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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4번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이다.
<마6: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질적인 이 세상의 어떤 나라든지 크게 보면 하늘과 땅으로 묶어져 있듯이 사람의 본질에 속하는 속사람도 영으로 비유된 하늘과 땅으로 비유된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서 하늘은 곧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구속 받은 사람의 영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다. 반대로 천연적인 모든 사람은 사단을 담는 그릇인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인생이 혼돈과 공허와 깊은 흑암의 존재인 것은 그 속에 뱀의 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두움의 존재에게 복음을 통해서 생명의 빛 된 존재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전략책이 성경이다. 물질적인 하늘과 땅은 사람의 영과 혼이라는 내면을 의미하는 모형이다, 성경은 천연적인 옛사람을 소멸시키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가는 설계도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하늘과 땅의 스토리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러한 마귀의 나라인 천연적이고 본성적인 옛 사람의 하늘과 땅을 여하히 정복해서 하나님이 나라가 되게 할 것인가에 맞추어져있다. 앞서서 나라의 구성이 하늘과 땅이고, 나라는 3요소인 주권, 백성, 영토라고 부연한 바 있다. 그러므로 주권은 하늘에 상응하는 말이고, 백성과 영토는 땅에 해당되는 말이다.
실제로 어떤 두 나라가 전쟁을 한다면 하늘부터 정복해야 한다. 공중을 먼저 확보해서 제공권을 가진 자가 승리에 유리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6,25전쟁의 승리도 실은 연합군이 제공권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때문이다. 야심찬 북한군이 압도적인 수의 전차를 가지고 급습했기에 국군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낙동강까지 밀렸지만, 거기서부터 역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제공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후 인천 상륙은 승리의 쐬기일 뿐이었다.
유명한 이스라엘의 6일 전쟁 또한 공중전에서의 승리가 열쇠이었다. 이스라엘 군의 애국충성심은 대단하지만, 그것으로 아랍의 수만 병사와 기갑부대를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아랍군은 오래된 소련제 전투기 편대였던 것에 반해, 이스라엘 공군은 최신예 프랑스의 콩코드와 미라지이었다. 어린애와 어른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승기는 공중에서 결판난다.
그러므로 주권의 핵심은 하늘에 있다. 하늘로 비유된 사람의 영을 하나님이 차지하느냐? 마귀가 차지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이제부터 하늘 자체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처소이신 사람의 영을 차지하는 경륜을 살펴보자.
마귀의 통치 본부였던 하늘인 사람의 영을 하나님이 다시 탈취 하는 데는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이 순서가 있다. 새까맣게 물든 옷을 새하얀 색으로 탈색 시키는 일은 순식간에 되지가않는다. 중간단계의 색을 거쳐서 서서히 된다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배워온 고정관념으로는 사람의 윤리와 도덕이 선이고 의 인줄 알았기에, 처음 믿음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철저한 율법 말씀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최고한 신앙인줄 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세상을 얻어 보려고 발버둥 치던 사람이 처음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오게 되면, 성경 문자대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데 이런 것을 율법 종교인이라 한다. 이때의 신앙은 불과 같은 열심이 특징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40일 금식은 못하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칠 기세다. 새벽기도, 철야예배, 작정기도, 십일조를 비롯한 갖은 헌물과 헌금도 부족해서 집까지 담보해서 건축헌금을 드린다.
그러나 이것을 바리새인의 믿음이라한다. 율법을 준수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려던 그들의 신앙과 똑같다. 철저한 열심과 공헌만큼이나 자기의 자랑으로 가득 차있어서, 교회 안에서 눈을 높이 쳐들고, 조금 부족한 사람을 보면 정죄와 심판을 일삼는다. 언어는 비록 종교성으로 부드러우나, 내면의 교만함과 완고함은 하마나 악어의 위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라면 얼마나 쉽고 좋으랴? 돈과 건강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일등 신자가 될 수 있으니... 그러나 정작 성경은 이런 외형적 행위의 준행을 신앙으로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요구 하시는 것은 각자 자신의 옛 사람인 자아를 십자가에서 죽이라는 것이다.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정과 이별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 건강, 시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과연 죽을 수 있는가? (그러나 죽는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옛사람이 죽지 않고 성성이 살아 있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는 자들이 지금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왜냐하면 이들의 하늘에는 율법의 하나님이 좌정해 있기 때문이다.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 율법의 참소를 받아 죽으셔야 하는 아이러니를 아는가? 이는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에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여 죽으신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나 천연적인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워 배척하고 거부한다.
윤리 도덕적으로 깨끗하면 훌륭한 사람으로 보는 관점이나 종교적 수행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모두 선악과의 독극물에서 마취된 자들이다. 이들이 목숨 바쳐 섬긴다는 하나님의 실상은 옛 뱀이요, 마귀이다. 그들의 하늘을 점거하여 하나님 노릇하는 마귀 사탄을 쫓아내시는 것이 사람의 구원의 출발이다.
처음 믿기 시작할 때는 누구든지 혼적인 신앙을 먼저 배우게 되어있다. 이를 어린아이 신자라 한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으니 초보적인 단계에서는 성경을 알되 문자대로 아는 것도 대견한 일이다. 시청각 교재를 사용하면 교육 효과가 크듯이 하나님도 몽학선생들에게 붙여서 의문(문자대로)의 율법말씀을 신봉하며 따르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성이 아니라 걸음마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때가 차면 젖 먹는 단계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이는 곳으로 옮겨져야 한다. 마치 모판의 모를 진짜 논에 이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와중에 그 사람의 영인 하늘에서는 공중전이 벌어진다. 누가 참 하나님인가? 무엇이 참다운 진리인가? 진리와 비진리와의 전쟁이 내면에서 불꽃 튀는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 6째 인이 떼어지면, 거짓 하나님 행세를 하던 율법 말씀의 정체가 드러나 하늘에서 쫓겨난다. 하늘이 평정된 것이다. 비로소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하늘의 보좌에 좌정하신다.
<계6:12~13>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가짜 해, 달, 별들이 떨어진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계20: >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미가엘: 누가 하나님과 같으랴? (하나님의 현현: 주님의 예표)
주님이 예루살렘 성 안에서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과 논쟁한 것은 하늘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cf: 삿5:20: 드보라와 바락이 연합하여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싸운 것이 하늘에서의 별들의 전쟁임)
요8장이나 4복음서의 주님의 사역전체는 계12장에서의 미가엘과 용과의 싸움의 실제이다.
이것이 하늘에서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승리이다. 선악과 먹은 인생의 저주를 파괴하고 부활 생명을 주시는 거사이다. 개혁이요 혁명이다. 정죄와 심판하는 하나님은 사단이 가장한 모조된 가짜였음을 만방에 알리고, 참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증명하셨다.
예수님이 아니면 사단의 가면을 벗길 방법이 없었다. 주님은 육의 죽음으로서 사단의 정체를 폭로하셨다. 탐스럽게 치장된 율법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단이었던 것이다. 의문의 율법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 아니라, 죽이는 칼이다. 누구든지 율법에 걸려 죽으면 복이 있는 자다. 죽는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나 내로라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으로 자신을 심판하여 죽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은 의로운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를 심판한다. 눈에 대들보가 박힌 자의 영이 그러하다.
이렇게 하늘에서 용이 제거되고 주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인식한 자들은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된 자들이다. 처음 하늘이 새 하늘이 된 자들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에는 처음 하늘(샤마임)이 쌍수였다. 쌍수는 복수와는 다른 개념이다. 모습은 꼭 닮았는데 다른 개체를 일컫는다. 하나님이 둘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진위를 가리는 데는 신앙의 오랜 연조가 소요된다. 혼적인 신앙에서 영적인 신앙으로의 대전환이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하늘과 땅을)를 창조하시니라
-> 쌍수(꼭 닮은 두 하늘)
애굽에서 처음 유월절 양식을 먹고 거듭나서 교회의 일원이 되었지만, 일곱째 날까지 가려면 앞으로도 6번의 거듭남이 더 있어야한다. 특히 옛 하늘이 새 하늘로 바뀌려면 요단을 건넌 후 길갈에서의 유월절 양식을 다시 먹어야한다. 처음에는 모세가 준 유월절이요, 두 번째는 여호수아(예수)가 주는 유월절 양식이다(수5:10). 이때를 영의 거듭남이라 한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하던 혼미한 영적상태를 옛 언약에 매인 자라 한다. 구약적 사람이다. 믿기는 믿는데 하늘에 두 하나님을 섬기던 자, 하늘이 쌍수로 존재하던 자에게 진리의 빛이 임하여 거짓을 분별하고, 하늘에 오직 한 분 하나님만 모시게 된 성도를 일컬어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자라 한다.
여기까지도 오랜 여정이 흘렀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마치 바벨론에서 70년 복역을 마치고 귀환한 일단의 소수의 무리는 그것으로 완성이 아니라, 그때부터 스룹바벨 성전과 성곽을 쌓아가야 하는 대장정이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요, 또는 모압 땅에서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되돌아온 나오미의 입장이다. 그녀는 잃었던 기업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아스를 만나 아들을 낳아 대(룻의 아들이 아닌 나오미의 아들로 입적)를 이어야 하는 힘겨운 일이 남아있다.
하늘이 하나로 통일된 후, 계속되는 구원의 남은 여정을 일컬어 땅에서 뜻이 이루어져야할 일들이라 한다.(다음으로->)

첫댓글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