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황균비(黃均庇)
황씨(黃氏)는 후한(後漢)의 황락(黃洛)을 먼 시조로 , 그의 손이 신라 유리왕 5년에 평해(平海)에 표류하다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기록이 없어 자세한 상계(上系)를 알 수가 없고 장수 황씨가 있게 된 것은 고려 무신난 (李義方의 亂)때 그 후손 중 한 사람이 화를 피하여 長水로 내려가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이것 마져도 확실하게 알 수가 없어 황희의 증조부 황석부(黃石富)를 中始祖로, 1世祖로 하여 지금까지 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중시조 黃石富는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고, 2세 황균비(黃均庇)는 고려관직 참찬(參贊)에, 3세 황군서(黃君瑞)는 고려관직 판강릉부사(判江陵府事), 그리고 황군서의 아들인 조선시대 領議政 황희(黃喜)가 4세조다.
나. 황균비(黃均庇) 墓
1. 位置 :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산촌마을)
순창으로가는 국도24번을따라 비홍(飛鴻)재를 넘으면 우측으로 푯말이 보인다.
오른편 산자락을 감아 돌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山村마을에 풍계서원(楓溪書院)과 양택지로도 손색이 없는 조용한 마을 풍산리가 나타난다.
2 . 形氣論
황희(黃喜)정승 조부 황균비(黃均庇)墓의 主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백두대간의 전북 장수군 장계면 영취산(1076m)에서 분맥한 금남호남정맥은 팔공산(1151m)을 만든다.
팔공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은 북으로, 성수산(1059.7m), 옥산동, 가름내를 지나 마이산(678m)을 만들고
효촌리 산촌마을로 이어지는 산맥은 금남호남정맥의 팔공산(1151m)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와 마령치에서 다시 남으로 분맥하여 묘복산(845.9m), 상서산(627.4m), 천황봉(909.6m), 연화산, 청룡(477.9m), 대율리 춘향고개(17번 도로), 계수리 계동을 지나 노적봉을 만든다.
여기서 다시 풍악산(600m)과 응봉(579m)을 지나 기봉한 산으로 위치상으로 풍계서원(楓溪書院) 뒷산이다.
묘소(墓所)는 산촌마을 뒤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종전까지만 해도 墓所로 오르는 길이 험하였는데 지금은 길을 널펴 편하게 오를수 있다.
墓所에서 보면 파구(破口)가 형성된것을 볼 수있는데 우수도좌(右水倒左)라 진파구(辰破口)로 되어있다, 그러나 外破口로 보면 좌수도우(左水倒右)가 되어 손파구(巽破口)로 보인다.
대부분 內外破口가 같은 방향이면 더욱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른 경우엔 혈(穴)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가까운 물로서 內破를 우선으로한다.
山勢를 보면 청룡 백호가 잘 감싸주고 있으나 내청룡이 전반적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직거하며, 또한 白虎안에 험상군은 바위가 있고 오른쪽 골바람이 침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외청룡 백호가 겹겹이 쌓여 푸근하면서도 귀한 형상이니 어찌 좋다하지않으리오
명당은 입수도두에서 분기되어 나온 물이 모이는 곳으로 財産을 의미하는데 좁고 멀어서 재산과는 관계없어 청빈한 청백리(淸白吏) 탄생의 보국(保局)이다.
혈(穴) 左右엔 아름답고 貴한 봉우리가 많으며.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에는 기이한 형상의 사격(砂格)들이 穴을 향해 조열(朝列)하고 있어,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滿人之上)의 황희 정승을 탄생시겼으리라 생각된다.
3 . 理氣論
이곳에서 墓의 坐向을 측정해보면 왠지 理法에 합당하지 않는다.
좌향은 술좌진향(戌坐辰向)이 되고 득수(得水)는 우측에서 좌측 진방(辰方)위로 파구(破口)되므로 정묘향(正墓向) 좌수도우(左水到右)의 理法에 어긋난다.
생각컨데 세월이 흐르면서 沙草과정에 봉분의 방향이 바뀌었으리라 생각되며, 아마 안산(案山)을 참고하였다면 건좌손향( 乾坐巽向)으로 巽 방향의 案山이 貴한 봉우리로 보인다.
을진파구(辰破口)로 우수도좌(右水倒左)하여 팔십팔향법의 自生向으로 보이나, 傳해오는 이야기로는 나옹대사를 도와준 보답으로 얻은 당대의 명당자리라 한다.
황군서(黃君瑞) 아버지 황균비(黃均庇) 墓를 이장(移葬)하여 얻은 둘째 아이가 황희 정승이라고 하니 누가 최고의 명당자리를 오늘의 잣대로 논하리오. 보는 者마다 대명당이라 극찬하고, 시중의 책들마다 형국론의 극치로 표현하니 뒷날 山공부하는 벗님네가 무어라 할까?,
하나 벗님네들이여!, 너무 아부하고 과장하지 말지어니,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있는 그대로의 山之水之의 심오함을 터득하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함에 있으니..........................?
풍수에서 말 하는 名堂, 동기간응(同氣感應등)에 너무 부정적으로 취급하지 말고 자연의 이치를 오늘의 생활환경(生活環境)에 적응해 보면 어떨가?.
고려시대(高麗時代)의 풍수지리법(風水理法)을 엿볼수있어 風水地理 공부에 큰 도움이 되리라 生覺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