의로 오늘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야영을 하여야 내일 일정이 쉬울 것 같다는 의견으로 저리거 씨에게 태양이 떨어지기 20분전에는 차량 운행을 멈추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바얀홍고르 시를 나오면서 바로 비포장 길이다. 빨래판처럼 도로가 파여서 천천히 달리면 다다타닥……. 요동이 심하다. 60~70km로 달리니까 오히려 소음이 적고 쉽게 달린다. 차량에는 큰 무리가 올 것 같은데 몽골 운전수들이 말 타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 서로 경쟁적으로 달린다.
사막에 여러 개의 초원길이 형성되어있는데 4~8개 폭은 1km정도 먼지를 품어대며 경쟁적으로 간다. 한참을 달리다가 주변을 보니 해는 지는데 다른 차량이 보이질 않는다. 버엉차강 호로 가는 길과 범버거르로 가는 길이 구분이 되질 안아 혼란에 빠졌다. 대평원에서 약간 휘어져 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빠져 다른 방향으로 가도 인식을 할 수 없다.
언덕 위쪽에 올라서서 차량을 돌려놓고 상향등을 키고 10여분 기다리니 좌측 길로 빠지려던 차량들이 불빛을 보고 찾아온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야영 준비를 하기 위하여 겨울 목장 주변에 자리를 잡도록 하였다.
해가 지니 추위가 몰려온다. 모두 두꺼운 옷이나 파카 등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낮은 산 아래 야영지에 자리를 잡았다. (E100°20'20" N46°00'40", h=1,702m, t=22:03:33) 천막을 꺼내고 야영 준비를 하는데 텐트를 처음 설치해 본 분들이 많다. 여기저기서 어디다 끼우나, 뭐냐, 게르나 여관은 없나 등등 그러나 필자가 리드로서 모든 인원의 안전과 숙식 등을 걱정하여야 하므로 두개의 조로 나뉘어 식사 준비와 야영 준비 조를 만들어 신사장이 식사를 준비하고, 필자가 텐트 치기를 지도하며 일사 분란하게 실시한다. 북풍과 늑대 등을 막기 위하여 먼저 ㄷ자 형태로 차량을 배치하고 땅을 고른 후 텐트를 치는데, 남향으로 문을 내고 미리 준비해간 에어매트리스를 깔고 동계용 침낭으로 야영지 완성하는데 3~40분 걸린 것 같다. 그 사이 음식 준비가 완료되어 우리 일행은 고비사막에서 유목민과 같은 삶을 처음 야생처럼 살아본다.
내일 일정을 토론하고 잠자리에 든다. 애어매트가 푹신하여 땅바닥에 등이 배기지 않아 무척 편안한 잠자리이다.
길고 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다니고 바람이 많이 불어 텐트가 많이 흔들린다. 오늘 하루 무엇을 보았는지 어디로 달리는지도 모르는 여행 둘째 날이 저문다.
[2일자 운행 시간: 10시10분~22시03분(11시간 57분 운행), 이동거리: 427km]
고비 사막의 아름다움은 신기루처럼 다가온다.……
#3일차 2014년 8월 3일 일요일 야영지 출발(t=08:52)
아침 식사는 컵라면 등으로 간단히 먹고 텐트를 철수하였다. 아침 하늘에 구름이 많아 걱정이다.
메마르고 척박한 고비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용기와 담력이 있어야 갰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상에 가상의 루트는 그려 놓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루트로 진행이 되고 있으며, 우리 답사단이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면서 계속 가야하는 답답하다.
답사단의 리드인 필자가 30년간 오리엔티어링 운동을 하여 길의 방향을 잡는데 는 문제가 없다. 다만 미지의 지형으로 달리니 회원 중에 연로한 분들이 감기 몸살이나, 교통사고 등 응급한 상황이 닥치면 걱정이다.
계속되는 길은 비포장도로로 작은 강이라도 나오면 쉬면서 가야한다. 각종 허브와 야생 부추 꽃과 이름 모를 들꽃이 광활한 사막에 피어있다. 척박한 땅에 멋진 풍광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아침에 먹구름이 있어 날씨 걱정을 하였는데 맑아져서 다행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구름이 땅에 닿을 듯 낮게 떠있다. 지나는 풍경이 초원에서 사막으로 색갈이 점점 변해간다. 쌍봉낙타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다. 중동지방에 있는 낙타는 단봉인데 고비사막의 낙타는 쌍봉으로 구분되어진다. 지키는 사람 없이 자유롭게 방목하는 것을 보니 동물이 행복한 고비 사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오차항 마을이 보이는 언덕 정자에서(E98°42'58", N46°10'05", h=1,938m, t=14:31:49) 점심 식사를 하고 쉬고 있는데 몽골 현지인이 차를 세우고 인사를 한다. 울란바트로에 사는 시인 남파푸래부 씨(43) 가족이 고향 방문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여 너무 반가워 가족들과 인사를 하니 행운을 기원하는 선물을 보드카 1병과 염소고기로 만든 호르혹을 준다. 사양하니 예의라고 한다. 우리는 사탕과 컵라면을 선물로 전달하였다. 호르혹은 운전수들이 즉석에서 먹는다. 고기는 이들의 주식이다.
사막에서 잠시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서로 반가워 하니 몽골인과 우리는 남이 아닌 동족 같은 느낌이 든다.
염소와 양을 모는 목동이 지난다. 이 지역에서 목동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염소와 양을 동시에 키우는 이유가 염소는 돌아다니며 풀의 윗부분을 먹고, 양은 한자리에서 아래 부분을 먹어서 상호 보완을 한다.
달리는 길 좌측으로 보이는 산들은 알타이 산맥이고, 우측으로 보이는 산들은 한가이 산맥인데 대평원 사막 가운데를 달린다. 멀리 신기루 현상이 보인다. 강이나 호수처럼 보이는 곳을 넘어 산들이 봉긋이 솟아 있다. 신기루를 지나는 차량들이 가끔 보이는데 먼지가 피어오르면 차가 달리는 것이다.
큰 언덕을 몇 개 돌아드니 대형 염호(E98°14'47", N46°04'30", h=1,698m, t=15:40:12)가 나타나 신기하여 첨벙첨벙 들어가 보았다. 가뭄이 와서 하얀 소금이 곳곳에 있고 소금에 강한 함초 같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풀을 뜯어 먹어보니 무척 짜다.
몽골의 지형 형성 과정에서 해저 지형이 융기한 것으로 여러 곳에 대형 염호가 많이 있으며 이곳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막 한가운데 갈매기가 때지어 날아다닌다. 갈매기의 생존과 진화 과정이 놀랍다. (필자가 예전에 해저 지형인 이라크 사막 해발고도 770m 지역에서 조개 화석을 여러 개 주워왔다.)
사막의 바다를 건너 알타이 품으로 들어선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버엉차강 호에서 오는 남쪽 길과 마주치는 지점이 나오자 무척 길이 혼란스럽다. 일행이 뿔뿔이 헤어져 버렸다. 30여분 돌고 돌았는데 멀리 오른쪽에 포장된 길 같은 것이 보인다. 알타이 시 까지 연결되는 포장도로(E97°37'06", N46°10'21", h=1,719m, t=17:22:17)를 만났다. 포장 상태로 봐서는 최근에 도로를 새로 건설한 것 같다.
하루 종일 비포장 길에서 먼지와 싸우며 왔는데 포장도로를 만나니 꿈을 꾸는 것 같은 승차감이다. 도로가 직선으로 끝이 보이질 않는다. 20여분 달리는데 선두에 섰던 차량이 고장이나 고치고 있다. 차도 사람도 사막을 건너니 몸살이고 고장이 날 수 밖에 없다.
운전수들은 기본적으로 차량 정비를 할 줄 안다. 지나는 길에 고장 난 차를 보면 운행을 중지하고 도와주기도 하는데 사막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꼭 도와준다고 한다. 도시와 도시 간의 거리가 3~400km 이상인데 이곳에서 정비 차량이 와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악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협력하고 도와주는 모습에 인간미를 느낀다. 이곳에서 무작정 게르에 방문하여도 집 구경을 시켜주고 안주인은 차라도 꼭 대접하며 인사를 한다.
자동차를 수리하고 서쪽으로 쭉 뻗은 길을 달리다 보니 좌측 산언덕에 오보와 기념비가 있어 올랐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이 지역으로 이어지는 초원길이 완만한 대평원으로 칭기즈칸의 서역 원정로인데 말을 타고 달리기가 더없이 좋은 지형이다.
알타이 시 입구 검문소(E96°16'10", N46°22'51", h=2087m, t=20:21:00)를 지나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운전수들과 현지에 관하여 어디에서 숙소를 잡고 알타이 산으로 갈지를 협의하니 30여분 가면 캠프장이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라고 하였는데 북쪽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알타이 산맥 하삭트하르항 산 캠프장으로 가는데 알타이 시에서 거리가 80km이다. 날은 저물고 길이 무척 험하고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산 입구 안내판에 적힌 글을 보니 알타이의 용감한 산으로 어머니의 땅이다. 고비 알타이 산의 9대 경관 중 하나이다. (‘As Like Altai's gallant mountain is mother Land of wild is one of 9 wonderment of Gobi-Altai.’) (E96°04'41", N46°44'32", h=2,379m, t=22:05:07) 라고 적혀있다.
마지막 고개(2,413m)를 우리가 탄 차량이 올라가지 못하여 내려서 걸어 고개에 올라서니 석양에 비친 알타이 산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이번 답사에서 알타이 산(金山)을 온 이유가 신라 김 씨의 고향을 찾아서 온 것인데 황금빛 찬란한 석양을 보니 감개무량하다.
신라 김(金)씨의 고향 알타이 산(金山) 이야기…….
「신라 김 씨의 선조 김일제: B.C 141년 한나라 무제가 훈(흉노)의 정벌을 가는데, 훈(흉노)의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가 14살에 탱그리 사막에서 **곽거병 장군에게 잡혀 한나라 왕실의 말을 키우는 마부를 했는데, 한 무제를 암살에서 구한 공을 세워 투후(秺侯)로 봉해져 김(金)씨를 하사함. 이후 김일제의 차남 건의 손자 왕망이 서기 8년 전한(前漢)을 멸하고 신나라를 세웠다.
김(金)씨의 조상인 김알지는 알타이 출신 김(金)씨라는 뜻으로 Gold라는 뜻이며 김가, 남가, 권가는 결혼하지 않는다. 현재 김일제의 묘는 중국 시안의 한 무제의 묘 동쪽 1km에 있다고 함.
중국 집안시와 한반도 전역, 경주 천마총 등에서 훈(흉노)족의 무덤 양식인 적석목곽분 형식의 무덤들이 많은데 북방 기마민족들의 매장 형태로, 기마 민족은 하느님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천손(天孫)신화가 유래되는데, 솟대(Totem Pole)를 세워 하늘과 교감하며, 솟대 위에 세운 새는 지상의 인간과 하늘에 계신 절대자를 향하여 기복(祈福) 행위를 할 때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媒介者)로, 새가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전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신조(神鳥)사상이 있는 알타이 문화권 전역에서 발견된다.」
[*휴도왕: 하늘에 제사 지내는 금인(金人) **곽거병: 한 무제의 외조카]
10시 40분에 해가 졌다. 고개 너머 계곡으로 내려가니 하삭트하르항 캠프(E98°58'55", N46°46'13", h=2,247m, t=23:08:02)장이 나온다. 깊은 계곡에 위치하여 캄캄하고 별만 총총 솟아지는데 사방 구분이 어렵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무척 춥다. 숙소는 2층 건물인데 허름한 나무 바닥이 삐거덕 거리며 바람만 막는 수준이다. 랜턴을 키고 밖에 간이 건물에 모여서 저녁을 해 먹었다. 추워와 고산병 증상으로 세분이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주무신다. 걱정이 된다. 취사도구를 대충 정리하고 숙소에 들어오니 스프링 침대가 놓여있다. 잘 수가 없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자리에 누웠다.
오늘이 며칠인가 시간의 사슬을 벗어나 사막을 여행하니 시간관념이 없다. 문명과 욕망 사이에 무념무상으로 잠이 들고 말았다.
(3일차 운행시간: 13:26분, 이동 거리: 415.1km)
아름다운 알타이 산 풍광이 펼쳐지다.……
#4일차 2014년 8월 4일 월요일 알타이 산 캠프장 숙소(t=11:33:56)
추위에 떨면서 늦잠을 자는데 남원호 회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깨운다. ‘안 회장 일나봐라’ ‘새벽에 일어나 주변을 산책하였는데 진짜 제대로 왔다.’ ‘뭔데’ ‘알타이 산 성지를 제대로 찾아 왔다.’고 재촉한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강열한 햇빛이 내리 쬐고 넓은 계곡과 아름다운 산 능선이 펼쳐진다. 고도가 높아 피로가 덜 풀린 것 같다. 일찍 일어난 단원들이 물을 끓여 놓아 컵라면과 미숫가루를 먹고 개인 짐을 챙겨 차량 내려놓고 화장실에 갔다. 언덕에 나무로 어름하게 지어 문도 없고 발판의 넓이는 너무 넓다. 구덩이의 깊이는 10m이상으로 내려다보니 무척 위험하다. 몸이 빠지면 올라 올 수 없다. 김 선생님이 실수로 큰일 날 뻔 했다.
공용 짐을 챙겨 차량에 옮기고 일정 협의를 하니 운전수들이 농성중이다.
필자가 알타이 산에서 염소를 한 마리 잡아 축제를 하자고 하여서, 어제 알타이 시에서 보트크 요리를 하는 친구를 태우고 왔는데 운전수들이 어젯밤 11시 넘어 현지 게르에 양을 사러 간다 하여 이 시간에 가면 어찌 하냐고 가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문제로 농성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해는 되지만 오늘 운행 일정이 걱정이다. 당장 염소를 구입해서 요리를 하라고 지시하고 우리 일행은 캠프장 서쪽 계곡으로 답사를 갔다.
이 산은 알타이 시 북쪽 80km에 위치하고 알타이 산맥의 산군 중에 하삭트하르항 산(3,579m)으로 어머니의 산이다. 계곡을 들어서니 나무숲과 시원한 계곡수가 내려온다. 좁고 긴 협곡 사이 우측 바위에 큰 구멍이 3곳이 뚫렸는데 자궁바위라고 한다. 그 밑에 7곳에 샘이 나오는데 물의 맛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니 앞이 확트이면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산 중앙 큰 바위 아래 오보가 있는데 몽골인 들이 찾아 기도드리는 성스러운 곳이다.
우리가 찾는 알타이 산 중심을 찾아온 것이다. 밤중에 무작정 찾아온 캠프장이 알타이 어머니의 산이라니 감격이다. 일행은 오보 옆에 모여서 고조선과 훈(흉노)족의 관해 서승 전 전주문화원장의 강연과 열띤 토론을 하고 신라 문화와 김 씨의 내력과 알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김씨와 남씨는 차를 한잔 올리고 절을 하였다.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캠프장을 내려와 차량을 타고 산 능선으로 올라갔다. (E95°58′29″, N46°46′24″, h=2,520m, t=13:02:32) 거대하게 펼쳐진 하삭트하르항 산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에델바이스가 바닥에 쫙 깔려 고원 전체에 피어있고 멀리 산 중턱에 보이는 게르와 거대한 산군이 아름답게 펼쳐져 한 폭의 그림 같다. 고도가 2,500m로 하늘이 더 푸르고 가까워 보인다.
울란바트로 시에서 서쪽으로 1,250km를 달려 사막 한가운데 이런 멋진 풍광이 펼쳐지다니 3일간의 고된 일정을 한 번에 보상 받는 기분이다.
우리 일행은 산 중턱에서 야크와 말, 소를 키우는 게르에 들러 *수태차를 대접받았다.
산에서 캠프장에 내려오니 두시가 좀 넘었다. 캠프촌 메인하우스 뒤편 마당에 불을 피워 돌을 달구고 **허르헉과 ***보트크 요리가 한창이다. 보트크 요리는 유목민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현지인들도 말만 들었지 만드는 것은 처음 본다고 하였다. 주변에 있던 현지인도 구경을 하면서 신기해한다. 보트크를 만드는데 5시간 정도 걸려 점심 겸 고기를 먹었는데 참으로 맛있었다. 껍질도 먹어 봤는데 질기지 않고 불에 그슬려 맛이다. 현지인 2명이 요리하는데 150,000투그릭, 염소 한 마리에 130,000 투그릭을 주었다. (몽골의 물가는 공산품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여 비싸지만 고기 값은 싸다. 양고기 1kg 8,500투그릭, 소고기 1kg 10,500투그릭 한다.)
[*수테차(sutaitsai): 우유에 엽차, 소금을 넣고 끓인 우유차로 늘 마신다.]
[**허르헉(Horhog): 양이나 염소를 잡아 통째로 용기에 한 칸씩 넣으면서 감자, 당근 등과 함께 불로 달군 돌을 널고 2~3시간 쪄서 만든다.]
[***보트크: 염소를 잡는데 목만 자르고 그 사이로 내장 및 뼈, 피, 고기를 꺼내고 염소의 가죽을 그대로 두고 다시 고기를 한 칸씩 넣으면서 달군 돌을 넣어 익히며 목 부분을 철사로 묵고 염소의 털을 불로 그을리고 껍데기를 칼로 면도 하듯이 긁어낸 후 수세미로 문지르고 물에 닦고 배를 갈라 국물을 빼서 마시고 고기와 껍질까지 먹는다.]
기즈칸의 서역 원정 거점도시 알타이 시……
짐을 정리하고 16:50분에 캠프장을 출발하였다. 내리막길이라 올 때 보다는 쉽게 달린다. 어제 들어 올 때는 날이 저물어 볼 수 없었는데 되돌아 나오면서 보니 길 주변에 비석 같은 돌이 세워지고 둥글게 대형 적석총(E96°07′00″, N46°42′50″, h=2,280m, t=17:57:23)이 여러 기가 보인다. 적석총은 알타이 지역의 훈족 장례 방식으로 작은 돌무지무덤은 수천기가 분포 되어있다.
산 정상에는 송신탑과 오보가 있고 이곳에서 알타이 시내를 한눈에 둘러 볼 수 있다. 큰개들이 어슬렁거리고 다니고, 개천은 지저분하다. 시내의 큰길은 포장도로이나 뒷길은 비포장이다.
알타이 시 주변을 둘러싼 산에는 나무 한그루 없는데 조용한 오아시스 도시이다. 한때는 칭기즈칸의 서역 원정로 거점 도시로 대상의 행렬로 북적였을 텐데 옛 영화는 사라지고 유목민들이 말과 염소를 버리고 정착하여 살고 있다.
가계의 문을 일찍 닫아 이곳저곳 다녀서 20시에 차량 수리와 물을 구입하고 알타이 시를 출발하였다.
사막의 바다를 건너 한가이 산맥을 향하여……
오늘부터 답사하는 알타이와 한가이 산맥을 넘는 루트는 몽골 전문 여행사에서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거점 도시나 길 상황을 전혀 알 수 없고 통신도 되질 않아 심적인 부담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오늘 운행거리가 너무 짧아 전체 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조금 무리하더라도 길을 나선다. 원정대의 선두 차량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북쪽으로 달린다. 해지는 사막을 달리는데 멋진 산 그림자와 더 넓은 평원이 어우러져 외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달래준다. 점점 어두워지는데 야영지가 마땅치 않아 타이시르 마을을 지나 다리가 있어 다리 아래쪽 모래에 텐트를 치기로 하였다. 밤이 되니 추워지고 날이 어두워 차량의 라이트를 켜고 텐트를 치는데 모두 숙달되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인다.
집행부가 모여서 내일 운행 일정을 협의하고 숙영지를 둘러보고 텐트에 들어오니 12시이다. 텐트 안은 한기로 약간 춥다. 자리에 누우니 피로가 몰려온다. 정신없었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4일차 야영(E96°33′14″, N46°42′34″, h=1,607m, 운행시간:10:48분, 운행거리 137km)
7시쯤 강렬한 햇볕이 텐트에 스며든다. 밤새 얼었다 녹은 것처럼 화창한 아침이다. 여름철이라도 밤에는 추위에 대비하여야 한다. 어젯밤에는 어두워서 풍광을 보지 못하였는데 숙영지 주변의 경치가 환상이다. 강가에 나가 세수를 하니 물이 무척 차다. 주상절리가 장작처럼 포개져 있고 주변 사막 능선에 햇살이 비춰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며 멋지다. 이곳에서 말이나 빌려 며칠 더 머물고 싶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8시에 출발을 하였다. 광활한 초원 사막 비포장 길이 이리저리 나있어 목적지를 돌고 돌아간다. 시속 30~40km로 달리는데 차량이 먼지와 요동이 심하다. 도로위에 구멍이 많은데 들쥐가 톡톡 튀어 나와 이리저리 구멍으로 숨는다. 주변으로 가끔 보이는 양들과 실개천, 겨울 주거지가 보인다. 3시간 달렸는데 60km 쉴루수테이 마을(Shiluustey)(E97°08′30″, N46°48′13″, h=2,160m, t=11:00:53)에 도착하여 쉬면서 동내 구경을 하였다. 그림 같이 아름답고 작은 동화의 마을 같았다.
거리에 인적이 없고 몽골 대문의 특징인 붉은색 나무 울타리에 아(亞)자와 만(卍)자 문양이 복합된 녹색 대문이 가는 곳곳에서 보았는데 아마 라마교 불교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광장은 넓고 말 달리기 좋게 마을이 형성돼 있다.
이제부터는 길의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서 가야한다. 길 좌우로 U자곡처럼 형성된 계곡이 100km정도 길게 뻗어있다. 큰골처럼 이어지는 길 좌우로 대형 적석묘 군락이 계속 이어진다. 그 크기와 숫자가 중국 집안의 환도성 아래 위치한 산성하 고분군과 비교하여도 이곳이 몇 배 더 많은 것 같다. 자연석으로 비석을 세우고 새겨진 문양이 사슴이나 염소 같은 동물 형상이다. 지나는 길에 큰 무덤 몇 기를 답사해 보니 일부는 발굴하여 파헤쳐진 곳이 여러 기가 보인다. 적석을 쌓는 방식은 비석을 20m 묘 앞에 세우고 외륜 둘레를 따라 돌로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일렬로 쌓는데 그 규모가 한 변이 40~50m 정도이고 그 안쪽으로 돌을 피라미드형으로 4~10m정도 쌓아 올렸는데 많이 무너져있다. 또 일부 묘군은 석곽묘 같은데 회손 된 것이 수천기가 있다. 알타이 지역의 묘제 양식과 우리나라 고대의 무덤 양식이 같아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있다. (E96°51′23″, N47°24′17″, h=1,858m, t=14:53:18)
가끔 산 밑에 게르와 목동이 말을 타고 평화롭게 다닌다. 우리 답사단은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계곡을 천천히 지나간다. 멀리 어트겅탱게르울 산(4,021m Otgontenger uul) 만년설 이 보인다. (E97°09′45″, N46°59′30″, h=2,253m, t=12:15:24)
이 지역은 워낙 오지라 지나는 차량도 보이질 않는다. 길이 험하여 차량의 고장이나 낙오 될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몽골의 작은 교량은 대개 목재로 만들어져 있고 전신주는 아래는 사각형 콘크리이트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철사 같은 것으로 묶어세운다. 가끔 보이는데 참으로 재미있는 풍경이다.
거대한 사막에 산림지대가 조금씩 나타나는데, 산의 계곡 동남쪽으로는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모여서 자라고 있고 북서쪽으로는 민둥산이다. 추위와 바람의 영향으로 특이하게 나무들이 모여서 자란다. 신기하다.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도 여러 곳 보인다. 7시간 30분을 달려(160km) 차강하이르항 마을(Tsagaanhayrhan) (E96°46′39″, N47°28′21″, h=1,752m, t=15:31:57)에 도착하였다. 40~50여 호 사는 작은 마을이다. 식당을 찾았으나 간단한 것만 파는 집으로 우리 일행이 식사하기에 문제가 있어 지붕 아래 그늘을 찾아 준비해온 국수를 끓였는데 냄비가 작아 여러 번 끓이는 사이 동네 한 바퀴 돌아보았다. 외지인이 들어오니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한다. 마을에서 물어보니 이 지역 전체가 훈족과 한나라의 싸움터로 군장급 무덤이 여러 곳 있고 마을 가운데에도 큰 적석묘가 있는데 훼손을 하지 않고 보존이 잘 되있다.
대지의 아름다움은 뭉게구름처럼 피어나고…….
점심 후 출발(17:22:51) 30여분 달리니 나무다리 아래 작은 시냇물이 있어 잠시 쉬면서 냇물로 뛰어들었다. 사막에서 시원한 물을 보니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기를 대충 닦고 울리아스타이 시를 향해 출발하였다. 당초 한가이 산맥을 우회하여 북쪽으로 가는 루트가 길이라도 제대로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경관은 장관이다. 광활하고 거대한 대지를 가로지르고, 산길은 완만하게 올라가고 멀리 하늘에 구름은 그림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른다. 사막의 바다를 작은 차량으로 건너는 기분이다.
울리아스타이 시가 내려다보이는 큰 고개에 올라서니 오보(E96°55′15″, N47°37′13″, h=2,492m, t=18:48:03)에 선두 차량이 모여 있다.
이곳에 올라서니 바람이 무척 심하게 분다. 어트겅탱게르울 산(4,021m)의 만년설이 멀리 보인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멋진 풍광이다.
울리아스타이 시(E96°53′30″, N47°49′17″, h=1,791m, t=21:19:37)와 고개의 고도차가 심하여도 완만한 경사로 차량 운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시의 규모가 크고 인구도 많다.
시 외곽으로 게르와 가축들이 풀을 뜯는 모습과 도심 쪽으로는 잘 정비된 오아시스 도시라 예쁘고 아름답다. 개발이 더딘 것 같은데 큰 상점, 은행, 공원 등 여러 가지 시설이 있다. 가게에 들러 물과 먹을 것을 구입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한 시간쯤 달려 해지기전 한가이 산맥 기슭 작은 개울가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단원 모두가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고 여유롭게 야외 생활을 즐긴다. (E97°03′20″, N47°57′32″, h=2,013m, t=23:00:58) 고도가 높고 골바람이 불어온다. 차량을 위쪽으로 이어서 주차를 시켜 바람막이 하고 텐트의 방향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그래도 어제보다 더 춥다. 연로하신 어른들 건강이 걱정이다. 취사도구 정리와 내일 일정을 협의하고 텐트에 들어오니 12시이다. 자리에 누우니 피로가 확 몰려온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멋진 풍광에 저절로 미소를 짓는다. 광활한 초원 대지에 누워 야생의 하루를 보낸다.
(5일차 운행시간:5:39분, 운행거리: 220km)
초원에 바람이 불고 축복의 비가 내린다.……
#6일차 2014년 8월 6일 수요일 (E97°03′19″, N47°57′32″,h=2,010m, t=10:07:23)
밤새 텐트에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새벽에는 야크가 쿵쿵대며 야영지 주변을 이동하고, 몰려오는 한기로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대원들이 소똥을 주워서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있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몰려다닌다. 여행 내내 화창하였는데 비가 오려나보다. 미역국에 햇반으로 아침 먹고 주변 정리하고 출발하였다. 고개를 오르는 상류 우측 계곡에 큰 샘이 보이는데 이 물은 바다로 흐르는 것이 아니고 하르 호(Har nuur lake) 라는 염호로 흘러간다. 고개 너머 흐르는 물은 세랭게 강(Selenge river)을 거처 북극해로 흐른다. 계곡에는 수량이 많아 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큰 목재 트럭도 지나간다. 40여분 도로를 달리니 한가이 산맥을 넘는 큰 고개가 나온다.(E97°08′36″, N48°02′55″, h=2,303m, t=11:02:39) 너무 쉽게 올라온다. 산맥의 최고봉이 4000m 큰 산이라 골이 깊고 구불거림이 심할 줄 알았는데 야영지에서 300m 고도차를 오른 것이다. 몽골 운전수들은 오보에서 좌측에서 우측으로 3바퀴씩 돌고 가는데 신앙적으로 무사 안일과 복을 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서낭당에 돌무더기 같은 역할이다. 고개에 내리서 경관을 보고 바람도 세고 빗방울이 날려서 서둘러 출발하였다.
고개를 내려서니 천천히 고도가 낮아지며 큰 초원이 나타난다. 하늘에 먹구름은 점점 더 몰려온다. 인적은 없는데 집이 한두 채 보인다. 12시 우리가 탄 차량의 타이어가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일행 모두 모여 차량을 정비하고 있는데 현지인이 오토바이를 타고와 인사를 한다. 강명자 여사가 매 새끼를 한 마리 주웠다. 둘러보니 공중에는 어미 매가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초원에 대형 철탑이 드문드문 있는데 철탑 위 둥지에서 떨어진 것이다. 운전수들이 철탑에 매달려 새끼를 둥지위에 올려준다. 둥지에는 새끼가 두 마리 더 있는데 힘이 약한 한 마리를 밀어서 떨어진 것이다. 감전의 위험 있어 위험한데 몽골인 들의 생명 사랑이 얼마나 큰지 감동이다.
비가 약간씩 오고 있다. 초원에서 비를 피해 양들이 모여 있다. 재두루미 가족을 만났는데 어미 3마리에 새끼 두 마리다. 우리 차량이 접근하니 어미는 비상을 하고 새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서 도망친다. 어미 두루미는 멀리 날지 않고 우리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소리를 내며 가까운 곳에 내리고 또 비상을 한다. 이 지역 습지와 호수 주변이 두루미의 서식지로 좋은 조건이다.
한가이 산맥 너머 대초원을 몇 시간을 달린다. 가끔 녹도문 비석과 적석총이 보인다.
우리가 탄 차량이 예비 타이어로 교환하였지만 장거리 운행에는 무리가 있어 일행들은 북진을 하고 우리 차만 텔멍 마을(Telmen)(E97°36′41″, N48°38′37″, h=1,761m, t=13:55:54)에서 정비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텔멍 호수 주변에 있는 마을로 조용하고 말끔하다. 말을 탄 주민이 말 갈퀴를 휘날리며 거리를 달린다. 와! 멋지다. 차량 정비소가 있어 수리를 맡기고, 마을로 들어와 거리를 살피니 한국 음식점이 있다. 사람이 몇 명 살지 않는 오지에 한국 음식점이 라니 들어가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시키니 반찬으로 김, 김밥, 김치, 양파무침, 미역무침, 오이무침이 나오는데 한식 상차림이다. 맛도 좋다. 김밥까지 만들어 나와 놀라워 어디서 배웠는지 알아보려고 여자 주인에게 말을 시키니 주방에서 나오지 않고 수줍게 웃는다. 한국인이 와서 밥을 먹으니 맛있게 먹는지 눈치를 본다.
다른 자리에 있던 젊은 손님이 오더니 반갑게 인사하면서, 이곳에도 농사를 짓고 사는 한국인이 있다고 한다. 시간이 촉박하여 수소문하지 못하였다.
대초원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몽골 오지인 조그만 마을에서 뜻밖에 한국 음식을 먹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완만한 평지 초원을 달린다. 텔멍 호 갈림길이(E97°39′21″, N48°38′37″, h=1,751m, t=15:16:53 t=16:30:23) 나와 직진하는데 필자가 식곤증으로 잠시 조는 사이 차량은 오보를 지난다. 운전수에게 맞게 왔느냐고 물어보니 이 길로 쭉 따라 왔다는 것이다. 이상하지만 계속 진행하니 볼나이 마을까지 왔다. 북쪽으로 가야 되는데 길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아 갈림길에서 10° 정도 갈라지면서 조금씩 우측으로 차의 방향이 돌아가 동쪽으로 달려 볼나이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차를 잠시 세우고 지도 정치를 해보니 전혀 다른 방향이다. 운전수에게 설명하여 다시 되돌아서 갈림길까지 되돌아와서 북쪽으로 가야한다. 비포장 길 64km를 90분이나 초원길을 헤매고 돌아 다녔다. 도로에 이정표나 방향을 가늠하는 표시가 없기에 일어난 실수이다. 대초원에서 길의 방향이 약간 벌어져 있고 진행이 많은 쪽으로 길이 뚜렷하게 나있으니 운전자가 당연히 큰길로 진행 한 것이다. 선두 차량과는 연락이 되지 않고 우리는 3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서둘러 갈림길까지 돌아와 북진을 한다. 나무로 된 오보(E97°55′12″, N48°58′34″, h=1,982m, t=17:09:49)를 지나는데 칭기즈칸의 탄생지에도 나무로 된 오보가 있었는데 나무가 많은 지역에서는 오보를 나무로도 만드는 것 같다.
한가이 산맥 북쪽 지역은 산 여러 곳에서 나무가 보인다. 물과 습지대(t=18:09:11)가 광활하게 있는 평지 초원지대가 넓게 형성되어 식생 상태가 좋다. 가는 길에 갈림길이 여러 곳 나오는데 진행 방향의 방위각을 잡고 그대로 가야지 잘못 빠지면 한 두 시간 돌아 갈 수 있어 조심히 일일이 체크하며 방향을 잡고 진행하여야 한다.
날은 저무는데 비까지 하루 종일 부슬부슬 내린다. 차강울 마을(Tsagaan-uul)로 가는 갈림길(E98°40′29″, N49°31′51″, h=1,794m, t=19:50:53)이 나온다. 직진하여 마을에서 주유를 하고 동쪽으로 달린다. 비가오고 어두워져 또 길을 잘못 들었다. 길이 여러 갈래 나와 산으로 가야하는데 평지를 도는 바람에 다시 되돌아와야만 했다. 몽골 사람들은 돌무더기 나무 막대기 하나가 이정표이며 이들은 작은 돌 하나에 의지하여 바람같이 세상을 떠돈다. 이들의 용기와 기상이 칭기즈칸의 후예답다. 어둠을 뚫고 부르항 마을 (Burenhaan)에 오니 전화 통화가 되어 선두 차량은 머렁 시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우리의 상황을 예기하고 작은 식당에서 저녁식사(E99°09′35″, N49°30′22″, h=1,442m, t=22:06:49)로 초왕이란 볶음 면을 시켜 먹었는데 주문을 받은 후 양고기를 썰고 면과 야채를 넣어 만든다. 고기볶음 면인데 맛이 좋다. 식사 후 비는 점점 더 온다. 어둠이 내리고 비가오니 캄캄하여 사방 분간이 어렵다. 비포장 길이라 차의 속도를 30km이상을 달릴 수 없다. 차량의 라이트 불빛에 의지하여 계속 동진한다. 운전을 너무 오래하여 오보(E99°50′27″, N49°36′36″, h=1,278m, t=00:49:51)에서 잠시 쉬고 또 운행을 하였다.
머렁 시가 보이는 곳까지 오니 멀리서도 가로등 불빛이 훤하게 초원에 비친다. 어둠의 터널을 뚫고 문명의 세계로 들어가니 너무 반갑다.
일행이 묵고 있는 50°100°호텔에 도착하니 김건철 선생이 걱정하며 내려온다. 방을 두개 빌려 놓았는데 샤워기에 물이 찔끔찔끔 나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너무 피곤하여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E100°09′34″, N49°38′14″, h=1,m234, t=02:37:05, 6일차 운행시간: 16:30분, 운행거리 462km)
초원에 바다를 품은 흡스콜 호수.……
#7일차 2014년 8월 7일 목요일 (t=11:12:31출발)
늦잠을 자고 있는데 걱정이 되는지 여러분들이 방에 들어와 일어났는데 온몸이 쑤신다. 창밖을 내다보니 구름이 밀려나고 날이 맑아진다. 호텔에서 간단히 제공하는 빵을 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시의 규모가 큰데 시내가 조용하며 바쁘게 다니지는 않는다.
머렁 시와 울란바트 시 간에 100인승 정도 프로펠러 비행기가 정기적으로 운행 된다고 하는데 초원에서 횡으로 부는 바람에 결항이 잦다고 한다.
차량의 고장으로 정비를 보내고 일본인이 만든 머렁 시 지도를 보고 시청 앞 박물관을 찾았는데 수리중이다. 광장에 있는 시청에 들어가 관광 관련과에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박물관의 위치와 녹도문 비석 위치를 문의하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머렁 시 박물관은 (E100°09′44″, N49°38′13″) 호텔 부근에 있어 다시 돌아왔다.
박물관에는 마두금과 무구, 국궁 등 자료는 인상에 깊었다. 또 에벤키 족 관련 문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 사이 차량을 정비하여 답사단은 북쪽으로 이동한다.
흡스콜 호수까지는 포장이 잘되 있고 거리는 110km이다. 도로상에 차량이 많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있다. 하늘이 흐리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진다. 흡스콜(Khubsgul) 호수 최남단 마을 하트칼(E100°09′03″, N50°25′46″, h=1,624m, t=15:58:53)을 조금 지나니 호숫가에 게르와 캠프촌이 그림같이 펼쳐져있다. 부두에 오래된 러시아제 철선이 4척 정박해있다. 승선표를 사고 기다리는데 한국 젊은 여행자 김정빈(29)을 만났다. 화성시에서 자동차 설계를 하며, 울란바트로에서 머렁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버스로 흡스콜까지 왔다고 한다. 용기가 대단하다. 유람선에서 파는 훈제 송어와 튀긴 고기만두를 일행과 사서 나눠먹었다. 배위에서 선원 복장을 한 여자 진행자의 사회로 즉석 노래자랑을 하는데 배에 탄 몽골 사람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순수하게 노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갈매기가 물가에서 많이 날아다닌다.
흡스콜 호수는 1620m 고원지대에 아름답고 신비한 거대 호수로 내륙에 바다를 품고 있는 담수호로 길이 136km, 폭30km, 깊이 262m로 수량은 전 세계 3%라고 한다.
신의 호수라고 하여 신성시하며 물빛이 맑고 차 물속이 훤히 보인다.
날씨가 흐려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파도가 친다. 배로 20여분 가니 멀리 오보가 보이는데, 선상 마이크로 안내하며 모두 그곳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행사를 한다. 물어보니 호수 가운데 몽골인 들이 신성시 하는 *둑기(纛旗)가 서있는 오보가 있다고 하였다. 일반적인 오보는 돌무더기 가운데 나무를 세우고 청색, 백색 천을 걸어 두었는데, 필자가 중국 대흥안령 산맥을 넘는 고개 정상에서 둑기가 세워진 오보를 보았는데, 오보의 기원은 이곳 흡스콜 호수의 오보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 몽골사람들은 평생 이 호수를 여행하여 기도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둑기(纛旗)란: 큰 창에 소의 검은 깃털을 꽂아 둥글게 만든 기(旗)로, 군신(軍神)인 치우천왕을 상징하며 임금이 탄 가마나 군대의 행렬 앞에 세우는 대장기(大將旗)이다. 우리나라에도 뚝섬(둑도纛島)에 둑기를 세우고 둑신(纛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 장군이 진중에서 둑제를 지낸 기록이 나온다.]
관광선에서 내려 호수 서쪽에 위치한 부루펄 캠프장으로 가는 길에 순록을 키우는 에벤키(Evenki)족 마을에서 기념품을 팔아 잠시 내려 이들의 생활을 보았다. 이들은 나무를 A자로 세우고 가죽으로 둘러쳐진 텐트에 살며 몽골인 들과 생활양식이 다른 민족이다.
호숫가에 있는 부루펄 캠프장에 도착하여 게르를 빌리고 캠프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루 종일 비가 조금씩 와 무척 춥다. 주변 게르에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10여명 있어 반가웠다. 장작으로 난로 불을 피우니 게르가 바로 더워진다. 식당 게르 한 동 빌려 국을 끓이고 밥을 해 먹었다. 그동안 식사를 준비하였던 윤 사장이 몽골인 비하 발언으로 싸움이 벌어져 말리고 달랬다. 4년 전 몽골 동부 여행에서도 몽골 가이드가 행패를 부리더니 이번 여행에서도 같은 행동을 보니 몹시 마음이 상한다. 식당을 대충 정리하고 게르에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7일차 운행(E100°11′42″, N50°37′47″, h=1,607m, t=20:16:34, 이동거리 163km)
훈(흉노)족 왕의 무덤을 찾아서……
#8일차 2014년 8월 8일 금요일(출발t=11:40:37)
밤새 비가 약간씩 내리고 게르 안으로 들리는 바람 소리가 정겹다. 게르 천장 구멍으로 비가 들어왔다. 초저녁에 피운 난로가 불을 피울 때는 게르 안이 더운데 나무를 때니 계속 불을 피울 수 없어 새벽에 추웠다. 몽골인 들이 소똥을 말려서 난방과 취사를 하는데 불이 꺼지지 않고 밤새도록 화력이 유지된다. 유목민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어젯밤 기사들과 다툰 윤 사장이 메시지만 남기고 가버렸다.(윤 사장은 머렁에서 8인승 승합차를 타고 15시간 만에 울란바트로에 도착 하였다고 함.) 조심하여 잘 가라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하트칼 시내로 출발하였다. 시내에 도착하니 운전수들이 식당에 들어가 아침 식사를 하겠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여야 하는데 이들의 직업의식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식사가 끝나기를 느긋하게 기다려 머렁 시 북쪽 40km 도로 좌측 호숫가에 위치한 녹도문 비석이 있는 어르헐(Erkhel l.)호수로 출발하였다. 구름이 밀려나면서 날이 맑아진다. 지도상에 위치를 찍고 그 곳을 찾아가니 멀리서 녹도문 비석이 보인다. 호수 언덕 평원에 대형 적석총과 함께 사슴뿔 문양이 뚜렷한 비석이다.
일본인이 쓴 책을 보니 오시긴오브레(폐의 계곡) 유적이라 한다. 왕의 무덤으로 제단과 석주에 해, 달, 사슴, 농기구, 궁사, 창, 장식품 등이 암각으로 새겨져있다. 비석 뒷면에는 후대에 음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 같은 글자가 있는데 훼손되어 내용을 알 수 없다.
이 유적은 3,500~4,000년 전에 조성된 적석묘로 발굴된 현장이 그대로 방치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탁본이라도 해보면 정확한 그림을 알 수 있지만 희미한 음각과 색상을 보는 것만으로 도 감사하다.
초원에 방치되어 훼손이 될까 걱정되며 보존이 아쉽다.
유적지 호숫가에 오토바이 여행객이 텐트를 치고 있는데 유럽에서 중앙아시아를 지나 몽골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답사의 정점으로 왕의 무덤 앞에서 여러 토론을 하였다. 이번 역사 답사에 처음 참가한 천소영 교수는 자기의 눈에는 그냥 돌로 보이는데 답사단 눈에는 역사가 보이고 그에 따른 이야기들이 줄줄 나오니 참으로 신기한 답사단이라고 한다. 우리 답사단이 공부하는 여행을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데, 다만 앞으로는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답사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여행 소회를 밝혔다.
아쉬움을 남기고 머렁으로 출발하였다. 호텔에 카메라를 두고 온 김남석 사장이 탄 차량과 헤어지고 나머지 차량은 머렁 재래시장(E100°09′55″, N49°38′42″, h=1,259m, t=16:09:48)을 구경하기로 하고 각자 출발하였다.
시장 앞길은 차량으로 복잡하고 분주하였다. 차를 적당히 주차하고 호소로와 만두 등을 파는 식당에 들어가 기사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계산하려고 보니 인원이 부족하다. 동분서주 찾았는데 남회장이 탄 차량이 호텔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여 시장 구경은 접어두고 머렁 시 외곽 주유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바람 따라 떠도는 구름처럼 이리 저리 흘러간다.……
주유소에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우 버스가 주유하러 왔는데 머렁 시와 울란바트로 시를 다니는 정기 노선이라고 한다. 운전수가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한국인 친구 이야기 한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니 차에 인원이 차야 출발을 한다고 하며, 운전수가 2명이 번갈아 운전을 하는데 약 20시간 소요 된다고 한다. 버스 안에 올라보니 빈자리가 없고 짐과 아이들까지 꽉 차있다. 비포장 길을 다니기에 에어컨을 켜지 않아 차안의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노선버스가 가는 길이 정비가 된 길이 아니고 4륜 구동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험한 길을 버스로 간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안는다. 말과 낙타를 버린 몽골인 들이 자동차란 문명이 들어와 이용 하지만 그들의 삶은 더 고단해 보인다.
잠시 기다리니 후미 차량이 도착하여 출발하였다. 오늘부터 가는 길은 노선버스와 일반 관광객들이 지나는 길로 한가이 산맥 북쪽 계곡 산자락을 돌고 넘는 길로 대평원과 구릉이 어우러진 곳으로 비포장 길을 약 350km를 지나야 울기 호수 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나온다. 그곳까지 가야 울란바트로로 쉽게 갈 수 있다.
여행을 마무리 하는 심정으로 편안한 자세로 느긋하게 즐기면서 1시간 쯤 가는데 포장도로(E100°54′16″, N49°28′24″, h=1,275m, t=18:14:27)가 끝나고 비포장이다. 조금 더 가니 셀랭게 강 지류에 부교가 설치된 곳이 나온다. 요 며칠 계속 비가 와서 강물이 많아 졌다. 부교는 군대 시절에 만들어 본 기억이 생생한데 이곳에 설치되어 주민들이 활용하다니 감개무량하다.
강 건너 잠시 쉬고 일행은 동남쪽 방향으로 진행한다. 초원에 내린 비로 여러 곳에서 생명이 움트고 갖가지 색 꽃이 활짝 피어 대지에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몽골 여행에서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이 정상적인 루트인지 아무도 모르고 운전수 들이 이 루트를 여러 번 다녀 봤다고 하는데 방향만 정하고 달리니 필자의 마음이 마냥 느긋할 수 는 없다.
바얀온더 산을 넘어야 내리막길 대평원이 나오는데 울창한 산림과 함께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산 골을 돌아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진창으로 차량 여러 대가 빠져서 이리저리 돌고 밀고 당기고 있다. 4륜 구동 차량은 무사히 넘는데 우리가 탄 차량은 후륜구동이라 여지없이 진창에 빠진다. 30여분 차량을 밀어서 큰 고개에 올랐다. 몽골 여행에서는 차량의 고장과 미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라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재미있고 즐거워진다.
이곳의 오보는 목재로 만들어져있다. 지역마다 무엇이던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 지는 것 같다.
포장도로(E100°22′51″, N49°37′13″, h=1,495m, t=17:35:58)
고개를 넘으니 고도가 점점 낮아진다. 심하게 흔들리며 먼지를 풀풀 날라며 달리는 차안에서 먼 산을 바라본다. 몇 시간을 달려도 초원, 야생화, 말이나, 지나는 버스 모두가 신기하고 아름답다.
광활한 대지를 버려 둔 것 같은데 가끔 지나는 작은 마을과 게르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겨우 양 몇 마리와 게르 정도가 가진 것 전부인데 이들이 초원에서 뒹굴면서 나보다 더 행복한 미소를 짓다니 한편으로 질투가 난다. 나는 누구인가. 초원을 한 점 굴레처럼 지나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은 일에도 더 행복해 져야겠다.
구름이 내려앉고 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선두 차량을 세워 해지기 전에 캠핑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여 야영을 하기로 하였다. 30여분 달려 작고 아담한 겨울 목장을 찾아 그 앞에 야영지를 설치하였다.
오늘이 이번 여행에 마지막 야영이다. 일상을 벗어나 세계에서 제일 험한 오지, 끝이 어디인지 모를 미로 같은 사막을 헤매고 돌아 그 끝자락에 섰다. 그동안 어렵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모든 단원이 야영을 즐기면서 소담을 나눈다. 저녁 공기가 무척 차다. 대충 정리하고 텐트에 들어와 자리에 누우니 지난 8일간 일정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동물의 똥이 사방에 있어 이리저리 치우고 텐트를 친 찬 바닥에 자리 하나 덩그러니 깔고 대지에 머리를 대고 바닥에 눕는다. 내 지친 몸뚱아리는 사막의 찬 바닥에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구름이 흐르는 대로 사막과 초원을 자유롭게 여행하였다.
바쁜 세상사 모두 잊고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으로 돌아가 배고프면 먹고 해지면 자리를 깔고 별이 솟아지는 초원의 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알타이 산과 한가이 산에서 불어오는 세찬 골바람 소리도 이제는 천사의 속삭임으로 들리고, 광야에 취하고 별빛에 취하여 시간이 멈춘 듯 흐르는 구름과 별 이 모든 것을 사랑하고 품어내는 밤의 대지, 아름다운 정취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꿈속에서도 또 보고 싶은 멋진 풍광을 영원히 기억 하고 싶다.
8일차 야영지(E101°34′57″, N48°56′43″, h=1,552m, t=22:41:45, 이동거리 298km,)
구름의 바다, 바람의 땅 사막과 초원을 건너다. ……
#9일차 2014년 8월 9일 토요일(출발t=08:54:47)
오늘은 비포장 도로 172km, 포장도로 320km를 이동하여 울란바트로 까지 가야 한다.
미역국을 끓여 아침 먹고 마지막 출발 회의를 하였다. 오늘 운행은 각 차량별로 출발하고, 저녁 때 울란바트로 보야지 호텔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유롭게 출발하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구릉과 초원이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든 곳이나, 가끔 만나는 말, 양, 염소들이 사람보다 동물이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땅이다.
한없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은 지리한 풍경 사이로 아름답게 구름이 피어오른다.
작은 강가에 있는 마을 하르한(E101°56′22″, N48°36′49″, h=1,307m, t=10:43:48)을 지난다. 마을에 들러 저리거 씨가 타르박을 사려고 알아보니 강 건너 집에서 살 수 있다 하여 통나무로 만들어진 귀틀집을 찾아갔다.(t=11:59:57) 강가 작은 둔덕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집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초대로 집에 들어갔다. 집은 큰 방 같았고 한쪽은 부엌이고 나머지는 침대와 의자가 놓여있고 소박한 살림살이다. 이집 액자에 한국인 두 명의 사진이 있는데 우리를 보고 무척 반가워한다.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어름(치즈의 종류) 빵과 치즈 마티차를 대접 받았다. 열댓살 쯤 보이는 소녀가 큰 칼로 능숙하게 양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소녀의 순진한 미소가 아름다웠다.
각박한 우리네 삶에서 길을 가다가 불쑥 아무 집에나 들어가 차를 대접 받을 수 있는 지 생각해 보았다. 그사이 동네 청년이 손질해 삶은 타르박 3마리를 가지고 왔다. 비닐에 싸가지고 와 생긴 것은 구경하지 못하였다. 몽골에서 타르박을 소지하는 것으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몇 겹을 싸 짐칸 깊숙이 숨겼는데 고소한 냄새가 난다.
이집에 더 머물면서 말도 타고 현지를 체험하고 싶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아쉬운 마음에 선물을 주고 헤어졌다. 이들의 환대를 잊지 못하겠다.
천천히 대평원을 건넌다. 을지트솜(E102°33′18″, N48°05′54″, h=1,258m, t=14:16:29)에 도착하니 앞서가던 선두 차량 일행들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식당이 작고 복잡해 마을 안쪽에 있는 가게 식당에 들러 점심을 시켰다. 양고기를 볶은 덮밥으로 맛있다. 외지인이 와서 가게 집 딸이 궁금한지 기웃거린다. 불러서 과자를 주었다.
작은 강가 아름다운 마을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달리는데 길과 습지대가 여러 개 곳이 나온다. 혼란이 왔지만 방위각을 정확히 잡고 좌우로 돌아 습지대를 빠져 나왔다.
비포장 남은 거리가 30여km 어렵고 힘든 고비는 넘기고 1시간만 더 가면 포장도로가 나온다. 오보(E102°44′05″, N47°56′15″, h=1,410m, t=15:51:59)를 지나니 멀리 포장도로가 보인다. 꿈만 같다. 지난 9일간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사막과 초원길을 어떻게 빠져나올까 쉼 없이 고민하고 연구하였는데 무사히 포장(E102°45′32″, N47°53′38″, h=1,348m, t=16:01:16)에 올라섰다. 날아갈 것 같다.
오보에서 보니 멀리 선두 차량이 습지대를 통과할 때 길을 돌아간다. 우리 차는 바로 빠져나왔는데 올기 호 분기점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따라 오지 않아 큰 다리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다리(E103°53′01″, N47°53′38″, h=984m, t=15:57:09) 아래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잔씩하고 자연을 즐기면서 여유를 부렸다. 운전수 저리거 씨는 메뚜기를 잡아 낚시를 하고, 30여분 기다리니 후미 차량이 교량을 지나간다.
짐을 정리하고 차를 몰았다.
가는 길 좌우에 한국인이 와서 조성한 인천숲(E104°02′10″, N47°51′41″, h=976m, t=16:04:01)과 한몽2008조림지(E105°09′26″, N47°51′37″, h=1,003m, t=17:01:55)에서 나무가 낮게 자라있다. 포장도로라고 하지만 계속되는 대평원과 초원에 소, 말, 염소, 양 같은 풍경이 지리하게 스치며 이어진다. 화물 차량도 점점 많아진다. 4차선(t=20:10:00)을 지나니 요금소(E106°36′54″, N47°′″, h=1,353m, t=20:17:09)가 나온다. 울란바트로 시내에 진입하였다. 야생에서 문명으로 들어온 것이다. 시내는 차량이 많아 교통 체증이 심하다.
하르호린 시장(t=20:36:05)을 지나 보야지 호텔(E106°54′42″, N47°55′35″, h=1,270m, t=21:05:30)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4년 전에 들렀던 무지개식당을 찾았다. 고향이 나주인 박성자 사장과 반갑게 인사하였다. 저녁 식사 전에 천소영(전)수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답사 소회와 특강이 있었다. 강의 내용을 그대로 전재합니다.
『한국어의 뿌리를 찾아서
발표자; 천소영 (前 수원대 교수, 국어사)
<들어가며> 탐사의 의미― ‘지워진 역사’의 현장인 몽골울스 ‘황금의 산’ 알타이의 산록에서 한민족(韓民族)과 한국어(韓國語)의 뿌리를 찾는 여정
.한국․한국인은 희귀하게도 민족, 언어, 역사, 문화, 국토 등 5개의 단일(單一)세트를 이룬 특성을 가졌다는데, 그 중에서도 언어면 에 주안을 두어(비교언어학, 언어계통론) 그 뿌리를 더듬어 보는데 의미를 두고자 함.
* 中華思想에 기인한 중국식 한자어 명칭에 대한 반성
예; 몽고(蒙古)→ 몽골(Mongol, 국명; ‘몽골울스’, 몽골리아, 민족명; 몽골리안>몽골로이드(Mongoloid). 흉노(匈奴)→ 훈(Hun)족, 돌궐(突厥) → 투르크(Turkut), 글안/거란/계단(契丹)→ 키태(Khitai), 여진(女眞)/여직(女直); 퉁구스계의 일족, 시대에 따라 읍루(邑婁)>물길(勿吉)>말갈(靺鞨)>금(金)>청(淸) 등으로 달리 일컬어 짐→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오랑캐(兀良哈)/우디게(兀狄哈)> ‘되’로 호칭하였음.
1. 한국어의 계통(系統)설
* 언어의 차이; 1. 언어적(계통적) 차이, (예;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
2. 방언적 차이 (예; 북경어와 광둥어, 제주도말과 서울말 등)
1, 한국어 계통에 관한 여러 견해;
1)자생(自生)설; (예; 고유민족어설, 天孫민족설, 不咸文化論, 주체사상론 등)
2)유입(流入)설 ① 북방계 유입설 (예; 알타이어족, 길약어 등)
② 남방계 유입설 (예; 드라비다어, 아이누어 등.
③ 다층적 혼효(混淆)설 (기층부와 상층부를 전제하여)
2. 알타이어족(Altaic family)과의 관련설
‘카레스텐’에 의한 ‘우랄-알타이어족’(Ural-Altai family)설 → ‘람스테드’ 및 포페에 의한 알타이어족 가설이 제기. (알타이 어학자 람스테드에 의하여 기존의 土․蒙․通 3어군(語群)에 새로이 (原始)한국어를 포함시킴, 알타이어족의 고토(故土)는 기원전 4천년 경 흥안령(興安嶺) 부근으로 추정함)
① 터키어군(Turkic branch); 우즈백, 아제르, 카자흐 등
② 몽골어군(Mongolian branch); 몽구올, 부리야트어 등
③ 만주․퉁구스어군(Manchu-Tungus branch); 에벤키, 라무트, 나나이어 등
# 4. 원시 한국어(A Korean) → (?) A Japan
* 알타이어족의 공통 특질
1. 소리(음운)면에서; 음운체계는 비교적 단순, 모음은 장단음의 교체가 없고, 모음조화가 있음. 자음에는 유기음(有氣音)이 없음.
2. 형태면에서; 교착어(첨가어)로서 두음법칙이 적용되고, 성(性)의 구분이나 관사(冠詞), 접속사, 관계대명사가 없음.
3. 문장면에서; SOV 어순(語順)으로 서술어 역할이 크고, 수식어는 피수식의 앞에 높임.
3, 몽골어와 한국어의 유연(有緣);
* 몽골로이드, 인종과 관련된 몽골반점(斑點)
* 원(元)나라와 고려(高麗)조와의 관계, 고려가요 중 불가해의 후렴구 (예; 청산별곡의 “얄리얄리얄랑성 얄라리얄라” 등)
* 제주도의 풍속과 관련된 ‘돌하르방(守護神)’ 및 조랑말
* 말(馬, 가라말, 고라말 등), 매(鷹, 송골매, 보라매 등)와 관련된 동물 명칭
* 설렁탕을 비롯한 육류명과 소주(‘아라기’ 특히 안동소주), 마산의 몽골간장을 비롯한 조리법과 관련한 음식 용어
* 한/칸/간(澣, 翰, 干), ‘-치’(値, 峙, 嗤)/지기 등과 관련된 관직 용어
* 기타 몽골풍의 의류명칭 등
<마무리> 민족과 언어와의 관련성 (특히 한민족의 한반도에로의 민족 이동을 염두에 두어야 함) 알타이어족은 자료의 부족이 근본적인 약점으로 꼽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가 전적으로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단정지울 수는 없지만 한국어 근간의 한 층위를 이루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음.
지워져 버린 몽골의 역사처럼 관심 밖으로 밀려난 한국어계통론에 대하여 이번 여행이 새로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함.
―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의미 깊은 즐거운 여행이기를 빕니다. 2014.8.9』
20여 분간 천교수의 수준 높은 강의를 듣고 이번 답사를 안전하게 마무리 하면서 맥주로 건배를 하였다. 서울식당 갈비탕의 맛이 일품이다. 남원호 회장이 저녁을 샀다. 식사 후 호텔로 돌아오니 몽골오리엔티어링연맹 관계자 두 분이 김건철 선생을 찾아오셨다. 작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때 만난 분들이라고 한다.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 감사로 있는 필자를 소개하여 한몽 양국의 교류와 친선을 원하여 담소하였다. 방으로 들어와 거울을 보니 수염이 덥수룩하다. 열흘 만에 제대로 된 샤워를 하였다. 집에 전화하고 자리에 누웠다. 장거리 여행으로 침대가 울렁거린다. 땅바닥에서 잘 때가 더 편했던 것 같다. 몽골 여행 마지막 밤을 자려니 아쉽고 잠을 쉽게 들 수가 없다. (9일차 이동거리 총 504km: 비포장 도로 172km)
몽골의 변화와 게르에서 사는 고난한 삶의 서민들 ……
#10일차 2014년 8월 10일 일요일(출발 t=10:07:01)
울란바트로 시내 유적지를 둘러보고 오후 비행기를 타야 한다. 늦잠을 자고 짐을 정리하고 호텔을 나왔다. 먼저 수흐바타르(E106°54′59″, N47°55′10″, h=1,264m, t=10:37:03) 광장을 갔다. 4년 전 답사 때는 칭기즈칸 광장이었는데 그동안 이름을 바뀌었다고 한다. 정부청사 가운데 칭기즈칸의 동상이 웅장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몽골을 상징하는 인물로 신적인 존재이다. 하늘이 맑고 청명하다.
간등사(E106°53′43″, N47°55′19″, h=1,257m, t=12:57:05)는 몽골인 이 와서 소원을 비는 곳으로 늘 분빈다. 신목에 손을 대고 돌면서 간절한 기도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바라고 기원하는가. 필자의 생에 대하여 뒤돌아본다. (일부 사찰이나 문서에서 卍자를 卐 뒤집어 진 것을 여러 곳에서 보았는데 두 가지를 혼용하여 사용한다.)
공룡박물관(t=13:30:10) 잠시 들러 구경하고, 이태준 기념공원을 찾았다. 몽골에서 의술을 베풀었던 선생(1883년~1921년)은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로 몽골인 들로 부터 존경을 받는다.
면세품을 파는 곳에서 낙타털로 만든 재킷을 사고, 인접한, 복드칸 왕궁 기념관 (t=16:39:48)을 찾았다. 고색창연한 왕궁 건물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왕궁과 기념관이 같이 있어 여러 가지 복식과 문화재들이 인상에 남는다.
서둘러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칭기즈칸 공항(E106°45′47″, N47°51′10″, h=1,246m, t=17:41:43)에는 많은 한국인이 모여든다. 무척 반가운 목소리들이 귓전에 들린다.
신익재 사장과 운전수들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출국 수속 후 비행기에 올랐다.
몽골 사막과 산맥을 넘는 험한 일정을 뒤로하고 답사를 마무리한다.
8월10일(일) OM305 오후 6시20분 몽골항공 출국~오후10시25분 인천공항 도착하여
내년 고조선유적답사회 중국 답사(2015년 7월 28일(화)~8월 4일(화) 7박 8일: 북경~승덕 ~적봉~파림좌기~통요~심양)를 기약하고 해단을 하였다.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 동아지도 대표 小砂 안동립 씀
(010-9342-7557)
이 답사기는 다음 여행자를 위하여 지리 좌표와 고도를 자세히 기록, 지도에 표기 하였고 필자의 회사의 업무로 조금씩 답사기를 정리하여 6개월 만에 탈고하였다.
현재 월간지 월간pt에 4회째 연재중이며, 인터넷 신문인 한국문화신문 얼레빗 (http://koya.egreennews.com) 새소식, 역사와 민족 코너에 연재 중이다.
[몽골 답사 여행Tip] 어떻게 야간 운행을 하였나?
-다음 사항을 유의하여 몽골 여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1)행정단위: 아이막=도, 솜=군, 바크=면, 노오르=호수, 오올=산, 오스=물
2)금지사항: 하천이나 강을 향해서 절대 소변을 보지 말 것, 물가에서 비누로 손을 씻어도 운전수들이 문제를 삼고 따지고 듭니다.
3)운전수와 관계: 여행 시 운전수도 답사단의 일원이라 생각하고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간혹 운전수에게 돈 주고 일시키니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옛날 한 무제의 마부였던 김일제의 이야기를 하면 한 무제가 밥을 굶더라도 마부의 밥부터 챙겨주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몽골인 들은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의 후예입니다. 호전적이고, 육식을 하여 힘이 세고 기골이 장대합니다.
4)몽골인 이 한국인에 대한 생각: 몽골인 들은 한국 사람들을 형제처럼 생각합니다. 민족적으로는 고조선족과 훈족은 형제 국가이고, 언어나 복식, 종교, 풍습이 매우 비슷합니다. 몽골 사람과 한국사람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또 6.25때 북한 아동 700명을 몽골로 피난 와 몽골 가정에서 키워 북한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길거리나 시장에서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몽골인 들이 많고요. 심지어 몽골 제2의 도시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몽골 총 인구 260만 명 중 한국에 결혼 이민과 노동자로 온 몽골인 수가 3만5천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5)차량 야간 운행 절대금지: 몽골 전 지역이 비포장도로라고 보면 됩니다. 큰 산도 구릉처럼 형성되어 차량이 올라 갈 수 있습니다. 말이나 낙타를 타고 이리저리 다녀 자연스레 생긴 길로 몽골 전역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이정표도 없는데 오보와 지형지물을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현지인들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야간 운행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길을 잃습니다. 특징물이 없고 여러 갈래 길이 있어 엉뚱한 데로 가기 쉽고, 지형지물이 비슷하여 같은 지역을 계속 맴 돌 수 있습니다. 야간 운행은 목숨을 담보 할 수 있으며, 사람도 가축도 밤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척 위험합니다.
6)어떻게 야간 운행을 하였나.: 필자 일행이 야간 운행 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가 대표로 있는 동아지도에서 개발 중인 스마트폰 GPS 세계지도 어플을의 구동하여 위치와 방위각을 잡고 운행하여 야간 운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GPS 어플에서 출발지와 목적지가 스마트폰 상에 뜨며 자기의 현 위치, 고도, 방향을 알 수 있으며 지나온 궤적을 저장 할 수 있습니다. 차량용 시가잭에 핸드폰 라인을 연결하여 충전하면서 항법 운행 하였기에 야간 운전이 가능하였습니다.
이 어플은 와이파이나 3G가 되지 않는 오지를 다니는 세계 여행자를 위하여 개발 중인데 이번 답사에서 정확도와 실용성을 확인 하였습니다. 조만간 스마트폰 GPS 어플을 상품으로 출시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