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원전의 미래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글을 쓰면서 필자는 '기명(記名)'이라는 낯선 단어를 함께 꺼냈다. 반응은 갈렸다.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표의 비밀은 민주주의의 근간 아니냐"는 반문이 뒤따랐다. 옳은 반문이다. 그리고 그 반문에 아직 온전히 답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로쿼이 연방(하우데노사우니)의 대평화법에는 '일곱 세대 법칙'이 있다. 오늘의 결정이 일곱 세대, 대략 150년 뒤의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헤아리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하라는 원칙이다. 원전의 시간표를 이 잣대에 대보면 숫자가 정확히 들어맞는다. 설계수명 60년, 사용후핵연료의 위해성이 인체에 무해한 수준으로 낮아지기까지 수만 년. 5년짜리 정권의 임기로는 그 시간의 문턱조차 밟지 못한다. 지난 7월 칼럼에서 짚었듯, 지금의 법은 이 사안을 국회에조차 '보고' 사항으로 처리한다. 결정은 정부 안의 심의회에서 조용히 끝난다. 7세대는커녕 한 세대도 온전히 대변되지 못하는 구조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대목이 있다. 7세대 법칙은 단지 "오래 생각하라"는 권고가 아니다. 이 원칙은 하우데노사우니 안에서 추장들의 이름으로, 세대를 이어 구술되고 낭송되는 방식으로 전승되었다. 익명의 규범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자들이 대를 이어 짊어진 서약이었다. 책임의 시간을 늘리는 일과, 그 책임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애초에 한 몸이었던 것이다.
전(轉) — 왜 이름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기명'의 의미가 달라진다. 처음 이 제안을 꺼냈을 때는 무책임한 익명 뒤에 숨지 말자는 소박한 문제의식이 앞섰다.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니 이것은 7세대 법칙을 오늘의 제도 언어로 옮기는 작업에 가깝다. 익명의 표는 개표함에 들어가는 순간 통계로 흩어진다. 다수결의 숫자로 남을 뿐, 그 표를 던진 '나'는 사라진다. 반면 이름이 달린 서약은 다르다. 그것은 후손이 열람할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계약서로 남는다. 100년 뒤의 후손이 "이 결정을 누가 책임졌는가"를 물을 때, 통계는 답하지 못하지만 이름은 답할 수 있다.
물론 비밀투표가 지켜온 가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19세기 말 세계 각국이 공개 구두투표를 버리고 호주식 비밀투표를 받아들인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지주와 고용주 앞에서, 정당의 위협 앞에서 표를 강요당하던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강압으로부터의 자유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서 이 제안은 처음부터 전 국민 실명 공개가 아니라 '선택적 기명'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이는 남기고, 비밀을 지키고 싶은 이는 그대로 지킨다. 압력이 미치지 않는 자리 — 이를테면 실제 투표와는 분리된 서약 플랫폼 — 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강압의 문제는 애초에 발생할 여지가 좁아진다. 비밀투표라는 방패와 기명 서약이라는 책임은 한 제도 안에서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결(結) — 족보와 명부 사이
이름이 적힌 종이는 두 가지로 읽힌다. 국가가 감시하기 위해 작성하면 명부가 되고,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 스스로 적으면 족보가 된다. 같은 서명이라도 누가 무엇을 위해 거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지금 제안하는 기명 국민투표는 명부가 아니라 족보를 쓰자는 것이다. 국가가 강요하는 기록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후손 앞에 남기는 유산이다.
7세대 뒤, 이 땅에 살아갈 이들이 오늘의 결정을 되짚어볼 때 마주하게 될 것은 익명의 다수결 숫자가 아니라 이름을 건 이들의 목소리이기를 바란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후손 앞에서 떳떳하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원하는 이들부터, 지금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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