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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475포럼 원문보기 글쓴이: 박윤식
제 21 계 금선탈각(金蟬脫殼)
“금선탈각”의 본래 뜻은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 본체는 껍질을 벗어 나 가 버리고 껍데기만 나무 가지에 걸려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표면적인 현상은 남기고 실제로는 몸을 빼 떠나가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存其形, 完其勢. (존기형, 완기세.)
“금선탈각”은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병력을 철퇴하거나 이동하는 것으로, 부득이할 경우에만 사용한다. 조금이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재난을 불러 올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과감하게 집행해 나가야 한다.
원 문
存其形, 完其勢, 友不疑, 敵不動. 巽而止, 蠱. (존기형, 완기세, 우불의, 적부동. 손이지, 고.)
번 역
진지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원래의 기세도 유지하여, 우군도 의심하지 않고 적도 감히 경거망동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아군은 비밀리에 주력을 이동시켜 다른 곳의 적을 공격한다.
(역자 주: <주역> 고(蠱) 괘에서 나왔다. 손(巽)은 바람을, 고(蠱)는 미혹시키는 것을 말한다.)
해 설
이 계의 명칭은 원(元) 나라 시대 <원곡선: 주사담(元曲選:朱砂擔)> 제 1 절에서 나왔다.
“금선탈각”의 본래 뜻은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 본체는 껍질을 벗어 나 가 버리고 껍데기만 나무 가지에 걸려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표면적인 현상은 남기고 실제로는 몸을 빼 떠나가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이것은 실지는 떠나 가면서 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책략이다. 그리고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어느 면에서는, “탈각”이 너무 빨라서는 아니 된다. 이길 가능성이 있을 때는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부득이할 때가 되어서야 “탈각”해서 떠나 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 면에서는, “탈각”이 너무 늦어서도 아니 된다. 패배가 굳어 진 상황에서는 일분이라도 더 머무르면 일분만큼 위험이 더 늘어 나고 일분 만큼 생환의 희망도 줄어들게 된다.
생활에서의 활용
<36계>와 군사-양들도 천군만마
이 계를 군사 상에서는, 위장 전술로 적으로부터 빠져 나와 철퇴하거나 군대를 이동하여 아군의 전략 목표를 실현하는 계략이다. 철퇴나 이동할 때는 절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거나, 소극적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실제로는 빠져 나오도록 해야 한다.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여 아군이 위험 지역에서 멀리 벗어 나게 한다. 아군의 전략 목표가 달성되면 이동한 군사로 다른 곳의 적을 공격한다.
남송(南宋)의 장수 필재우(畢再遇)의 군이 금(金)의 군대와 대치할 때의 일이다. 금의 지원 부대는 계속해서 늘어 나서 송의 부대를 압도하게 되었다. 필재우는 송군이 중과부적이니 철병을 계획하였다.
금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필재우는 영을 내려 매일 북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했다. 한 편으로는 적에게 위세를 보여서 적으로 하여금 송군 진영 내에서 북소리가 그치지 않을 정도로 군을 이리 저리 이동하여 재배치하고 있다고 믿게 하려 함이었고, 또 한 편으로는, 아군의 사기를 북 돋우기 위해서 였다.
며칠 지난 후, 필재우는 장수들을 소집해 철수 건을 상의하였다.
필재우는, “현재 적은 많고 우군은 수가 적으니 다시 싸워 봤자 득이 없다. 아군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 곳을 빠져 나가는 길 밖에는 없다. 단,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빠져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수 하나가 일어 서서, “그러면 어떻게 철수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필재우는, “ ‘금선탈각’의 계를 생각해 두었다. 각자는 위치로 돌아 간 뒤,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된다. 날이 어두워 지면 우리는 바로 철군을 시작한다.”라고 일렀다.
장수들은 돌아 가서 즉각 준비에 나섰다. 사병들에게 모든 군기들을 천막의 꼭대기에 내어 걸게 하고는, 사병들에게 수 많은 양들과 북을 구하도록 하였다.
날이 어두워 질 무렵, 송군 병사들은 양을 나무에 거꾸로 매 달아, 양의 앞 두 발이 북에 닿도록 하였다. 양은 거꾸로 매달려 있으니 견딜 수가 없어 온 몸으로 발악을 하였고 자연히 두 발이 끊임없이 발버둥치면서 북을 울리게 되었다.
어두워 지자, 송군은 모두 배불리 먹은 뒤, 전체 인마가 가벼운 차림으로 소리를 죽인 체, 하나씩 하나씩 거꾸로 매달린 양이 치는 북소리 속에서 은밀히 진영을 빠져 나갔다.
금군 진영은 송 진영에서 북소리가 그치지 않고 깃발들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는 송군이 아직 진영에 있는 것으로 여겼지 이미 떠나고 없으리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대를 재배치하여 기회를 봐서 송군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며칠이 더 지난 후, 금병들이 보니, 송군 진영에서는 북소리만 날 뿐 사람의 동정이 보이지 않았다. 금군 장수가 그제서야 의심이 들어 정탐꾼을 보내 보니, 북을 치고 있는 것은 송군이 아니라 양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송군은 진작에 “금선탈각”하여, 군영을 빠져 나가 멀리 멀리 떠나 가 버렸던 것이다.
<36계>와 비즈니스-이가성(李嘉誠)의 “금선탈각”
창업을 할 때에는 여러 가지의 곤경과 골치 아픈 일들을 만나게 마련이다. 이러 할 때 어떻게 벗어 날 것인가? “금선탈각”의 계가 바로 그러한 곤경을 벗어 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형세가 자기에게 불리할 때, 표면상으로는 계속해서 원래대로의 기세를 유지하여 상대가 감히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하면서, 자기는 좋은 기회를 찾아 곤경을 탈출하면, 실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이가성은 홓콩에서 지난 70년 대 일어 선 부동산 개발 업자이다. 그는 어느 날 아주 은밀한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그 정보에 의하면, 홍콩 주재 최대 영국 회사인 이화양행(怡和洋行)이 구룡(九龍) 창고 주식회사의 대주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어서 이화회사의 구룡창고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아주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침사주이(尖沙咀) 지역은 이미 번화한 상업지역으로 발달하였으며 그 주변의 구룡창은 실지 땅값은 이미 금값인데도 주식 가격은 여러 해 동안 움직이지 않아 아주 낮았다. 이 모든 것이 구룡창을 쟁취하기에 좋은 조건들이었다. 만약 구룡창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해 이화를 대신해 대주주가 된다면, 구룡창의 토지를 부동산으로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이가성은 이 소식을 듣자 마자 바로 구룡창의 주식을 분산해서 매집하기 시작했다. 1977년부터 시작해 그가 은밀히 차명으로 매집한 결과 18%의 주식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가성이 대량으로 주식을 매입하게 되자, 주당 HK$ 10 하던 것이 급속히 상승해서 주당 HK$ 30 까지 오르게 되자 이화양행이 눈치를 채고 경계를 하게 되었다. 이가성이 은밀히 해 오던 작전이 이제는 전면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 쪽이 서로 대치하게 되면 이가성의 실력은 아직 이화양행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므로 무리하게 맞서서는 승산이 없었다. 이 때, 이가성이 만약 계속해서 주식을 매입하면 이화양행은 틀림없이 비싼 가격으로 구룡창의 주식을 회수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재력이 훨씬 더 컸으므로 이가성이 참패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가성은 역시 일류의 큰 비즈니스맨이라 불러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고, 위기를 평정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의 “금선탈각”의 계는, 자기를 대신해 이화와 대적할 사람을 찾아 모든 주식을 고가로 그에게 팔아 넘기는 것이었다.
1978년, 이가성은 2,000 만 주를 전부 선박왕 포옥강(包玉剛)에게 전매하였고, 포옥강은 다시 이가성이 HSBC 은행으로부터 영국 자본인 화기황포(和記黃浦) 주식 9,000 만 주를 일괄 매입하도록 도와 주었다. 둘은 모두 만족하였다.
이가성은, 어려운 줄 알면 물러 나고, 물러 나면서도 이익을 도모하며, 남에게 인정을 베풀면서 자기의 재산을 불릴 줄 아는 사람이니 정말 현명한 사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포옥강은 이가성의 정보를 이용하여 탁월한 판단력으로 원래의 숙원을 이루었다. 이 한 수의 결정으로, 천금의 거액으로도 살 수 없었던, 더군다나 이가성이 스스로를 위해 공을 들여 놓았던 USD 20억의 가치에 달하는 구룡창의 기초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이가성은 성공적으로 막후의 포옥강을 엄호하였다. 이가성은 이화가 알게 된 후에는 손을 멈추었는데, 그러자 이화는 이제 위험이 다 지나 간 것으로 오판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옥강이 이어서 구룡창의 주식을 매입하자 이화는 일부 사람들이 이가성을 맹종하여 그를 따라 주식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고 다시 큰 오판을 하고 말았다. 이화는 구룡창의 주가가 멀지 않아 곧
내릴 것으로 예측하고, 오히려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곧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룡창의 주가가 내리기는커녕 계속해서 올라 가 이화측이 경계하기 시작했을 때, 포옥강은 다시 과감하게 나서서 불과 1 분기 만에 또 다시 1,000 만 주를 더 사들여 구룡창 주식의 30%를 점하게 되었다. 1979년 초, 주가가 이미 HK$ 50에 달하자 이화는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극도로 조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대책을 연구한 결과 고가로 구룡창의 주식을 회수하기 위해 일대 결전을 준비했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고 말았다.
<36계>와 처세-왕수인(王守仁 역자 주 :양명학자), 시를 남겨 화를 피하다
사람은 살아 가면서 이러 저러한 위난(危難)의 경우를 만나게 마련이다. 크게는 악당들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는 수도 있고, 작게는 남들과 서로 분쟁에 얽히기도 한다. 이러할 때, 절대로 어쩔 줄을 모르게 당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상대방을 능란하게 응대한 후 기회를 봐서 몸을 빼야 한다. “금선탈각”의 계를 사용하려면, 양호한 심리 소질을 가져야 한다. 만약에 실마리를 제공해 의도가 노출되면 득(得)보다 실(失)이 많게 된다.
명 나라 무종(武宗) 정덕(正德) 연간, 환관 유근(劉瑾)이 득세하여 안으로는 충신들과 유능한 대신들을 해하고, 밖으로는 백성들을 속여, 조정 대신들의 노여움을 샀지만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어사 대선(戴銑)이 유근의 갖은 악행을 보다 못해 상소를 올려 유근을 탄핵하였지만, 유근의 반대 모함과 무고로 관직을 삭탈 당하고 평민으로 강등되어 변방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당시 병부주사
용장역은 수도로부터 만리 거리의 머나 먼 곳으로 황량하기 그지 없고 사람은 적고 산은 많은 지방이었다.
다음 날, 하인이 일어 나 보니,
(역자 주: 왕수인의 유명한 시로서, 대강의 뜻은; ‘백년 신하 슬픔이 끝이 없고, 밤 마다 강 물결은 자서를 그리워 우네’ 한편 여기서 자서는 오자서를 말함. 오자서가 오왕 부차 때문에 자결한 후 부차에 의해 시체가 오강에 버려 졌다.)
하인은 주인이 강에 몸을 던진 게 틀림없다고 추측했다. 강으로 달려 가 보니 강에는 관모와 신발이 떠 있었고, 건져 내 보니 과연 왕수인의 것이 틀림없었다. 이리 하여 원근 모든 사람들이
이 것은 바로 왕수인의 “금선탈각”의 계였다. 그는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 계책을 써서, 사람들의 이목을 속여 그가 이미 강에 뛰어 들어 죽은 것으로 믿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하인이 강변에서 그를 위한 제를 올릴 바로 그 때, 그는 도포를 갈아 입고는 오이산(五夷山)으로 몸을 숨겼던 것이다.
첫댓글 “금선탈각”은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병력을 철퇴하거나 이동하는 것으로, 부득이할 경우에만 사용한다 탈 매미, 남은 껍질.. 끊임 없는 전략의 소개 , 장강의 물결은 어디서 치는가? 청출어람 이라고 알랑가? 또다른 동방불패가 천하를 넘보니 잘간다고 닫지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