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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3때, 재수때를 떠올려보면 한창 수시병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현재 수시병을 앓고 있는 학생들이 있을겁니다. 또 앞으로도 수시병의 잠재 위험군들이 있습니다.
수능 공부가 손에 잘 안잡히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원서쓴 대학교의 캠퍼스가 생각날겁니다.
그러한 학생들이 읽으라고 쓴 글입니다.
(이 글은 좀 길어지고 드라마틱한 느낌[...]으로 진행될 것 같은데, 지금 시기에 뭐 이런글도 나쁘지는 않을거 같습니다.
뭐 여기서 수기 같은건 써본적이 없으니, 옛날을 떠올리며 수기 겸 수시병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할게요.)
제 닉네임이 포카칩이라 라임을 맞춰 [포]와 [카]에 대한 수시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할게요.
1. [카]에 대한 도전.
제가 고3이였던 2009년에는 카이스트에서 소위 "내신 안보고 대학가기"라는 전형이 있었습니다.
학교장 추천 전형이고, 학교에서 한명만 쓸 수 있습니다.
입학사정관 첫 해로, 생활기록부를 우편물로 보낼 때 성적 부분만 가려서 사본을 복사하고 보내라는 파격적인
전형이였습니다. (약간 언플스런 전형이기도 했죠)
내신은 별로 안좋았는데 학교에서는 소위 '수학만 잘한다'는 이유로 여러 경쟁자를 재치고 원서를 쓰게 됩니다.
아 갑자기 제 이야기가 나올거 같은데 여튼 그렇게 읽다보면 수시병이 왜 위험한지 알게될겁니다.
저는 고등학교 입학 때 아주 가까스로 일반고에 진학하게 됩니다. 입학 당시 성적은 반에서 거의 뒷쪽이였습니다.
입학고사로 본 수학도 아주 잘치진 않았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수학은 상위권이긴 했지만)
모의고사를 치면 에베레스트 산 등급이 나왔었고요.. 언외탐이 고루 4~6등급에 수리만 고득점.
그렇게 입학했다가 2007년(고1)에 '오르비'를 알게 되고, 신세계를 경험하고. (지금 사람은 공감 잘 못할수도 있는데 옛날 오르비는 ㅋ)
그때부터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기 시작했죠. "포카칩"을 목표로.
(이 아이디는 2008년에 만들어졌지만 처음 아이디는 2007년에 만든 아이민 18만짜리가 있습니다. 닉네임은 동일했고.
지금도 옛날 오르비 가면 검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2007년에 다양한 교재 평을 쓴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3이 되니까 총점 400을 넘어가고, 수학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도 수학에 비해선 못했지만 그래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좋아진 상태였습니다. 3학년 3월부터는 외국어도 거의 1등급에 근접한 수준, 과탐도 두과목 이상 1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언어가 늘 3~4등급으로 여전히 발목을 많이 잡았었고요.
여튼 그렇게 해서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거쳐 학교장 추천을 받게 됩니다.
현재 실력에는 자신 있는데, 내신은 형편이 없던 저로서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때가 5월이였습니다. 저는 과감하게 지금 하던 공부의 80%정도를 스톱하고 수시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당시 카이스트 전형은
1단계 - 입학사정관님이 학교 직접 방문하여 제출한 서류를 가지고 면접(소위 고교등급제를 좀 우아하게 하는 느낌?) + 서류 평가
2단계 - 본진에서 직접 면접(카이스트)
이렇게 두단계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때 이것저것 해왔던 다양한 수상 실적과 활동들은 1단계 면접에서 사정관님을
유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군다나 내신은 반영이 안되니 저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는 사정관님이
알 턱이 없고, 그런대로 괜찮은 모의고사 성적만 내미니 학생 성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겠지요.
면접을 보고나니, 왠지 1단계는 합격할거 같았습니다.
원서 쓸 적인 5월달에는 수시쓰느라 공부를 좀 못했다 쳐도, 5월 직후부터 아직 합격도 하지 않았고 자신이 가고싶어하는 학교에
원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흥분되고 그러더군요. 이 기분이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시 수시병이였습니다.
수시병에 걸리더라도, 합격만하면 끝이다. 지금 공부 좀 안하면 어떤가.
당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모의고사 점수는 점점 떨어집니다. 저는 그런거 관심 없습니다. 수시 쓴거만 붙으면 되니까 ㅋ
7월 말에, 예상대로 1단계는 무난히 합격합니다. (사실 그당시에 매우 긴장한채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1단계를 떨어질리 없을 만큼 면접을 잘봤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1단계를 합격하고 나니 카이스트에서 다음 지시사항이 있었습니다.
"성적이 포함된 생활기록부를 다시 보내라."
저에겐 좀 청천벽력같은 일이였습니다. 언론 기사를 뒤져보니 이와 관련된 것이 지원자들 사이에서 이슈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뉴스 기사에 따르면 1단계 지원자 중에 내신이 좋은 학생이 일부러 성적을 지우지 않고 보내다보니,
어떤 학생은 학교 성적이 입학사정에 영향을 끼치게 되서 공평하게 심사하기가 어려웠다는 식의 내용이였습니다.
여튼 보내라니 보내긴 하는데, 계속 불안했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은 계속 떨어져가는데... 소위 말하는 멘탈이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2단계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지원자들끼리 모여서 팀을 짜서 면접도 해보고, 다양한 연습을 하고
갔습니다. 하지만 2단계 면접에서 교수님이 저의 내신 성적을 보면서 여러 공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영어 성적이 안좋구나. 니가 영어 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프리토킹 테스트를 해보겠다' 고 하셨습니다.
(다른 면접관들은 보통 영어로 자기소개하기 정도로 끝났는데, 저같은경우 상당히 빡센 영어면접을 봤습니다 -_-;;)
뭐 당연히 발릴수밖에 없죠.. 준비도 안된 고3짜리한테 교수님과의 영어로 소통하는건 거의 멘탈 붕괴수준이였습니다.
영어 면접에서 발리면서 그 이후엔 자신감을 잃어서 거의 면접을 망치고 나왔습니다.
면접에서 나오자마자 탈락을 직감했는데, 이상하게 합격자 발표날은 기다려지더군요. 그놈의 수시병 때문에..
일단 합격자 발표 하고 나서 생각하자.. 라고 해서 그당시 공부는 거의 흐지부지였습니다. 그 때 생각도 거의 똑같았습니다.
"합격하면 뭐든 해결 되겠지."
8월 초순에 결과를 확인하니, 불합격입니다.
눈앞이 캄캄합니다. 사실 그당시에도 '불합격'이라는게 실감이 안났습니다.
그 부푼 기대감이 허상이였다니.
불합격한 이후에는 강한 후유증이 2~3주 정도, 마음속 깊은 상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5~8월, 3개월동안의 수시 레이스는 저의 멘탈을 완전히 앗아갔습니다.
혼을 쏟으면서 준비했던 곳이라 탈락 이후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집중력이 그다지 필요 없는 수학문제만 몇번 끄적였던 차에, 9평을 응시하니 언어는 15점 정도, 외국어는 20점정도 폭락합니다.
과탐도 2~3등급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아차 큰일났다.
수능때는 떨어진 점수를 어느정도 회복했지만, 저조한 성적을 크게 회복하지는 못해서 재수를 하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9평 이후 언외탐을 복구하느라 수리에 손을 놓다가, 수리가형에서 2등급 뒤통수를 받은 이유도 있고요.)
지금 수시 전형 쓴 분들 중에, 50;1 이런거 말고, 한 5:1 정도 되는거 쓰신분은 원서 쓰면서부터 마음이 좀 떨릴겁니다.
내가 그 다섯명중 하나가 아닐까?
사관학교나 경찰대를 좀 간절히 꿈꿨던 분들, 커트라인 근처였던 분들은 이미 경험을 했을겁니다. 결과 나오는 날짜까지 공부가 안되고,
전체적으로 심리가 붕 떠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기대감은 정말 위험합니다. 불합격에 대한 충격도 너무 위험합니다.
정말 어렵겠지만, 원서를 썼어도 "나는 그 대학교에 지원한 적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능날까지 꾸준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2. [포]에 대한 도전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재수생 생활을 하게 됩니다.
재수생 생활을 하면서, 재수학원에 들어갈 때 목표대학에는 연세대학교 수학과를 썼는데, 그래도 마음 한켠엔, 언젠가는 포스텍을
가고싶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고3때도 포스텍을 카이스트보다 더 가고싶었는데 내신이 구려서;;)
그런데, 재수생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경시대회가 있다고 해서 알아보니 포스텍 수학경시대회라는게 있었습니다.
조건은 대학교 수업을 한번도 듣지 않은 학생(대학에 등록한 적이 없는 학생)으로, IMO와 동일한 참가제한 규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참가하였습니다. 그 대회는 포항에 직접 가서 봐야 합니다만, 대회의 권위 때문에
전국의 다양한 과학고 학생들이 한곳에 모이는 경시대회입니다. 더군다나 수상등급이 좀 높은 수상자는 포스텍 지원시
엄청난 가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거의 전국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다 모였던 대회입니다. 제가 나갔을 당시에만 해도
국가대표급 학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다른 고딩들은 엄마손잡고 선생님손잡고 가던데 저는 그냥 저혼자 갔습니다.
당시 그 대회는 대부분 고1~고2들 뿐이라, 재수생 허세부릴려고 신분증도 면허증으로 가져갔습니다.
시험장에서 제 앞자리는 한성과학고 학생이던데, KMO 2차대회 이야기를 하는거 보니 넘사벽같은 느낌이였습니다.
저는 수능공부 정도, 추가적으로 좀 고난도 문제집을 풀긴 했으나 학교 교육과정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공부를 거의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감독관은 제 신분증이 면허증인거 보고 신기해합니다. 참가제한은 재수생도 얼마든지 나갈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재수생은
대회에 거의 안나가니까요.
저는 그때 출제된 6개중에 1.5개정도를 해결했습니다. 사실 문제가 제 입맛에 맞기도 했고, 그때 제가 푼 행렬 문항은
고2~고3때 수학 문제를 내면서 이런 저런 이론들을 스스로 많이 만들었었는데, 그와 유사한 수준을 엄밀하게 다루는 문제가
나와서 저에게 대단히 유리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실 수상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당시 문제가 매우 어렵긴 했으나, 화장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로 과고학생들이 평균적으로 2~3개 이상 해결했던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대회 이후에 학원 방학이라 집에서 공부하고 쉬고 있었는데 대회 이후와 결과 발표하는 사이에, 포스텍에서 전화가 두번이나 옵니다.
첫번째 전화는 '정말 대학에 다닌 적 없냐?' 였고, 두번째 전화는
'너님 나이가 많다. 혹시, 올해 포스텍에 지원할 생각이 있냐?' 였습니다.
그래서, 포스텍은 제 꿈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원하겠다고 이야기했고, 며칠 뒤에 나온 수상 결과를 확인해보니 동상이였습니다.
그때 수상자중 재수생은 유일했고, 제 위에는 한국과학영재고를 비롯한 과학고 학생과 약간의 일반고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 대회때 받은 상은 일생에 가장 자랑스러운 상인데, 주변에 포스텍 경시대회 상을 받은 학생은 쉽게 찾기 힘들었습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로 알고, 저는 포스텍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포스텍이 내신을 많이 보는 학교인데, 고3때는 내신을 급격하게 끌어올렸습니다.
그당시 카이스트 수시병 때문에, 집중을 요하는 언어 외국어 공부는 뒷전이었고, 단순암기 수준이였던 내신 위주로 공부했었습니다.
3학년때는 내신공부하는 학생들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과는 투과목이 내신과목이라 학생들이 관심이 저조합니다.
그래서 전날에 벼락치기 공부만으로도 1~2등급을 손쉽게 딸 수 있었습니다. 영어와 국어는 토나오는 시험범위에 내신을 신경 안쓰는
학생들은 내신공부를 하지 않고, 그러다보니 2등급까지는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국어 내신도 3등급이라는, 저에게는 기적과 같은 등급이
나오게 됩니다. 고3때 내신을 국영수과로 산출해보니, z점수로 5~6% 안쪽, 평균 등급이 1점대 안으로 들어왔었습니다.
하지만 3년 내내 합친 국영수과 내신은 2.9등급이였고, 전과목 내신은 4등급이였습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나는 합친 내신은 3등급이지만 저조한 성적에서 더 열심히 하여 점수를 올렸고, 고3때에는 님네 대학에
지원할 만큼의 내신에 도달했다. 그리고 재수생때는 실력을 더키웠다.' 이런식으로 썼고, 1단계를 합격하게 됩니다.
(그당시 제 내신성적 수준으로 과학고가 아닌이상 1단계를 합격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그때는 카이스트의 경험 때문에 수시병이 덜하긴 했는데, 1단계를 합격하고 나니 다시 수시병이 시작됩니다.
그떄는 10월입니다. 재수생의 10월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 1달로 1년의 고생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1단계 합격이라는 것은 1부능선을 넘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때 고려대학교 이과대학도 지원했는데, 1단계를 무난히
합격하였습니다.
두 학교의 1단계를 합격했다는 것은, 뭔가 하나는 붙을것만 같은 기분을 강하게 들게 합니다.
고3 이후로 1년의 세월동안 실력을 더 키웠으니, 이제는 정말 해볼만할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시병이 저를 괴롭힙니다. 수능공부할 때 공부에 집중이 안됩니다.
포스텍 면접은 철저히 수학과학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실력을 요구합니다. 카이스트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분명한 선발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포스텍 면접은 10월 말입니다.
저는 포스텍을 믿고 면접준비를 하였습니다.
시험범위에는 철저히 수1 수2 미분과적분 이라고 되어있었고, 제가 과학으로 선택한 물리는 물리2까지 묻겠다고 나와있습니다.
또한 포스텍 면접이 한창 쉬워질 시기여서, 좀 중점적으로 준비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설렁설렁했던 기억이 납니다.
면접 당일날, 수학 문제로 1번은 비둘기집의 원리, 2번은 유클리드의 호제법, 3번은 평균값의 정리가 출제되었습니다.
3번은 헬게이트였고, 그당시에 3번을 해결한 학생은 몇몇 학생을 제외하곤 없었다고 합니다.
비둘기집의 원리와 유클리드 호제법은 저에게 모두 생소한 주제였습니다. 말 그대로 탈탈 털렸습니다.
심지어 수학면접할 때 교수님은 저에게 꾸짖기까지 합니다. 이래가지곤 수학자 못한다고 합니다.
과학 면접은 생각보다 잘봤습니다. 수학과 지원학생이라 그런지 좀 설렁설렁 하더군요. 교수님이 답으로 인도해주시는데
저는 그 인도하는 길을 따라 아는척 같이 풀었는데 교수님은 저보고 물리 잘한다고 칭찬합니다 -_-;
어디서왔냐고 그러고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자고 그러고.. -_-;;
포스텍 합격자 발표는 수능 D-7입니다. 그당시 G20때문에 수능이 일주일 미뤄져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결과는 불합격.
D-7일 때 불합격 통지는 학습에 상당한 지장을 줬습니다. 수능 마무리를 흐지부지한 상태로 시험을 봅니다.
수시병때문에 언어/외국어는 EBS 70%였음에도 수능특강 정도만 풀었던거 같고, 수리는 그당시 파이널 2~3회정도
풀고 시험장에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9평때에는 연세대 수학과도 모의지원 가능학교로 뜰 정도로 잘봤었는데, 수능때 성적이 조금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도 워낙 수리영역도 불수능이라 수리 고득점자에게 유리했고, 과탐도 무난히 잘 본 탓에 삼수는 안하겠다 정도로 생각해서,
결국 논술 우선선발로 연세대에 가게 됩니다.
두번의 수시 도전이 수능 성적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습니다.
특히 고3때는 멘탈적으로 엄청나게 힘들었습니다. 재수생때도 잦은 논술/면접으로 10월~11월이 흐지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곧 수시 전형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멘탈적으로 매우 흔들릴 것입니다.
특히나 본인이 어느정도 가능성 높은 전형들을 지원하게 되면, (과학영재(특기자)류, 내신+면접 전형류) 원서 지원할때부터
면접볼때까지 멘탈이 정상이 아닐겁니다.
가슴이 쿵쾅쿵쾅 할거고, 지원한 대학교 로고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겁니다.
'에이 이게 뭐가 그렇게 큰 영향인가' 라고 하는데, 막상 경험해보면 상당히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 멘탈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서를 써도 원서를 안썼다고 주입하는 멘탈 관리가 관건입니다.
면접이나 논술 준비를 할 때에 그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공부를 한다고 생각해야 하고요.
특히 수시 지원자들은, 9월부터 수능 마무리 학습에 돌입해서, 10월이 되면 좀 덜 몰입하여 공부해도 마음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 오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