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 일기(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자매님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병자성사를 주러 바쁘게 서둘러 갔습니다. 저는 그 자매님을 처음 본 것처럼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자매님은 눈을 뜨고 저에게 인사하며 웃어 주었습니다.
병자성사를 거행하고 나자, 자매님께서 “신부님은 ‘찬미 예수님’ 신부님이시고, 저는‘사랑합니다’하고 외치는 신자입니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매님은 암 말기 환자였습니다.
자매님은 병자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신 그날 저녁으로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잠드신 것처럼 하느님께 가셨다는 것입니다.
자매님은 석 달도 못 살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2년을 더 살며 봉사했고, 정말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고통 없이 살다가 잠드셨다는 것입니다.
자매님을 하느님 나라로 떠나보낸 형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매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2년 동안, 이 말씀을 붙들고 사셨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찬미 예수님’을 외치는 신부님이시고, 저는 ‘사랑합니다.’하고 외치는 신자입니다.” 아멘.
오늘 설날을 맞이하여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저희가 이 한 해 동안 붙들고 살 수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 있는 종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마치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매일 큰 소리로 “야훼이레.”라고 외치고 살면, 통증 없이도 살 수 있고, 근심 걱정도 없이 살 수 있고, 그리고 탐욕도 없이 평안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사악을 죽이려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손을 뻗어 잡은 칼로 이사악의 목을 찌르려고 할 때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를 발견하게 하시어 이사악을 대신하여 숫양을 번제물로 바치게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을 위하여 미리 준비해놓으신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곳을 “야훼이레”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야훼이레”라는 말은 “주님께서 미리 마련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올 한해에도 고운님들은 어김없이 영혼의 메마름을 느끼게 하고, 육체적으로나 마음으로 힘들게 하는 십자가가 생길 것입니다.
어떤 고운님들은 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미움 때문에,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십자가가 되어서 늘 고통스럽고 초라한 모습으로 외롭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고운님들의 삶이 외롭고, 무섭고, 목마르고, 고통스러울 때 “야훼이레 축복”을 준비하고 계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를 청하는 거룩한 기도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1독서 민수기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시라.”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2024년 고운님들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계시고, 형편과 처지도 지켜보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고운님들이 힘들고 지쳐 절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이 없을 때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아 주시며 “야훼이레 축복”을 이미 이루어주셨음을 믿습니다.
항상 저희를 위하여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 준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는 “야훼이레 축복”이 이미 이루어주셨음을 믿고,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면서, 올 한해 고운님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선하신 주님의 섭리대로 “야훼이레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s://youtu.be/y_YOKAn4OEc?si=nKh0jYFbUuuElMoR
2024. 2. 10. 설 날
루카 12,35-40:
묘지 앞에서
한 형제와 작별하러 공원묘지에 갔을 때입니다. 하관 작업과 추모를 마치고 시간이 좀 있길래 묘원 사이를 거닐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거기 누워계시는 한분 한분을 위해 기도해드렸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과 세례명, 생몰연대를 쭉 읽어나가는데, 100년도 훨씬 전인 1900년대 초반에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하면, 불과 사흘 전에 묻힌 분도 계셨습니다. 백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하면 꽃다운 20대 초반 나이에 돌아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개인적으로 은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짧은 하루 피정 같았습니다.
공동묘지는 우리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생명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 존재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설날을 맞아 교회 전례 독서는 우리를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먼저 떠난 이들의 죽음을 헤아려보며, 우리의 근원, 우리의 처지, 우리의 목숨이 대체 무엇인지도 성찰케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생명과 목숨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이런 우리에게 야고보서는 얄짤 없습니다.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기대수명을 너무 길게 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만해도 기대수명이 84세인데, 처음에는 한국인 평균은 되는구나 했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왜 94가 아니고 84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의 큰 착각은 우리가 아주 길게, 영원히, 적어도 백 살은 살겠지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루카 복음 사가 역시 칼같이 짜릅니다.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2024.2.10.토요일 설
민수6,22-27 야고4,13-15 루카12,35-40
성화의 여정
-존엄한 품위의 삶-
“감사하십시오, 겸손하십시오, 깨어 있으십시오”
"내 주여, 내 기쁨은 당신 뜻을 따름이오니
내 맘속에 당신 법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40,9)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설 명절입니다. 새해 첫날을 요약한 본기도가 참 깊고 풍부하고 아름답습니다. 오늘 설날뿐 아니라 평생 매일 새해 첫날처럼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시작이시며 마침이신 주 하느님,
오늘 새해 첫날을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봉헌하오니,
온갖 은총과 복을 가득히 베푸시어,
저희가 조상들을 기억하며 화목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새하늘 새땅의 새날이자 첫날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목적없는 무의미한 날이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을 따라 닮아가는 성화 여정중의 선물같이 귀한 날들입니다. 삶은 선택이자 은총임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