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 정여창(鄭汝昌)先生 古宅
(함양 鄭炳鎬 家屋 ㅡ 중요민속자료 제186호))
위치 :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지리산 허리춤 함양 땅은 지형이 높이보다 깊이에 있다함이 답사자들의 관심을 끄는 곳으로 고려
시대 이래로 함양과 산청은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다.
고려시대의 산청 출신의 문익점(文益漸)과 조선시대 함양 출인 문묘배향자(文廟配享者)인 정여창 등등...........
咸陽은 조선시대에 좌 안동. 우함양(左安東 右咸陽)이라 하여 학문과 문벌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곳이다.
대대로 이어온 유서깊은 정여창 고택이 있는 함양의 개평마을과 산청 단성의 남사마을은 마을의
구조와 古家 자체가 우리 건축사에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선비의 고장으로 함양의 藍溪書院, 淸溪書院, 松湖書院과 산청의 西溪書院, 道川書員,
培山書院, 德川書院들은 남아있는 선비의 文鄕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고속 나들목을 벗어나 산 기슭을 돌아 아늑하게 감싸주는 들판을 가로지르며 그져 그곳에 머무르고
싶어지는 나즛하고 포근한 지곡면 개평리(池谷面 介坪里) 교회앞 공터에 도착했다.
마을 에는 작고, 큰 고택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골목길들은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맛스러
움을 한껏 풍긴다.
이 개평(介坪)마을은 댓잎 네 개가 붙어 있는 개(介)자 모양에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마을 앞은 방풍형으로 언덕과 그 위에 老松이 오랜 年輪을 더하며, 古宅과 언덕사이엔 개천이 마을
을 휘감아 흐르고 , 개평마을의 鎭山은 巨門 土星으로 一字形이라 富村의 자격을 갖춘 곳이라 하겠다.
이 곳은 조선 오현 중의 한 분인 문헌공 정여창(1450~1504)선생의 古宅으로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중간문채 안채 등 양반대가로서의 면모를 고루 갖춘 경남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鄭汝昌 古宅의 지형은 언덕을 이용하였는데, 사랑채의 축대를 높여서 안채, 아래채와 수평을
반듯하게 맞추었다는 가옥구조를 보면서 단순하면서도 옛스러운 멋이 풍기면서 품위있는 古宅임
을 알게 한다.
5개의 효자 . 충신 . 정려패를 걸어놓은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앞에 ㄱ자 팔짝지붕으로 돌축대가
높고, 시원스럽게 활개를편 추녀는 활주로 받쳐있고, 오른쪽 툇마루는 누대의 난간처럼 약간
올려앉아있다. 어느 비오는 날 오후 사랑채 난간에 기대어 앉아 오른편의 석가산(石假山)에서
피어오르는 운무(雲霧)를 바라보는 그 운치는........?
좌측으로 통하는 一角門을 거처 안채로 들어서니 직사각형의 마당이 사랑채와 아랫채로 통합되고,
사랑채 뒤쪽으로 툇마루를 붙여 안팎의 공간이 통합되니 집의 구조가 개방되어 집이 밝고 쉬원한
감이든다.
아랫채는 3칸중 방이 2칸이며 왼쪽은 마루를 겸한 방으로 아이들이나 신혼기를 지난 작은 주인이
본채의 며느리 방에서 이 건물로 내려와 생활을 하던 곳인데 2003년 2월 25일 밤에 알수 없는 화재
로 그후 다시 중수하였다.
어찌보면 영남의 경주. 안동의 한옥들은 폐쇄공간을 주로 사용하여 집의 분위기가 엄격하고 답답함
을 보여주는 것과 대조적이라 하게다.
그외 별당, 가묘, 곳간 등으로 별다른 구조나 공간배치가 없는 데도 고상한 분위기와 인간적 체취가
풍겨나는 것은 살림때가 배어 있는 살아온 사람들의 그리움이 아닐까?.
이 유서 깊은 고택을 찿아 전통한옥의 품격을 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는 영광과 은혜를 간직한체
마을 오른편을 돌아 정여창 墓所로 향한다.-태극풍수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