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圖章)과 서명(Sign)
호정 : 진 용 호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세요.“
“왜요 ? ”
은행에 예치한 예금을 인출하기 위하여 예금 청구서를 작성하여 창구에 제출 하였더니 창구 직원이 주민등록증을 제시 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분명이 예금거래 개설시 예금 통장의 “거래 도장 또는 서명”란에 서명을 신고 한 바 있는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는 요구에 기분이 언짢았다.
도장을 소지하고 다니기에 불편하여서 일부러 서명으로 신청한 것이 더 불편함을 불러 왔다.
“ 우리나라 사람은 사인(Sign)이 익숙하지 않아서 받을 때 마다 틀립니다. 주민등록증을 보기 전에는 본인 확인이 어렵습니다.”
본인도 은행 일선 책임자로 근무해 봤기에 창구 직원과 실랑이를 벌릴 문제도 아님을 안다.
이 제도가 몇 년이 더 걸려야 신고한 서명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질는지 그 끝을 알수 없다.
하기야 본인도 사인(Sign)을 여러 차례 바꾸었고 사인을 할 때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할 말이 없다.
거래의 편의성과 도장을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번거러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 임에도 어느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를 병용하게 한 것 자체가 고객의 편의를 도모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썩 마음에 드는 바는 아니다.
도장이 아니래도 소지하고 다녀야 할 물건이 어디 한 두 가진가?
열쇠 꾸러미며, 스마트 폰, 필기도구 외 지하철 카드 등 자질구레한 은단 통까지 잡동사니들이 주머니 안에서 자주 이사를 하면서 찾느라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부산을 떤 것이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일어난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사용하던 도장을 이사를 하면서 분실하였다. 애지중지 하던 그 도장에는 깊은 사연이 깃 들었는데 . . . . . .
어느 날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한잔씩 나누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도장을 제작하는 상인(도장쟁이)이 사무실에 왔다.
가방을 열자 1,000원짜리 목(木)도장에서 부터 색상도 다양한 플라스틱 도장, 유리 도장, 수십만원 하는 상아(象牙)도장 재료들이 눈이 부셔서 정신이 혼란 할 정도였다.
여러 직원들이 도장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유독 나에게는 쓰고 있는 도장을 보여 달랜다. 몇 년을 사용하여서 닳아서 반질거리는 결제용 도장을 보여 드렸더니 고개를 끄덕 끄덕하더니 돌아서서 창문을 바라보면서 혼자말로 “ 참! 이 도장 가지고 안 빌어먹고 이때까지 지탱해 온 것이 천운이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당신 지금 뭐라 했소? 안 빌어 먹고...............”
불 같은 나의 성질에 불을 댕겼다. 남의 도장을 가지고 “빌어먹느니...” 하고 악담을 하는 그를 가만히 두고 볼 나의 관용은 없다.
멱살이라도 잡고 귀싸대기라도 한 대 갈기려고 주먹을 쳐 들었더니 옆에 있는 직원들이 말리는 바람에 겨우 참았다.
“사장님 저 혼자 한 소린데 들으셨습니까?”
“들으라고 한 소린데 왜 안 들어 남의 도장을 가지고 그런 악담하는 것 아니요.”
“미안합니다. 그러나 사장님의 도장을 보니 필체나 조각한 기법이 최악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한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 한다면 흉인(凶印)입니다.”
“자기가 안 파고 다른 사람이 팟다고 흉인(凶印)이라고 악평을 하면 벌 받는거요. 요즘 말로 하자면 ”남이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 라고 하더니 그 짝이 났네요.”
“이 봐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길인(吉印)이 되겠소?”
“도장 재료는 어떤 것을 하시겠습니까? 이참에 잘 해 드릴테니 상아로 한번 해 보시지요. 그러면 평생을 두고 쓸 수 있을 겁니다.” 라고 하면서 정색을 하고 다가 왔다.
“상아는 싫습니다. 비싸게 주고 판 도장이 콘크리트 마루바닥에 굴러 떨어져 두 동강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합시다. 가격도 저렴하고 실용적입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겁니다.“
“왜 하필이면 벼락 맞은 대추나무요?
“그러니까 희귀하여서 좋다는 것 아닙니까?”
“이 자리에서 도장을 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보인당(寶印堂)이라고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져다주면 한 일주일 후면 됩니다.”
요구 하는 대로 선금을 지불하고 도장쟁이를 돌려보냈다.
오전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던 도장이 도장 쟁이의 말을 듣고 난 후에는 마음이 꺼림칙하여 선 듯 손이 가지 않았다.
그동안의 월급쟁이 삶의 질곡들이 평탄하지 않았고 모든 일들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고생을 한 것이 이 도장 때문인가도 싶어 괜히 화가 났다.
빨리 일주일이 지나가서 새 도장을 받아 사용하였으면 하고 기다려지니 하루 일과가 지루하기만 하였다.
30여년을 한 결 같이 하여 온 일 임에도 처음 해 보는 일 같이 서먹서먹해 진다.
옛날 어린이들이 쌀밥을 먹을 수 있고 새 옷을 얻어 입기위하여 설이나 추석등 명절을 기다리는 것처럼 도장을 받을 그날이 오기만을 고대 하였다.
약속한 날에 도장을 가져 왔다.
잔금을 지불하고 도장을 받아 쥐니 목도장이지만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이 도장을 사용하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길건가?”
“사장님 ”고 스톱“을 한번 쳐 보세요 글발이 예전과 다를 겁니다. 하하하 . .”
“예이 여보슈 !! 노름 할려고 이 도장 판 줄 아세요.”
장난 이야기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벼웠다.
“도장쟁이”가 가고 난후에 직원들의 말로는 “도장쟁이 고급 상술”에 말려들었다고 핀잔을 주었다.
행운이 같이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사고 없이 인사규정에서 정한 58세의 정년을 출생신고를 2년 늦게 한 덕분으로 2년을 더한 60세에 정년을 맞았고 34년7개월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 직장에서 정년을 채운 사람은 일제 강점기를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90여 년 동안 내가 처음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신 덕분이었음을 확신하였다.
정년퇴직을 한지 5개월 즈음에 같이 근무하던 젊은 직원이 2,800,000,000원을 횡령한 대형 금융 사고를 터트렸다.
죄를 저지른 직원은 당연히 감옥으로 가고 감독 소흘 이란 명목으로 후임 지점장, 상무, 전무가 줄줄이 옷을 벗었다.
내가 재직 시에 이런 사고가 일어났으면 정년은 물건너 가고 같이 옷을 벗는 불명예를 짊어 졌을 텐데 복이 많았다고 상사와 동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였다.
내가 있었다면 결코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재직 시에 일어나지 않았음을 정년퇴직 한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아찔한 그때를 생각하며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언30:8)하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쉴 새 없이 드린다.
(2014.9.24. 감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