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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 하셨으니 살겠습니다.
캄캄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워 있고 내 발치로 여러 여자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왜 누워 있고 왜 앞이 보이지 않는거지? 한참을 정신차리려 몸부림 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각시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난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그들은 각시와 나를 위문하러 온 각시 친구들인 것 같다. 고개를 들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어 끙끙거리기만 하니 각시가 베게를 높여준다. 위문하러 온 사람들이야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니 그냥 혼자 고민에 빠진다.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을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는 보행 중 택시에 치여 제대병원 중환자실로 실려온거다. 그리고 며칠째인지 모르지만 정신차린지 얼마 안되었다. 뇌출혈 5군데, 안면부골절, 척추 2개 골절, 양 무릎 인대 파열 등,,, 전문진단명만 30개가 넘고 초기진단일수만 25주가 나왔다.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신경외과 전문의가 가족들에게 깨어나면 살아나는거고 안 깨어나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난 살아났고 지금 이렇게 위로의 방문객들이 날 보고 있는거다.) 한참을 고민하다 주변 위문객들의 얼굴이라도 봐볼려고 애를 쓰지만 도대체 볼 수가 없다. (오른쪽 얼굴이 함몰되서 너무 많이 부어 오른쪽 눈은 아예 안보이고 왼쪽눈도 붓기로 인해 겨우 희미하게 물체를 볼 뿐이다.) 그러던 중 오른쪽 발끝으로 뭔가 보인다. 한쪽 뿐인 실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니 하얀 손이다. 손이 모아진 모양이다. 누구의 손일까 계속 시선을 집중하니 각시 친구이자 내가 아는 형님의 부인이 된 고은미씨다. 고은미씨가 나를 위해 손을 모아 무언가를 하고 있다. 기도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하는 동안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난 이유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 생각을 했다. 벽을 친구 삼아 천정을 애인 삼아 많이도 고민을 했다. 내가 죽지 않고 산것은 재수좋음 또는 기적이라고들 했다. 기적은,,, 기적이 왜 나한테,,, 첫번째 재수 좋음은 사고 당시 택시기사는 나를 중앙병원으로 옮겼는데 응급실이 만원이라 다시 제대병원으로 옮겨야 했다고 한다. 만약 택시기사가 나를 중앙병원에 그냥 방치해 뒀으면 나는 분명 사망했다. 거기다 옮긴 제대병원의 신경외과 과장님이 그나마 제주도에서 제일 잘하신다는 분을 만났다. 그 또한 두번째 재수좋음이었다. 삶에 특별한 애착도 없이 그냥 세월아 가라 하며 보내던 시절이었기에, 술과 향락을 추구하며 인생을 그저 소비하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난 내가 다시 살아난 이유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각시와 애들은 보험금이라도 받아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질텐데,,, 그러던 어느날,,, 노형의 양준호정형외과로 옮겨 입원한 상태에서 여전히 벽을 친구 삼아 사색에 빠져 있던 중 갑자기 중환자실에서 봤던 그 '기도하는 하얀 손' 이 생각났다. 손,,, 기도,,, 하얀,,,,,,,,,,,,,,,,,,,,,,,,,,,,,,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기도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2때 개신교에 빠져 '고등학생성경읽기' 모임으로 시작하여 교회를 다니고 거의 미치다 시피 활동을 했고
(그 때 같이 성경읽기를 하던 절친한 친구는 지금 서울에서 목사를 하고 있다) 고3때 신학대학에 가겠다고 했다가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아 일반대학교를 가면서 부터 세상 속에 나를 던지며 포기한 종교생활,,, 이렇게 오로지 세상을 즐기고 나만 위하여 살아온 나날 동안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충격이 밀려왔다. 하얀 백짓장 처럼 나의 지나온 세월이 그려낸 그림 한 조각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두 손을 가져보자" 하고 마음 먹어 병원 가까운 곳인 노형성당을 내 발로 찾아갔다. 한발 깁스, 한발 보조기를 찬 채로 목발에 의지한채 성당으로 갔다. 다행히 예전부터 다녔던 고순희 내과원장님이 노형성당을 다녀 잘 안내를 받았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렇게 난 두 손을 모아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동문성당에서 세례도 받았고 자유스럽게 보행하며 내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성가대에 서는 것도 허락을 받아 일요일 미사가 기다려진다. 성당에서 보는 형제 자매들 (물론 아직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을 보면 괜히 즐겁다. 행복하다. 나보다 앞서 신앙생활을 해 온 그들의 미소를 보면 따스하다. 나도 그런 미소를 갖고 싶다. 신앙생활을 위하여 온전히 자기 자신을 바쳐버린 신부님을 보면 항상 존경스럽고 신앙생활을 할거면 저렇게 해야 하는게 맞다는 경외감으로 쳐다 볼 수 있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좋다.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신자들을 보기만 함으로써 행복해지니 난 참 성당에 잘 온 것 같다. 이제야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너는 세상에서 조금 더 일을 하고 오너라" 내 귀에다 대고 직접 말씀은 안하셨지만 난 들었다고 믿는다. 내가 일어설 수 없을 때, 살아난 이유를 몰라서 헤맬 때, 살아갈 동기 조차도 몰라서 헤맬 때, 어서 일어서서 나에게 오라고 하신 그 말씀을 분명히 들었다고 믿어버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믿음'엔 자잘한 이유가 없다. 설명해 줄 이론도 필요없다. 그냥 믿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보같이 아주 단순하게 믿어버리는게 중요하다" 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주님 일어서서 오라고 하셨고 기대라 하셨으니 마음껏 기대겠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다시 내려보내신 이유인 그 숙제를 다 풀고 가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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