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촌 강가 >
-2002. 5. 21. 화. 000-
저녁나절에
아이들과 헤어져서
동촌 구름다리도 건너보고
동촌 강가에 앉아서
막걸리 하나에
부침개 하나 놓고
번연히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내 봤다
낮엔
팔공산 자락에서
친구들과 웃음 섞었고
그 부른 배가
식욕은커녕
며칠은 먹지 않아도
배가 꺼질 것 같지가 않아
그저 강물만 바라 봤단다
스케이트 타러 왔던
60년대 어느 날이 보이고
불로동 횟집에 간다고 지나가던
어느 날이 보여짐에
그저 그렇게 소리 없이
혼자도 앉아 있어 봤다
난
아마도
혼자서도
결코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낼
연습이 많이 된 탓인지
부른 배 안고
한참 걷고 오니
해가 다 져 버렸네
이제 들어가 쉬려다
한자 적으러 와 본다
뭔지 모를 작은 마음
다시 안으며 말이다
< 돌아 와서 >
-2002. 5. 29. 수. 000-
다시 미국에 돌아왔다
겨우 밥 한 끼 해주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잠 만 자고 나왔더니
대구에서
퉁퉁 불어 오르듯 찐 살이
온데간데없이 이틀만에
제자리 곰배네
아이 녀석들은
뉴욕으로 나들이 간다 준비하고
아직도
해롱거리는 모친
부엌에 얼쩡거리는 것도 싫어한다
참말로
팔자 하난 기차다
아들 녀석 이런 마음 씨
글쎄
나도 주변에서 못 봤네
아마도
팥쥐 어멈처럼
때론 신경질 팍팍에
어거지 부리고
보기는 어린애
뭐 그렇고 그런 능력
이 모든 모자란 게
아이들 눈에 어필 된 건지
호강은 절로 오네
종일 자고
수세미 같은 몰골로 나와
아이를 부르니
커피 한잔 대령한다
역시 집이 좋구나
사랑은
이렇게 아슴아슴 오기에
마음이 뿌듯하다가도 아파 온다
왜 난 아직도
덜 자란 아이 마냥
꿈 만 먹고사는지...
너울대는 이파리에
하루를 묻었다
노오란 꽃이 만개한
마당 언저리에
소꼽 장난도 보이고
고무줄도 보이고
술래잡기도 보이니
아이 잡고 앉아
두런두런 옛 이야기 꺼내면
다 자란 녀석 들
같은 타임 머신 타듯
아기 같은 얼굴하고
즐거이 들어주네
한 낮은 그리 지나고
저녁이 오니
먹는 것 걱정 해주며
혼자 있는 시간 외로워할까
갖은 염려로
나갈 채비가 지연되는
아이 녀석들에게
난
부모였던가
친구였던가
그래도
행복으로 온 하루였다
네게도
행복한 날이
행복한 시간으로
종일 함께 하길 바라마
< 권태 >
-2002. 5. 29. 수. 신형호-
오월 어느 날
바싹 바싹 부서지는
햇살 타고 소리 없이 왔다가
솔바람 향기 한 줄기
귓가에 스쳐가듯
또 그렇게 먼 이국 땅이구나.
많이 피곤하겠네.
하지만
사랑스런 아들들의 환대에
어디 피곤이 남아 있겠냐?
다 날아갔구나.
어딜 가나
오월의 소녀답게
생을 누리고 잘 사네.
수 억 년 전에 이미 결정된
숙명적인 삶인가.
운명적인 과정인가.
한바탕 장미바람이
지나간 대구는
시방 아주 조용하네.
빨간 줄장미들 사이에서
고고한 듯 웃음 짓던
흰장미의 위력이 대단하구나.
평상으로 돌아온 친구들은
자기 나름의 생을 살기에
이리저리 분주하고
나도 5월의 향기에 너무 취해
정신이 몽롱하네.
여긴
월드컵이 곧 시작된다고
세상이 시끄럽네.
난 다음 월요일부터
3학년들
2박3일간 야영 준비한다고
또 정신이 없네.
3년 연속 3학년 담임으로
올해에는
작년까지 간 울진 불영계곡이 아니라
충북 단양군 소백산 아래로
장소를 바꾸었지.
마지막 날에는
레프팅도 계획하고.
6월은 5월보다 더 바쁜 달이 되겠다.
덕분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빨리 여름방학이나 했으면 싶다.
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이 지겹기도 하고
무어 다른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그저 그렇게 지내야겠다.
아무 것도 하기 싫네.
날씨 탓인가?
좋은 마음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야하건만
현실은 답답해서 그런지
잘 되지가 않네.
좋은날 열어라.
안녕.
< 좋은 날 >
-2002. 5. 30. 목. 000-
큰 아이 생일이라고
달랑
미역국 하나
하기사
다른 건 먹지도 않지만
셋이서 생일밥을 따로 먹고
각자 선물 하나
그리고
다시 잠
오후에
해가 다 갈 까봐
겨우 눈뜨고
나 없는 사이 생겨난
아시안 마켓에 가서
한국 아이스케키 하나 빨고
정신 차리고 나니
홍콩에 오래 살아서
중국 특유의 냄새를 그리워하는
덩치 산만한 녀석과
이곳 저곳
기웃 기웃
그렇게
저녁이 오는구나
아..
또 있다
삼학년으로
대학 코스를 몽땅 졸업하고
법대 국가 고시를
높은 성적으로 패스하여
아무 법대나 가는 작은 아이
그래도
한 학년쯤은 다른 학교에서
다른 과목으로
자신을 시험 해보려는
기특함과 답답함을
아직 논란도 하기 전에
학년말 성적표가 왔다
전부 A를 가지곤
이번엔
자신이 그리 잘 하지 못했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잘 봐 준 것 같다고
학교로 인사를 가야 한단다
좋은 날이네
아이의 겸손도 즐겁고
아이를 잘 봐 준
미국 교수도 감사하고
마지막을 잘 마쳐준 것도
남들이 어려운 국가 고시를
높은 성적으로 붙어
휴~
한숨 덜게 해 준 것도 고맙다
슈퍼 봉지 잔뜩 들고 오니
아이 녀석 눈 흘긴다
무거운 것에
손도 못 대게 하는
그 고마움과 아련함
난 참 빚 갚을게 많구나
오늘은
자랑으로 늘어 본다
큰 아이가
자기 생일엔
늘 좋지 않은 일만 생긴다고
투덜대더니
노란 운동화 동생에게 받고
좋아 좋아하는 양도
보기 좋고
때묻지 않은 겸손도
건전한 생각도
내겐 복으로 오는 하루네
이 하루만 같은 나날이
언제나 있기를
조용히 기도 해보며
아침에 좋은 소식이라고 전해 본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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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이메일을 펼쳐보며 23
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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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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