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여행(6)-이튼스쿨의 연미복, 소수 엘리트교육 필요한 것인가?
20 여년 만에 윈저 성(Windsor Castle)과 이튼스쿨(Eton School)을 다시 가본다. 이곳은 런던에서 멀지않은 곳이라 필자가 영국에서 살 때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반드시 안내하는 필수관광코스 중 하나였다.
윈저 성은 버킹엄궁과 함께 영국여왕이 실제 살고 있는 별궁으로 런던에서 서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이튼(Eton)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여왕은 공식적으로는 1년에 두번 윈저 성에 머무르게 되어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대부분의 주말을 윈저 성에서 보낸다. 외국 국가원수 초대 만찬이나 왕족 결혼 및 생일잔치 등도 윈저 성에서 열린다. 그리고 윈저성에서 테임즈강을 건너 10여분 만 가면 영국 최고의 명문고교인 이튼스쿨(Eton College)도 자리잡고 있다.
윈저 성은 관광지로서 유명하지만 필자는 이번 방문에서는 영국 인재의 산실인 이튼스쿨에 더 관심이 쏠린다.
이 학교는 13-18세 남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데 여기에서는 College란 이름을 쓰고 있다.
이튼스쿨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영국 왕위계승자인 찰스왕세자, 그의 아들 윌리엄왕자와 해리왕자 등도 이 학교를 졸업했으며, 무려 25명의 영국총리, 조지 오웰 등 유명문인들도 배출한 명문귀족학교이다. 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역시 이튼 출신이다. 워털루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국의 전쟁영웅 웰링턴 장군도 이튼 출신으로 '워털루 전투의 승리는 전장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이튼 교정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매년 졸업생의 1/3 이상이 옥스포드나 캠브리지대학 등 최고명문대학에 입학한다.
원래 이 학교는 1440년 헨리 6세에 의해 주변 마을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설립되어 70명의 장학생들이 4개의 기숙사에서 공부한 것이 시초인데 지금은 귀족자제들이나 부유층, 천재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세계적인 명문사립학교로 이름이 높다. 1,300여 명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이튼 특유의 인성교육으로 국가적 리더를 길러낸다. 학교경영은 수업료 수입과 거액의 기본재산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문교 당국의 보조를 받지 않는 독립학교(independent school)로 운영된다.
이튼스쿨은 학교캠퍼스가 한 군데 모여 있는게 아니라 여기저기 분산돼 있는 게 특색이다. 동네 전체가 학교 캠퍼스여서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전혀 학교같은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윈저 성 아래 테임즈강을 가로지르는 이튼 브리지를 건너면 오밀조밀하고 아담한 동네길로 들어선다. 앤티크 가게도 보이고 블랙 앤 화이트라고도 불리우는 영국 전통가옥도 눈에 띈다.
10분쯤 가게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우측으로 고풍스런 고딕양식의 건물이 막아선다. 이곳은 이튼스쿨의 성당(Chapel)에 해당되는 건물로 여기에서부터 이튼스쿨 교정이 시작된다. 좌측으로 웅장하게 보이는 빌딩과 함께 붉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동네사람에게 어디가 이튼스쿨이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온 동네가 이튼스쿨이라고 답한다. 이튼스쿨 교정은 제한된 구역 만 학생들 수업에 방해되지않는 범위 내에서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개방하는데 겨울에는 관광철이 아니라서인지 일반인들 입장이 폐쇄되어 있다. 육중한 정문 틈으로 동상만 조금 보인다.
연미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검은 구두를 신은 젊은 학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교복을 입은 이튼학생들이다. 보기에도 깔끔하고 단정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사관학교 학생들이 제복을 입고 다니듯이 이곳 이튼 학생들은 주요 행사 때나 외출시 이튼스쿨 정장을 입고 나온다.
어쩌면 너무 형식적이고 외모중심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제복을 이튼스쿨에서는 왜 수백년 동안 전통으로 지켜오고 있을까? 연미복은 이튼의 상징이요 이튼스쿨 학생들의 자부심, 조금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귀족선민의식의 표출방법 중 하나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는 영국 정관계를 이끌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귀족계급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 가장 전제주의적 제도인 왕족가문을 앞세우고 여왕을 국가의 상징으로 높이 받들면서 가장 서민적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나라.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이튼스쿨에는 ⑴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말라. ⑵비굴하지 않은 사람이 되라. ⑶약자를 깔보지 말라. ⑷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⑸잘난 체 하지 마라. ⑹다만, 공적인 일에는 용기있게 대처하라 등의 교훈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인성교육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제1,2차 세계대전 중 이튼스쿨의 졸업생 만 2,000여 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한 학급 전체가 전쟁터에서 전사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 때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가 헬기 조종사로 참전해 함정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교란하는 금속조각을 뿌리는 위험한 임무를 해내 놀라게 했다.
이 뿐인가? 심지어 현재의 여왕인 엘리자베스2세 조차도 여왕이 되기 전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선에서 여군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즉, 1945년 3월 4일 그녀는 자원하여 영국 여자국방군에 입대했다. 당시 그녀는 전투부대에 배치되는 대신 구호품전달서비스 부서(WATS; Women's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배치되었다. 원래 WATS는 부대 안의 취사와 심부름, 그리고 매점 관리를 맡아보던 곳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확대되자 WATS의 업무도 점점 커져 운전이나 탄약 관리까지 맡게 되었다. 그녀의 계급은 소위(Second Subaltern)였는데, 그녀는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트럭을 몰거나 탄약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왕실에서 거친 일이라고는 해 본 적 없었던 그녀가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바꾸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수리했다. 그러나 왕위계승권자인 그녀는 당시 자발적으로 그 일을 잘 해냈다고 한다. 아마 그 시절이 그녀의 인생 중 같은 또래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을 것이다.
이렇게 모범을 보이는 영국의 상류사회 사람들은 당연히 서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 이튼스쿨 본관을 오르내리는 계단 양쪽에는 전사한 이튼 맨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고 있다.
영국의 베어 그릴스(Bear Grylls·40)라는 사람은 모험가이자 작가인데 미국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디스커버리 채널 ‘인간 대 자연 (Man vs Wild)’의 겁 없는 주인공이다. 세계 오지를 누비며 징그러운 벌레와 이름도 모르는 짐승의 생고기를 식량 삼고, 뱀을 장난감 삼으며 문명사회를 떠나 야생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TV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을 때도 그의 야성에는 거침이 없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핼리팩스에서 스코틀랜드 존 오그로츠까지 오픈 보트를 타고 북대서양을 횡단하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베네수엘라 앤젤 폭포에서 동력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직접 만든 욕조 보트를 타고 알몸으로 영국 템스강을 22마일이나 노를 저어 건넜다.
그의 성장 배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 명문가에서 태어나 이튼스쿨을 나오고, 런던대를 졸업했다. 반듯한 외모에 귀여운 아이들과 아름다운 아내까지 있다. 그는 20대에 영국 특수부대에 자원했다. 중앙일보 기사(2011.11.19)에 의하면, 그는 인터뷰에서 “기숙학교였던 이튼스쿨은 최고의 생존 훈련장이었다. 내 자서전 『진흙, 땀 그리고 눈물(Mud & Sweat, Tears)』에서도 썼지만 (친구들이나 학교 생활이) 힘들 때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지 그곳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고공 낙하 훈련을 받던 중 낙하산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아 땅에 그대로 떨어졌고, 척추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의사는 다시 걷지 못할 것이라고 선고했다. 그는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참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가 되찾은 자신감은 보통 이상이었다. 부상을 당한 지 2년 만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그때 나이가 23세.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최연소 영국인 기록을 세웠다. 최초 시도 때 크레바스에 빠져 의식을 잃었지만, 몇 주 뒤 루트를 바꿔 다시 도전했다.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이 이튼스쿨 출신 젊은이의 포효를 들었다. 귀족학교라는 이튼스쿨이 결코 귀족같은 ‘샌님’ 만을 키우는 학교가 아니라는 예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교육계 일선에서도 우수한 학생은 더욱 더 잘하여 그 사회를 이끌어 갈 엘리트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도요타자동차가 영국의 이튼스쿨을 본떠 가이요 중등교육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평준화 교육으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 아래 민간과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여 교육혁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튼스쿨의 전통, 더 나아가서 영국의 교육제도나 관습이 꼭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싶지는 않다. 선진교육은 개인의 능력에 맞는 교육과 사회법규를 준수하는 정직한 시민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튼스쿨은 엘리트를 양성하는 학교인 반면, 역시 영국의 200년 전통의 명문고인 어핑엄 스쿨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동문 가운데 장관이나 백만장자는 단 한 명도 없지만 한 가지 재주를 가르쳐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한다. 평범하지만 예절 바른 사람을 길러낸다는 게 이 학교의 교훈이다.
영국에서 여왕과 민주주의가 아름답게 공존하듯, 귀족학교 이튼스쿨과 서민학교 어핑엄스쿨 역시 영국 교육을 함께 이끄는 축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영국의 이튼스쿨과 그들의 교육방식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감히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고교 추첨입학제도 등 교육시스템이 주로 평준화 교육에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제도가 혹시 개인 능력에 맞는 교육과 정직한 시민양성도 제대로 되지않으면서 국가경영을 위한 고급 인재양성도 잘 안되는 교육, 즉 교육수준 자체를 하향평준화 만 시켜오고 있는 건 아닌가? 이게 필자 혼자 만의 생각일까? 평준화 만이 진정 최고의 사회적·교육적 덕목인가 하는 점들은 지금도 의문으로 남는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