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양반은 좁은 의미로는 문반과 무반의 관직을 가진 사람을 뜻하였지요
중인은 양반과 양인의 중간에 위치한 신분인데
상급 지배신분인 양반에 대해 중인은 하급지배 신분에 해당하지요
양반이 천시하던 기술직과 잡직은 중인의 세습 직이었으며
또한 중인에는 서리, 장교, 향리 등이 속하였고 양반의 첩의 자식인 서얼도
중인으로 취급되었지요
양인은 평민 양민 상민 상인 서민 서인 등의 용어와 함께 쓰였으며 조선사회의
근간이 되는 계층이었지요
양인의 대부분은 농민이었고 상인도 있었지요
원칙적으로 양인은 과거를 통해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할 수도 있었으며
양인 농민들은 국가에 대해 조세, 공물, 군역 등의 부담을 졌어요
천인은 가장 아래 있던 신분으로 천민으로 불리며 대부분 노비였지요
또한 백정, 광대, 무당, 기녀 등도 여기에 속하였어요
양인은 16~60세의 남자만이 역 부담의 대상이었으나 천인은 남녀 모두 사역의 대상이 되었으며
노비는 소유주에 따라 공노비와 사노비로 구분되었지요
공노비는 관아에 소속되어 있는 노비이며 사노비에는 솔거노비와 외거노비가 있었어요
노비는 주인의 의사에 따라 매매, 상속, 증여되는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주거지를 옮길 자유도
없었지요
노비는 그 신분이 세습되었으며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노비이면 그 소생은 모두 노비가 되었어요
그런데
원래 천민은 성씨없이 돌쇠,떡쇠, 끝세, 개똥이, 향단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웠는데
조선말기부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때 천민들도 성씨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 성씨가 바로 천방지축마골피(千方池丑馬骨皮)라 하였지요
이는 조선말과 일제시대때 대다수 성씨도 없던 상,천민층들이 숨어도 들키지 않을만한 흔한
양반 성씨로 호적을 신청해 가지면서 대한민국 국민모두가 양반들이 되었는데
혹 양반으로 숨어든 것이 들키지나 않을까
비교적 숫자가 적은 양반가문이 천민이였다는 역사왜곡의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으로 보여진다
하는군요
원래 천방지추마골피(千方池秋馬葛(高)皮)는 옛날부터 존재하는 양반 성씨 였지요
갑오경장 이후 모든 이들이 성을 갖게 되는데 양반 집에 속한 이들은 주인의 성을 갖기도
했지만 이때 천민들은 자신의 직업에 따라 성씨를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天씨는 무당
方씨는 목수나 미장이
地씨는 지관등 요즘의 장의사
丑씨는 소백정
馬씨는 말백정
骨씨는 뼈(고리)백정,
皮씨는 가죽백정(갓받치)의 성을 가지게 되었는다 하는데
이것을 7대천민을 일컫던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의 백정 성이라 하였지요
그런데 일제시대때 호적이 재정리가 되면서 발음이 비슷한 양반 성으로 옮겨지게 되어
아래와 같이 옮겨지게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天씨는 기존의 양반성인 千씨로
方씨는 기존의 양반성이 있어 그대로
地씨도 池씨로
丑씨도 秋씨로
馬씨도 기존 중국성과 국내양반성이 있어 그대로
骨씨는 葛 또는 高씨로
皮씨는 기존 중국성과 국내양반성이 있어 그대로
이렇게하여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양반들의 자손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각 문중마다 일제시대때 족보를 따져 가리려고 본보와 별보로 구분하였으며
갑오경장 이전 족보에서 가계가 확인 불가능한 것을 별보라 칭하였는데 별보의 분량이
본보의 몇배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후 6.25동란 이후인 1955년부터 57년사이에 각성의 족보가 대량으로 다시 만들어졌는데
이과정에서 본보와 별보의 구분이 없어지고 지금의 족보가 되었다 하네요
조선초만해도 성씨있는 양반은 10%도 안되었는데 나머지 90%는 어디에서 만들어 졌을까요?
원래 천민은 성씨없이 (돌쇠,떡쇠, 끝세, 개똥이, 향단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웠는데
조선후기 족보를 위조하거나 1909년 일제가 민적법 시행시 성씨가 없던 상,천민들에게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다 만들어 주었고 그 때 가장 인기 있던 성씨가 흔하면서도 유명한
"김이박 등등"이었다 하는데 그래서 유명성씨가 더욱 흔해지게 된 것이라 하는군요
일제가 성이 없던 밑바닥 천민(노비)계층에게 그들이 신청하는 대로 유명성씨의 호적을 준것은
조선의 양반성씨들이 씨족별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노비를 양민화시켜 수탈의 대상을
늘이기위한 식민통치정책의 일환이였다고 하지요
그럼 여기서 (천방지축마골피)에 대하여 과연 천민의 성인가를
각 성별로 유명한 인물과 함께 객관적으로 짚어 보기로해요
천( 千 )씨 - 정유재란때 귀화한 중국계성씨
방( 房 )씨 - 고구려에 귀화한 중국인의 후손 or 고구려인의 후예(?)
지( 池 )씨 - 천년 무인( 武人 ) 명문세족인 이중( 二重 )성씨
마( 馬 )씨 - 고구려 동명성왕의 후손
피( 皮 )씨 - 춘추시대 유명한 협객 번중피의 후손
그리고 축씨와 골씨는 현재 한국 성씨대사전에도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위와같이 천민이라 일컷는 성씨들이 높은 관직에 오른 인물들이 많았고
인구 대비 과거 급제자도 많았지요
다시말해 조선시대에 성씨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양반 명문가 집안이었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천민은 기본적으로 성씨에 대한 기록이 없었어요
천민이 성씨를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특정 성씨를 가리켜(천방지축마골피) 천민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는군요
이러한 낭설은 신분제가 폐지되고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됨에 따라 "김이박최정" 등
흔한 성씨로 위장할수 있게된 노비와 천민들이 '천방지축'(天方地軸·허둥지둥 함부로 날뜀)에
착안하여 입지보전책으로 퍼트린 유언비어 였다는것이 정설이라 하는군요
아무튼
지금은 세계 어느나라나 천년을 이어온 왕권이 무너지고 화성을 탐사하는 우주시대 일진데
하찮은 양반 쌍놈을 가려 무엇하겠냐마는 그래도 허위와 진실은 알아야 하겠기에
긴글 올렸사오니 두루 살피시고 혜량하여 주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