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 홍화옥 역(서울: 한국기독교학생회출판부, 2003). 334.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은 첨단기술회사의 창업자이며 성공한 젊은 기업가 제럴드 맥스웰(Jerald H. Maxwell)에 관한 이야기를 “경영자의 위기”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그는 한동안 경영의 천재라고 불려 졌으나 불행히도 잠시 지난 후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회사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었고 이사회는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맥스웰은 경영에서 퇴진 당하게 되고, 내면세계는 무너졌다. “모든 것이 허물어졌을 때 나는 온통 수치감에 떨었다.” 맥스웰은 자신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을 말했다. “성경을 보니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구하는 일이며 그러면 얻게 되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차례 죽음을 구했다.”41-42.
그분은 우리를 내면세계로부터 외부 세계를 지향할 때 가장 잘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이것을 ‘내면으로부터 외부로 향하는 접근(inside-out approach)이라 부른다. 44.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메리 슬레서(Mary Slessor) 19세기 말경 스코들랜드 출신 아프리카 여성선교사. 나뭇가지 몇 개로 만든 침대에서 잠자고, 옥수수 껍질로 이불을 삼고, 쥐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방에서 세명의 여자와 출생 3일된 아이와 같이 누웠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녀는 고요하고 편안한 밤을 지냈다. 46.
“경영자의 위기”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41.
자신을 따르던 군중들이 예수께로 떠났을 때
요한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애초부터 군중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리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청지기다운 사고방식으로서, 부름 받은 사람이 지닌 핵심자질이다. 청지기의 일이란 주인을 대신해서 어떤 것을 잘 관리하다가 주인이 오면 넘겨주는 것이다. 요한은 자기를 떠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군중이 애당초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잘 알았다. 하나님은 잠시 동안 그 무리를 요한의 보살핌 아래 두셨다가 이제 다시 찾아 가신 것뿐이었다. 요한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사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소유했으며 그 왕권으로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102-103.
브뤼셀의 다닐즈 추기경(Cardinal Danneels)
나는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예배당에 가서 기도한다. “오늘 할 일을 이제 마쳤습니다. 주님, 심각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교구가 저의 것입니까, 당신의 것입니까?” 하고 주님께 묻는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당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나는 답한다. “그래 맞다. 내 것이다” 하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주님, 이제 이 교구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일은 당신 차례입니다. 저는 잠자리에 들렵니다.” 하고 말한다. 103-104.
한 책은 45세의 나이에 영국의 한 학교 교장으로 임명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65세 생일에 뜯어보도록 스스로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늘로 당신은 65세가 되어서 이제 교장의 직무를 더 젊은 사람에게 넘겨줄 때가 이르렀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당신을 대치할 만한 인물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 없이는 안 된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선전이다. 믿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교장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런 정신이 침례 요한의 정신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정신이다. 109-110.
부름 받은 사람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속성들, 즉 요한의 청지기 의식, 정체성 인식, 자신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관점, 내보냄의 원리에 헌신하는 것이다. 특징들은 내면세계에 잘 계발하여 그로부터 생명의 샘이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한다. 110.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mes)는 이렇게 말했다. “행동하는 사람은 현재를 소유한다. 그러나 사고하는 사람은 연구를 통해 미래를 얻는다.” 171.
하이먼 릭오버(Hyman Rickover)제독은 미 해군 핵 잠수함 함대의 책임자였다. 장교들은 그의 면담을 받은 후 배속을 받았다. 지미 카터 대통령도 그의 면담을 받았다. 그는 생도 때 성적이 좋았느냐고 물었고 카터는 820명 중에서 59등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네 최선을 다했는가?” 물었다. “아닙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했고,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가 마지막 말이었다. 후일 카터는 다음 제목으로 책을 저술했다. Why Not the Best? 174-175.
나는 35년에 걸친 일기 쓰기를 돌아보면서 그 습관을 익힌 것이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결심의 하나였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기록 속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삶에서 경험한 영광과 치욕의 순간들, 가족과 찬구들의 이야기, 수많은 책에서 얻은 재미있는 일화들 들이 담겨 있다. 그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많은 일기장은 나에게 큰 재산이다. 251.
영적 훈련의 첫 단계는 고독과 침묵을 배우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셋째 단계인 엔터를 치는 것은 성찰과 묵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260.
80세의 아이에 전신 마비로 인해 말도 못하고 글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침대에 묶여 있었던 스탠리 존스는 이렇게 자문하곤 했다.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가장 내부에 있는 줄이 가장 튼튼하다. 나에게는 내 믿음을 받쳐줄 외부의 버팀목이 필요 없다.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289.
윌리엄 월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19세기 초 영국의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영국이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을 20년의 노력 끝에 이루어 낸 사람이다. 법안이 성공하는 데는 노예제도의 불의함과 잔인함을 입증하는 방대한 문서, 대 기업가들의 이익을 침해하기 거리는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 월버포스의 패배를 바라던 수많은 정적들에 대항하여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자세 등 여러 요건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는 1801년에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을 통해서 그의 저력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애딩턴(Addington) 경이 이끄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내각에 들어가고 싶은 시험을 받게 된다. 그러면 그의 뜻을 버려야 했다.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의 전기 작가 가아트 린(Garth Lean)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월브포스는 자기가 각료로 지명 받을 수 있을지에 금세 집착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며칠 동안 그의 의식 세계를 온통 사로잡은 나머지 다른 것은 모두 제쳐놓게 되었다. 그 자신이 시인한 것처럼 야심이 솟구쳐서 그의 영혼은 불구가 되기에 이르렀다. 296.
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술수를 쓰고 싶은 유혹과 야망이 꿈틀거리던 어느 주말, “오늘처럼 쉬면서 신앙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이 날에 이 땅의 것들은 그 본래의 크기를 드러내고 내 야심은 수그러들었나이다.
분주한 생활 속에서 월브포스에게 견제와 균형을 준 것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는 참된 쉼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월버프스가 발견한 점은 안식일의 쉽을 위해 정기적으로 일정한 시간을 떼어놓는 사람은 균형 잡힌 안목으로 인생을 조망할 수 있고, 탈진과 붕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95-297.
정리) 그는 한 때 높은 자리에 대한 시험 때문에 대의를 버릴 시험에 빠질 뻔 했다. 안식일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시험에 들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역사는 그가 장관이 되었다면 그를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노예금지 법안을 결의하여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금지하고, 나아가 전 세계에 그 영향력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게 한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간디의 물레는 삶의 무게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인간적인 경험들의 수준을 고르게 하는 기구였던 것이다. 거창한 공적 생활의 순간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물레질을 하면서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었고 따라서 사람들의 환호로 인해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왕들과 정부 지도자들을 만나는 화려한 시간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와서 물레질을 할 때면 자신을 과대평가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