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갓에 고추장을 풀어 넣고 끓인 조깃국은 봄철의 풍미였다.(1964년 5월 14일 조선일보) 1970년대 중반까지 조기는 연평도 부근에서 봄에 많이 잡히는 흔한 제철 생선이었다. ‘노란조기’라고 부르는 참조기는 조기 중에서도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개나리, 산수유를 닮은 노란 몸통의 참조기를 미나리와 쑥갓, 햇고사리 같은 봄날을 대표하는 채소와 함께 넣고 끓이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조기는 머리에 돌처럼 딱딱하고 동그란 뼈가 들어 있다 해서 석수어(石水魚 )로 부른다. 훈몽자회(訓蒙字會. 1527년)에는 한자 ‘鯼’ (종)을 쓰고 한글로 ‘조긔’(조기)라고 달고 ‘속칭으로 석수어라고 부른다’ 고 적고 있다.
한국어의 어원을 중국말과 비교 설명한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1829년)에는 종(鯼 )이 조기로 변했다고 적고 있다.
국내 최고(最古) 조리서인 식료찬요(食療纂要.1460년)에 석수어가 처음 기록으로 등장하지만 가야 유적에서 조기 뼈가 발견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먹었다. 조기국은 조선 문인 성현(成俔)이 잡다한 일들을 기록한 요재총화(慵齋叢話.1525년)에 석수어탕으로 처음 등장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순채와 같이 국을 끓여서 먹으면 음식 맛이 나게 되고 소화가 잘되며 기(氣)를 보한다’고 적고 있고,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년)에는 ‘조기탕을 끓일 때는 그 허리를 구부려서 묶으면 살이 부서지지 않는다’는 조리법도 나온다.
과거 조상들은 생선국은 맑은탕으로 먹어야 좋다고 보았다. 1924년 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은 ‘생선은 고유한 향기가 있어 고추장에 끓이면 향기를 모르게 되므로 맑은 장국에 끓이는 것이 좋다’ 고 했다.
맵고 자극적인 고추장이 들어간 매운탕은 1970년대 이후 탕요리의 대명사가 된다. 매운탕이 보편화된 1970년대에 조기의 주 생산지도 온난화의 영향으로 연평도에서 제주도 남쪽으로 바뀐다. 동시에 무분별한 남획으로 어획량이 크게 줄면서 조기는 서민 생선에서 비싸고 귀한 생선이 됐다. 명태와 더불어 한민족의 대표생선이었던 조기, 그리고 조기로 끓인 조깃국은 우리의 밥상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모셔온 글:‘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칼럼기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