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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날개, 1980>의 조창열
야만의 시대, 1980에 대한 연민
가작에 당선된 <날개, 1980>은 현재 영국 유학 중인 조창열(32)씨에게서 날아왔다. 막동이 시나리오 당선자와 서면 인터뷰를 시도하는 이례적인 일은 그렇게 이뤄졌다. 역시나 유학의 이유는 영화였다. 한겨레영화학교, 그리고 중앙대 연극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던 그는 지금 런던필름스쿨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있다. <데자뷰>라는 16mm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영화를 공부하도록 한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단편에서 발생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여기 런던에까지 왔다”고 한다.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언제인가부터 관심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괴발개발’이라는 희곡 모임 집단에서 글쓰기를 수련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작가협회에서 <엔드 게임>으로,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아바타>로 당선된 적이 있는 공모전 선수이기도 하다. <아바타>의 경우에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1년 정도 영화화를 놓고 진행하기도 했었다. 2003년 영국으로 유학 간 뒤 “추구하는 영화 스타일에 변화가 있었고, <날개, 1980>은 그런 변화의 시작이다. 한국에서 어떻게 읽혀질까 불안한 마음이 있어서 검증차원에서 시나리오를 보내봤다”고 한다. 당선소식으로 검증 작업은 일단 성공인 셈이고, 올 10월쯤 귀국하여 할 일은 졸업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전에 썼던 시나리오 작품이 있나.
=지금까지 쓴 시나리오는 대략 열편 정도 된다. 그중 애착이 가는 작품은 <아바타>이다. 불교적 SF라고 내가 규정을 짓는 작품인데 사이버공간에서의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의 붕괴를 화엄경의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구절로 풀어본 것이다. 관념적인 작품은 아니고, 대규모의 전투신과 스릴러가 축인 작품이다. 예전에 영화사에 판 적이 있는 <엔드 게임>이라는 작품은 베케트의 희곡에서 제목을 따온 것인데 인터넷 살인 생중계라는 소재다. 아마도 내가 워낙 컴퓨터를 좋아하고 인터넷이 막 발전하던 시기의 사람이라 그런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대단히 장르적으로 풀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영국에 온 다음에 쓴 시나리오는 많이 바뀌었다. <익명>은 대인공포증의 다리 모델, 애인을 빼앗긴 대학생,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고등학생의 세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구성된 작품이다. 현대 도시 젊은이들의 강박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 쓰고 있는 저예산 디지털 장편 <오필리어 콤플렉스>는 자살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정통적인 드라마투르기에 정성을 쏟았는데, 원래 자신의 성향인가 아니면 이번 작품만의 특징인가.
=원래 내 출발점은 아니었다. 연출공부를 하면서 많이 바뀐 부분이다. 결국 지금 내 결론은 스토리가 없는 영화는 가능하지만 인물이 없는 영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물에 대단히 공을 들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런 식의 드라마투르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드라마투르기에 천착하기보다는 다양한 창조적 요소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거기서 오는 충돌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980년대, 시대의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여기에 관심을 쏟게 되었나.
=내 부모님 세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의 부모님도 그런 시대 속에서 많이 힘드셨던 분들이었다.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신 분들 덕에 지금 세대가 밝고 맑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 중에는 고통을 이겨내고 오늘날 성공을 이루신 분들도 있지만 결국 피해자로서 삶의 뒤안으로 산화해 가신 분들도 있다. 오늘의 성공을 발로 딛고 힘들었던 과거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과거의 유령에 고통받고 계신 분들에 대한 연민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또 피해자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가해자쪽에 섰던 사람들도 결국은 시대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젠가 신문에서 빈민촌에 독거하시는 노인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분의 이미지로부터 시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건가.
=현재 학교와는 별도로 HD 단편영화를 하나 찍고 있다. 5월 셋쨋주에 촬영을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 재미난 실험 몇 가지를 하고 있다. 당분간은 그 재미에 좀 빠져보고 싶다. 그리고 10월부터 그해 말까지 한국에서 졸업 작품을 찍을 거다. 그 다음은 <오필리어 콤플렉스>라는 저예산 장편영화를 준비할 생각이다. 시놉시스2004년 12월. 김 신부는 간암 말기로 죽어가는 한 환자의 병자성사를 위해 달동네로 향한다. 병과 가난으로 찌들어 단칸방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중년 남자는 젖은 눈자위로 김 신부를 바라보며 생애 마지막 고해를 시작한다. “신부님, 제가 24년 전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1980년 12월. 형사 강율은 연일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 진압에 동원돼 무의미하고 잔인한 폭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의 유일한 낙은 허름한 술집 ‘낙원’에서 혼자 술을 기울이는 것. 거기에서 강율은 미대 휴학생 세진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 속으로 휘말린다. 그러나 세진은 죽어가는 엄마의 수술비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고, 강율은 자신에게 목숨의 빚이 있는 신사를 찾아가 수술비를 구한다. 그러나 결국 세진의 엄마는 수술 중 죽고, 강율이 돈을 받는 대가로 이 신사에게 제공한 정보로 인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중앙정보부 요원까지 파견되고 강율은 세진을 위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야 함을 깨닫는다.
(시나리오 발췌)
<날개, 1980>
#실내. 낙원 술집-잠시 후
탁자 위에는 소주병들이 쌓여 있고 두 사람은 별말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 두 사람 다 취해가고 있다. 세진 맨발을 의자 위에 올리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담배를 피우면서 술을 마시고 있다.
강율 담배… 몸에 별로 안 좋아.
세진 한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들이켜고 강율을 본다. 세진 갑자기 키득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강율 멍하게 세진을 보고 있다. 세진 한손에 담배를 들고 벽에 기대며 키득거리고 있다. 강율 세진의 맨발을 본다. 강율의 시선은 세진의 손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취기가 어린 흐린 눈으로 웃고 있는 세진의 얼굴을 본다.
세진의 등 뒤에서는 두 날개가 힘차게 하늘로 뻗어 있다. 세진 겨우 웃음을 멈추고 일어난다.
세진 우리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
세진 비틀거린다. 소주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실외. 낙원 앞-거리
아무도 없는 거리. 세진 손에 담배를 들고 길거리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다. 강율 그 옆에 앉아 있다. 세진 흐릿한 눈으로 강율을 본다. 세진 살며시 강율의 어깨에 몸을 기댄다. 강율 세진을 본다. 세진 그대로 하늘을 본다.
하늘 높이 비행기의 불빛이 반짝이며 지나간다.
세진 비행기 타본 적 있어?
강율 아니.
강율 세진을 돌아본다. 세진의 눈이 감겨 있다. 세진 잠들어 있다. 강율 세진이 들고 있는 담배를 살며시 뺀다. 강율 세진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찬바람이 불어와 세진의 머리칼을 날린다. 세진 몸을 움츠린다. 강율 세진을 들어안고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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