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가 좋은 시이고, 나쁜 시는 어떤 시인가? 나는 모든 시는 다 좋다고 본다. 남이 쓴 것을 도둑질해오거나 적당히 빼끼는 것이 아니라면 다 좋다.
지렁이가 땅바닥을 기면서 지나간 자욱도 시가 된다. 정호승 시인은 미꾸라지를 시인이라고 썼다.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 출입문 앞에 내어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이 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며 길게 수염이 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채 기역자로 혹은 이응자로 문자를 이루어 결빙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흙을 토해내며 투명한 얼음 속에 절명시를 쓰고 죽은 겨울의 시인들이라는 것이다.
난 좋은 시, 나쁜 시, 서툰 시, 세련된 시를 따지고 가치를 논하는 것들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시도 제대로 볼 줄 모르면서 어디 무슨 그럴듯한 문학상이라도 받은 작품이라면 와글와글 좋다고 난리고 등단지나 출판사 이름값이 떨어지는 시인의 시집은 아예 읽지도 않는 것이 요즘 시인들이다. 여자가 립스틱을 바르고 나오면 이쁘다 하고, 구찌베니 발랐다고 하면 거들떠도 안보는 이치와 같은 맥락이다. 김천에 사는 어떤 농부시인이 자두를 생산했다는데 씨알이 굵고 당도가 높다. 그럼 강남 부자들한테 비싸게 팔린다. 농부 입장에서는 수입이 짭짤하니 좋은 자두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작고 벌레 먹은 자두를 못먹는 건 아니므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못한 사람들 몫으로 돌아가는데 의외로 벌레 먹은 자두가 더 달고 맛있을 수 있다. 이것이 시다.
결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논하는 가치란 헛것이라는 말이다. 더욱이 문학은, 시는, 여타 물건들의 상품가치나 돈의 가치 기준으로부터 멀리 비껴나 있어야 옳은 대접을 받는 전혀 다른 물질이다. 논밭에서 나든 텃밭에서 나오든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버려야 진정한 시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