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 02. 14
님이시여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김춘수
님이 태어나신 곳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내동 마을
한반도의 등줄기 소백의 긴 매 뿌리 뻗어내려 후미지고 아늑한 분지를 이룬 곳
천구백삼십(1930)년대의 어느 날 님의 일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그 악마의 등살을 견디다 못해 정든 땅 이웃을 버리고 머나먼 남의 땅 만주벌판으로 내쫓기는 사람들처럼
억울하게 억울하게 떠나가야만 했으니…….
그 때 가족들의 간장에 맺힌 한과 분은 아직도 여리고 어린 님의 두 눈과 폐부에
너무도 생생하게 너무도 깊이깊이 박히었을 것입니다.
님이 헌헌장부로 자라 마침내 군인이 된 것은 그것은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천구백칠십구(1979)년 가을에서 팔십년 사이 이 땅 이 겨레는 더할 나위 없는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우선 그것부터 끄고 봐야하듯이 우선 치안을 바로잡고 우선 인심을 안정시키고 우선 경제의 헝클어진 운행을 궤도위에 올려놓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해내기 위하여 천구백팔십일년 새 봄을 맞아 마침내 제 5공화국이 탄생하고 님은 그 방향을 트는 가장 핵심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님께서 단임으로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천한 일, 그것입니다.
건국 이래 가장 빛나는 기념비적 쾌거라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님은 선구자요,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그 자리 물러남으로 이제 님은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만수무강 하소서
시인 김춘수 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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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우리사회 의식.....
▲1988년 2월24일 자정으로 7년 임기를 끝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임사가 경향신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