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가씨~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이러다 들키면 큰일 난다구요"
바람에 하늘색 옷자락을 휘날리며 자신보다 훨씬 더 높아 보이는 담을 넘으려는 여인을
차마 붙잡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하녀인 듯한 여자아이..
"랑아 나 좀 밀어봐라.."
"아가씨~"
울쌍을 짓는 랑..
"난.. 현사님에게 갈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갈 수는 없다.. 랑아.."
"아가씨.. 하지만 이렇게 도망가시면 그분이나 아가씨.. 두분 다 무사하시진 못
할거라구요.. 더구나 그 선택에서 떨어지시면 되잖아요."
"...그래..?"
여인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니까.. 어서 돌아가야 한다구요"
※각 현이란 동.서.남.북. 으로 크게 각 땅을 관활하는 고급계층에 관리들을 말한다. 즉 현사란 그들을 총 다스리는 군주(왕)과 같다.
해가 뜨기가 무섭게 서(西)현의 가옥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꽃잎의 수를 놓은 비단 옷을 입고 여러 시중들에게 둘러쌓여 곱게 묵여진
머리가 풀어지고 고운 얼굴에 분이 입혀진다.
오랜시간에 걸쳐 여인의 긴 생머리에 장식이 끝나고 얼굴엔 분을 발라 더욱 뽀얗게
보이며 분홍 빛 입술이 붉게 물들어 여인의 아름다움을 더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랏빛이 감도는 분홍의 비단 옷자락을 걸치는 묘한 매력을 내는 그녀의
눈은 왠지 모르게 서글픈 듯 했다.
여러 호위병들에게 둘러 쌓여 기마에 올라 바깥을 지켜보던 여인의 두눈가에 이슬이
맺혀 떨어진다.
"단향..........!!!!!!"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기마쪽으로 달려 오던 남자가 호위병들에게 제지 당하고
기마는 이미 그 남자를 지나 치고 있었다.
'기루요.. 돌아올께요.. 꼭... 돌아올께요.....'
3일만에 현사가 있는 곳에 당도한 단향..
이미 수 많은 인파들이 모여있는 곳을 뚫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빈후를 뽑는다지?
-뭐 아직까진 빈후로 족하다는 거겠지.
-으아.. 봤어? 난 작년에 한번 봤는데 올해는 얼마나 더 멋있어 지셨을지..
여기저기서 현사에 대한 이야기로 북적거렸다.
빈후란 다시말해 후궁과 비슷한 것인데 왠일인지 현사는 아직까지 배필을 옆에 두지
않아 자연스레 빈후가 되기위해 애쓰는 여자들이 많았다.
"아가시 저 쪽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지긋히 나이가 들어보이는 집사를 따라 지정된 자리에 앉는 단향.
자리에는 이미 일찍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여자들이 들떠있는 듯한 모습으로 저마다
얼굴치장에 힘쓰고 있었다.
"집사님.. 총 몇 분이죠?"
"본래 네분만 예상 했었는데 각 현 별로 작은 지방 단위까지 온 모양입니다..
총.. 스물여덟분이 참가하셨습니다."
자상한 집사에 말에 엷게 미소 짓는 단향.
'스물여덟명이라면 떨어지기가 쉽겠구나.. 기루요.. 기다려요..'
단향이 다른 생각으로 가득찼을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시느라 고생들 많았습니다. 먼저 28분들의 소개가 있겠습니다. 인원이 많은
관계상 이 소개하는 것 까지 심사에 포함시킬 것입니다.
여기서 열분만이 현사님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집니다."
'열여덟명이.. 떨어진다는 얘기구나..'
"그럼 번호대로 시작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사회자의 듣기 좋은 톤에 말이 끝나고 자리에서 자신있게 일어나는 붉은 계통에
비단을 걸친 한 여인이 일어난다.
"동현에서 온 가연입니다. 어렸을 적 부터 황실예법을 중요시 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웠으며 현사님의 빈후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동(東)현이라면.. 각 현중에서 남(南)현과 최고를 자부하는.. 현중에서도 제일이다..
그래서 가장 거만해 보인건가..?'
가연을 시작으로 어느새 마지막인 단향의 바로 옆 까지 순서가 왔다.
옆자리에는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듯한 귀여운 이미지에 여자아이가 있었다.
"헤에~ 지서령이예요.. 예법같은거 잘 몰라요. 예법시간에 졸았거든요."
귀엽게 웃는 서령의 말이 끝나자 뒷골을 잡는 남자가 보인다. 아마도 같이 온 사람
이겠지..
"음.. 이런거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남현에서 자랐어요.. 남현자사 무남독녀지만..
요리는 진짜 자신있어요~"
"쿡.."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
모두의 시선이 단향에게로 향했다.
"자 그럼.. 마지막분 소개해 주실까요?"
보기좋은 웃음을 띠우며 단향을 지목한 사회자.
"사람이 눈길을 걸으면 그 사람의 발자취가 남 듯.. 눈이 없는 공간에선 그 사람
만의 향기를 남기죠.. 언제나 좋은 여운을 남기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서현을 관할하고 계신 아버님의 말씀을 따라 이 자리에 서게 된 단향입니다.
딱히 정해져 있는 갑갑한 구도의 예법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사소한 예절이 부족한
저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나온 것 뿐..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고 궁중과는 맞지 않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단향.
"예. 이것으로 총 28분의 소개를 다 마쳤습니다. 이미 심사가 다 끝난 상태 일텐데요
..그럼 현사님과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호명되지 않는 분들은
자동으로 탈락되신 겁니다."
'어떤 사람일까.. 현사님은.. 수 많은 전쟁을 치루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의
잔인한 분이라 들었는데..'
여태껏 있는지도 몰랐던 치장이 걷혀지고..
좌우에 호위군을 거느리고 상좌에 앚아 있는 도저히 한 나라를 통치하는 현사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의 동안의 얼굴..
수 많은 전쟁을 치뤄 태양볓에서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수 없을 정도의 흰 피부..
쌍꺼풀이 없는 눈이..
굉장히 위압적이다.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현사의 모습은 좀 처럼 타인이 접근하기 힘들게 한다.
누군가를 찾는 듯 시선을 좌우로 돌리 던 현사의 시린 듯한 눈동자가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2.
'관심 같은 거 없었다.. 빈후따위.. 대충 귀찮게 하지 않을 고위대관에 자제를 택하면
되겠지.. 그뿐.. 내 관심을 끌 줄은..
빈후택일 행사에서 처음으로 치장이 빨리 걷혀지길 바랬다.
걷혀짐과 동시에 내 시선은 그 여자를 찾았다. 순간 눈이 마주친 여자..
시선을 거두어 드리기가 싫다.'
현사의 모습이 드러나자 여자들은 저마다 현사에 눈에 잘 비치려 머리를 손질하고
얼굴근육에 미소를 실는다.
여자들의 그런 가상함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
현사의 시선은 조금 전 시선이 마주친 순간 움찔거리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단향에게로 가 있었다.
사회자의 호명하는 말 소리에 의해 나온 여자가 가까이 다가왔을 쯤에야 시선을
거두었다.
특유의 무표정으로 여자를 응시하자 어색하게 미소짓는 여자가 보인다.
"빈후를 두는 이유는 알고있나..?"
"그야.. 현사님을 잘 보필하기위해..."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다.. 빈후따위가.. 보필을..?"
"현사님.."
"..다음."
현사가 다음을 외친이상 여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무슨 욕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두번째로 싱긋 웃으며 현사앞에선 가연.
"오랜만이구나."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병이 생길 뻔 했습니다."
약간의 애교석인 말투..
"..다음"
"........"
다음이라는 말에 놀란 듯 두눈이 휘둥그래지며 무슨 말을 하려다 뒤로 물러나는 가영.
그렇게 별 대화없이 어느새 단향의 차례가 왔다.
단향의 이름이 불러짐과 동시에 현사의 시선이 자신에게 꼳혀져 눈을 어디로 두고
가야하는지 몰라 땅만을 쳐다보고 현사 앞까지 다가간 단향.
"죄지은 것 있나?"
"....예?"
뜻 밖에 물음에 숙였던 고개를 든 단향을 여전히 무표정으로 응시하는 현사.
"서현관리에 자제라고 했나.."
"..예.."
"자식을 이용해.. 살아 보겠다.."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는 현사
'아버지께서 날... 알고는 있었다.. 기울어지는 현을 보며..
동,남쪽과는 달리 서,북쪽은 관리가 힘들고 토지가 비옥하지 못해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가고 있는 현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구나..
내 연민 때문에 현의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지 못했어..
내가 빈후가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아.. 죄송합니다.."
"나를 즐겁게 만든다면 용서하지. 지금 당장."
"..현사님..?"
전혀 생각치 못한 말에 작게 반문하는 단향
"나를 즐겁게 해보라고 했다."
"..지금 이 거문고 소리에 마추어 춤을 추어 보이겠습니다."
가만히 단향을 응시하는 현사
'어머니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사향무..
어느때인가 꼭 선보일때가 있을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이.. 나의 길이라면.. 서현의 백성을 위한 길이라면....'
서현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서현만의 독특한 춤..
사향무..
특히나 지금의 단향처럼 보라빛이 감도는 옷자락을 입었을 땐 사향무의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현사 뿐 아니라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이 단향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학의 날개짓을 연상케하는 사향무의 특성중하나는..
애절함이다..
'기루요.. 당신을 제 가슴속에 묻겠습니다..
저의 첫 마음을 당신께 드린걸.. 평생 잊지 않겠어요..'
거문고의 연주가 한곡이 끝남과 동시에 바람에 나붙끼던 단향의 옷자락의 움직임도
멈췄다.
무슨 생각인지 표정의 변화가 없는 현사를 제외하고 연회장 안 밖에서의 환호성이
질러졌다.
"..용서하지"
빈후택일의 모든 과정이 마치고 빈후를 호명하려는 사회자를 가까이 부르는 현사.
무슨말을 하는지 사회자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다.
"오늘 행사에 참여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현사님께서 직접 택하신 분을
호명하여 드리겠습니다."
조용해진 연회장 안에 퍼지는 사회자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린다.
"동현자사 가승님의 따님이신 가영님이 빈후로 채택되셨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도감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감정에 두눈을 감는
단향..
연회장안에 꽤 많은 인원이 빈후 만세를 외쳤고 나머지는 안타까움들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이어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
"지금까지 현사님께서 많은 빈후들을 두셨지만 현후마마는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빈후 중 한사람을 현후로 봉할줄 알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현우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분을 찾으셨다 합니다."
기뻐함을 감출수 없었던 가영의 안면근육이 찌푸러들었다.
빈후가 되기위해 애쓴건 언젠가 현후가 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삽시간에 연회장의 환호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멈추고 좌절하던 사람들의 기대의
눈초리가 걸려있었다.
"현후마마가 되실 분은..
서현자사 서주목님의 따님이신 단향님이 택함 받으셨습니다."
단향의 이름이 지목된 순간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단향에게로 향했다.
단향은 무슨 생각인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단향을 보고 있던 현사와 마주친 시선을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곧 나라의 큰 행사가 있겠군요. 빈후께서는 바로 입궁하시옵고 현후마마께서는
일단 서현으로 돌아가........"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라버린 나즉한 음성
"그럴 필요 없다. 바로 입궁 조치한다."
시선은 여전히 단향에게 고정시킨채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현사..
3.
서현에서 수도인 연회장까지 타고 온 기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화려한 기마에
올라 화현루에 당도한 단향.
화현루는 아직 있지 않은 현후를 위해 만든 별채로 궁안의 어떤 것 보다도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현루를 둘러 쌓고 있는 수많은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 현현루 앞쪽에 내리쬐고
있는 햇볕에 따사로움을 그대로 다 받아드리고 있는 연못까지..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 화현루가 이제야 그 빛을 낼 주인을 맞았다.
"마마 이쪽으로 드시지요"
자신을 부르는 마마라는 호칭이 아직은 너무나 생소한 단향.
단향이 화현루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단향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사람들..
"주인없는 화현루가 이렇게 아름다움을 유지할수 있었던 이유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일어나세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고운 미성을 가지고 있는 단향의 목소리.
"오시느라 많이 피곤한 줄로 압니다. 목욕하실 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하시겠습니까.. 마마"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시중을 따라 물안개가 가득한 곳으로 들어간 단향
옷을 거두는 시녀들의 의해 얇은 천 하나만을 걸치고 꽃향기가 가득한 물안에
몸을 담구는 단향.
긴장한 탓인지 녹초가 된 듯한 몸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따듯한 물에
나른해 지는 듯한 느낌에 두눈을 감는 단향
"지금 쯤 서현에선 잔치가 벌어지겠구나..
아버지,어머니.. 분명 기뻐하시겠지.."
시녀들에 의해 몸에 비누거품이 칠해질 때 밖에 조금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현사님. 지금은 마마가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나를 막는 건가..?"
늙은 시중의 말에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자 고개를 숙이는 시중..
단향이 있는 물안개가 가득한 곳으로 들어온 현사다.
단향의 몸이 시녀가 가려준 천으로 인해 감추어 진다.
따듯한 물로 인해 분홍빛이 도는 단향의 얼굴..
갑작스레 들어온 현사로 인해 당황한 시녀들의 비해 조금의 놀람도 없이
들어온 현사를 똑바로 응시하는 단향
"[피식] 놀라지도 않는군.."
현사의 웃음에 놀란 시녀들..
궁안에서 또는 밖에서도.. 사냥할때를 제외하곤 현사의 웃음을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다나가.."
나직한 현사의 말에 그자리를 피하는 시녀들..
물안개 속엔 현사와 단향 둘 뿐이다.
천천히 단향에게 다가가는 현사를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안은 채 응시하고
있는 단향.
"너를.. 왜 현후로 택했는지.. 왜 너에게 그토록 끌렸는지..."
"현사님께서는 차가운 분인것 처럼 보이지만..
그 시린 눈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외로워 보이십니다.."
"내가 너를 택한 이유는..
너라면 가능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나라를 힘으로써 하나로 통일 시켰다.
힘으로 하나가 된 나라는 언제다시 흩어질지 모르는 일..
내가 보는 눈이 맞다면..
너라면 백성의 민심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향의 고개를 들어 붉게 물든 물기를 머금은 입술에 입술을 포개는 현사
"너를 본 순간부터..
너에게서 빠져나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4.
화현루 누각에 서서 이제 보름달이 좀 못미친 달을 보고 있는 현사와 단향
누가 그랬던가 보라색이 잘 어울리면 미인이라고..
달빛아래 보라빛의 옷자락을 걸치고 있는 단향은 신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현사님을.. 바꿔 드리겠어요.."
"나를.. 어떻게 바꿀거지..?"
"군주에는 아홉가지의 성격에 군주가 있는데 이것을 구주라 합니다..
첫번째는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법군'이요. 두번째는 독단적인 군주인 '전군'이요
세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전권을 위임한 '수군'이요 네번째는 천하를 위하여 노력하는
'노군'이요 다섯법째는 논공행상이 공평한 '등군'이요 여섯번째는 백성은 고생하는데
그 위에 교만하게 군림하여 패망이 눈앞에 닥친 기군이요.
일곱번째는 나라를 망치는 파군이요 여덟번째는 성만 쌓고 덕을 쌓지 않는 '고군'이요
마지막으로 어린나이의 즉위한 군주를 아홉번째 3세사군이라 합니다.
..지금의 현사님께서는 어디에 가까우시다고 생각하십니까.."
단향의 막힘없는 말에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현사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꽤 힘들군.."
"한번 집어 보십시오"
"..너에 말대로라면 난 법군이자 전군이자 기군에 가깝고.. 덕은 쌓지 않았으니
고군이 되겠구나. [피식] 파군이 되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군.."
"현사님께서 파군이 되시지 않은 이유는 현사님께서 '등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느것이든 혼자 차지하지 않으시고 공을 이룬자들에게 공평하게 포상하시니 현사님
께 불평불만이 없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제 잦은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그 말은 즉 더이상 논공행상을 배풀 자들이
거의 없다는 얘기 입니다. 이제 현사님 께서는 '노군'이 되셧야 합니다.
그래야만 천하를 얻으실 수가 있습니다."
"..천하를 위해 노력한다.."
"그것을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피식] ..백성의 어머니..
내가 고르긴 잘 골랐구나. 내가 오늘 널 취하려 온 것인데..
현후식이 있을 때 까지 미루기로 하지.."
"바람이 많이 찹니다."
"..기억하는게 좋을거다. 현후식이 끝나면 넌 완전한 내 소유다.
다른 생각하는 것도 그 날로 끝이다.
조심하는게 좋은 거다. 난 남보다 소유욕이 강하니까..
..킥..."
누각에서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에 고정시킨채 서 있는 단향을 뒤로하고 누각을
내려가는 현사
현사가 화현루를 거의 벗어났을 쯤..
뜨거운 무언가가 단향의 두눈을 거쳐 코등을 타고 내려온다.
'난 이제 그의 조강지처가 되는 몸이다.. 더이상 기루요의 여자가 아니야..'
5.
아침임을 알리려는지 창틀사이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기분 좋은 햇빛에 살짝 눈가를
찌푸리며 일어나는 단향.
조용하던 화현루가 오늘 만큼은 시끌벅적..
분주하게 움직인다.
'현후식이 있는 날..'
분주하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어느 한 곳에서 멈춘 듯..
단향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마. 일어 나셨습니까.."
"들어오세요"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이많은 시녀를 따라 연이어 들어오는 시녀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예식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마마"
시녀들을 한번 둘러본 후 고개를 끄덕이자 단향의 옷을 거두고 하나하나 입히기
시작한다.
백색과 붉은색에 조화가 아주 화려하게 이루어진 것을 마지막에 걸치고..
옷이 다 입혀지자 단향의 얼굴을 뽀얏게 만들어 주는 분과
눈가에 연한 분홍색 분을 바른다.
길게 풀어져 있는 머리가 올려지고 그 위에 화려하게 장식되는 것들..
"현후식에는 민간인도 출입이 가능 한가요..?"
"예. 마마. 그리고 말씀을 낮추십시오"
"익숙해 지면 그리하겠습니다."
"예. 마마.."
"예식이 시작될때 까지 혼자 있겠습니다."
"예. 마마. 물러 가겠습니다."
방에서 시녀들이 다 빠져나가고 탁자안에 있는 의자를 빼어 앉는 단향
"거기 있는 것 다 알아요..
..기루요..."
그림자가 어눌하게 비치는 창문가를 바라보는 단향
"들어가도.. 되겠어..?"
단향이 끄덕이는 것을 보았는지 열린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오는 남자.
꽤 큰키에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는 남자.
얼굴은 보기 좋게 그을려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풋..]시녀들이 민간인도 출입이 가능하다고 해서..
기루요라면 분명 내 거처로 먼저 올것이 뻔 하니까요."
"하하..
많이... 보고 싶었어.."
"......"
단향의 손을 이끄는 기루요.
"가자.. 고생은 좀 하겠지만.. 행복하게 해줄께.."
"여기서 도망쳐 버리면..
평생을 도망치며 살지도 몰라요.. 기루요는.. 꿈이 있잖아요.."
"숨어서 살자. 난.. 단향만 있으면 되."
"..기루요.. 하지만 난.........."
'그 시린눈을 져버릴 수가 없어요....'
"단향.....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혼자 나가진 않아.."
기루요의 손이 단향의 손을 잡아 끌었을때..
낮은 중저음의 차가운 말투..
"그 손.. 놓는게 좋을텐데.."
"...현사님.."
"니 눈안에 가득찼던 무언가가...
....저거.. 였나..?"
눈짓으로 기루요를 가르키는 현사.
"단향을.. 절대 놓아 주지 않아."
6.
"놓아 주지 않는다....라..
킥...
웃기는 군.."
"무슨.. 뜻이지..?"
"놓아주는 것도 잡아 두는 것도.. 어느것이든 선택권은 네놈에게 없다는 거다.
확실한건 내 눈에 뜨인이상 이곳에서 벋어날 수 없다는 것..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거다."
싸늘한 현사에 말에 단향을 잡은 손에 힘을 더가한다.
"..그 손.. 놓으라고 했을텐데.."
'카랑-'
순식간에 날이잘선 칼끝이 기루요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마름침을 삼키는 기루요의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른다.
"내가.. 싫어하는게 뭔 줄 아나..?"
"..."
"첫번째는 내 소유에게 손대는 것이고 두번째는 두번말하게 하는 것..
새번째는 내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손을 놓을 마음이 생기나...?"
칼끝으로 목덜미를 스치자 붉은 선혈이 그 자국대로 스며 나온다.
땀이 베어 나오도록 잡고 있던 단향의 손을 놓는 기루요.
"..!...현사님.."
여전히 기루요의 목에 칼끝을 겨눈채..
"내가 오지 않았다면.. 이자를 따라 이곳을 벋어 났겠지..
....너란여자는...
[피식] 나와 한 약속은 결국 말뿐이였나..?
그런 건가..?"
차가운 말투 속에 애처로움이 묻어있는 듯한 말..
"현사님.. 저는.."
"그런데 어쩌지..?
안타깝게도 널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야.."
"...기루요를.. 용서해주세요.."
"킥.. 너 또한 용서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현사님.."
'이자를 죽이면.. 너는 날..
평생.. 돌아봐 주지 않겠지..'
겨누고 있는 칼끝을 내리는 현사
"현후가 되기 전이니.. 너는 완전한 내 소유가 아니다..
잊을 뻔 했다..
이자를 용서하지."
"감사합니다.. 현사님."
"...너한테 감사따위 받고 싶지 않아..
젠장..
한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준비해라."
돌아서는 현사의 뒤를 칼을 잡고 달려드는 기루요
"..현사님!!"
미처 단향의 부름이 끝나기도 전에 현사를 향해 칼을 뻗은 기루요.
"으윽..."
배를 움켜쥐고 앞으로 고꾸라진건..
현사가 아닌 기루요..
칼날이 아닌 칼등으로 기루요의 복부를 강하게 친것이다.
"현후식이 끝나는 즉시..
..널 처형할것이다."
7.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행렬이 성문에서부터 연회장까지 줄을 이었다.
북을 울리고..
거문고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화려한 여인들..
현후식 때문인지 타국에서 가지고 온 선물들..
나라에 가장 큰 행사가 벌어졌다.
현후식의 맹세서약을 앞두고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아있는 단향.
'진짜로 기루요를 처형하시려는건 아니시겠지..
아닐꺼야... 아닐꺼야..
그런데
왜..
/그런데 어쩌지..?
안타깝게도 널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야../
라는 그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아가씨~~!!!!"
'랑이..? 분명 랑이 목소리가..'
"헤헥.. 아가씨~"
한참을 뛰어다녔는지 거친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는 랑.
그런 랑의 모습에 너무나 반가운 단향이였다.
한동안 보이지않았던 단향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랑아.. 왔구나.."
"아니 혼례앞두고 있는 아가씨 모습이 어째 이모양이 되었지요?"
"쿡.. 내 모습이 어때서..?"
"뭐.. 이쁘기는 하지만 꼭 푸주 깐에 억지로 끌려가는 것 같네요"
"쿡쿡.. 니가 잘 본 것 같다."
"휴.. 아가씨 웃는거 보니까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그건 그렇고 기루요님이 보이질 않아서..
분명 성문어귀에서 뵙는데..."
"..기루요.. 갇혀 있어.."
"에엑?"
"풀려날거야.. 그럴꺼야.."
화려한 춤들이 멈춰지고 북이 울린다.
"마마 이쪽으로 오시지요."
늙은 시녀를 따라 연회장 상석에 올라가는 단향.
상성에는 하늘에 제를 올리고 있는 현사가 있었다.
"옆으로 와."
단향만 들릴만한 소리로 말하는 현사
상석 앞에는 크게 돌판으로 된 서약서가 새겨져 있었다.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니 내가 결단코 내 이익에만 힘쓰지 않을 것이고
오직 백성을 위해서만 힘쓸 것을 맹세하노라.
또한 내 옆에 있는 배우자와 100년 가약을 맹세하노라.』
현사와 단향의 서약 맹세가 끝이 나자 연회장안에 함성소리가 가득했다.
- 현사님 만세!!!!!!!
- 현후님 만세!!!!!!!
8.
"이로써 넌 완전한 내 소유다."
낮게 중얼거린 현사에 말에 자신을 쳐다보느 단향의 허리를 끌어 그 입술에 붉은
입술을 맞댄다.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입술에서 콧등.. 이마로 옮겨 입맞춤으로 현후식을 맞친다.
"현사님.."
"..므낫세.."
"....예..?"
"..내이름.. 므낫세다.."
"현사님.."
"말은 어지간히 안 듣는군."
백성들이 보기엔 귓가에 속삭이는 둘의 사이가 어지간히도 좋게 보일것이다.
둘 앞에 백마 한마리가 섰다.
수 많은 전쟁속에서 언제나 므낫세..
현사와 생사를 함께했던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로 이끌었던 말..
굉장히 사나워 현사밖에는 탈 수 없는 말이다.
현사앞에서만은 온순한 강아지가 된다
말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는 현사.
"브나야. 이제부터 니 새주인이 된 사람이다."
브나야.. 이 백마의 이름이다.
브나야의 본래 뜻은 충직한 신하의 표상으로..
이 백마는 브나야라 불리기에 하나도 손색없는 말일것이다.
말안장에 앉아 단향을 끌어다 앞에 태우는 므낫세.
생전 처음 말위에 타보는 단향으로썬 당연 긴장할 수 밖에..
움추리는 걸 느꼈는지 한손으론 말의 고삐를 잡고 한팔로는 단향을 감싸안았다.
"이녀석이 니가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브나야를 매어놓고 화현루 연못가에 앉은 두사람.
"전쟁속에서 나를 여러번 살려준 녀석이..
브나야 저녀석이다.
저녀석은 나를 버리지도 다른 마음도 품지 않고..
나만의지하고 살아.
그래서 배반하지도 않는다.
브나야가 나를 제외하고 다른사람을 태운건 니가 처음일거다."
"현사님.."
"..므낫세라고..했다.."
"제게는.. 그저 현사님일 뿐입니다.."
"킥.. 하...너에게 한가지 청이 있는걸로 아는데?"
"..기루요를 정말로 처형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나를 죽이려 했으니.. 죽여야 겠지.
헌데.. 왜 죽이지 못하는지..
내가 한심할 따름이다.
쉬어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므낫세.
"...."
'어디로.. 가십니까..'
입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말들..
브나야를 그대로 둔채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므낫세
단향을.. 므낫세를 만난 아침부터 지금 저녁때까지 물한모금도 축이지 않는 기루요
뚫지 못하는 철창을 그져 뚫릴 듯 쳐다보고 있는 기루요의 앞에 온 므낫세.
"왜.. 그 손으로 직접 나를 죽이려고 오신건가?"
"킥.. 그럴수 있다면 좋겠군."
"무슨 말이지?"
"널.. 당장이라도 목을 배어 내 화를 가라앉히고 싶지만..
아니.. 널 죽인다 해도 가라앉진 않을테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은 네 놈이..
그저 싫을 뿐이다."
"싫기로 따지면 당신보단 내편이 더할겁니다. 5년입니다. 단향을 사랑한것이..
이제야 그녀의 마음을 얻었어요.
5년동안 단향은 한번도 내 마음을.. 아니.. 마음은 커녕..
나 자체를 바라바 주지도 않았죠..
5년째 되는날.. 단향이 말하더군요.
10년을 기다렸다고..
단향은 누군가를 10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10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을 돌아보겠다고 자신에게 다짐을 했기때문에..
나를 내가 단향을 좋아한지 5년이되는날 바라바 준거죠..
그런데..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현사님 옆으로 갔습니다.
무례를 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단향은 제겐 전부였습니다."
"...전부라... 부럽군..
전부를 걸고 사랑할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하지만.. 단향을.. 네게 돌려줄 마음은 없다.
없으면.. 이 가슴이 뚫릴 것 같거든..
넌.. 내가 얻지 못한 마음을 얻었으니..
피차일반아니겠나.."
"...."
철장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므낫세
"사과 같은거 한적이 없어서 할줄 모르겠군."
"..하하.."
철장사이로 뻗은 므낫세의 손을 잡은 기루요.
"...전쟁이 있다."
".....!"
"이기고 돌아와야 겠지만. 전쟁은 승패를 좌우할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동안.. 현후를 네게 맡기겠다.
너라면 적어도 현후를 지킬 수는 있을테니까.."
"데리고 도망갈지도 모르죠"
"..킥.. 내가 돌아오는 그날 정말로 죽고싶다면.. 내키는 대로.."
"왜.. 떠나라고 안하시는 겁니까.."
"내가 떠나라고 하면 떠날건가? 떠날 시기가 되면.. 언제가는 떠나겠지..
억지로 떠밀지는 않아."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거군요."
"그보다.. 네 끈기에 내가 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권력앞에는 무릎꿇게 마련이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그래서 널 떠나보내 이나라에 손실을 끼칠 수는 없지."
"언제.. 가십니까."
"...이틀후.."
9.
"브나야..? 이름이 참 이쁘네.."
어제밤 현사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브나야를 화현루 뒷뜰에 매어놓고 먹이를
직접 주고 있는 단향이다.
신기하게도 다른 시녀들은 아니 시녀들 뿐만아니라 장정들 또한 브나야곁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뒷발로 찰 준비를 하는 브나야가
단향에게만은 므낫세에게 대한 것 처럼 상당히 온순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나.. 어릴적에 말 뒵굽에 차일뻔해서 말을 굉장히 무서워하는데.. 넌 참 이쁘다"
브나야의 이마를 쓰다듬어 준다.
"말타는 것 가르쳐줄까..?"
"..현사님..!"
"브나야가 널 태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킥.. "
단향을 태운 브나야가 금방이라도 날뛸 듯 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얌전히 있는
브나야.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배우는 시간이 빠른건지 브나야와 호흡이 잘 맞는건지 그럭저럭 잘 타는 단향이었다.
달리는데 재미를 붙였는지 한참을 달리던 브나야가 갑자기 튀어나온 새끼노루 한 마리에
놀랐는지 앞발을 들어올렸다.
"꺄아∼"
브나야의 움직임을 보고 급히 뛰어온 므낫세가 미쳐 단향을 받기전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단향.
"으아.."
"괜찮나..?"
단향을 부축하는 므낫세
일어나다가 다시 주저앉는 단향의 허리를 받치는 므낫세.
놀란건지 다리가 풀려버린 모양이다.
"괘..괜찮아요.."
"괜찮다라.. 그럼 이 팔을 놔도 설 수 있겠어?"
허리를 받친 므낫세의 팔이 빠지려고 하자 팔을 살짝 붙잡는 단향.
[피식]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는 단향의 손을 한번보곤 단향을 안아올린다.
가깝게 닿아 있는 얼굴때문인지 고개를 푹숙이는 단향이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지 않을 거다."
10.
조심스레 단향을 침상에 눕히고 그 이마에..
콧등에 입을 맞춘다.
무언가를 갈구하듯 붉은 입술의 입을 맞추고 단향의 목덜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므낫세의 손길이 느껴질때마다 움찔거리는 단향..
"내가 없이도.. 넌 잘 살아나가겠지.."
"..현사님..무슨.."
"..없었던 것 처럼.. 금새 잊혀지겠지.."
"......"
"네 머리가.. 마음이.. 나를 잊는다고해도..
몸이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단향의 옷에 매어진 끈을 풀어 내리는 므낫세..
창문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눈을 뜬 현사.
마치 어제일이..
옆에 새근 거리며 잠들어 있는 단향이 없었더라면 꿈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끝내 기절해버린 단향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꽤나 아팠는지 그 맑은 눈에서 끈임없이 새어 나왔던 눈물..
혹여나 많이 울어 눈이라도 부을까..
천에 물을 묻혀 여러번 뜨거워진 단향의 눈을 식혀주었다.
얇은 이불을 답답하지 않게 목 바로 아래까지 덥어주고 잠들었던 므낫세..
그 모습을 만약 빈후들이 봤다면 아마 단향을 보고 이를 갈았을지도 모르는 일..
'오늘이다..'
곤히 잠들어 있는 단향이 깨지 않게 침상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붉은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다.
"전쟁은 생사를 분명히 할 수 없는 것인데..
널.. 다시 안으려면 살아 돌아 와야겠지.."
출병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므낫세를 선두로 수 많은 장군들과..
병졸들이 언제나 그렇듯 다시 살아 돌아올수 있을지 모를 출병길을 나선다.
성문을 빠져나가는 므낫세의 앞을 막는 한 여자아이..
갑작스런 행동에 그 여자아이를 놀란 눈으로 보는 병사들이 끌어내려고하자 제지하는
므낫세.
"뭐야.."
"죄송합니다. 현사님께 하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헝겁에 쌓여진 무언가를 앞으로 내미는 여자아이
"제가 모시고 있는 아가씨의 물건 입니다."
여자아이의 말에 살짝 미간을 좁히는 므낫세
"..내가 이것을 받아야할 이유는..?"
"부디.. 현사님께서 아가씨를 한 순간도 잊지 말기를 바랄뿐입니다..
또한.. 꼭.. 승리하시고 돌아오시길 바래서 입니다."
"..니 주인 이름이 뭐지..?"
"..단향....아가씨 입니다.. 현후마마.......되십니다."
"현후......?[피식]"
그제야 여자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받아 가슴안쪽에 집어 넣는 므낫세
"현후의 물건이라... 네 이름이 뭐지?"
"아가씨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만..
랑.. 입니다."
"랑..이라..
널.. 현후 직속시녀로 명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사님.."
랑이 여러번 고개를 숙이고 길 옆쪽으로 물러나자 그 긴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사님.. 그것은 예전에 아가씨께서 저에게 주신 물건입니다..
아가씨의 배필로.. 제가 인정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던..
기루요님에게 조차도 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꼭.. 승리하시고 돌아오세요.'
이미 멀리 가버려 흐릿해 보이는 므낫세를 뒷꿈치를 들고 바라보는 랑..
그 시끄러운 나팔소리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단향이 나팔소리가 멈추자 눈가를 살짝
찌푸리다 눈을 뜬다.
"아앗.."
일어나려는 순간 허리의 고통에 허리를 집는 단향이다.
"..현사님은.. 가신건가...?"
간신히 옷을 추스려입고 화현루 앞뜰로 걸어나온 단향.
발목은 조금의 통증외에는 걸을 만 한것 같다.
그런 단향의 눈에 화현루 앞뜰에 분명 감옥에 있을 기루요가 보인다.
"..기루요.."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에 단향 앞으로 걸어와 예를 취하여 인사하는 기루요.
"잘.. 주무셨습니까.."
"..기루요..?"
"현사님의 분부가 있으셨습니다. 현후마마를 지켜드리라는.."
"..현사님이............!..그럼.. 어디 가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모르고 계셨습니까.. 오늘 아침.. 부호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부호지방이라면.. 적국....
......전쟁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제....
『내가 없이도.. 넌 잘살아가겠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금새.. 잊혀지겠지...
머리가.. 마음이.. 나를 잊는다고 해도.. 몸이 나를 기억하게 해줄것이다..』
그말이...
이런 뜻이였습니까....'
단향의 눈시울이 붉어져 금새 물방울이 맺혀 떨어진다.
"이제.. 현후님의 눈물을.. 닦아 드릴수가... 없네요.."
"흐흑..... 기루요......"
'..현사님을...이미....내 가슴까지.. 인식시켜..버렸어요..'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쳐내곤 화현루 안으로 들어간 단향.
"저도... 따라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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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1-10
신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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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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