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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광주진흥고
@ 창단 - 1973년
@ 우승 - 2회
@ 준우승 - 7회
<대통령배 : 01년 우승>
<청룡기 : 01,06년 준우승>
<봉황기 : 00년 우승, 77,86년 준우승>
<황금사자기 : 81,85,86년 준우승>
@ 연도별성적
년도 |
감독 |
대통령배 |
청룡기 |
황금사자 |
봉황대기 |
비고 |
73 |
김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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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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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
서용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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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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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박인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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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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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허양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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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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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
백대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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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 |
봉황기 우수투수(전인수),감투(김성영) |
78 |
백대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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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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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김기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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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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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황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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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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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
김광배 |
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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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 |
1회탈락 |
황사기 감투(김정수) |
82 |
도영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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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1회탈락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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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
김학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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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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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
강의원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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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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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
강의원 |
4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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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 |
16강 |
황사기 감투(송한근) |
86 |
강의원 |
1회탈락 |
1회탈락 |
준우승 |
준우승 |
황사기 감투(오희주) |
87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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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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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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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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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
이성열 |
1회탈락 |
1회탈락 |
8강 |
8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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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
이성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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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32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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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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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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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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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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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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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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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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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
강의원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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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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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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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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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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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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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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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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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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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
강풍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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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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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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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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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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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
봉황기 최우수선수,최우수투수(김진우), |
01 |
강의원 |
우승 |
준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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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
대통령배 최우수(최근호),우수투수(김진우) |
02 |
강의원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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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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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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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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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강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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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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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
박병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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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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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
박철우 |
32강 |
준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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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강 |
청룡기 감투(정영일) |
07 |
최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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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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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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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지명&입단선수 명단
79 장진범 (우우/IF/영남대/해태(83년 1차)/87년은퇴)
80 김영용 (우우/IF/OB(84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84년은퇴)
82 강풍원 (우우/IF/연세대-상무(86)/미입단(삼성 86년 2차, 태평양 88년 6번))
82 김경배 (?/OF/연세대/미입단(삼성 86년 2차))
82 김경호 (우우/IF/인하대/해태(86년 1차)/86년은퇴)
82 김정수 (좌좌/P/연세대/해태(86년 1차)-SK(00)-한화(01)-SK(03중)/03년은퇴)
82 오귀섭 (우우/IF/인하대/미입단(청보 86년 2차, 태평양 88년 8번))
83 박병준 (우우/OF/원광대/미입단(OB 87년 3번))
84 차영석 (우우/C/한양대/롯데(88년 지명외)/90년은퇴)
85 김인호 (우우/OF/성균관대/롯데(89년 1번)-태평양(90)/01년은퇴)
85 나광남 (우우/OF/단국대/삼성(89년 4번)/91년은퇴)
85 송유석 (우우/P/해태(85년 지명외)-LG(97)-한화(00)/01년은퇴)
85 정재한 (우우/P/해태(88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89년은퇴)
86 유충돌 (우우/IF/성균관대/롯데(90년 1번)/92년은퇴)
87 김인권 (우우/UP/건국대/빙그레(91년 1번)-해태(95)/95년은퇴)
87 박재벌 (좌좌/OF/건국대/해태(92년 지명외)/98년은퇴)
87 오희주 (우우/P/한양대/해태(91년 1차)-LG(93)/97년은퇴)
87 정환곤 (우우/C/한양대/해태(91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92년은퇴)
87 최창식 (우우/IF/한양대/미입단(태평양 91년 9번))
89 김갑중 (우우/OF/한양대/태평양(93년 3번)-쌍방울(99)/99년은퇴)
89 박병호 (우우/C/해태(89년 연고지명)/96년은퇴)
89 이민호 (우우/IF/한양대/해태(93년 지명외)/96년은퇴)
89 정동해 (좌좌/P/해태(89년 연고지명)/90년은퇴)
90 고형욱 (좌좌/P/인하대/쌍방울(94년 지명외)/99년은퇴)
90 김병두 (우우/IF/해태(90년 연고지명)/93년은퇴)
90 박현수 (우우/OF/해태(90년 연고지명)/93년은퇴)
90 배훈 (좌좌/OF/인하대/해태(94년 지명외)/95년은퇴)
90 최재영 (우우/UP/단국대/해태(94년 1차)/96년은퇴)
91 김승남 (우우/P/해태(91년 연고지명)-삼성(93)-쌍방울(97중)/97년은퇴)
91 윤현필 (우우/IF/건국대-현대피닉스(95)/미입단(LG 95년 3번))
92 김노현 (우우/OF/해태(92년 연고지명)/출전기록없음/92년은퇴)
92 양승철 (우우/P/해태(92년 연고지명)/97년은퇴)
92 정원배 (우우/C/인하대/쌍방울(96년 6번)/00년은퇴)
93 박성윤 (우우/OF/해태(93년 연고지명)/출전기록없음/93년은퇴)
93 박진철 (우우/UP/해태(93년 연고지명)-두산(04)/04년은퇴)
93 오명종 (우우/OF/해태(93년 연고지명)/94년은퇴)
93 이경송 (우우/IF/해태(93년 연고지명)/출전기록없음/93년은퇴)
93 이대진 (우우/P/해태(93년 연고지명)(現))
93 이명일 (우우/C/해태(93년 연고지명)/출전기록없음/93년은퇴)
94 김형성 (좌좌/1B/해태(95년 지명외)/98년은퇴)
94 변철 (우우/C/해태(94년 연고지명)/출전기록없음/94년은퇴)
94 하경득 (좌좌/P/해태(94년 연고지명)/출전기록없음/95년은퇴)
95 임창용 (우우/UP/해태(95년 연고지명)-삼성(99)(現))
96 김상진 (우우/P/해태(96년 우선)/98년은퇴/99년사망)
96 선성균 (우우/P/원광대/롯데(96년 21번, 00년입단)/출전기록없음/01년은퇴)
96 신주일 (우우/IF/중앙대/SK(96년 20번, 00년입단)-상무(02)-SK(04)/04년은퇴)
96 오주헌 (우우/P/원광대/미입단(해태 96년 20번))
96 유종열 (우우/OF/계명대/미입단(해태 96년 13번))
96 이동욱 (좌좌/OF/기아(96년 14번)/98년은퇴)
96 정영진 (우우/1B/인하대/샌디애고(00년입단)/출전기록없음/01년은퇴)
97 김기동 (좌좌/OF/원광대/한화(01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01년은퇴)
97 김원 (우우/OF/원광대-상무(01)/SK(04년 지명외, 97년 해태 우선)/04년은퇴)
97 류기중 (우우/P/해태(97년 7번)/00년은퇴)
97 유창희 (우우/C/원광대/미입단(쌍방울 97년 6번))
98 김정진 (좌좌/P/한양대/미입단(해태 98년 우선))
98 오국기 (우우/P/LG(98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98년은퇴)
99 강명구 (우좌/IF/탐라대/삼성(03년 1번)-상무(08)(現))
99 서한중 (우우/P/해태(99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99년은퇴)
00 오철희 (우좌/OF/보스턴(00년입단)/출전기록없음/02년은퇴)
01 엄대기 (우좌/C/성균관대/기아(05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05년은퇴)
02 김경선 (우우/P/고려대/한화(02년 7번, 06년입단)(現))
02 김진우 (우우/P/기아(02년 1차)-임의탈퇴중(現))
02 손주인 (우우/IF/삼성(02년 3번)-경찰청(06)(現))
02 조용원 (우우/P/한양대-경찰청(現)/미입단(기아 02년 8번))
03 김재천 (좌좌/OF/SK(03년 3번)/출전기록없음/04년은퇴)
03 정다운 (우우/P/삼성(07년 지명외)(現)/출전기록없음)
04 권희석 (우우/IF/기아(04년 3번)-군복무(現)/출전기록없음)
05 전준호 (우우/IF/SK(05년 7번)/출전기록없음/06년은퇴)
05 허웅 (우우/C/기아(05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06년은퇴)
06 김창호 (우좌/OF/단국대(現)/미입단(삼성 06년 9번))
06 양의지 (우우/C/두산(06년 8번)(現))
06 임경남 (우우/P/송원대/현대(08년 5번)-입단협상중(現))
07 나성용 (우우/C/연세대(現)/미입단(LG 07년 6번))
07 정영일 (우우/P/LA에인절스(기아 07년 1차)(現)/출전기록없음)
08 문준용 (우우/IF/미입단(두산 07년 9번, 지명후유급))
08 나성범 (좌좌/OF/연세대(現)/미입단(LG 08년 4번))
@ comment
전국대회 우승이라는게 손쉬웠던 적이 있었겠습니까만 진흥고의 2000년 봉황기 우승은 진흥고로선 정말로 어려웠고 값진 우승이었습니다... 1972년 창단이후 30년간 5번을 결승에 올라 모두 실패하고 6번째 결승진출에서 얻어낸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진흥은 광주야구의 부흥기였던 77년도 전인수-김성영 배터리와 현재 프로심판으로 활동하는 장진범의 활약으로 전국대회 첫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결승전 파트너는 비슷한 시기에 창단해서 똑같이 창단 첫우승을 노리던 충암고였습니다..
그 이후 진흥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인물은 김정수입니다..
김정수는 81년 첫대회인 대통령배에서 박노준, 김건우가 포진한 막강타선의 선린상을 2:0 완봉으로 잡으면서 그 이름을 전국에 알렸습니다.. 김정수의 진흥은 그해 마지막 황금사자기에 결승까지 올랐지만 최강팀 경북에게 완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는데, 김정수 개인으로서는 가을에 벌어진 한일정기전에서 박노준, 김건우의 부상속에 한국대표팀의 에이스를 맡아 인상적인 활약을 하면서 그 댓가로 고교생신분으로 국가대표에 뽑히기도 했었습니다..
84년에는 현대에 있는 김인호와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역시 심판으로 있는 나광남 그리고 송유석의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학시절까지 전남대표 투창선수를 지냈던 송유석의 고교시절의 활약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대기만성의 선수였습니다..
85년의 황금사자기에서도 전주고에게 패하면서 첫우승의 감격을 양보했고 86년에는 봉황기와 황금사자기.. 두 번이나 결승에 올라 모두 2:1의 아쉬운 패전으로 통산 5번째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의 투수가 프로입단시절 김기태를 제치고 91년 해태의 1차지명을 받았던 오희주와 빙그레에서 활동한 언더핸드 김인권이었습니다..
92년의 이대진과 박진철.. 94년의 임창용.. 95년의 김상진..
90년대 들어서도 우승운은 없었지만 화려하게 배출되는 진흥고의 에이스들은 모두 90년대 해태의 주력투수들로 성장했던 선수들입니다..
그러나 포스트 선동열이라는 극찬과 함께 프로야구의 대투수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이대진은 몇년째 부상으로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장신의 언더핸드 박진철도 입단시의 기대에는 못미친채 두산으로 트레이드되었다가 은퇴했습니다.. 또 21세에 위암으로 사망한 김상진은 진흥고 출신중 가장 불운한 선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전성기때의 위력에는 못미치지만 삼성에서 뛰고있는 임창용만이 현재 진흥고 에이스중 명맥을 유지하는 선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99년에는 모처럼 투수가 아닌 타자로 이름을 알린 선수가 등장합니다.. 우투좌타의 외야수로 전국최고타자중 한명이었던 오철희는 고교졸업과 함께 미국으로 진출, 보스톤레드삭스 소속의 마이너리그에서 고 뛰었지만 2년만에 방출되었고 그이후 국내복귀를 꾸준히 모색했으나 실패한 비운의 선수입니다...
진흥고는 2000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승의 꿈을 이뤄냅니다.. 김진우, 조용원, 김경선, 손주인, 최근호, 김재천 등 1.2학년들이 주축이된 화려한 맴버들은 선배들의 불운했던 우승징크스를 비웃듯 상대팀들을 압도적인 전력으로 제압하고 봉황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0년의 마지막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한 이들은 2001년 첫대회인 대통령배에서도 우승하면서 두 대회 연속우승을 기록했고 청룡기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진흥고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2002년 당시까지 사상최고의 계약금으로 기아에 입단한 우승의 주역 김진우는 입단직후부터 기아의 에이스로 발돋움할만큼 기대를 한몸에 받던 선수였으나 잦은 부상과 사생활문제로 현재는 팀을 이탈, 임의탈퇴신분으로 야구계를 떠난 상태인데 2000년대 중반이후 마운드가 무너지면서 하위권에 떨어진 기아를 위해서나 본인의 아까운 재능을 위해서나 하루속히 복귀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승은 아쉽게 놓쳤으나 2006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16회를 완투하며 눈물의 준우승을 차지한 정영일은 이후 기아 1차지명을 받았지만 LA에인절스와 입단계약을 하면서 도미, 다시금 기아와 진흥고의 순탄치않은 악연을 되풀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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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전에 정영일선수가 우리가게 와서 깜짝 놀랬었는데..
사인도 받고ㅋㅋ 다시온다고 해서 가다렸는데 미국가벼렸다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