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0:1-16 (36) 포도원 품꾼 비유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 비유입니다.
이 말씀은 앞 장의 부자 청년에 대한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당연히 영생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음으로 근심하며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영생은 사람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마19:26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영생은 사람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그 구체적인 비유가 바로 포도원 품꾼 비유입니다.
1절에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일꾼들에게 하루에 한 데니리온을 주기로 약속하고 제 삼시에 나가서 일꾼을 부르고, 육시와 구시와 십일시에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시간에 +6을 하면 오늘날 시간이 됩니다. 곧 오전 9시에 나가고 12시에 나가고, 오후 3시에 나가고, 저녁 5시에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주인은 늦게 온 사람부터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전 9시부터 와서 일한 사람은 오후 5시에 와서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자기는 아침부터 일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더 받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기에게도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과 똑 같이 받은 것에 대해 항의하였습니다. "나는 아침부터 와서 죽도록 수고하였는데 왜 1시간 밖에 일한 사람과 똑 같이 주느냐"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내가 너를 부를 때 한 데나리온 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 그 약속한데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무엇이 불만인가? 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한 데나리온 준다고 하고선 반 데나리온을 주었다면 당연히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데나리온 주기로 하고 한 데나리온 주었는데 그가 원망한 것은 1시간 밖에 일한 사람이 자신과 같은 임금을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14절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원 비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3절과 6절에 그들은 포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놀고 있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무런 할 일 없이 놀고 있을 때 주인이 그들을 불러 포도원에 일하게 하셨습니다. 포도원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놀고 있던 일꾼과 같이 세상에서 아무런 삶의 목적과 의미 없는 존재로 짐승과 같이 먹고 일하고 자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멸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었음으로 우리가 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불러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상급을 받는다 하여도 시기하거나 질투해서는 안됩니다.
16절 말씀대로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나보다 신앙생활 늦게 한 사람이 나보다 훨씬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 그는 교회를 핍박하였던 사람이었지만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보다 하나님께서 훨씬 더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 그가 제자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나의 공로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빌3:2 "내가 이미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만큼 했으니 상급이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불러 주셔서 교회에 들어와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