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백선 횟집, 회 절도사건
한국여행작가협회 소모임인 주당파 임인학 총재가 강력추천했던 제주의 백선횟집. 주당파라면 반드시 한번쯤 가봐야 할 성지로 통한다. 총재님께서 얼마나 회를 좋아하던지 혼자서 30만원짜리 다금바리 회를 시켜놓고 자작했던 전력도 가지고 있고 흑석동 허름한 횟집에서 나랑 회를 나눈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회 한 접시 먹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 탔고 하루 한번밖에 배가 다니지 않는 남도의 외딴섬까지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회귀신이다. 이런 임총재가 전국의 생선회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극찬한 곳이 바로 백선횟집이다. 제주 출장이 잡힌 날 이 고귀한 회를 접한다고 생각하니 손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뭐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하하
이곳은 육지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따치회(독가시치)를 전문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치는 지느러미에 독이 있어 전문 요리사가 칼질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제주에서도 취급하는 횟집이 거의 없다.
목숨을 걸고 회를 먹어야 진정한 회귀신이 아닐까?
먹고 싶다고 언제가 찾아가면 먹을 수 있는 생선도 아니다. 4월부터 12월까지 밖에 잡히지 않고 물때에 따라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횟집 앞에서 침만 꼴깍 삼키고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지난 3월에는 작정하고 제주를 찾았다. 횟집앞 여관까지 구하고 10년만에 지인을 찾아 횟집으로 불렀건만 그 계절에는 따치가 잡히지 않아 결국 방어회로 위안을 삼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사장님 따치회를 먹으러 서울서 일부러 찾아갑니다. 다 팔지 마시고 우리가 먹을 것은 꼭 남겨주세요."
미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독까치가 있는지 확인했고 우리가 먹을 생선은 남겨두라고 애원조로 신신당부 했다. 사장은 요즘 따치가 잡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1만원 올린다고 괜히 미안해한다.
"괜찮아요.그래도 먹을 거어요 . "
아마 5만원을 올렸어도 먹을 태세다. 성지순례에 았는데 돈이 문제일까. 아마 기분같아서는 전재산 헌납하더라도 먹을 거야.
회귀신이 전국 제일의 육질이라고 극찬했으니~ 동행한 동료, 후배 작가들의 기대도 하늘을 찔렀다. 우선 백선횟집앞 백록담여관(064-752-9141)에 방을 잡고 개선장군처럼 횟집문을 열어 제켰는데 어찌나 사람이 바글바글 하던지 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7시 넘으면 30분이고 기다려야 하는 말이 허언은 아닌가보다. 하늘이 도왔을까? 40명이 들어가는 식당에 유일하게 딱 한테이블만 빈 것이 아닌가. 주방옆이라 썩 내키지 않지만 우리가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분위기를 따진다면 제주시에도 운치있는 횟집이 부지기수다. 우린 오로지 따치회만 영접한다는 일념으로 좁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과연 어떤 횟감이 이 식탁을 장식할까~~10여분 정도 인고의 시간을 기다리며 곧이어 펼쳐질 참 진리를 맛보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드디어 주방아줌마가 따치회가 들고 왔다. 붉은 빛이 감도는 것이 붉은 악마의 응원복을 입은 것 같다.
세 번 횟집을 찾아 처음 먹어보는 따치회. 부들부들 손이 떨린다. 애써 긴장을 풀고 젓가락으로 회를 집었더니 의외로 두툼하고 묵직하다. 백짓장처럼 얇게 썰었다면 5점은 족히 나올 것만 같다.
회 한점을 살포시 입에 넣었다. 입천장에 단 맛이 묻어나고 사르르 녹는 것 같다. 어금니로 살짝 씹었더니 아작아작 씹는 식감이 뛰어나다. 고소하며 씹을 수록 단맛이 우러난다. 작가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대한민국~~짝짝짝~짝 "
어찌나 감칠 맛이 돌던지 순싯간에 회 한접시(대 6만원)가 사라지기 일보직전이다. 한라산 소주가 유난히 달다. 저녁도 먹지 않았고 젊은 장정 4명이 먹어댔으니 회가 남아 돌겠는가? 대화도 별로 없이 안주발을 경쟁하면서 먹었으니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사건은 이렇게 뿜빠이에 따른 치열한 경쟁과 수요의 불균형때문에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회가 거의 떨어질 무렵, 갑자기 옆테이블의 제주 현지인 4명이 훌쩍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귀한 회를 1/3이나 남겨 두고 전부 나갔단 말이다.(위 사진 참조)
"어쩜, 회를 저렇게 많이 남겨 놓고 나가니?"
"술도 많이 남겨두고 갔네."
"제주 사람 돈도 많아."
이런 대화가 오가다가 내 눈에 뭐에 씌였는지
"운석아. 옆테이블에 있는 회 우리 접시로 옮겨라."
아마 임운석 작가도 나랑 이심전심이었나보다.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회를 보면서 얼마나 절망했겠는가? 가난한 여행작가의 비애라고 할까. 선배 작가가 이렇게 명령하니 얼씨구나 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옆테이블 회접시를 들더니 전광석화같은 젓가락질 솜씨로 우리 접시에 회를 전부 옯겨 놓은 것이다. 우헤헤 완전범죄~~
이를 지켜본 유정열 작가와 박동식 작가는 창피하다며 식당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자식 소심하기는~ (참고로 말하면 두 사람은 총각. 너희들 애들 키워봐라...)
"뭐. 어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보다 낫지"
모두 옮겨 놓고 대장인 내가 한 점 맛보았다. 아이구~~ 좋다.
그런데 횟집사장이 냉장고에 술을 가지러 왔다가 우리 테이블의 회접시를 보더니
"혹시 옆테이블에서 회 가져왔어요?"
왜 물어보지. 쪽~팔리지만 실토하지 않으면 괜히 2접시 값 우리가 물어내야 할 것 같았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예. 그런데요?"
"아이구 큰일 났네. 저 사람들 안 갔어요. 바깥에서 지금 담배 피우고 있어요."
그 순간 운석이랑 나의 얼굴은 잿빛으로 바뀌었다.
아까보다 두배는 더 빠른 동작으로 옆 테이블 빈접시를 가져와 회를 옮기기 시작했다.
원래 예쁘게 줄이 맞춰있었지만 그럴 경황도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가뜩이나 없는 우리 회도 몇 점 딸려 들어간 것 같았다. 다시 가져올 수도 없고... 사장도 우리 편인지 지나가면서 회를 맨손으로 예쁘게 정렬한다. 아. 이 무슨 창피야~~
"운석아. 걸리면 어떻하지?"
"아마 술 취해서 모를거예요"
조금 지나자 현지인 4명이 한꺼번에 들어와 자기 자리에 착석한다. 군대도 아니고 한꺼번에 움직여.
(지금 생각해보니..4명이 한꺼번에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나. 애정남에게 묻고 싶다. 난 반칙이라고 생각해. 식당 주인 입장에서....나중에 튀면 어떻하라구..아마 단골인지도 몰라 )
어째튼 그들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 서로 술을 권하고 회를 집어 안주로 삼는다.
"휴~~"
"거봐요...술 취해서 모른다고 했잖아요."
조금 있다가 밖에 나갔던 정열과 동식이가 얼굴을 푹 숙인채 들어온다. 귓속말로
"저 사람들 너희 둘이 회 옮기는 것 바깥에서 다 보고 있었어. 눈이 뜅글해져서 쳐다보더라. 나 너무 챙피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빈 전화기 들고 문자 보내는 척 했어."
어휴 cb 쪽팔려 ...아마 그들은 우리가 창피할까봐 그냥 모른척 해준 것같다. 만약 문제 제기했다면 우리가 회 한접시 물어줘야 했고 그보다 얼마나 챙피한 일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참 고마웠다.
회 한접시 때문에 이렇게 비참해지다니 ~~분위기도 전환할 겸~
'정열아. 우리 모듬회(중 4만원) 하나 더 시킬까?'
"이왕이면 따치회 (중 5만원)를 시키지요."
돈도 별로 없는 정열이가 아주 오버를 한다. 비싼 회를 또 먹자고 하니~~
"사장님. 여기 따.치.회. 한 접시 더 주세요."
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이왕이면 돈 많은 사장님 냄새가 물씬 풍기도록~~
우리가 거지가 아님을 만방에 선포하는 투사처럼 말이다.
'나는 부자다.' 그러니까 우린 이걸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식당 문 닫을 때까지 한라산을 마셔댔다. 그제서야 제주의 영혼, 한라산 기운이 내 몸에 스며든 것 같다.
여관으로 돌아와 아까 사건을 복기하면서 다시 웃어 제킨다. 사진은 동식이 웃는 모습~
맥주가 떨어져 사오라고 했더니 평소에는 1.8리터 패트맥주를 사온 정열이가 이번에는 하이네캔, 아사이 등 비싼 외국산 캔맥주를 사온 것이었다.
"정열아. 왜 이렇게 비싼 맥주를 사왔니?'
"오늘 열라 비참했잖아요. 그래서 비싼 것 사왔어요."
"너 다 먹어. 그 사람들이 이 비싼 맥주 사왔다고 여관에 와서 보니?"
"그래도 제 마음이 그게 아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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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우스워 뒤집어질뻔했어요 ㅎ ㅎ ㅎ ㅎ 근데 대장님과 정열이오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샘솟는 건.... 동질감이지요? ㅎ ㅎ ㅎ ㅎ
오뜨케요~ㅋㅋ 일행이 남은 술 따르는건 본적있는데 안주는 처음 듣네요. 하긴 회가 맛있잖아요 비싸고.. 어쨌든 넘 웃겨요 ㅋㅋㅋ
손님이 간줄 알고 나도 넘볼것 같아요
옆테이블에 남은 회를....
제주에 가서 쌍동이횟집에 갔는데 30분이상 기다렸어요
사람 많고 회도 맛있었고...
어제 오후 에 백선횟집을 갈 예정이었으나 점심때 서귀포 "갈치조림명가"에서 엄청 맛있게 잘 먹어서 그냥 왔는데 "모놀 대장"이 추천해서 왔다 했으면 이 사건을 기억하셨을라나^??
이 글 읽다 기다림짝과 엄청 눈물나게 울고 있어요^^*
ㅋㅋㅋ 따치회가 그렇게 맛있는 건가요? 그래도 그 순간을 잘 모면하셔서 다행이네요^^
서민이라면 누구나 저질르는 행동 아닐까요?
제주도 가서 꼭 먹어봐야지, 따치회
뭔가 길디 긴글, 피곤해서 내일 읽을까하다가 끝까지읽은 보람이 있네요 .
계속 그 아찔했던 순간을 되뇌이면서 재미있게 잠들거 같아요..에휴 저라도 그랬을듯~
그맴 저도 알것 같군요 ^^*
대장님! 이글을 읽고 한시간은 웃었어요. 생각할수록.....왜냐하면 우리도 그런 비슷한일이 있었거든요. 그때 생각도 나고.... 배꼽을 잡았습니다.
ㅋㅋㅋ 원래 인간은 그런일을 당하면 누구나 욕심이 생기는 법이랍니다
주머니사정 어려운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죠 먹고 남기거면 재활용은 안될 것이고
당연히 집어다 먹고 싶겠죠 아깝기도 하고 ...ㅋ 그럴수 있어요 충분히 이해됩니다..그러면서 추억거리 남기셨네요...
9월 가는데 맛봐야것네요 저도 회 광 이지 말입니다
근데 넘 웃겨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