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눈여겨 본 아이들 몇 몇을 데리고 '미술부'를 조직했다. 방과 후 모여서 실기 공부를 더 시키고 싶은 의욕이 있었을 뿐, 딱히 떠오르는 아이템이 없던 차, '바리스타'수업이 열리고 있는, 2층교실(일명 'Cafe Comma')을 꾸며보고 싶어졌다.
'이건 우리가 올해 안에 세운 첫 단체 과업이야!' 역시 내맘대로(!) 선포하고 그 어렵다는 예산 따오기까지 성공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학교에 온 지 처음으로, 자발적 의욕에 의해 뭔가 시작한 셈인데, 청소를 하고, 총 일곱개의 쓰레기통을 용도별로 구비하고, 벽에 걸린 태극기와 교훈을 조심스러움과 통쾌함이 뒤섞인 채 떼어 내고, 예나지금이나 통용되고 있는 한국 교실의 전형적인 초록색을 하나씩 지워갔다. 구조변경은 불가하다는 행정실의 지시 때문에 떼어낼 수는 없는 게시판을, 캔버스천으로 덮고 젯소를 발라 하얗게 만들고, 초록색.창틀도 회청색으로 칠했다. 밤이 깊어 아이들을 먼저 기숙사로 들여 보낸 뒤 홀로 뒷정리를 하다 문득 알아차렸다.
'아....내가 장소화를 하고 있구나....선생님께 배운 것이구나......'
'모방은 주체가 모르는 사이에 이뤄진다'지만, 모르는 사이에 이뤄진 배움이야말로 덕스러움의 현현인 듯 여겨진다. 커다란 칠판이 걸린 까페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도, 1년 간 실무노릇을 했던, 인문학까페 '헤세이티' 경험이 작용했던 까닭임을 더불어 알아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