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업무상 질병-
<실속경제>…
지난 시간부터 산업재해사고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산업 재해사고 중 업무상 질병에
관해 알아보겠는데요. 도움말씀 주실
<한백손해사정사무소> 양해일 소장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질문1
40년 만에 전면 개정되었던 산재보험법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이 바뀌고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가
신설된 점인데요. 최근 이와 관련해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개정 전에는 그래도 업무상 질병에 대해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산재보상이 결정되었지만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바뀌고,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질병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가 신설되면서 개정 산재보험법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산재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본연의 취지에 부합한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 있어왔고, 이런 연유로 최근 노사정위원회에서는 이들 질병의 업무상 연관성을 판단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반드시 2명 이상의 산업의학 전문의를 참여하도록 결정했다고 합니다. 내용적으로만 볼 때 질병판정위원회에 산업의학전문의 참여키로 한 것은 산재보험법 개정 이후 산재 승인율이 너무 낮아 문제가 되어 왔던 뇌심혈관계·근골격계 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아 환영할만한 일이긴 합니다.
매년 높아져온 업무상질병 신청에 대한 요양결정 불승인율은 2009년 기준으로 볼 때 63.9%까지 치솟았습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조만간 개최될 '산재보험예방·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근로복지공단 운영 관련규정을 바꾼 후 가능한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기대가 됩니다.)
질문2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는
과로사와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통계청의 ‘한국 남녀 사망원인별 사망률(2009년)’에 따르면 뇌혈관질환이 각종 암을 제치고 남녀 모두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뇌심혈관질환은 고혈압과 당뇨·고지혈증 같은 기존 질환과 과로나 스트레스와 같은 업무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심혈관질환의 주요 발병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만큼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뇌심혈관질환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질문3
예를 설명해 주시죠.
(지방의 모 지역에 있는 주방용품 제조업체인 A사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지난해 상자를 접는 일을 하다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작업을 시작한 지 2시간30분 만의 일이었습니다. 동료들이 119구조대를 불렀고, 그 분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다시 종합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자발성 뇌지주막하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주막(뇌 실질을 감싸고 있는 뇌막) 아래에 있는 혈관이 터진 것입니다. A사는 20~30명이 일하는 영세업체였습니다. 그 분은 제품을 조립하거나 세척·포장하는 일을 했습니다. 평소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지만 토요일에도 평일처럼 일을 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하루 3시간 이상씩 잔업을 했습니다. 쓰러지기 2주일 전부터는 매일 잔업을 했습니다. 주문량이 밀렸기 때문입니다. 사고 전날인 일요일에도 특근을 했습니다. 사고 전 16일간 쉰 날은 고작 하루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과로에 시달리다 쓰러졌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공단은 요양신청을 불승인했습니다. 공단 산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발병 전 연장근무 사실은 확인되나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고, 고혈압 등 기존 질환의 자연경과적 악화로 발병했다고 판단된다”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질문4
방금 말씀하신 사실관계 대로라면 근로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습니다. 2008년 7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제도가 도입된 뒤 업무상질병 승인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공단 자료에 따르면 질판위가 도입되기 전인 2006년과 2007년 업무상질병 불승인율은 각각 45.7%, 54.6%였는데, 질판위가 도입된 2008년에는 56.5%, 2009년에는 60.7%까지 치솟았습니다. 특히 뇌심혈관질환 불승인율은 다른 질병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졌다. 2006년 59.9%, 2007년 59.8%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다가 2008년 67.8%, 2009년에는 84.4%로 급증했습니다. 이분도 이런 추세에 해당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10명이 뇌심혈관질환으로 요양을 신청하면 그중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채 2명도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5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업무상 과로로 인해 질병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과로사한 것으로 봐야 하는데
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인정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34조) 별표의 업무상질병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따로 고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먼저 시행령 별표에 따르면 노동자가 업무로 인해 뇌실질내출혈·지주막하출혈·뇌경색·심근경색증·해리성 대동맥류에 걸리면 업무상질병으로 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고시를 보면 더 까다롭습니다. 발병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에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이 발생했거나, 발병 1주일 이내에 업무량이나 업무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해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또는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적인 업무에 비해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됐을 때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됩니다. 이러한 기준은 노사정이 참여하는 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원회에서 마련되었습니다. 현행 시행령은 2007년 개정돼 2008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질문6
그럼 산재보험법 개정 전에는 어떻게 판정됐습니까?
근로자들께서 잘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은데요.
(산재보험법 시행령이 개정되기 전에는 업무수행 중에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은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면서 업무수행 중 발병했더라도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 즉 과로 여부를 따지게 된 것입니다. 법 개정 전이었다면 강씨는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개정 전에는 과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실질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등이 업무수행 중에 발병하거나 사망하면 공단이 업무관련성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업무수행 중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을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던 조항이 삭제된 것이 불승인율을 높인 1차 원인이 되었습니다.)
질문7
노동부 고시가 시행령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도 원인이 되고 있죠.
(또 하나는 시행령보다 하위 규정인 노동부 고시가 시행령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고시에서 단기간 업무 부담 증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발병 전 1주일 이내 업무량이나 업무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했느냐 여부입니다. 여기서 업무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이 아닌 통상근로시간을 말합니다. 평소 일을 많이 했던 노동자들은 일상 업무에 비해 1주일 업무시간이 30% 이상 증가하는 경우가 사실상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장시간 노동을 했던 노동자들은 업무상질병을 인정받기가 오히려 어려워진 것입니다. 가령 매일 밤 10시까지 일상적으로 야근한 노동자는 업무상재해가 불승인되고, 매일 ‘칼퇴근’을 하다 1주일간 밤 10시까지 야근한 노동자는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질문8
말씀 하신 직종이 구체적으로 어떤 직종인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죠.
(보편적으로 장시간노동을 하는 택시 등 운수노동자와 경비원·건설노동자, 다음 교대자가 있어 업무시간이 30% 이상 증가할 수 없는 교대근무자는 업무상질병을 인정받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 택시노동자는 91.5%, 경비원노동자는 89.9%가 뇌심혈관질환 요양신청을 했다가 불승인이 되었습니다. 교대근무자들은 다른 업종 종사자에 비해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습니다. 교대근무로 생체리듬이 교란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 생산직 노동자들을 14년간 추적한 결과 교대근무자들이 비교대근무자들에 비해 허혈성 심장질환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지만 노동부 고시를 적용하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질문9
출퇴근 관리가 잘 안 되는 직종 종사자들은
더욱 곤란하겠는데요?
(건설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이 잦아 출퇴근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업무시간 증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출퇴근 자료가 필수인데, 이것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김용규 가톨릭대 교수(산업의학)는 “건설 등 일부 업종은 보건관리자 선임의무도 없어 평상시에도 건강관리를 해 주지 않는다”며 “예방 측면에서도 관리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보상도 제대로 못하는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질문10
그렇다면 이런 모든 것을 근로자들이 잘 입증을
해야 한다는 말씀인데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그렇습니다. 뇌심혈관질환으로 쓰러지면 당사자가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회사측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것이 불승인율을 높이기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회사측이 산재노동자에게 유리한 자료를 내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의 위원으로 판정한 많은 사례들을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되는 질병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를 잘 구비하고 인과관계를 얼마나 잘 입증하느냐가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관건이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 하에 계신 근로자들은 사고를 미연한 방지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이러한 기초 자료가 되는 부분들에 대한 정리도 꼼꼼하게 미리 해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