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토) 우리 가족은 아침 일찍 항쟁의 역사를 간직한 강화도를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저마다 부푼 기대감을 갖고 가는 버스 안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으나 큰아이는 어제 현장학습을 아산 함상공원에 다녀와서 인지 약간 피곤해 보였다.
오늘의 체험일정을 소개하는 교재에서 * 생각넓히기 페이지의 내용이 눈에 띄었다. 그 내용은 '난(란)'은 오랑캐와의 싸움, '요'는 서양 오랑캐와의 싸움, '전'은 국가와 국가 간의 싸움, '변'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로 주로 국가 내부에서 일어난 예상 외의 일이라 기술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하면서 "아 그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강화 역사 박물관
ⓒ 유병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에 도착한 것은 11시쯤이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마니산 참성단이 있고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도 있는 곳이다. 강화도는 삼국시대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로 여겼던 곳이고 조선시대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그대로 받아낸 곳이기도 하다.
▲ 상고시대 고인돌에 대해 설명 하시는 현지 가이드
ⓒ 유병관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강화고인돌은 옛날 족장이 죽으면 세웠던 거석기념물의 하나이며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m-200m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 전등사로 향하는 상춘객
ⓒ 유병관
전등사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정족산성 안에 있는 절이고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고구려 시대의 유일한 절이기도 하다. 일주문도 사천왕도 없는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날려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상춘객의 발길이 분주하게 보인다.
▲ 대웅보전
ⓒ 유병관
보물 178호로 지정된 전등사대웅보전이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 전등사범종
ⓒ 유병관
보물 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이다. 이 범종의 특징은 형태와 조각수법에서 한국의 종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종의 형태가 웅장하고 소리가 청아하며 중국종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이다. 내부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깨달음의 종소리', 종소리 울리면~ 번뇌는 사라지고~ 깨달음 하나 둘~ 허공을 메운다. 욕심을 벗고~ 고집을 떠나서~ 부처님 마음에 오가라~ 너와 나
▲ 나녀상 4개중 하나입니다.
ⓒ 유병관
대웅전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녀상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는 사람 모습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것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3곳의 처마 밑에서는 두 손으로 처마를 받치며 벌을 받고 있는 모양새인데 비해, 한 귀퉁이의 것은 한 손으로만 처마를 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은행나무
ⓒ 유병관
수령 600년, 수고 25m, 나무둘레 5.0m 크기의 2001년 8월 6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순국무명용사비와 쌍충비각
ⓒ 유병관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수비군 전원이 순국한 비운의 장소이다. 강화해협을 지키는 자연지형이 험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며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순국무명용사비앞에서 학생들이 선열을 기리는 묵념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 맞서 싸운 어재연, 어재순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쌍충비각이 보인다.
▲ 신미순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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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신미양요때 용감하게 미군과 싸우다 순국한 이름없는 용사들의 묘이다.
▲ 광성돈대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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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대 안에는 대포 3문(홍이포, 소포, 불랑기)이 복원되고 원래 덕진진 소속인 용두포대도 광성보경내에 포함시켜 보수했다고 한다.
강화도는 항쟁과 굴욕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무신정권과 고려왕조가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또한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때에는 후금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 했고,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의 강압아래 맺어진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으로 서양 열강들과의 통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간섭을 받게 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