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객들이 찾지 않는 기생집은 무덤과 같다. 가뭄에 콩나듯 찾아든 사내는 기인(奇人)이나 천출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매창집이 그러하다. 소년전홍(少年前紅·소년과 연상녀의 밀회)의 애숭이가 찾아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매창은 자존심이 상해 안절부절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삼십을 넘긴 매창이지만 아직 난숙한 여자의 절정기의 아름다움이 몸 구석구석에 여전히 남았다. 그런 매창의 은근한 아름다움을 어찌 알고 찾아드는 남정네도 있었다. 그녀는 그런 사내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취한 손님이 명주 저고리 옷자락을 붙잡네/
손길 따라 명주 저고리 소리를 내며 찢어졌네/
명주 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것이 없지만/
임이 주신 온정까지도 찢어질까 두려울 뿐이네’ ≪취한 손님에게≫다.
유희경과 꽃잠을 자고 난 후 매창은 수절을 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매창의 수절 소식은 한양에 까지 갔다. 그런 소문을 유희경만 모를 뿐 풍류객들에겐 공개된 비밀이다. 촌은은 매창을 16년 만에 10일 동안의 꿀 같은 사랑을 나눈 후 한양 생활에 빠져있다. 지난번 16년만의 부안행은 공무가 있어 내려갔던 길에 매창을 극적으로 해우했다. 그 후론 일부러 내려가기란 너무 먼 길이다. 사랑이 식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교통이 워낙 불편하여 한번 가려면 열일 제쳐놓고 가야하는 풍류객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다. 유희경은 매창을 만나기전엔 독신남이었다. 풍류는 즐겼으나 여자는 탐하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순진한 사내였다. 기생한테 동정(童貞)을 떼였던 것이다. 사실 촌은은 풍류객 이전에 장례식 의식에 특히 정통하여 나라의 큰 장례나 사대부집 장례식에 불려다녀 항상 바쁜 몸이다. 하지만 매창은 다르다. 20대에 처음만나 기생의 순정을 바친 후 16년 후인 30대 후반에 극적으로 해후하여 속깊은 사랑을 나눈 후 매창을 수절을 하고 있다. 그녀의 수절 소식은 날이 갈수록 꽃향기처럼 바람을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경계를 허물며 퍼져나갔다. 이젠 한양의 풍류객 사회뿐만이 아니라 돈 잘버는 사회인 중촌(中村·청계천 중심 역관·의관 등 마을)과 사대부들의 마을인 북촌(北村)에까지 매창의 수절소문이 들어갔다. 매창은 거의 매일 독수공방에 거문고와 벗하고 있다. 10살 안팎의 동기(童妓)는 말벗이 되어주지 못했다. 시와 거문고가 유일한 벗이다. 그녀는 현실에선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꿈에서라도 만나게 되길 간절히 희망했으리라...
‘봄이 왔다지만 님은 먼 곳에 계셔/
경치를 보면서도 마음 가누기 어렵다오/
짝 잃은 채 아침 화장을 마치고/
거문고를 뜯으며 달 아래서 운다오/
바라보는 꽃에도 새 설움이 일고/
제비 우는 소리에 옛님 생각 솟으니/
밤마다 님 그리는 꿈만 꾸다가/
오경 알리는 물시계 소리에 놀라 깬다오...’ ≪옛님을 그리며≫다.
그러면 한양에 있는 유희경의 속내는 어떠하였을까? 남녀의 정이란 이심전심이다. 1607년 헤어진지 16년 만에 극적으로 해우하여 뼈까지 녹일 농염한 사랑을 10일 동안 일장춘몽처럼 지낸 후 몸은 한양에 있어도 마음은 부안의 매창을 맴돌고 있었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한양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오나무에 비 뿌릴 때 애가 끊겨라...’ ≪회계랑≫이다. 하지만 마음처럼 달려가긴 너무나 멀고 험난한 길이다.
지금 같으면 한 걸음에 달려가 뼈를 녹일 질펀한 사랑을 했을 터다. 매창의 마음은 더 탔다. 기생이라 하지만 정조를 바친 유희경을 위해 수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귀에 돈 보따리를 싣고 와 사랑을 구걸하는 사내들이 수도 없이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기생 주제에 무슨 수절이냐고 주위에선 코웃음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쑥덕공론에 흔들릴 매창이 아니었다. 그녀는 육체와 정신 즉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의 구분이 분명하였다. 살을 섞는 사랑은 유희경과 하고 정신적인 소위 플라토닉 사랑은 허균(許筠·1569~1618)과 즐겼다. 그런 그녀에게 눈에 차지 않는 사내들이 돈을 싸들고 와 목을 매고 구애를 한들 치마끈을 풀고 속곳을 벗을 리가 없다. 매창은 비몽사몽에 유희경과 대화를 나누었다. “소첩을 언제 한양으로 데려가시렵니까? 소첩을 한양에만 데려다 주시면 당신이 살고 있는 하늘만 바라보고 살 것입니다. 당신이 집에 찾아오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랬다. 그렇게 매창은 유희경이 살고 있는 한양에 오고 싶어 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으나 한양과 부안은 너무 먼 거리였다. 그녀는 거의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하기까지 하였다. 유희경을 향한 상사병(相思病)이 였을까? 아무튼 매창은 뭇사내들이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라고 애걸복걸했어도 오직 몸은 촌은을 향해 일편단심이었으며 영혼은 허균을 태양을 향한 해바라기처럼 살아갔다. 그렇게 38년이란 겨우 한 세대를 조금 넘게 살다갔어도 여류문학에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었으며 세상 사내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도 살아있는 연인처럼 품고 싶어 아쉬워하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빈 방에 외로운 병든 이 몸/
외롭고 굶주린 인생 사십이로다/
묻거니 인생살이 몇 년인가/
수건 마를 날 없는 마음속 회포여...’ ≪가을에 병들어≫(病中秋思)다. 매창은 천식에 시달렸다.
매창의 마음속에 유희경과 허균, 그리고 백대봉도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으나 정작 그녀가 필요로 할 때 그들은 그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특히 유희경은 한양 침류대(枕流臺)에서 풍월향도(風月香徒·중인·평민 문학동인) 지인들과 세월을 낚고 있으나 매창은 부안에서 한양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평생 한번 운다는 가시나무새 모양 목이 터져라 망부송(望夫頌)을 불렀다. 그러나 망부송에 대한 메아리는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