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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1:1-18 가장귀한 보배는
중국 송나라 때 희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이 당시 높은 벼슬에 있던 자한에게 바치려고 감정인을 찾아갔습니다. 감정을 마친 감정인은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진귀한 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한에게 가서 보물을 보여주며 감정인의 말을 전했습니다. 청렴하고 고결한 인품을 지녔던 자한은 이를 거부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보석을 보배로 여기고 있으나,/ 나는 탐하지 않는 마음을 보배로/ 여기고 있습니다.
내가 이 보석을 받으면 우리 둘 다 보배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혹 눈에 보이는 가치가 보배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보배일까요?
여러분의 보배는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말씀했습니다.! (고후4:18) 보이는 보배가 다 보배는 아닙니다. 진정한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보배를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배는 무엇입니까?
혹여 그 보배를 여러분의 생명과 바꿀 수 있습니까? 바꿀 수 없다면 우리에게 가장 귀한 보배는 우리의 생명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가장 귀한 보배가 뭔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가장 귀한 보배는”라고 정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귀한 보배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장 귀한 보배로 삼을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 번째로 복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사도행전 10장에서 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0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고넬료라는 이스라엘의 정복자인 로마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넬료라는 백부장이가 이스라엘 땅에 와서 유대교회로 개종을 합니다.
고넬료는 개종을 하고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말로만 믿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고넬료 같은 사람이되야죠. 그렇죠.
말로만 사랑외치면 안되죠. 기도할 때 사랑해야 한다고 기도는 잘하면서 생활에서는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하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말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한다고 하고 돈은 쓰지 않고 힘은 들이지 않고 함께 아파하지도 않고 기도는 사랑하며 살자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정작 성질부리고 나 자신만을 위한다면 그게 어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겠습니까? 고넬료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행10장 보면은 고넬료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 경건을 지키고 이웃은 사랑하고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돌보는 구제로 나타났습니다. 그 일에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었고 심지어 하나님도 천사를 보내 인정해 주셨습니다.
또 그에 삶속에 많은 열매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고넬료의 집에 있는 하인이나 부하가 예수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천사가 나타나서 고넬료에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잘 섬기고 또 구제하는 일에 열심인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내가 왔다. 너는 가서 베드로라는 사도를 청하여서 그를 너희 집으로 초대하라”는 하나님의 멧세지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지시하신대로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는 경건한 사람을 불러다가 베드로가 있는 곳에 보내서 베드로를 청하게 됩니다. 청함을 받은 같은 시간 베드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싸인을 받게됩니다. 황홀한 환상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얀 보자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보자기 속에 율법으로 금기되어 있는 곤충과 짐승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베드로에게 먹으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에는 이런 거 먹지 못하게 되어 있는 대여 저는 이거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네가 이것을 어찌 속되다고 하느냐? 내가 깨끗하다고 하는데 네가 왜 속되다고 하느냐?”
베드로야 네가 지금 사도가 된 것은 율법으로야 복음으로냐? 지금 많은 사도가 된 것이 율법으로 된 거냐 복음으로 된 거냐? 무엇으로 된 겁니까? 율법 조항을 잘 지켜서 입니까?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로 복음으로 된 것입니까? 복음이죠.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율법을 위해서 있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있습니까? 만약 율법을 위해서라면 그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사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그렇게도 귀하고 귀한 보배로운 영혼인 고넬료를 을 구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 가장 보배로운 영혼을 구하는 길이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고난과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당시 그 유능한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가 아니라 고기 잡고 어부를 사람들로부터 손가락 질 받는 세리들을 부르셔서 복음을 통하여 가장 귀하고 존귀한 영혼을 얻고자 하셨던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 가장 귀한 보배로운 영혼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복음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욥바로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처럼 가기 싫은 거북스러운 사람에게도 복음들고 찾아갑시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베드로가 가서 고넬료의 집에 가서 되어진 예기들을 듣고 그 자리에 모두가 성령충만함을 받고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소식이 유대에 있는 사도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복음으로 한 일이 비난받았습니다. 오늘 11장 1절에 보면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함을 듣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 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하니” 라고 베드로를 비방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사도가 되고 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율법이 었습니까? 복음이었습니까?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이들이 이 자리에 모여서 천국을 이야기 할 수있었던 것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복음 복음 복음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들은 자꾸 율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율법의 삶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서 너는 이방인 집에 들어갔냐? 율법이 금하고 있는 그 일을 왜 행하였냐? 어찌하여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냐?” 라고 베드로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의 지도자의 자격으로 그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그 집에 간 것은 복음의 사도로서 그 집에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의로 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하여 그들에게 찾아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가장 존귀한 보배는 복음으로 이루어 지는 줄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율법으로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예수 믿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친구로 대할 수 있나요. 율법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으로써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장 귀한 보배로움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기꺼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복음으로 하셨습니다. 율법으로 따지자면 모두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하여 복음으로 살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으로 가장 존귀한 보배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장 귀한 보배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에 것으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번째로는 영혼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육신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영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다른이의 영혼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실 때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해 보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고통과 고난 침 뱉음과 온갖 수모를 당 하면서도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귀한 보배로운 여러분과 저를 향한 영혼구원에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아무 변명도하지 않았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을 때도 한마디도 변명 안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얼마나 답답했던지 내가 너를 놓아 줄 권도 있고 죽일 권도 있는 줄 모르느냐? 라며 하도 답답해하며 뭐라 말좀 해보라고 해도 한마디도 말하지 낳았습니다.. 너 말한 마디만 하면 그걸 근거로 놓아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가장 보배로운 여러분과 저에게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뿐이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 마음이 이 모든 걸 다 빼앗겼습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던 예수님은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십자가 이후에 구원받을 여러분과 제 생각뿐이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아주 귀한 보배 놓칠 수 없는 여러분과 저를 향한 그 영혼 구원에 예수님의 모든 생각이 꼿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죽어가는 그 순간 속에서도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을 보고 눈물 흘리는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 고 가장 존귀하고 귀한 그 영혼들을 위해서 울라 라고 또 영혼들을 당부하시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예수님은 영혼 구원에 자신을 내어 주면서 까지 가장 존귀하고 보배로운 일을 실천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변함없는 예수님에 사랑입니다. 고넬료도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유대인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이웃 사람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그들의 지휘관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에 실천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더 나아가 온 인류의 영혼들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4:31절에서 38절에 보면 수가 성 여인이 예수님에게 전도를 받고 가장 귀한 보배가 뭔가를 깨달은 이 여인은 물동이를 내던지고 마을 안에 뛰어 들어갑니다. 가장 귀한 보배가 영혼임을 알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러 뛰어 들어 갑니다. 여인이 간 사이 예수님 혼자 계셨을 때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해 찾아와서 예수님에게 드시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이미 나에 양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그 뜻이 뭔가를 모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이 무엇인가를 모릅니다. 예수님은 마치 진주장사가 가장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며 자기 소유를 다 팔았던 것처럼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배를 찾아다니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36절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미 삯을 주었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일꾼에게 이미 삯을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일꾼이 아직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삯을 주었다고 하시는건 무엇입니까? 너는 삯을 이미 다 받았으니 너는 지금부터 일을 해야지 뭘하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천국을 주셨습니다. 영생을 주셨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이제우리는 그 삯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여러분과 제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추수하는 일입니다.. 내낫 들고 나가 추수해야 합니다. 가장 하나님이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그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실천해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우린 이미 삯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일찍이 제자들도 행5장 42절이나 행8장12절에서 보면 제자들은 시간만 나면 나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했습니다. 시간만 나면 전했습니다. 왜요? 그들은 이미 자신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라는 참으로 가장 귀한 보배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11장1절에서도 예수님은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시며 전도하기를 힘썼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힘쓰십시다. 예수님이 그렇게 귀한 보배로 여겼던 영원을 향한 여러분과 저도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장 귀한 보배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에 것으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번째로 체면을 생각지 말고 하나님에 영광으로 살아야합니다.
내 체면이 앞서면 전도 못합니다. 영혼구원 이룰 수 없습니다. 저 이번에 초등학교 동창생들한테 전도했습니다. 그동안 체면 생각해서 우회적으로 했습니다만 이것이 아니다 싶어 이번에 직선적으로 했습니다. 오늘 여기 보면 유대인은 사도들과 또 할례받은 자들이 할례를 받은 이 사람들이 체면을 생각했어요. 어찌 저 무 할례자 들과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느냐? 베드로여 사도가 어찌 그 무 할례자들과 함께 있느냐? 우리가 만약에 무 할례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소식을 다른 유대인이 듣는다면 그 유대인들에게 가서 우리가 복음을 어찌 전파하겠느냐? 라고 꼬투리를 잡습니다. 어찌 너희는 율법에 할례자들은 무할례자들과 함께 할수 없는데 어떻게 해서 예수를 전한다고 하면서 너희가 무할례자들과 함께 있느냐? 하고 이들은 체면을 앞세웁니다. 특히 한국은 체면 문화가 강합니다. 그 문화속에서 우리 자라왔습니다. 체면 때문에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양반이라는 체면 때문에 굶어죽어도 일하지 않았고 비가와도 뛰지 않고 비 다 맞고 참 체면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들은 행11:18절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체면 속에 갖혀 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내 체면 속에 가둬도 안됩니다. 복음의 위대함을 내 체면 속에 가둬서도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체면을 깨뜨려 버리십시요. 여러분의 체면의 문을 활짝 열어놓십시요.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의 자존심이나 체면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영혼 속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체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 이웃이 내가 만나기 어려운 껄끄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내 제면이 내 자존심이 구겨질만한 대상도 있습니다. 저 사람을 전도하고 저 사람을 가장 귀한 보배로 삼고 싶 은데 내 자존심이 내 체면이 허락지 않습니다.그런데 그냥 멈춰버란다면 하나님께 서 그렇게도 귀하게 여기고 보배롭게 여기는 영혼을 놓쳐버리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한 영혼을 섬기기로 작정합니다. 6월이 다 가기전에 한 영혼을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맥추절까지 하십시다. 우리 연무교회 속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늘 행11장 18절 말씀처럼 우리의 자존심과 체면과 생각밖에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들에게도 여러분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전하기를 원하시고 베드로를 통하여서 고넬료의 집 그 가족들에게 임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통하여 여러분 이웃과 여러분의 체면 넘어에 여러분의 자존심 너머에 여러분의 환경의 너머에 하나님은 역사하시고자 하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귀하고 보배로움이 여러분의 체면 속에 여러분의 자존심 속에 여러분의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체면과 자존심과 환경과 너머에 하나님님께서 가장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보물이 그 속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디도서1:3절에 서도 보면 “자기 때에 자기 전도로 말씀을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끼셨어요. 예수님께서 디도서1:3절 말씀처럼 이 놀라운 축복의 은혜를 맡끼셨으니 이제 이것을 감당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일이야 말로 천사도 흠모할만한 일이고 누구에게도 맡끼지 않고 오늘 여러분과 제게 이 지역을 맡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보배로움을 아는 자에게 맡껴주십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않습니다. 진주의 보배로움을 돼지가 알 수 없습니다. 줘바야 짓 밟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주시면 귀중한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그렇게도 애지중지 하셨던 영혼을 여러분과 제게 맡껴주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최고의 귀한 보배로 여기고 그 영혼을 향하여 달려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전도하는 일에 힘쓰고 많은 영혼들을 주님의 옳은 길로 인도하는 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별은 낮에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별은 밤에 빛납니다. 모든 사람이 길을 찾기 위해서 다음에 길을 가기 위해서 낼 아침에 날이 밝으면 자기가 가고자하는 방향을 찾기 위해서 모두가 별에게 의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많은 영혼을 옳은 길로 인도할 때 이 세상을 여러분과 제게 맡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길잡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나침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일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과 저는 이러한 위대한 일에 영광스런 일에 함께 동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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