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2일 둘째토요일. 서울 잠실롯데타워(123층,, 높이 555m, 송파구청) 오전 06시 30분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와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4시간 40분이 소요되어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에 위치한
배둔시외버스터미널에 오전 11시 10분 도착 합니다
배둔버스터미널 앞쪽 도로 건너쪽에 설치된 공룡조형물 입니다
고성군 회화면 당항리 산1번지에서 공룡발자국이 발견되면서 고성에 공룡이 살았던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앞의 공룡조형물)
우리 다함께 공룡이 살았던 시기를 살펴볼까요
공룡이 살았던 시대는 *중생대라 합니다
이 시기는 다시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눌 수 있어요.
공룡은 트라이아스기(2억 3,000만~1억 8,000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란 공룡이 아니라 작은 파충류였어요.
그 뒤에 엄청난 몸집을 가진 공룡이 나타났습니다.
쥐라기(1억 8,000만~1억 3,500만 년 전) 때에는 공룡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영화 <쥐라기 공원>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 시대에서 이름을 따온거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백악기(1억 3,500만~6,500만 년 전)에는 훨씬 발달한 공룡들이 나타났지요.
하지만 6,500만 년 전인 백악기를 마지막으로 공룡은 모두 멸종하고 말았어요.
그렇다면 인류의 조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언제일까? 학자들은 약 250만 년 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공룡들이 지구에서 모두 사라지고 나서
약 6,250만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인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고성공룡세계엑스포 행사 년도별 내용 입니다
2006년 4월 14일 ~ 6월 4일 주제 : 공룡과 지구 그리고 생명의 신비
2009년 3월 27일 ~6월 7일 주제 : 놀라운 공룡세계 상상
2012년 3월 30일 ~ 6월 10일 주제 : 하늘이 내린 빗물 공룡을 깨우다
2016년 4월 1일 ~ 6월 12일 주제 : 공룡, 희망의 빛으로 미래를 열다
2021년 9월 17일부터 ~ 11월 7일까지 52일간
<사라진 공룡, 그들의 귀환>을 주제로 행사가 개최된답니다
(지난 구간에 탐방하였던 당항포국민관광지인 고성공룡세계엑스포행사징의 모습)
(지난 구간에 탐방하였던 당항포국민관광지인 고성공룡세계엑스포행사징의 모습)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앞 도로건너 공룡조형물의 뒷모습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앞 마구들을 바라보며~
버스터미널 앞 소공원에 3.1運動 彰義塔이 있군요
彰義란 옳은 뜻을 밝히다란
조선 제26대 고종임금은 (1852 ~1919)은 대한 제국의 황제가 된 후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에서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한일병합이 되자 이태왕으로 불리다가
1919년 1월 21일 덕수궁에서 사망했다.
이때 고종이 일본인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나돌아
고종의 국장일인 1919년 3월 1일을 기해 거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났다.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2021. 6. 12. 남파랑길 13코스를 출발 합니다
남파랑길 13코스 시작점
배둔ㅅ시외버스터미널 앞 13코스 시작점을 출발하여 ㅡ 마구들 농로를 걷고 ㅡ 구만천 뚝방길과 제방길을
걸어서 1.7km에 이르면 당항만 해상보도교에 이르게 됩니다
배둔버스터미널 앞 남파랑길 13코스 시작점을 출발하여 마구들 농로와 ㅡ 구만천뚝방길을 걸어서
당화교, 배화교 곁을 지나 배상보도교로 진행 합니다
13코스 시작점 -1.7km- 해상보도교
진행 방향 오른쪽엔 마구들 넘어로 고성고등학교를 조망해 봅니다
뒤돌아본 13코스 출발점과 좌우의 마구들~
마구들은 일제 강점기(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에 가례마을 남쪽 바다에
간척사업으로 조성되었다 합니다
이젠 마구들 농로를 지나 구만천 뚝방길을 걷고 있습니다. 곧
당화교와 배화교 곁을 지나게 됩니다. 또 고성군배화면체육공원도 지날 때 저멀리 해상보도교가 조망된답니다
걸어왔던 곳을 뒤돌아 보고~
회화면체육공원과 배화교를 지나 해상보도교로 진행 합니다
구절산은 구름속에 숨어 있습니다
당화교 곁을 지나면서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
해상보도교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는 임진왜란(1592 ~ 1598년) 당시(1592년) 왜선57척을 격파시키고 승전고를 올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해전지로 멸사봉공의 뜻을 기리며 보도교 중앙에 거북선 조형물을 조성하여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하여 거북선이 마치 물위에 떠있는 둣한 모습을 표현한다
보도교 길이 150m 폭 3.0m
임진왜란 때인 1592년 6월 5일 제1차 당항포 해전과
1594년 3월 제2차 당항포 해전지
당항포 해전지
1592년 6월 2일 당포해전 때 도주한 왜선이 당항포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전러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1592년 6월 5일
전라좌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세하여 51척으로 공격하여 왜선 26척을 격파하고
적수 50여급을 베는 전과를 올리는 1차 당항포 승전지
임진왜란 해전지
당항포 1차 해전지⑥와 당항포 2차 해전지⑫
이순신 장군의 전적과 기생 월이의 전략을 시뮬레이션으로 볼 수 있는
당항포해전관 입니다
당항포해전관은 당항포 대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내부에는 치열했던 당시의 해전 장면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아울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전의 승리를 도왔다는 기생월이 설화와 해전과 관련된 재미있는
지명이야기등도 소개되어 그의미를 다시금 새겨 볼 수 있다
<당항포 대첩을 승리로 이끈 기생 월이>
15세기 후반,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뜻을 품고 사전에 밀사를 보냈다. 밀사는 삼천포 쪽으로 해서
남해 노량과 여수, 목포를 거처 평양을 들러 남쪽으로 내려오다 무학동 무기정 곱새네 집을 창자왔다.
임무를 완성한 밀사는 방심하여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기생 월이는 술을 자꾸 권해 취하게 만든 후,
완전히 잠든 밀사의 가슴을 뒤져 무명 비단보에 싼 보자기를 열었다.
그 속에는 우리나라를 침략할 전략과 해로의 공격 요지며, 육로로 도망할 수 있는 지도가 상세히 스려져
있었다. 월이는 밀사의 붓을 찾아 조심스럽게 월평리와 지소강(지금의 마암면 삼락리 간척지)을 연결,
통영군(통영시)과 동해면, 거류면을 섬으로 만들어 놓고 붓을 놓았다
그 후, 임진년 6월 5일 일본이 조선을 처들어왔다. 그들은 월이가 그려 넣은 가짜 지도를 따라
고성 소소포(고성 마암면 두호리 근방)에서 죽도포(고성만 바다)로 가기 위해 소소강(고성천)을
거슬러 올라 갔다가 뱃길이 없음을 알고 되돌아 나오던 중, 뒤따라 온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전멸이 된다
왜선은 산산조각이 났고, 물 위에 떠오른 왜적의 머리 수백 두가 썰물에 밀려 소소포쪽으로 밀려오니
그 후부터 머리가 밀려왔다 하여 이곳을 두호라 부르게 되었다
당항포해전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전공이라 하지만 월이가 일본 밀사의 지도를 허위로 고처 놓지 않았다면
고성은 왜놈의 손에 아비규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월이는 1, 2차 일본의 대함대 57척의
3천500여명이나 되는 수군을 전멸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월이기 그린 지도를 따라 간 왜장은 속았다고 분개를 했고, 그 후 그 일대 바다를 "속시개"라 부르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 유래되었다
<고성 기생 월이>
널리 알려진 의녀(義女) 논개 이야기 외에도 한 사람의 주민 혹은 한 여인의 몸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가상한 이야기들이 여러 곳에 전해 온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에 다수의 밀정을 보내 조선의 정세를 정탐하고 지형과 지리를 정찰하여
지도를 그릴 때의 이야기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있어 2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여
바다 건너 남의 나라를 침공해 들어갈 때에는 사전에 그 나라의 정치정세를 정탐하고,
지리와 지형을 익혀 그것을 지도로 그려두는 일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승려 게이테쓰 겐소1 등을 공식 사절로 조선에 파견했으며 그 사절 일행은 부산에서
내려 서울까지 가는 동안 이곳저곳을 경유하면서 지역 관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조선의 사정을
파악했다. 서울까지 가는 기간도 길었지만, 서울에 체류하는 기간도 길어 어떤 때는 6개월씩 머물기도 했다.
일본은 공식 사절단이 수집하는 정보 외에도 수많은 밀정을 비밀리에 조선에 파견하여 전국을
누비고 다니게 하고 지리와 지형을 익히게 했다.
1591년 가을 어느 날 경상남도 지역의 해안선을 살피러 고성에 잠입한 일본 밀정이 무학리에 있는 술집
무기정(舞妓亭)에 들어왔다. 이때 ‘월이’라는 기녀(妓女)는 그가 1년 전에도 와서 며칠 쉬었다 간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그 사람과 기녀들은 구면이어서 바로 친해지고 서로 술을 권했다.
그런데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그 사람의 품속에 여러 겹으로 싼 비단 보자기가 보였다. 이것을 예사롭지
않게 본 월이가 보자기를 열어보니 조선을 침공하고자 하는 일본의 해로 공략도(海路攻略圖),
위기상황 발생 시 육상 도주로 등 지리와 지형이 상세히 그려지고 있었다.
월이는 그 지도에 당항만이 바다로 이어진 것처럼 그려 넣었다. 즉 고성읍 수남리 앞 바다와 소소강(召所江,
지금의 간척지)2) 을 연결하여 통영군과 동해면, 거류면을 섬으로 만들어 놓은 후
지도가 들어 있는 보자기를 밀정의 품에 전과 같이 안겨 놓았다.
1592년 조선을 침공한 일본군은 제1차 당항포해전에서 월이가 조작한 지도를 든 채 조선 수군과 싸웠다.
이순신의 전략과 거북선의 위력에 밀린 일본군은 바다로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거의 전멸당했다. 당항만으로 들어오면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어 들어섰지만 지도에 표시된 해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일본군은 당항포 앞바다에서 퇴로가 육지로 막혀 있어 빠져나가지 못하고 조선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생포되었다. 일본 밀정을 속인 월이의 설화는 당항포
앞바다(지금의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를 일컫는 ‘속싯개’라는 지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위 지도의 지명의 뜻을 설명하는 내용 입니다
1591년 가을 경남 지역의 해안선을 살피러 고성에 잠입한 일본 밀정이 무학리에 있는 술집 무기정(舞妓亭)에
들어왔다. 이때 ‘월이’라는 기녀(妓女)는 그가 1년 전에도 와서 며칠 쉬었다 간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그 사람과 기녀들은 구면이어서 바로 친해지고 서로 술을 권했다.
그런데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그 사람의 품속에 여러 겹으로 싼 비단 보자기가 보였다. 이것을 예사롭지
않게 본 월이가 보자기를 열어보니 조선을 침공하고자 하는 일본의 해로 공략도(海路攻略圖),
위기상황 발생 시 육상 도주로 등 지리와 지형이 상세히 그려지고 있었다.
월이는 그 지도에 당항만이 바다로 이어진 것처럼 그려 넣었다. 즉 고성읍 수남리 앞 바다와 소소강(召所江,
지금의 간척지)2) 을 연결하여 통영군과 동해면, 거류면을 섬으로 만들어 놓은 후
지도가 들어 있는 보자기를 밀정의 품에 전과 같이 안겨 놓았다.
진중음1
전방급신물언아사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1598년 11월 19일 아침, 마지막 노량해전의 대격정 중 갑자기 날아든 총탄이 뱃머리에서
독전허던 공의 왼편 겨드랑이를 맞혀 공께서 전사하던 순간에 하신 말씀.
마지막까지 왜군의 격퇴를 염원한
"애국의 유언" 이다
전방급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해상보도교
지난 구간에 탐방하였던 공룡엑스포행사장의 공룡발자국보호각과 임진왜란 때인
당항포 전승지인 충무공전승기념탑
지난 구간에 걸었던 남파랑길
옹기종기 cafe ▶ 배둔2교 ▶ 배둔천 뚝방길 ▶ 하나로마트 ▶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지난 구간에 남파랑길 1km를 벗어나 탐방하였던 공룡세계엑스포행사장과 충무공전승기념공원
당항포국민관광지(공룡엑스포행사장) ▶ 공룡발자국보호각 ▶ 충무공전승기념탑 ▶ 바다의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전승기념탑 주변엔 임진왜란 전승 지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옥포해전(1592. 5. 7) 당포해전(1592. 6. 2) 한산도태첩(1592. 7. 8. 왜선 79척 격파)
부산포해전(1592. 9. 1) 명랑대첩(1597. 9. 16. 왜선 133척 격파) 노량해전(1598. 11. 19. 이순신 장군 전사)
충무공전승기념탑 서쪽출입문인 바다의문
지난 구간과 오늘 구간 걸었던 남파랑길을 뒤돌아 보고~
곧 마동호갑문쪽(마동교)으로 진행 합니다
남파랑길 13코스 2부로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