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일 -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라까지(8월 17일, 수)
아침에 6시에 일어나 과일 샐러드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나오니 7시였습니다.
대성당은 오전 7시에서 9시까지 순례자들이 내부 구경을 할 수 있도록 개방했습니다.
대성당 정문으로 가니 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인데도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복장들을 보니 이제 막 도착한 순례자들인 모양이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목적지에 도착한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아마 산티아고 근처인 고소산 알베르게에서 잔 순례자들인 것 같았습니다.
대성당의 겉모습은 정말 화려하고 웅장했습니다.
아마 건축 예술에서는 상당한 걸작으로 치는 모양이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니 높은 회랑이 화려한 색채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어 눈이 어지러웠습니다. 하지만 온갖 종교적인 의미의 부조들과 조각들이 마음에 부담스러웠습니다.
‘무엇이 이런 모습들을 만들게 하였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종교란 매우 정신적인 것인데, 이런 정신적인 것들이 형태를 갖게 되면,
그 자체의 정체성과 본질을 상실할 수 있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애써 지우며,
생각 없이 작은 것들과 현재를 즐기자는 나의 작은 소망으로 돌아가,
예술적으로 매우 훌륭한 내부를 천천히 구경하였습니다.
마침 지하에 야곱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이 있다기에 갔다가
관 앞에서 독일 사람들만을 위한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근엄한 신부의 미사를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니 마치 중세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의 미사를 인내를 가지고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한 20대 여성이 화사하게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로 포옹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함께 처음 1주일 정도 함께 걸었던 여성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걷기도 힘들 정도로 고도 비만이었는데,
살이 빠져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말 살이 찐 것과 빠진 것 차이가 이렇게 다르다니,
얼굴을 몰라 볼 정도로 달라졌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녀는 걷기 내내 야채와 과일 샐러드로 절제 식사를 하더니,
정말 미인으로 탈바꿈 되어 있었습니다.
저를 포옹한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고도 비만의 몸으로 걸으면서 너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더구나 먹고 싶은 음식을 절제하면서 걸었으니 말입니다.
고통과 기쁨이 눈물이었습니다.
그 여성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스페인의 서쪽 땅 끝인 피니스테라로 가기 위해 시외 버스 터미널도 갔습니다.
버스표를 24유로를 주고 왕복으로 샀습니다.
구불구불한 바닷가를 따라 만든 버스 길 때문에 멀미를 했습니다.
가면서 멀미가 점점 심해져서 중간에 조그만 항구 마을에 내렸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항구 마을이었습니다.
하얀색 보트들이 파란 바다 빛과 어울려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스페인의 부호들의 별장이 있는 마을인 모양이었습니다.
좀 쉬었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라로 갔습니다.


피니스테라는 빨간 지붕에 하얀 벽으로 된 그림 같은 집들이
파란 바다 빛과 환상적으로 어울리는 예쁜 동네였습니다.
피니스테라는 스페인의 서쪽 땅끝마을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남 땅끝 마을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 곳이지요.
이곳은 자연과 인간이 종교라는 매체로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지구상에서 아직 유럽 중세의 향수를 가장 많이 풍기는 곳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나봅니다.

버스에서 내려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가 짐을 풀고
스페인의 서쪽 땅끝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갔습니다.
시원한 대서양이 넓게 펼쳐져 있는 언덕에서 올라서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비로소 순례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순례의 마지막 종착지라는 말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순례길에서 삶을 내려놓고 여기 끝에서 마음까지 내려놓는 것 같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하늘이 맞닿은 대서양의 붉은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행성의 중심 에너지인 태양의 붉은 기운 속에서
함께 흐르고 있는 이 사람들과 그리고 대서양이라는 바다,
오늘, 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이 모든 것을 언제든지 볼 수 있을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나'라는 에너지 개체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이 순간에 이곳에서 이런 생각으로 존재한다는 것,
또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들이 시간이라는 불가사의한 사물 속으로 녹아들고 있지만
현재 순간을 느끼고 있는 저는 영원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제가 이 우주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가졌던 것 하나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이 환희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아름다운 대서양의 아름다운 놀을 뒤로 하고 마을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저녁은 생선 요리와 새우 요리를 먹었습니다.
우연히 찾아간 레스토랑이.
스페인 축구팀의 요리사였던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집이었습니다.

벽에는 자신이 속했던 축구팀의 사진과 그 선수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을
약간은 서툴러 보이지만 정감 있게 장식하여 놓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이나 먹을 수 있었던 훌륭한 스페인 요리를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스페인 포도주와 함께 즐기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하니 갈매기 소리가 유난히 컸습니다.
갈매기의 소리를 들으며 대서양의 품속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여행 내내 함께 하여주신 연선생님에게 깊은 인연의 환희를 느낍니다.
혹여 후세에 어느 알지 못하는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
빛으로 잠깐 스치는 순간에도 지금의 인연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번 여행에서 느낀 인생의 오묘함을,
현지우현(玄之又玄)이라는 노자님의 말씀으로 글을 마칩니다.
현지우현 : 천라만상이 그윽하고 신비하고 또 그윽하고 신비하구나.
소진 올림.
첫댓글 일정을 무사히 잘 마무리하신거 축하드립니다.. 자유여행으로 몇번 외국을 다녀보긴 했지만 이렇게 시간과 속박하는 모든것에서의 벗어나 한길만 바라보고 다니진 못했어요.. 여유를 가지지 못했고 그저 스스로 짠 일정속에서 쫒아다니기 바빴던거.. 약간 후회되네요..여행이란 것이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나를 머리속에 그려보고 해야하는데.. 저도 언젠간 그런 여행을 할 수 있겠지요?
네~ 축하 감사드립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진다고 합니다.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소진 님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세면도구도 지참하고, 슬리퍼도 지참하고, 간단하게 줄이는 더 줗은 방법은 없겠습니까
한비야씨가 "보도여행 때는 눈썹도 떼고 가라." 는 말을 했습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또 3, 4 시간 거리마다 묵을 수 있는 알베르게가 있기 때문에 짐은 3키로 이하로 가져 가세요. 세면도구도 가장 작은 양으로 슬리퍼도 가장 가벼운 스폰지 슬리퍼정도로, 만약 걷다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곳에서 사서 쓰면 됩니다.
아하 ~ 그렇군요... 고마워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꼭 한번 걷고 싶습니다.
알베르제 데파즈...
축하드립니다
현지우현










천라만상이 그윽하고 신비하고 또 그윽하고 신비하구나
소진님께서 33일 간의 순례 길을 저는 하루 길에 같이했으나 똑 같은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고 갑니다.
앞으로 저의 순례 길에 많은 도움이 될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카페에 들어와 너무나 귀하고 휼륭한 순례기를 보고 감동 받았읍니다
평소 너무나 한번은 꼭 걷고 싶었던길. 순례기를 아껴 읽으면서 저도 같이 걸은듯
이런글을 남겨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멋지세요~~
늘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간 사람이 있다..
그는 그 길에서 나의 스승이다..
자료 잘 참고하여, 실행하는 그날까지..간직하겠습니다^^
멋진 사진과 좋은 글의 정보 감사합니다.
소진님 산티아고 순례길!!!
읽는내내 행복하고 설레임도 있었고 이젠 아쉬움마저 ...감동이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