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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또 다른 방황
드디어 판결을 받는 날이 왔다. 남들에겐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던 동수도 마음이 설렌다. 감방의 동료들은 동수를 놀려댄다.
“야! 김동수! 나가면 재미없다. 여기서 우리랑 같이 있자.”
“동수야 나가면 돈 많고 싱싱한 사장이 기다리는 데 왜 여기 있냐?“
“그래 동수야! 한 밑천 달라고 해라. 우리 나가면 자리도 하나 주고.”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 마라. 동수 헷갈린다. 어째든 너 오늘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
“글쎄요. 결정 나는 대로 따를 겁니다.“
“그래 하는 수 있나.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저 여기서 배운 것 많습니다.“
“이것도 다 인생 공부이니라.”
아침밥을 먹고 나니 교도관이 동수에게 대기를 하란다. 버스에 올랐다. 사장이 먼저 타고 있었다. 동수는 교도관 몰래 살며시 웃음을 보냈다. 그녀도 표정이 밝아 보인다.
법정에 들어섰다. 연희가 성원일 안고 있었고, 장모와 처제 그리고 회사에서는 관리부장이 와 있었다.
절차는 간단하였다. 이미 심리가 다 끝났었기 때문에 재판장의 판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재판장은 판결이 시작되었다.
재판장의 판결내용을 요약하면 ‘피의자 강미선과 김동수는 각각 혼인관계가 있는 유배우자로서 가정과 사회윤리를 지켜야 하는데도 검사의 청구에 따른 사건의 내용에 의하면 시내호텔과 피의자 강미선의 별장에서 두 사람이 통정을 하였다는 주장과 아울러 증거자료를 제시하였으나 재판부에서 심리결과 검찰 측에서 주장하는 두 사람이 통정을 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으나 젊은 남녀가 은밀한 장소에서 장시간 같이 지냈다는 사실은 입증되고 있으므로 사회통염상 미루어 볼 때는 검찰 측에서 주장하듯 두 사람간의 통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인바, 평소 피의자 강 미선은 배우자와 사실상 별거 생활을 하고 있고, 김동수 또한 가정에 충실하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므로 그러한 정상을 참작하여 형법 제241조 제1항에 의하여 피의자 강미선, 피의자 김동수에게 각각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한다.’ 라고 판결을 내렸다.
순간 방청석에서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어째든 실형을 면한 것이 커다란 다행이었다. 연희는 아들의 손을 잡고 동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동수는 재판장과 방청석을 향하여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사장은 재판결과에 크게 반기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동수는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허탈하였다. 방으로 돌아오니 동료들은 이제 나가게 되면 열심히 해서 잘 살라고 하면서 다음에 만나면 아는 척이라도 하자고 하였다.
법원에서 판결이 있은 후 2일째 되는 날 동수는 교도관으로 출소 통지를 받았다.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 올 때에 입고 온 옷이며 소지품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교도소에서 지급받은 물품을 반납하였다.
전체 출소자들에 대한 유의사항 전달과 관련 서류를 받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었다. 사장의 얼굴이 보였다. 동수가 먼저 다가갔다.
“사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동수씨도...미안해요.“
“아닙니다.”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교도소 안쪽에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대화를 허용하지 않았다.
드디어 교도소를 나섰다. 연희가 알고 성원을 안고 문 앞에 와 있었다. 동수는 성원을 안았다.
‘미안하다. 못난 아버지다.“
“자기 왜 그런 소릴 해? 어린애 한 테.”
동수는 사장 쪽을 바라다보았다. 아직은 가족이 오지 않았는지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동수가 다가갔다.
“사장님! 아직 가족들이 안 오셨나 봐요.”
“으 응 그래요.“
“이대로 가면 이별이네요.”
“내가 미안하기도 하고 언제 연락을 한 번 할게.“
“회사에는...?”
“회사는 당분간 관리부장에게 맡기고...글쎄 생각 좀 해봐야지. 동수 씨는 어떡해?”
“전 조금 쉬다가 다른 데라도...“
“내가 어디 일자리 알아볼까?”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그래 집사람 보는 데...다음엔 관리부장 편으로 연락할게.”
“그러세요. 잘 가시고요. 잘 사세요.“
동수는 집으로 돌아왔다. 장모님은 고생했다고 사골을 사다가 밥을 지어 주시지만 동수는 몇 숟갈을 먹다 말았다. 연희를 처가에 가서 놀다오라고 하고서는 자리에 누웠다.
계절은 이미 초가을로 접어들었다. 동수는 사 개월이란 세월을 영욕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잠을 청하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잡념만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먼저 사장과는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나? 무조건 이번 기회에 관계를 정리해야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그녀가 서운하지 않게 해야겠다.
다음으로 직장에 관한 사항은 먼저 번 직장은 무조건 다닐 수 없고 연희를 보내든지 하여 회사에 정리를 하고 다음을 생각해야 하는 데 당장 이렇다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려고 해도 집행유예 기간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서류를 갖추어 내는 직장에선 전과자를 채용할 리가 만무하여 보인다. 그렇다면 동수 스스로 무슨 장사를 해 볼 것인가? 그것도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지 직장을 다닌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경험이 없는 것이다. 결국은 공사판이나 하루하루 노동판을 기웃거려야 할 형국이다.
아! 어쩌다 이런 모습이...? 동수는 울고 싶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비록 가난하게 살아왔어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굳건하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어왔었는데 비록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가정을 더럽히고 사회와 격리되어야 하는 삶을 살게 된 자신이 한없이 한심스럽고 싫었다.
동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가계로 달려갔다. 소주 3병과 오징어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동수는 소주 3병을 다 마시고는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연희가 흔들어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오후부터 잤으니 아마도 열대여섯 시간은 잠을 잔 것 같다. 교도소에서의 긴장감과 술을 마신 탓으로 세상모르게 잠을 잔 것이었다.
“자기야! 어서 일어나 밥 먹자.”
“어.. 지금 몇 신데?“
“아침 여덟 시야. 뭔 잠을 그렇게 깊이 자? 그동안 잠을 못 잤나봐.”
“그래? 우리 성원이도 일어났네. 이리 와 봐라.“
“나 밥 먹고 출근 할 건데 자기 어쩔래? 성원이 집에 두고 갈까?”
“응 그래라. 나 오늘은 집에 있고 싶다.“
“그러든지. 그런데 술 너무 많이는 먹지 마!.”
“알았어.“
연희가 출근을 하고 동수는 성원과 방안에서 놀고 잇다. 성원인 그동안 몇 달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핏줄이 당기는지 곧장 동수에게 달려와 안기기도 하고 재롱을 피워댄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닮기도 했고, 아니면 제 엄마를 닮기도 했다는 생각도 든다. 돌이 지난지도 서너 달이 지났으니까 이젠 제 마음대로 방안을 걸어 다니며 이 것 저것을 만기기도 하며 사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다. 아직은 젖을 먹어야 할 나이라서 제 엄마가 직장을 다는 관계로 우유를 먹이고 있다.
점심을 챙겨 먹고 동수는 무료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성원을 안고 먹을 것을 준비 한 뒤 황령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선선한 초가을바람이 가끔씩 스쳐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산을 오르기에는 무더운 날씨다. 산허리를 올라가며 뒤를 돌아다보니 부산항과 영도가 눈 아래 보이고 멀리 오륙 도가 바다 한가운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산 아래엔 옹기종기 들러선 건물들. 평지에는 제법 큰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점차 산중턱으로 올라올수록 건물의 크기는 작아진다. 그리고 마지막 산 어귀엔 판자 집이나 천막집들이 들어섰다. 결국은 부자들은 평지에 살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산비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원이도 오랜만에 산이라는 곳에 오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연신 아빠소리를 하며 동수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비벼댄다.
쉬엄쉬엄 올라오다 보니 정상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상부근엔 나무가 없고 민둥산이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올라와 한가로이 산을 즐기고 있다. 이곳을 오르면 부산 시내가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오른쪽 방향으로는 부산진과 북부 동래가 보이고 아울러 백양산 과 승학 산 그리고 금정산이 보인다. 정면에는 영도와 오륙 도가 내려다보이고 날씨가 좋은 탓으로 멀리서 대마도의 모습이 어렴풋이 나타나 보인다.
왼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광안리의 해안과 수영비행장, 그리고 해운대의 동백섬과 백사장, 달맞이 고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성원을 땅에다 내려놓으니 아장아장 걸어서 주변을 맴돈다. 이 녀석도 산이 좋은 것일까. 이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많은 땅덩어리와 헤아릴 수 없는 건물들 중에 왜 자신의 소유는 없는 걸까?
그리고 자신이 일할 직장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동수가 생각에 잠긴 사이 성원이가 아장거리다가 넘어졌다. 갑자기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성원이가 넘어져 잇는 것이었다. 무릎을 만지고 있어 살펴보니 무릎에 가벼운 상처가 나서 핏자국이 보인다.
“성원아! 아파?“
“으 으 아〜앙”
“호〜하자. 호〜괜찮아 질 거야 성원아 호 호〜“
“아이 구! 오늘 네 엄마한테 한 소리 듣겠네. 어쩌나?”
동수는 아이의 무릎에다 계속해서 입김을 불어주며 만져주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틈에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이젠 그만 내려갈까?“
동수는 성원을 업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저녁이 되자 연희가 돌아오자 아이의 무릎을 다친 것을 보고 동수에게 투덜대었다. 동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저녁밥을 먹고 있다.
아침밥을 먹고 동수는 시내로 나와 경수를 만났다. 경수는 아직도 남포동의 가게를 다니고 있었다. 나이도 들어가고 해서 다른 일이나 해 볼까 망설여 보지만 막상 다른 일을 하려고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 다고 하면서 동수에게 말한다.
“동수야! 사람 생각하기 나름이거든 아무 일이나 우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린 아직 젊으니까 이런 저런 경험도 괜찮을 것 같은 데. 어차피 우리가 많이 배우거나 전문가도 아닌바 엔...”
“글 세! 나도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나 같은 사람 어디 받아나 주려나?”
“그런 소리 하지마라. 네가 뭐 어떻다고?“
“교도소 같다 왔다고 써 주겠느냐고?”
“네가 뭐 공직에 들어갈 것도 아니고 뭘 어째서 안 써.“
“모르겠다. 집에 놀기도 그렇고...”
‘먼저 번 회사에 정리는 했나?“
“정리랄 게 있나. 짐만 가져 나오면 그만이지. 참 전화나 해 봐야겠다.”
동수는 생각이 미친 김에 회사에다 전화를 걸었다. 임기사가 전화를 받더니 관리부장을 바꾸어 준다.
“동수냐? 너 한번 안 올래?”
“아니 갈 필요는 없고요. 짐만 챙겨주면.“
“짐이 많이 있냐?”
“아니요. 책상에 있는 것만 챙기면 됩니다.“
“그래도 안 오면 어쩌라고?”
“제 짐은 임 기사님 보고 이야기하면 되거든요. 임 기사님 다시 바꾸어 주세요.”
“네가 안 오고 싶으면 일단 짐은 임기사가 챙기고 네 봉급 정리할 것이 있을 것인데 그것 정리해서 네 통장에 넣어 줄게.”
“고맙습니다. 사장님은요?“
“응! 사장님은 안 나오고 매일 나하고 통화는 한다. 참 너한테 연락 한번 해달라고 하든 데.”
“그래요? 아마 마지막 인사 나누려고 그러실 겁니다. 부장님이 아무 때나 시간 잡아 주세요.”
“그래 알았다. 다음에 또 보자. 임 기사 바꿔줄게.“
동수는 임 기사에게 자신이 쓰던 책상서랍과 책상아래에 있는 동수의 사물을 좀 정리해서 서 씨와 같이 저녁에 가져 나와 달라고 하면서 관리부장님도 모시고 나오면 좋겠다고 하였다.
저녁이 되자 동수는 가야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8시에 약속을 하였으나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냥 아무런 일이 없었더라면 일상의 일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 일이란 것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장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마음속에 담지 않으려고 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조금 있으려니 임기사와 서 씨가 먼저 왔다.
“동수 씨! 부장님은 오시긴 할 텐데 바빠서 조금 늦으신단다.”
“그래 오랜만이네요. 임 기사님! 그리고 서씨!“
“형님! 고생했어요.”
“동수 씨 짐은 챙긴다고 했는데 빠진 게 없는 가 몰라.“
“뭐 짐이라고 할 거 있나요. 고맙습니다.”
“마음고생 많이 했지?“
“뭐 그저 그래요. 좋은 일로 끝내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회사 사람들 동수 네 욕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래도 제 잘 못도 있겠지요. 결과적으론...”
“자! 술이나 한잔 하세요. 잔 받으세요. 서 씨도.“
“동수 너도 받아라.”
세 사람은 오랜 만에 술잔을 주고받았다. 동수는 그래도 이곳에 와서 비로소 직장이라는 것을 실감하였고, 동료라는 것을 느꼈는데 이제 정들자 떠나야 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 관리부장이 달려왔다.
“너희들 내 술까지 다 먹는 것 아니지?“
“부장님 어서 오세요.”
“음 동수 너 정말 고생했다. 이런 자리 얼마만이냐?“
“정말 그러네요. 부장님 제 잔 받으세요.”
“그래 살다보면 또 그럴 수도 있고. 다 액땜한다고 생각해라.“
“감사합니다. 그동안 부장님께서 많이 보살펴 주셨는데...”
“네가 이제껏 살아 온 것처럼 열심히 살면 된다.’
“알겠습니다.”
“자! 한잔 하자.“
‘예! 임 기사님도 한잔 드세요.“
술이 거나해지면서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 졌다.
“부장님!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도 잘 모르겠다. 우선은 사장님과 전화로 상의를 해서 꾸려 나가는 데 사장님이 출근을 안 하시려고 하니.”
“이러다 회사 문 닫는 거 아닙니까?“
“에끼 그런 소리는 하지마라. 나중에 어쩔 수 없어도.”
“동수 형님은 사장님 안 만나 보셨어요?“
“임 마! 가만있는 사람 건드리지 마라. 동수 마음잡게.“
“부장님! 회사는 사장님 것이 맞아요.?”
“응 남편이 돈을 대기는 해도 처음에 사장의 친정회사다.”
“그럼 사장님이 안 하면 친정에서 경영하겠네요?“
“알 수가 없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사장님은 지금 어디에 있대요?“
“대신동 집에 없고 친정이 동래에 있다는 데 아마 그쪽에 있는 가봐.”
“회사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동수 너는 어쩔래? 우리 회사는 싫다하고.“
“아무데나 우선 알아볼래요.”
“우리도 한 번 알아볼게. 일할 데야 안 있겠나?“
“그래요. 동수 형님 같은 사람은 어디가도 환영 받을걸요.”
“고맙다. 이젠 그런 애기 그만하고 술이나 하지요.“
“그러지. 자 오늘 저녁은 좋은 생각만 하자.”
“예! 부장님!“
동료들과 헤어진 동수는 짐 보따리를 들고 어두컴컴한 가로수 밑을 걸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마지막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알고 지내왔던 동료들과의 만남도 이게 끝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자리를 알아 봐 준다고 했지만 동수는 그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집에 돌아오자 동수가 들고 온 짐 보따리를 본 연희는 마음이 상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동수는 집에 있는 것도 갑갑하여 나름대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그러나 동수가 찾아가는 곳 대부분이 입사서류를 요구하는 데 통상적으로 주민등록등본과, 호적등본 그리고 신원증명서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동수는 아직 집행유예 기간이긴 하지만 수형사실이 서류에 나타나면서 입사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술을 입에 대는 날이 많아지게 되고 밤늦게 서야 집에 들어가서는 연희와 말다툼을 하기에 이르렀다.
동수의 속마음은 연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었지만 겉으로는 그러하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만이 섞인 말투로 대하기 일쑤였고, 처음엔 참고 견디던 연희도 점차 자증을 내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장이 한번 만나기를 원하니 전화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동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하였다. 그랬더니 친정어머니 인 것 같은 여인이 받아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사장님! 전데요.”
“아! 김동수 씨! 오랜 만이네. 부장님한테서 소식 들었어.“
“전화해 달라고 하신다 해서.”
“응! 어때 지금 시간이 나요?“
“예! 저는.”
“그럼 서면에 있는 전번 그 호텔커피숍으로 나와요. 지금 출발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가벼운 투피스 차람으로 나타났다.
“아! 벌써 와 있었네. 잘 지냈어?“
“예! 사장님도요.”
“응! 커피 시킬까?“
“예!”
그래도 다행이다. 표정이 밝아 보이는 게 마음정리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화자안한 맨 얼굴이지만 그래도 제법 팽팽하다.
“회사엔 안 다니기로 했다고?‘
“예! 다른 데 알아보는 중이예요.“
“나도 아직 못 나가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 중이야.”
“직원들이 걱정이 많아요.“
“그래! 그 건 그렇고...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아?”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사이...내 잘 못이니까 동수 씨가 만나자면...계속...”
“제가 사장님 앞길 막으면 안 되지요. 대충 알아요.“
“그래도...내가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내가 미안하고...그렇다고 맘 변한 거 아니야 머리가 아프니 당분간 쉬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은 서로가 좀 쉬고 다음에 생각나면 전화하기로 해.”
“예!“
“몸 건강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줘.”
“그럴게요. 먼저 일어납니다.“
“잘 가!”
동수는 커피숍을 나섰다. 왠지 마음 한구석 휑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동수가 아는 이세상의 또 한사람. 그 사람과의 이별이 되는 것인가? 살아가면서 무언가 자꾸만 쌓여가는 것이 좋을 것인데도 요즘 들어 자꾸만 자신의 주변이 허전해짐을 느껴지는 것이다.
벌써 두주일 째 일터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 연희는 천천히 생각해 가면서 하라고 하였지만 동수의 마음은 그럴수록 더욱 더 조급해 지는 것이었다.
충무동 버스정류소를 돌아 자갈치 시장으로 나갔다. 강렬한 가을 햇빛이 내려쬐고 있다. 부둣가에서 바라다보는 바다는 뜨거운 여름을 격고 난 성숙함이 깃든 묵직한 물보라가 느껴진다.
버스가 다니는 길로 접어들자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거리가 붐빈다. 멀리 타 지역에서 물건을 사려온 장사꾼들과 시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옷가지를 파는 가계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2층 창문에 붙어 있는 ‘선원 급구’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나 가 볼까? 동수의 발걸음은 어느 새 그 곳을 향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십대의 남자가 동수의 모습을 눈여겨 훑어본다.
“저어 창문에 붙은 것 보고 왔는데요.“
“그래요. 자리에 앉아요. 승선경험은 있고?”
“아니! 처음인데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데. 기분 가지고는 안 돼.”
“바로 배를 탈 수는 있나요?“
“응 이달 말 께 배가 들어오니까 그땐 탈 수 있지.”
“서류는 무엇이 필요하나요?“
“이력서, 사진, 주민등본 그리고 신원증명서, 보증서서류가 있어야 되.”
“보증서류는 뭐죠?’‘
“그냥 배를 타니까 인적 보증을 하는 건데 아무나 도장만 찍어오면 되는 건데 별 신경 안 써도 되요.”
“저 저는 전과 사실이 좀...“
“배 타는 데 그 까짓 거 뭐 그냥 서류는 형식이지.”
“알겠습니다. 서류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요. 신체는 튼튼하네.”
동수는 그래도 자신을 받아주는 곳은 있구나 하면서 버스를 타기위해 거리로 나왔다.
동수는 집에 돌아와 저녁에 연희에게 외항선을 타겠노라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연희는 펄쩍 뛰며 반대를 한다.
“자기 왜 그래? 우리가 못 먹고 살아서 그런 생각을 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여기서는 도저히 마음이 안 잡혀서 그래.”
“급하게 생각 하지 말라니까.“
“마음이 불안한데 어째 그게.”
“자기야! 제발 생각 좀 더해 봐. 응? 위험하게 왜 그래.“
“위험 하긴 다른 사람들도 다들 잘 타는데.”
“그래도 난 싫다.“
“나 오래 안타고 한 6개월만 타고 올게.”
“육 개월이 짧은 기간이야 어디.“
“인생의 전화기라고 생각해. 자기는 그동안 처가에 가서 살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난 사람 기다리는 거 싫어.“
“한 번만이야. 꼭 한번만 탈 게.”
“아 제발...“
그날 밤 두 사람은 밤이 늦도록 실랑이를 하였다. 동수가 워낙 완고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바람에 연희는 그냥 마음대로 하라며 하고 말았다.
동수는 다음 날 서류를 갖추어 선박회사로 갔다. 먼저 번에 만났던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고 여직원이 동수에게 말을 걸었다.
“상무님과 어제 말씀 나누신 분이세요?”
“예! 그렇습니다.“
“서류 가져오셨어요?”
“여기 있습니다.“
“음 보자...서류는 되었고, 여기 이 서류들 읽어 보시고 도장 찍어 주세요. 승선계약서 인데요. 봉급이랑, 수당 그리고 필요한 거 다 적혀있거든요.”
“예! 그런데 한번 타면 얼마나 걸려요?“
“기간이 딱 정해진 건 없는 데 보통 6개월 주기예요.”
“6개월 타면 재계약 하나요. 아니면...“
“일단 우선 6개월 정도 타보시고 계속 타실 거면. 정식 사원이 되는 겁니다.”
“알았습니다.“
여직원은 배는 십오일 후쯤에 부산항에 입항을 하게 되는 데 우선 선원 증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 주고 이삼 일전에 회사에 들려 달라는 것이었다.
이젠 동수의 진로가 결정되었다. 이제 보름동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하였다. 걸어서 경수가 근무하는 가게로 갔다.
“동수 어서 와!‘
“나 배 타기로 했다.“
“뭐! 배 탄다고? 원양어선?”
“아니 그냥 외항선.“
“언제?”
“보름 후에.“
“갑자기 왜 그래?‘
“응 마음이나 좀 잡아볼까 해서.“
“그래라. 마음이 찹찹할 때는 세상 안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에서 반대 안하데?“
“하지 당연히...”
“그동안 뭐 할래?“
“신나게 놀지 뭐. 술도 마시고. 내일쯤 한잔 할래?”
“그러자. 네가 인식이 한 테 연락해라.“
“알았다.”
동수는 가게를 나와 걸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앙동 여객터미널을 지나며 바라다 보이는 배들이 낮 설어 보이지를 않는다.
처가에서 성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녀석은 자신처럼 불행하게 키우지 않아야 할 텐데 하고 생각을 하였다. 우선 형제간이라도 있으면 덜 외로울 거라는 마음이 든다.
집으로 돌아 온 연희는 동수가 선박회사에 입사서류를 제출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실망을 하였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야?”
“미안 해. 꼭 6개월만 기다려 줘.“
“자기 마음이 그렇다면 꼭 6개월이야. 그 이상은 절대 안 돼.”
“알았어. 고마워.“
“내가 좋아서 찬성하는 거 아닌 줄 알지?”
“응 알아. 약속 지킬게. 우리 성원이 보고 싶어서도 그 이상은 안 탈 거야.”
“엄마에게 이야기 했어?”
“아니! 자기가 먼저 말씀드려. 그렇게 결정 되어버렸다고.“
“엄마가 서운 해 하실 거야.”
“미안 하다고 말씀드려.“
동수가 승선을 한 날이 이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회사에 들러 필요한 수속과 개인 물품들도 샀다. 이젠 배를 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뒷산에 올랐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지 바람이 다소 쌀쌀함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이 땅을 벗어나 머나먼 바다까지 나가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도 든다.
개월이라 긴 시간처럼 느껴도 지지만 그렇다고 그 동안에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어째든 연희 말처럼 육 개월 동안만 승선을 하고 말아야 할 텐데 하고 생각을 해 본다.
한 달 정도의 시간에 많은 사람과 이별을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회사의 박씨 아줌마다. 그녀와는 아직 그 어떤 결별의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동수는 산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다. 다른 직원들이 알아 들을까 봐 목소를 달리했다.
“여보세요. 거기 박은영 여사님 조금 바꾸어 주세요.”
“박 여사님 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쪽에서 전화가 왔다고 소리를 치면서 전화를 바꾸는 소리가 들린다.
“예보세요. 전화 바꾸었는데요.”
“누님! 나 동순데 듣기만 하세요.“
“아! 그래! 알았어.”
“누님! 저녁에 시간되나?“
“응! 언제?”
“여덟시 반에 서면 전번 부전역 옆에 그 집 알지?“
“알았다.”
전화를 끊었다. 아줌마와 만나지도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진다. 동수가 출소한 후에는 서로 연락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챙겨먹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 저녁때가 가까워서야 서면으로 나갔다. 퇴근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극장가에도, 복개 천 주변에도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돼지고기를 접시에 담아 구공탄불 위 철판에다 연기를 내며 구워대는 집도 있고 인도에다 탁자를 내어 놓고 막걸리와 안주를 쌓아 두고 손님을 유혹하는 집들도 있다.
어디에 걸터앉아 시원한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시고 싶었지만 조금 후에 만날 사람을 두고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동수는 약속한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이 여인과도 이별을 고해야 하나 아니면 종전과 같이 친분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우선 안주와 술을 주문했다. 가급적이면 그녀가 집에 빨리 돌아 갈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덟시 반이 되자 그녀가 왔다.
“서둘러 왔는데 안 늦었나? 잘 있었어?”
“응! 누님은 잘 지냈어? 연락 못해서 미안.“
“괜찮다. 네 마음이 심란할 텐데.”
“그동안 고마웠어.“
“고맙긴...”
“한잔 하자 잔 받아.“
“그래 너하고 술 한 잔 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회사는 다닐 만 해? 집에는?“
“응! 회사야 그냥 그렇고 집에는 서로 간섭 안 하고 산다.”
“자 술이나 하자.“
동수는 오랜만에 마음 편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는 것이 매우 기분이 좋았다. 마치 고향사람을 만난 듯, 수 십 년 된 친구를 만나 듯. 그래서 두 사람 간에 술잔이 오가는 횟수가 빨라졌다.
“누님! 나...사실은 모레부터 배 타려간다.”
“갑자기 무슨 소린데?“
“갑갑해서 안 되겠어. 그래서 멀리 좀 나갔다 오려고.”
“말도 안 된다. 원양 어선은 한번 나가면 오래 걸린다던데.“
“응! 6개월 정도 걸린대.”
“그런 걸 뭐하려?“
“그렇게 됐다.”
“다시 생각해라. 6개월 동안 어떻게 기다리니.“
“6개월은 잠신데 뭐.”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은 긴 시간이다. 집에서는 뭐래?“
“응! 억지로 승낙 받았어.”
“말도 아니다. 이건.“
“.....”
박씨 아줌마는 술잔을 가득찬 술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말없이 동수에게 잔을 드민다. 잠시 동안 두 사람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그녀도 아무래도 동수를 잠시 동안이나마 먼 곳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만난 지 한 시간이 넘어선다. 술집 안은 이제 제법 많은 사람들도 차있다. 한동안 홀 바깥쪽을 응시 하던 동수가 입을 열었다.
“누님! 나갈까?”
“그러든지...“
술집을 나왔다. 도회의 뒷골목에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날려가고 있다.
박씨 아줌마가 동수의 손을 잡고 자신의 머리를 동수의 어깨에 얹었다.
“어디 앉아서 같이 좀 있다가 가자.”
“그렇지? 그냥 헤어지기가...“
“응!”
“누님 조금 있다가 가도 되나?“
“그런 건 걱정마라.”
“아무데나 가보자.“
부전역 근처를 지나니 술집과 여관들이 밀집해 있다. 동수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여관 안으로 발길을 향했다. 종업원이 열쇠를 내어주고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 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방안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침대위로 쓰러졌다. 동수는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열한시가 넘어서야 여관을 나왔다. 그녀의 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근처 골목까지 바라다 주고서는 동수는 택시를 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