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성공 포인트
“콩글리시면 어때요? 의사 소통을 위해선 발음보다 정확한
단어 선택이 더 중요합니다”
영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 외국 유학 가지 않고 쌓은
유창하게 영어실력으로 호주 대사관 내 ‘호한재단’ 한국 총책임자로 있는 이효진씨(34). 그녀에게 신토불이 영어 공부법과 대사관 직원으로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노하우를 배워보자.
호주를 잇는 가교, 호한재단
호주대사관 내 호한재단(AKF :
Australia-Korea Foundation)의
한국 총책임자인 이효진씨는
1991년 해외파들이 많기로 유명한 대사관에 ‘신토불이’ 영어
실력으로 입사한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해 지금은 대사관 내 한국 직원 중 ‘넘버 3’다. 신입
사원 시절이던 90년대 초만 해도
호주 하면 들판을 뛰노는 캉가루나 양떼만 떠올릴 정도로 ‘먼
나라’였지만 지금은 매년 15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호주로 여행을 떠나고, 재호 교포만도 3만 명이 넘었다.
1차 산업 재료인 광물이나 정유
및 육류 등 호주 산 제품을 수입하는 한국은 호주의 세 번째 수출국이다. 얼마 전 여론조사 결과에 미국을 제치고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1위로 ‘호주’가 꼽힐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 10년 동안 한국에서 호주를 홍보하는데 이효진씨가 몸담고 있는 호한재단의 노력이 컸다.
1992년 발족한 호한재단은 호주 외무성의 지원금을 받아 민간 전문가를 앞세워 한국과 호주의 교류를 돕는 단체다. 1996년 당시 우리나라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호주는 반 페이지 정도 할애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번에 개정한 교과서에서 호주 부분이 6~7페이지가 될 정도로 관심이 늘어난 것도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호주’를 알리는
노력이 결실을 본 셈이다. 올해로 꼭 10년이 되는 호한재단은 오는 4월 대학로에서 대대적인 호주 페스티벌을 열 예정이다. 러일 전쟁 당시의 종군 사진 기자였던 조지 로스가 찍은 1904년 당시 한국 풍경 사진을 모은 전시회도 기획중이다.
호주 본국에 호한재단 본부가 있지만 한국에서의 일은 모두 이효진씨가 맡아 한다. 한국 말을 배우는 호주 학생을 초청, 한국 체험을 시키게 한다든지 한복이나 사물놀이 등 가장 한국적인 것을 그들에게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호한재단의 임무는 호주에 한국을, 한국에 호주를 알리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입사 11년차인 이효진씨는 호주 본국에 있는 호한재단 본부와 긴밀한 협조를 하며 한국 총책임자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펼쳐 보이고 있다.
point 1 콩글리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라
이효진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통역사 시험을 준비할 무렵인 80년대 후반만 해도 독해 위주의 영어 공부법이 대부분이어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게다가 해외 연수나 유학 다녀오는 사람이
적었고 영어는 그저 외교관이나 무역회사 다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시내 어디서나 외국인을 볼만큼 개방되지 않아 영어의 필요성은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7남매의 막내인 이효진씨는 외국에 왔다 갔다 하는 언니와
오빠를 통해 영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회화 책 한 권을 달달 외우는 것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잘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외국 사람이 더듬거리며 한국말 단어를 중얼거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바보같이 느껴지지 않잖아요. 자신감을 가지고 자꾸 영어로 말해보고,
들으려 하면 누구나 영어를 잘 할 수 있어요.”
그녀만의 영어 공부 비결은 ‘입으로 영어 책 읽기’다. 책을 큰 소리로 읽고 단어는 암기하는 영어 공부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큰
소리로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한 권의 회화 책을 다 외워버린다. 회화
책 한 권이라 해봤자 보통 50장 정도로 이루어져 있고 매 장마다 한두
개의 중요한 표현이 상황별로 정리되어 있으니, 회화 책을 외운다 해도 꼭 필요한 구문 50종류를 암기하는 셈이다. 구문을 외웠다가 필요한 상황에서 되새김질하듯 꺼내 말을 하면 된다. 이효진씨는 회화책을 외우면서 영어 테이프를 반복하라고 조언한다. 입으로 큰 소리 내어 문장을 읽는 것과 동시에 테이프를 들어 듣기와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꾸준히 테이프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장의 단어 한 개만 들리던 것이 전체 문장이 들리고 의미하게 된다. 유학을 가지 않았지만 네이티브 스피커만큼 정확한 발음으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반복 연습 때문이다.
Point 2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마라
대학 1학년 겨울 방학 무렵 싱가포르에 갔을 때 그녀는 그 동안 공부했던 미국식 영어가 만국 공통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유창한 발음으로 ‘물 주세요(Water, please)’라고 했지만 싱가포르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 순간 ‘현대 영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은 단어 선택이나 표현 방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굳이 외국 유학을 가서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 호주식 영어, 유럽식 영어를 배울 필요 없이 차별화된 한국적인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자신의 성향을 외국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전략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유학을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이때부터는 굳이 유학 가서 고생하며 영어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사람들에게서 발음이나 사고방식의 ‘한국적 정체성’을 인정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됐다.
“물론 비즈니스 영어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유창한 발음과 화려한 억양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미국 어디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 또는 본토 발음을 구사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지요.”
영어를 잘하는 것은, 유창한 발음도 중요하지만 의사 전달을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때론 바디 랭귀지일 수도 있고 눈빛일수고, 입가의 미소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학 3학년 때인 88 서울 올림픽 통역 자원 봉사를 하면서 각 나라별
영어 스타일을 직접 겪어 보면서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유창하게
‘r’발음을 굴리는 겉멋보다는 정확한 단어를 골라내고 자신 있게
표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의사 소통이 되었던 것이다. 외국인을
만나서 자신감있게 먼저 인사할 수 있는 용기가 영어 공부를 위한 기본이라 생각하면 된다.
Point 3 대안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라
10여 년 가까이 호주 대사관에서 합리적인 호주인과 일하다 보면 부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그들은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무리를 하지 않는다. 중요한 이벤트를 준비하다 말고 휴가를 가는 호주인들, 연장 근무를 하면 꼭 그에 대한 보상으로 휴가를 챙기는 그들… 당장 급해 보이는 일보다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 합리적으로 일을
풀어간다. 밤을 새워 일을 해도 정상 출근해야 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관행을 생각하면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호주 사람들은 직함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한다. 호한재단에서 어느 정도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면서 부담스러울 때도 많다. 호주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고, 그 파트에 필요한 작업을 스스로 챙겨하기를 원한다. 무슨 일을
하던 몇 가지 대안을 준비해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짜야할 때는 ‘호주머니’란 글자를 봐도, 신문 지상의 시드 머니란 글자만 봐도 시드니가 떠오를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떤 직장이든 3,
4년 차가 제일 힘들다고 하지만 이효진씨의 경우 대사관 업무를 보며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동안 네 명의 호주 대사를 겪었지만 대사관 근무 초창기에는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마치 호주 사람들의 서포터로 만족해야 하는 듯 느낄만큼. 대학원에서 ‘외신기자들이 바라본 한국 이미지’란 논문을 준비하며 그들을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홍보 업무까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국제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순간 좀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Point 4 가장 한국적인 것에
익숙해져라
호주에 한국을, 한국에 호주를
알리는 일이 주 업무이다 보니
호주 방문할 기회가 잦다. 그럴
때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적인 것’을 잘 모를 때 답답할 때가 많다. 대사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특히 외국인들이 ‘전통’이나 ‘한국적인 것’을 소개해주길 기대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요즘은 전통 한복이나 한국 민예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것이 요즘 들어 실감난다. 한국인들에게 너무 흔해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사물놀이라든지 판소리 같은 독특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 것을 알리려면, 우리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으로 사무실에 앉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밖으로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일년에 한두 번 호주 본사를 방문에 총회에 참석하는 이외에는 대부분 한국 실정에 맞게 업무를 이끌어나가야 하기에
‘한국 대표’로 역할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손님이 오면 남편 김주호씨와 아들 준이도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경우에 따라서 호주 사람들에게 그녀의 가족이 ‘한국 대표’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대사관 업무를 하며 우리나라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젠 그녀에게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캡션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늘 2, 3가지 대안을 준비해야 하는 이효진씨. 스트레스가 많 은 만큼 보람과 성취감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진 던 공사. 호주인들은 장기적인 계획으로 차근차근 무리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 특징. 그들과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는 이효진씨.
호주에서 손님이 왔을 때 가족 모두 북한산 등반을 했다.
대학에서 예술 경영을 강의하는 남편 김주호씨와 아들 준이. 97년 결혼했다.
□ 글 / 김현숙 기자 □ 사진 / 전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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