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3 인산편지: 지금, 당신도 함께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술 마시는 일 / 도연명
맑은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허겁지겁 옷 뒤집어 입고 나가 문을 열어
그대 누구인가 묻는 내 앞에
얼굴 가득 웃음 띤 농부가 서 있다
술단지 들고 멀리서 인사 왔다 하며
세상을 등지고 사는 나를 나무란다
남루한 차림 초가집 처마 밑에 사는 꼴은
고아한 생활이라 할 수 없노라고
온 세상 사람 모두 같이 어울리거늘
그대도 함께 흙탕물 튀기시구려
노인장의 말에 깊이 느끼는 바 있으나
본시 타고난 기질이 남과 어울리지 못해
(중략) 술이나 마시고 즐깁시다
나의 길은 되돌릴 수 없겠노라
(중국의 시인, 365~427)
☆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에 관한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문제는 'one of them'이 아니라 'all of them'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사람이 모든 것이고, 사람이 전부니까요.
이렇게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사람의 문제이기에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사람에 대한 평가의 문제만을 논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내년도에 있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일 선거에 나서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평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자연인으로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어느 직책을 수행할 사람으로 특정지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때로는 혹독할 정도로 따질 건 따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공인으로, 그것도 아주 중요한 책임을 걸머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흔히 검증이라고 하는데요. 이럴 때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기준이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선택해야 할까요?
과거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했을 때만 해도 그 기준은 주로 개인의 친소관계가 작용했습니다. 같은 지역 출신, 같은 학교 동문, 같은 일을 하는 사람 등등 '같은'이라는 의식이 있으면 다른 허물들을 덮고도 남았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그 동질의식 앞에 무슨 비전이 필요 있고, 무슨 능력이 소용 있었겠습니까? 오직 내 편과 남의 편이 있었을 뿐이었죠. 그렇게 뽑힌 사람들이 어떻게 일했는지는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많이 아실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모든 게 다 달라졌습니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과거와는 다릅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쉽지 않습니다. 대충 나선다고 해서 될 일이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역시 사람입니다. 사람의 문제입니다. 출마하는 사람이나 선택하는 사람이나 다 다릅니다. 이건 분명히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은 뛰어난데 인품은 조금 미흡하고, 누구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인품은 훌륭합니다. 모든 걸 다 갖추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또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언론을 통해 전해듣는 것만 살펴보더라도 정말이지 성인군자를 데려다 놓아야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선택하는 사람들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중요시하는 부분도 다르고, 우선을 두는 것도 다릅니다. 누구는 어떤 부분에 관대하고, 누구는 어떤 부분에 유독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자기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구를,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옳은 것인지 쉽게 정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 없고,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인 이상 하나가 뛰어나면 하나가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뽑아야 하고, 어떤 경우에서든지 최악을 피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 선거에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볼 때 생각해 볼만한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궁금하시죠? 그제께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세계사 공부를 하셨으니 오늘은 국사공부의 시간으로 모시겠습니다.
바로 조선의 제3대 왕인 태종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방원이라고 부르는 인물입니다. 역사책이나 '용의 눈물' 같은 역사드라마 등을 통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리더십을 논할 때 가장 손꼽히는 인물 중의 한 분입니다. 오직 능력만으로 인재를 발탁하고, 나라의 정책을 올바르게 수립했으며, 바른 정책은 뚝심있게 밀고 나간 군주로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업적은 한 두 가지가 아닐 정도로 엄청납니다. 새로 건국한 나라 조선을 반석 위에 우뚝 세운 인물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정도고, 그 아들 세종으로 하여금 성군의 시대를 열게 한 군주였습니다.
가장 잘 한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인재의 발탁과 양성, 그리고 활용이었습니다. 바로 사람의 문제에 모든 걸 집중했던 것입니다. 재위 18년 내내 과거시험을 개선하면서 실력있는 인재를 뽑기에 골몰했고, 신상필벌도 철저했습니다.
작은 흠이 있더라도 실력만 탁월하면 과감하게 발탁했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나랏일을 하지 못하는 관리들은 멀리했습니다. 일종의 포퓰리즘을 배격했던 것입니다.
태종은 정치는 이런 것이라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 보아도 얼마나 잘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나랏일이 잘 돌아가게 함으로써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든 성군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인물이 우리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각인되어 있습니까? 태종 이방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나 사건이 바로 '왕자의 난' 아닙니까?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를 오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여가'와 '단심가'로 유명한 정몽주 제거 사건, 위화도 회군,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 등 격동의 시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결국 형인 정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등극한 비정한 야심가로만 알고있는 게 사실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는 이러한 사건 위주, 흥미 위주의 일을 부각시켰기에 태종 이방원 하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인물,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태종 이방원이 다시 우리 곁으로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평가가, 당신의 선택이 세상을 바꾸기에 사유하고 성찰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인산편지 가족 여러분!
벌금, 벌써 금요일입니다. 가장 무덥다는 한 주가 지나갑니다.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다음 주까지 무더위가 계속된다고 하니 조금 더 힘 내셔야겠습니다.
그래도 금요일이 되니 참 좋습니다. 이 좋은 금요일에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더위를 피하며 푹 쉬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도연명이 권하는 술 한 잔 가볍게 하면서 말입니다.
나이 마흔 한 살에 '귀거래사'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난 인물입니다. 같이 흙탕물 튀기며 살자고 해도 비록 가난할지언정 벼슬살이를 하면서 권세와 타협하기 보다는 자연을 벗 삼아 꿋꿋하게 살아간 시인의 정신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백성을,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도연명 시인과 술 한 잔 나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까 홀로 상상해 보면서 말입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오늘 인산이 당신께 묻습니다. "지금, 당신도 함께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저라고요? 네.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함께 술 한 잔 나누면서 자연을 바라보고, 삶을 노래하고, 시를 음미하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정말 정말 아름답게 만들어 가자고 함께 다짐하고 싶습니다. 꼭 기다리겠습니다.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빕니다. 인산편지는 주말에는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호국시인, 휴머니스트군인작가 인산 김인수
#인산편지
#지금당신이행복해야할이유
#지금당신이사랑해야할이유
#세미책 #세상의미래를바꿀책읽기
#당신앞에꽃한송이놓습니다
*사진은 밴친님이 올려주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