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강주를 그만두고 수좌가 되다 / 羅湖野錄
금릉 화장사(華藏寺)의 안민(安民)스님이 처음 성도(成都)에서 ≪능엄경≫을 강의하였을 때, 그에게 공부한 자가 유달리 많았다. 당시 원오스님이 소각사 주지로 있었는데 안민스님이 그의 도반인 승(勝)선사와 함께 원오스님을 찾아가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뜻을 묻고 있었다. 마침 한 스님이 <십현담>에 대하여 자세한 법문을 청하면서 말했다.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어떤 얼굴인가'라는 구절을 들어 말하자 원오스님이 갑자기 "환한 모습이 드러났구나." 하고 고함쳤다.
이 소리를 듣고 안민스님은 환해져서 '자기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원오스님은 그가 알음알이로 이해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서 드디어 본분의 수단을 내보이니 안민스님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는 며칠 후 다시 자기의 견해를 말하였다.
― 백추를 치고 불자(拂子)를 드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묘하고 밝은 참마음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 네가 원래 이 속에서 살림살이를 꾸려왔구나.
― 할(喝)을 하고 주장자로 선상(禪床)을 치는 것은 들음[聞]을 돌이켜 자성을 듣게 하고, 그 자성이 무상도(無上道)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교학(敎學)에 의하면 '오묘한 성품은 원만하고 밝아 모든 이름과 모습을 떠났다'고 하니 원래 세계라고는 없는데 중생이란 무엇인가?
안민스님은 두려운 마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원오스님이 촉(蜀)에서 나와 호북 협산사(夾山寺)에 주지로 있자, 안민스님 또한 강의를 그만 두고 그곳을 찾아갔다. 만참(晩參) 때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 한 스님이 암두스님에게 "옛 돛대를 걸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자 암두스님은 "후원에서 당나귀가 풀을 씹고 있다." 하셨다.
안민스님은 이 뜻을 깨닫지 못하여 원오스님에게 조금전의 화두를 따져 물어가다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하는 말에 활연대오 하였다. 이에 원오스님은 그를 선방의 제일수좌로 명하고 법상에 올라 게송으로 칭찬하였다.
사분율도 그만두고 능엄경도 내던지고 休淹四分罷楞嚴
구름 가를 살피며 철저히 참구했네 按下雲頭徹底參
양좌주가 마조선사와 친했던 일을 莫學亮公親馬祖
배우지 말고
덕산스님이 용담선사를 찾아간 뜻을 須知德嶠訪龍潭
알아야 하리
7년 동안 왕래하며 소각사에 노닐다가 七年往返遊昭覺
만리 길을 날아서 벽암에 올라섰네 萬里고翔上碧巖
이제 제일 수좌를 번거롭게 하리니 今日煩充第一座
많은 꽃밭 속에 우담바라가 피어난 듯 百花叢裏現優曇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