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최고의 완만 코스에서 유박사님의 속도에 놀라고 [대간 39]
1. 일자: 2014. 9. 20 (토)
2.
장소: 닭목재~삽당령(남진)
3.
행로/시간
[닭목령(10:44, 700m, 화란봉 1.9km) ->
화란봉(11:32, 1069m, 석두봉 5.5km) -> (식사, 12:39~54) -> 석두봉(13:29, 995m, 삽당령 6km) -> 독바위봉(13:46) -> 삽답령(14:52, 680m)]
4. 일행: 유박사, 송암산악회
< 39구간 산행을
준비하며 >
이번 39구간 대간 산행은 집안 일로 28산악클럽이 아닌 송암산악회와 함께 한다. 이름이 낯설지 않아 옛
기록을 찾아보니 두 차례 함께한 인연이 있는 산악회다. 그 중 한번은 대간 코스인 대관령-닭목령이었다. 한 겨울 깊게 눈 쌓인 소나무가 멋졌던 길을 걷고 나서
닭목령에서 먹던 된장국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잊고 있었지만 인연이 단순하지 않다.
산악회에 올라온 정보를 살펴본다.‘닭목령은
풍수가들이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고 형세가 닭의 목에 해당하는 지형이다. 화란봉은 이름 그대로
꽃 모양을 하고 있는 산으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화란봉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상이다. 석두봉은
정상이 두쌍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동봉과 서봉 정상을 지키고 있는 바위에 올라서면 일대의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참나무 노서거수들이 여기저기 자라는 모습은 장관이다. 삽당령은 형세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의 산줄기가 펼처져 있어 명명되었다.’주요
포인트의 정보가 머리에 쏙 들어온다.
6개월 동안 무박산행에 익숙하다 보니 당일 12.7km, 5시간
산행은 부담없이 느껴진다. 거리와 예상 소요시간은 따지지도 묻지도 말자!
< 희망사항 >
지난 주 일요일 7기를 따라 대간을 다녀온 옥혜님의 후기에는
낯선 이들과의 산행에서 겪은 불편함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나 역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니, 288에 익숙해 지기도 했지만, 8기 분들이 워낙 매너가 훌륭한
분들이기에 낯선 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큰 산꾼이 되려면 사소한 일에는 무덤덤해
져야 하는데 여전히 쉽지 않다. 수양이 덜 되어서 그럴 것이다.
지난 주 24km가 넘는 긴 무박
산행 후 동기들과 과하게 뒤풀이를 했더니 후유증으로 주중 내내 고생했다. 무박산행과 음주 하나만으로도
회복이 힘든데 두 가지를 동시에 했으니 몸이 편할리 없다. 당분간 몸을 혹사하는 산행과 음주는 피해야겠다. 일단 6개월간의 긴 무박산행이 끝났으니 다행이다.
오늘 대간은 오랜만에 당일 산행이다. 꼭두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산에 올라 붙지 않아도 되고, 어둠에 풍광을 내어 주지 않아도 되니 좋다. 반면 초가을 아직은 더운 한낯 날씨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어디 그늘 없는 일이 있으랴! 마음 편히 먹고 걷는 행위 그 자체를 즐겨야겠다.
288의 유쾌남 유박사님이 길을 함께 한다. 회사 일이 겹쳤다 한다. 평소 재미난 애기와 맛난 커피 제공으로
인기가 높은 분이다. 새벽 길에 순번을 기다리며 감질나게 얻어 먹던 커피가 온전히 내 몫으로 떨어진다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해 진다. 오고 가는 산 길에서 대화하며 그의 진면모를 만나 보고 싶다.
< 닭목재 가는
길에 >
사당 가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 밑에는 관악이 아침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육봉 능선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아찔하다. 사당, 수녀원 앞 도로는 손님을 맞이하는 버스로 분주하다. 유박사님이 마중 나와 계시다. 둘이 버스에 오른다. 낯설고 좁다. 이어폰의 음악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양재, 잠실, 천호, 강동 등을 거쳐 7시 40분
무렵에야 고속도로에 올라선다. 휴 멀다 ~~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니 산행 안내를 한다. 오늘
이 버스에는 대간 닭목령~삽당령팀, 닭목령~대관령팀, 노추산팀의 3개
팀이 연합 산행을 한다. 성원이 쉽지 않으니 궁여지책인 듯 하다. 돌아올
때 기다리는 시간이 길겠다는 짐작을 해 본다.
버스는 생각보다 소요시간이 길어 10시 40분 무렵 닭목재 어귀에 도착했다. 햇살이 눈부시다. 유박사님의 선크림을 얻어 바르고 산행준비를 마친다.
< 닭목재에서 화란봉
>
닭목재의 해발 고도는 700미터 어름이다. 표지석을
배경 삼아 유박사님과 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화란봉으로 향하는 오름은 초반부터 만만치 않다. 송암 일행의 뒤를 따라 걷는데 20분 정도 걷자 그들 중 몇 몇은
힘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쳐진다. 그 틈을 타 치고 오른다.
< 닭목령에서 >
오랜만에 반 팔 옷을 입고 왔는데, 잘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기온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걸을수록 땀이 나
더위가 느껴진다. 바지도 무릎까지 치올리고 걷는다. 화란봉까지 350미터는 족히 넘을 고도를 이기느라 힘에 겹다.
잡다한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화란봉까지 이어진다. 대간 길은 화란봉 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껶이나 100미터 남짓의 거리라 오르기로 한다. 화란봉 정상은
꽤 너른 공터다. 닭목령에서 1.9km, 거리로 47분이 소요되었다. 정상에 서니 지형이 이름처럼 꽃 봉우리 형상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정상석 부근에 구절초와 엉겅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진을 찍고 유박사님표 커피 한 잔도 얻어 마신다. 오늘 코스 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이후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 화란봉에서 >
당초 오늘은 청한, 옥혜,
아이넷과 관악산 종주를 예정했는데 우연히 검색하다 송암에서 오늘 이 코스를 발견하고 관악은 다음을 기약했다. 나머지 산벗들은 빵구를 어찌 때우는데 궁금하다. ㅎㅎ
< 화란봉에서 석두봉
>
길이 순해진다. 인적 없는 숲 길에 들어서니 화란봉에 오르느라 잠시 중단되었던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 주로 유박사님의 일 이야기다. 주식 거래를 하며
있었던 성공과 실패담, 집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등산과 사람들이 주 대화 주제다. 정말로 오랜만에 산에서 집중하며
남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유박사님은 남은
50대의 인생도 유쾌하게 사시리라 믿는다.
오름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길을 이어간다. 중간 중간
벤치가 있어 송암산악회 인원들은 휴식을 취하고 함께 식사하고 가라 권했지만 발에 붙은 가속 때문에 내쳐 걷는다.
화란봉을 지나 1시간쯤 걸은 후 적당한 공터에 자리를 잡는다. 빵, 떡, 과일, 커피가 있는 조촐한 식단이 차려진다. 준비한 음식을 서로 권하며 15분 정도 휴식을 가졌다. 음식이 에너지로 변해 후반부 산행에 힘이
되기를 바래 본다.
숲의 음영이 짙다. 숲은 아직 여름의 기운이 강하다. 대간 길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한 등로가 이어진다. 오늘
코스는 내가 걸어 본 대간 길 중 가장 완만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상처 입은 분들의 힐링에 제격일
듯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나무에 매달린 팻말에는 ‘강릉바우길’이라는 표식이 있다. 이 길이 그 유명한 강릉바위길 이라니, 어쩐지! 길 가 잡목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완만하고 편한 오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작은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짧은 오름이 있었다. 그 위가
석두봉이었다. 멀리 강릉 방향으로 하늘이 트인다. 구름 밑으로
강릉 시가지가 보인다. 그 뒤로는 바다의 흔적도 느껴진다. 시간은
이제 겨우 1시 30분이다.
하산 후 오래 기다리지 않으려면 천천히 가야 하는데 탄력이 붙은 걸음에 그게 쉽지 않다.
< 석두봉에서 >
< 석두봉에서 삽당령
>
이정표는 닭목령에서 8.5km를 걸어 왔고, 삽당령까지는 6km를 가야 한단다. 거리 표기가 약간은 과장되어 있는 듯 하다.
유박사님은 빨리 걸으면 3시 이전에 삽당령에 닿을 수 있다 하며 속도를 낸다.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길이 이어진다. 간혹 나타나는 험로에는 계단이
놓여 있다. 석두봉에서 15분 거리에 독바위봉이 있었는데, 두 개의 취침용 의자가 놓여 있다. 평소 산에서 오수를 즐기는 까막바위님
생각이 나, 사진을 찍어 두었다. 카페에 올려야겠다.
< 석두봉에서 삽당령 가는 길에 >
초가을 햇살에 억새가 넘실거린다. 가을이 성큼 곁에 와 있다.
유박사님은 뛰듯이 앞서 가고 난 천천히 간다. 길을 음미하고 싶어서다. 유박사님이 멈추어 서서 기다린다. 내 걸음은 빨라진다. 서너번 반복하니 익숙해진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멋진 길을 걷는다. 솔은 키가 크고 잣은 푸르다. 참 이쁘고 건강한 숲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건강한 푸르름을 보는 일은 즐겁다.
< 쉼터 벤치와 억새
>
삽당령이 1.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길은 임도다. 반대편에서 차 한 대가 온다. 어수선하다. 번잡함이 싫다. 임도
옆으로 숲이 나 있다. 그 길은 삽당령까지 쭉 이어졌다. 편한
임도로 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융단 같은 솔잎이 깔린 숲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매사에 비교하며 스스로 화를 부르니 말이다. ㅋㅋ
잡목 사이로 도로가 얼핏 보인다. 이렇게 오늘 산행이 끝이
나나 보다. 4시간 남짓의 산행에서 난 힐링을 얻었을까?
삽당령에서 도착했다. 아직 3시도 되지 않았다. 버스는 아직 안 왔다. 씻을 곳을 찾아 나선다. 꽤 괜찮은 개울을 만났다. 땀을 조금이나마 털어내고 나니 게운하다. 다시 삽당령으로 간다. 오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 삽당령에서 >
< 에필로그 >
후미는 1시간쯤 뒤에 하산을 완료했고, 노추산 팀을
이끌고 버스도 그 즈음에 왔다. 그동안 밴드에 산행 궤적을 올렸더니 답글이 쏟아진다. 288이 그리워진다.
낯설어서 걱정했던 39구간 거사가 잘 마무리 되었다. 유박사님이
함께 해 여유 있는 산행을 했다. 고마울 따름이다.
버스 뒤 켠에 작은 식당이 마련된다. 버섯이 놓여지고 라면이
끊여진다. 한 켠에 원래 산악회 멤버처럼 앉아 라면을 얻어 먹었다. 누가
보면 넉살 좋은 이방인으로 보일 것이다. 막걸리가 한 두 잔 들어가자 왁자지껄 시장통이 된다. 술판은 버스 안에서 까지 이어진다. 게의치 않는다. 나는 객이고, 그나마 누구처럼 노래는 부르지 않으니 다행이다.
올 9월은 내 인생에 가장 힘겨운 나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했다. 아직도 진행 중인 험한 일들, 오늘
산 길 만큼만 잘 풀려 주기를 기원해 본다.
< 39구간 산행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