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상상력
이정석(시인, 평론가)
1.동질성의 상상력
공상가나 몽상가만이 꿈울 꾸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들은 크든 작든간에 자기만의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시인이나 소설가도 꿈을 꾼다. 그러나 문학가들이 꾸는 꿈은 공상가나 몽상가들과 다르다. 생활인이 꾸는 그것과도 다르다. 공상가나 몽상가들은 실현 불가능한 여러가지에 대해 꿈을 꾸고 ,생활인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에 대해 실행되기를 바라는 강한 집착력을 가지는 꿈만 꾼다. 문학가들은 현재에 없지만 사물이나 현상을 경험이나 관념에 근거하여 새로운 싹을 틔우는 아름다운 꿈을 꾼다. 우리는 이런 문학가들이 꾸는 꿈을 상상이라고 하며 문학가들은 비교적 상상력이 강하거나 풍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새 봄 광주. 전남의 문학은 화사한 봄꽃들이 우리 산하를 수놓듯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들이 선보였다. 특히 [문학춘추]에서는 특집 '한국아동문학 초대'를 마련하여 봄을 좇는 환한 어린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윤삼현의 '일기예보'는 단순한 일기예보라는 소재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일기예보를 통해 남한과 북한의 동질성에 대하여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2. 민족 화해의 꽃
이 화사한 봄날 동시작품을 통해 남북한 민족 화해라는 크나큰 한민족의 이상을 어떻게 아동문학가들이 펼치고 있는가 그 문학적 상상력을 따라 아름다운 통일의 꽃을 피워보기로 한다. 사실 남북한 민족화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아동문학, 특히 동시에서 소화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동심적 상상력을 바탕에 깔아야만 하는 동시문학의 한계성 때문이다. 너무 깊게 다루면 동심을 벗어나 버리고 너무 얇게 다루면 가벼움 때문에 감동이 오지 않는다. 깊고 얇음의 문학적 기준은 이런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시적 구성에 따라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동심적 기준에 벗어나지 읺는다면 되는 것이다.
내일 중서부 지방은 눈이나 비가 내리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눈과 진눈깨비가 얼어붙으면서
미끄러운 출근길이 예상됩니다
대설경보가 내려진 강원산간과 동해안 지방은
많은 눈이 내려
무릎이 풍풍 빠질 정도의 적설량을 보이겠습니다
남부지방 역시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한 두 차례 눈이 내리겠숩니다
이러한 꽃샘추위는
모레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입니다
여기까지였다
끝내 북한은 눈도 오지 않았고 비도 오지 않았다
맑음도 흐림도 강추위도 풀림도 없었다
지도의 절반은 텅 비어 있었다.
-윤삼현 '일기예보' 전문
윤삼현의 '일기예보'는 앞의 작품처럼 남북 화해에 대한 주제를 깔아놓았다. 이 동시를 보면 1-3연까지는 4연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시인은 일기예보를 통하여 우리들의 아픈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1연에서는 중서부 지방에 대한 평범한 일기예보다. 오히려 시적인 개성적인 표현이 없다. 2연에서도 마찬가지다. 강원 산간과 동해안 지방의 사실적인 일기예보이다. '풍풍'이라는 시어 이외는 어떤 시적인 표현이 없다. 3연도 남부지방에 대한 단순한 일기예보 소개에 그치고 있다.
여기까지 읽어본 독자들은 나열된 각지역 일기예보에 대해 실망하거나 의아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4연을 읽어보면 1-3연을 간단하게 해석하고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인의 치밀한 구성에 따라 열거된 꼭 있어야 할 연들임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시인은 1연부터 3연까지 계속 시적 긴장감을 삭제하고 해제시킨 것이다. 그러다 느닷없는 야간공습처럼 4연에서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한꺼번에 쏟아붓고 있다. 시적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의도된 전개였던 것이다.
4연 '여기까지였다'는 1행이 예사롭지 않다. 2행의 '끝내'라는 시어 속에는 서운함과 배반감 같은 감정이 섞여 있다. 일기예보는 논리적으로 당연히 중부지방- 강원산간,동해안지방-남부지방-북부지방으로 이어져야 맞다. 그래서 4연에서는 북부지방의 일기예보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나오지 않았으므로 4연 1행부터 3행까지 싯구들이 우리들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할 것이다. 이제 한국 국민들로부터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 시행 '지도의 절반은 텅 비어 있었다.'에서 드디어 텅빈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마음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일기예보'는 직접 남북한 민족 화해와 통일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한 민족 숙원인 통일이란 무거운 주제를 결코 무겁게 풀지 않고 있다. 북부지방의 일기예보를 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 혹은 슬픔을 암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 통일 문제를 접근하였던 것이다.
3. 끝내며
여름으로 이어지는 봄날에 만발한 문학가들의 상상력을 따라 휘날리는 눈발 속에 서보기도 하였고 통일의 꽃을 마음 속으로 피워보기도 하였다. 바라건대 '일기예보'가 의도하는 민족 화해와 통일의 염원이 하루빨리 앞당겨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