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만화보다 재미있는 성경.
학생들이 예전보다 그리스도인으로 자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있는가? 요즘에는 학원신이 있어서 부모의 권세 위에 있다. 학원가는 것이면 불문율이다. 아이들끼리도 ‘너 어디 가니’ 학원 가는데 그러면 그들도 이해한다.
내 자녀가 기도하고 새벽기도 신앙생활 열심히 했는데 대학 떨어졌다. 감사가 나오겠는가?
한 선생님은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성경도 읽지 않고 무엇을 배우겠느냐? 내 자녀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내 후배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된다.
어디가든지 책을 꼭 들고 다니는데, 앞선 선배들의 영향이다. 요즘 전철에서 성경 보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청소년기가 되면 부모의 이야기보다는 선배, 친구, 아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다.
아이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가? 교사들을 확인한다.
아이들을 제자 훈련시켜야 된다.
죽어가는 영혼에 대하여 뜨거움이 없다면...
예배와 말씀, 공과시간을 늘릴까? 연구하고 있다. 협동학습. 가르침의 모임.
광고, 출석 부르는 것...소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을 더 많이 하자.
교사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아이들이 어디를 가야된다면 아무에게나 맡기겠는가?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내게 맡겼다고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맡겨주신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다. 주님이 위탁하신 영혼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다.
아이들 아무학교나 보내지 않으려고 위장전입도 시킨다.
고등학생들에게 체면이라는 것이 있다. 문자로 설교내용을 이야기한다. ‘이거 지난번 들은 예긴데...’ 중학생은 직접이야기 한다. 각 부서, 반 보조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부서별로 회식은 몇 번, 식사는 어떻게...어려우니까 그 횟수를 정한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경우, 부모가 돈으로 보상한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 사주고, 환심을 산다. 어떤 도구로 사용은 되나 내게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다. 내게 관심을 주는 교사에게 아이들도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내가 없으면 아이들은 고아다. 그 아이들이 고아가 되지 않도록 내가 맡아야 된다.
아이들은 영적으로 공급받아야된다.
말씀을 내가 전하려고 한다면, 그 말씀 앞에 내가 살아가면서 증거 하면 말씀이 달라진다. ‘그렇게 그렇게 하자’ ‘네’ 그것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다.
‘그렇데’ 와 ‘그래’는 다른 것이다.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아는 것의 십분의 일밖에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준비해야 된다. 언제 준비하느냐? 저녁에 태왕신기도 봐야죠, 왕과나 봐야죠...언제 준비하느냐?
‘저 새들도 걱정 없이 살잖아’ ‘너희들도 걱정하지 말고 살아’ 이 말씀을 들은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던 사람들인가? 이들은 인력시장에서 ‘나는 무엇을 잘합니다’라고 써서 있어도 안 데려가고, 내가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는 상황이다. 그런데 주님은 걱정하지 말아라. 어떤 면에서는 요즘보다 취업하기가 어려웠다.
크리스천 연예인의 간증.
지금 잘나가고 있으니 헌금을 얼마 드리기로 작정을 했다. 천 만원하겠습니다. 그런데 광고가 잘 안 들어온다. 광고가 들어왔는데 광고마지막 신에 소주한잔을 해야 되는 신이 있었다. 거절했다.
다음에 1억 자리 광고가 들어왔다. 맥주광고.. 눈 딱 감고할까? 거절했다.
다음에는 일천만원짜리 양복광고가 들어왔다. 그것 했다.
남들이 신앙 생활하는 것 보면 쉬어보어도, 막상 내가 하려면 쉽지가 않다.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된다.
그래야 가르침에 힘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늘 힘이 있었다. 늘 기도하고 계셨기 때문에 전하는 것이 달랐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변함이 없어야 된다.
학교는 원리를 가르쳐주는 곳이다. 학원은 점수 잘 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학원 강사는 순위교사 떨어진 이들이 간다. 왜 학원에 가느냐? 학교에서는 ‘한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해도 인간이 되게 하자’
교회는 무엇인가? 우리가 특별활동 못하고 2부 순서 못해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드럼붐이 일어나더니, 전교회들이 드럼을 들여놓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델이 있다. 어느 교회가 했기 때문이 아니다.
요즘 열린 예배 드리는 미국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2-5% 나머지는 그렇게 못한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다. 현대감각이 안 맞아서...현대감각이 안 맞으면 바지 찢고 다녀야 되는가? 학교에서 한번은 괜찮다. 축제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머리 염색하면 튀니까 머리 염색한다. ‘너 튄다’ 인정했더니, 다음에 까마게 하고 다닌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하는지 이해해주면, 그들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이들이 ‘나도 저런 어른이 되야지’ ‘나도 저런 가정을 가져야지’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나도 저 분을 닮고 싶어” 그런 모델 되게 하자.
교실이 5층에 있어도 밥 먹는 것 먼저 먹으려고 뛰어온다. 그런 애들이 교회에는 왜 늦게 올까. 예배 잘 드리는 아이들을 존중히 여기고 그들을 배려해야 된다. 우리는 수업을 잘 안 든는 아이들에게 눈이 간다. 그리하지 말고, 잘하는 사람에게 눈이 가고 그들을 배려해야 된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이 필요로 한다.
부모님이 너무 훌륭하거나, 훌륭한 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내가 튈 수 없으니까 다른 쪽으로 튀려고 한다. ‘관심’은 호흡과 같다. 좋은 공기를 마시지 못하면, 나쁜 공기를 마시며 살게 된다. 노련한 선생님일수록 잘하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세워준다. 우리 선생님은 사고치는 것으로는 관심을 가질 수 없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그 아이를 보느냐? 그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어디에서 성경책을 가져왔다. ‘잘했어’ 그러면 앞으로 잘 주어온다. 성경책이 어느 것으로 바뀔 줄 모른다. 처음부터 틀린것은 안된다고 해야 된다.
남, 녀 분반이 가르침에 더 좋다. 아들 낳다고 좋아하지 말아라. 청소할 때보면 일하는 애는 남학생이고 여자는 말만한다.
*남, 녀로 분반하고, 남자는 남자선생님이, 여자는 여자선생님이 가르치게 한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남자는 한번으로 끝내는 것이 좋고, 여자는 말로 자세히 설명해야 된다. 남자에게 말이 많으면 잔소리가 된다. 자기의 성 역할을 잘 분별하고 이해해야 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내 자녀처럼 느껴지면 성공하지 않을까?
아이의 형편을 알게 되면 그를 위해 일하지 않을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내가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낳은 자녀라고 이야기 한다’ 영적으로 자녀를 품고 세우는 일들이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가 죽어가는 데 왜 나는 슬프지 않은가? 장례식장에 가면 슬프지 않은가?
내 아이들이 세상에서 죽어져갈 때 아프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찾아야 되는 것이다.
요즘, 전도는 사이비만 한다. 영혼에 대해 가슴아파하는 사람이 전도해야 된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영혼에 대한 마음을 알아야 된다. 이 지역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지 않으셨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준비된 삶을 살아야 된다.
말씀으로 살 준비를 해야 된다.
횡단보도에 빨간불 신호등이 있다. 차가 지나가지 않는다. 건너는가? 어떻게 건너가는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나는 피를 만질 수 없어서 그냥하고, 나는 제사집례를 해야 하니까 그냥가고... ‘그럴 수 있지’ 선한 일을 하려고 하다가 늦었겠지...믿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준비가 있어야.
장점이 없는 자가 없다.
도마 같은 사람이 있어야 된다. 그가 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산다.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바나바처럼 대해야 된다. 바울은 가다가 실패하면 버렸다. 진취적이다. 바울을 돕는 사람이 바나바였다. 바울을 키워서 인정받는 자로 세워 인정받게 한 자가 바나바다. 교사는 바나바와 같은 위치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졸고 있을 때 ‘똑바로 안 앉아’ 보다. ‘많이 피곤하지, 어디 아프니’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자.
가르침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한다고 영화 이야기한다. 불법다운로드 받아서... 하루 일과 전에 개인의 경건시간을 가져라. 근무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한다. 전화사용하는 것도 업무와 개인적인 내용을 구분한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것 믿고 어설프게 하지 말아라. ‘오늘 컨닝할건데 안 걸리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서야 되겠는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너가 하나님이라면 들어주겠니’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 학문적인 양심...
하나님은 우리에게 준비된 만큼 사용하신다. 반드시 준비해야 된다. 늘 공부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말씀으로 달라진 아이들을 기대한다.
주님이 해결책이다. 주님을 만나면 달라진다.
우리는 배운 것만 가르친다. 아이들이 아는 만큼이 선생님이 가르친 것이다.
가르치는 분들은 먼저 배울 줄 알아야 된다.
‘제는 내가 맨 날 애기해도 못 알아듣나?’ 그것은 내가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교수법도 배워야 되는 것이다. 잘 가르치는 교사되자.
*질문 - 가정적으로 안정되어 잘 따르는 아이들과 가정에 문제가 있어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어떻게 지도해야 될까?
*답변 - 그룹에서 치료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만나서 치료한다. 아이들 앞에서 그 아이가 두각이 되면 교육을 거절한다. 교육시간에는 잘 적응 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하고, 개인시간을 활용하라. 가깝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혼내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지도한다.
내가 너에 대해서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체크하고 있는지 말한다.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개인적으로 알아주어야 된다.
*‘일찍 오라’고 하면 일찍 온 아이들만 혼난다. 늦게 온 아이들은 듣지도 못한다. 오히려 ‘너희들이 희망이다’ 그들을 격려하면 더 열정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