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위해 기다려주는 것은 예의입니다.
와우. 이럴 수가. 41명이다. 보금회 사상 두 번째 기록이다. 첫 번째 기록은 지난 2009년 1월에 모임 때 42명. 한 가지 공통점은 기존 음식점서의 모임이 아니라 이름난 곳,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는 것. 광화문 청요릿집 도화림 모임은 배동만 회장이 주선한 자리였고 이번 광화문 브레댄코 모임은 홍평우 사장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름 있는 날,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앞두고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 마련이련만 번거로운 일 마다하고 서둘러 나온 걸 보면 친구 사이의 정이란 게 그만큼 도탑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는지? 외식 좋아하는 건 우리 친구들만은 아닐 터. 하기사 인간의 수컷, Y 염색체를 가진 호모사피에스 치고 외식(?) 싫어할까마는 그중에서도 유난한 건 우리 친구들이겠다. 문득 홍 아무개, 임 아무개가 생각나는 건 무슨 연유인지.....
마음 조급해지기 시작한 건 열흘 전부터다. 보통의 경우 일주일 전쯤 모임 광고했는데 이번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지난달 삼계탕 먹을 때도 별 탈 없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애써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안내 메일 발송한 이틀 뒤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제일 먼저 답신 보내와 사람 기분 좋게 해주는 건 김상규. 육성으로 참석을 알려온 건 리드미컬한 음성의 보성가수 이수봉. 근데 김상규와 쌍벽을 이루는 작은 거인 김일권의 답신이 한발 늦었다. 미처 확이 못했다는 것.
브레댄코엔 30명으로 자리 준비를 부탁했다. 여유분 +5명. D데이 이틀을 남긴 7일 현재 41명.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였다. 하루 사이에 몇 사람이 더 올는지.... 홍 사장에게 SOS를 보내야 했다. 연락 불통. 브레댄코 지배인을 찾을밖에. 긴급 상황을 설명하며 45석을 부탁했다.
생각보다 하늘이 맑다. 제발 차질 없었으면 좋으련만.... 만일 차질이 생긴다면 우리들이야 별 탈 없지만 홍 사장 얼굴이 구길 판이다. 종업원들에게 사장은 하늘이니 그의 친구인 우리들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홍 사장 이미지에 가감될게 뻔하니까. 될 수 있으면 준비한 자리에 수학공식처럼 딱 맞아떨어져 “사장님 친구들 대단하다“는 소리 들으면 그 아니 좋겠는가.
홍평우가 새 브랜드인 '브레드 앤 코(Bread & Co.)’와 대중 레스토랑 'BRCD(Bread is Ready, Coffee is Done)'을 경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영애 홍수현 이사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선에서 땀 흘리며 뛰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터. 홍 이사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렷다?
자연주의를 내걸고 ‘특별한 빵’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 다하기 3년. 서양 정통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철 재료를 사용, 사과빵, 우엉빵, 호박빵, 감자빵이며 된장 소스로 맛을 낸 샌드위치, 쌈무를 넣은 샌드위치도 개발했다. 뭐니 뭐니 해도 브레덴코의 자랑은 우리나라 최고령 제빵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이병철 회장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그가 만든 빵을 먹었다니까. 홍평우. 그의 남다른 경영방식과 장인 정신에서 오는 탁월한 창의성이 바탕이 된 때문일까? 가파르게 높아진 브랜드 밸류와 함께 가맹점이 전국으로 형성되고 있어 국내 제1위 자리에 올라설 날도 머지않았다. 궁극의 목적은 물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우뚝 서는 것. 그래서 그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깃들어 있다. 잘난 딸 바라보고 있으니 당연히 웃음이 나올밖에. 이번 자리를 마련한 것도 그런 마음의 편린이라도 내보이고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기쁨을 나누기 위한 배려일 터. 그런데... 그런데 호사엔 다마라고 했던가? -어떤이는 ‘호랑이 같이 사납고 다람쥐처럼 약은 마누라’라고 풀이했단다 - 아침 나절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부득이 불참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 그러니 주인 없는 집에서 나그네들끼리 잔치 벌이는 꼴이 될밖에.
D데 아침 10시. “지금 참석 신청 가능하느냐”는 연락이다. 아뿔싸. 그렇다고 어찌 오겠다는 사람 막으리. 여차짓하면 의자 한 개쯤 중간에 끼우면 될 것을.... 30분 전인데도 벌써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대박이다. 이젠 보금회 생리를 모두 터득한 모양이다. 30분 전에 오지 않으면 자리잡기 어렵다는 불문율을.
12시 전인데도 자리가 찼다. 홀에는 다른 손님이 있고 주위가 터져 있어 산만하다. 아무래도 큰소리로 떠들지 않으면 들릴 것 같지가 않다. 약식으로 진행할 밖에. 자리점검이다. 45명 신청. 불참 4명. 현재 인원 41명. 그중엔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박영조 이준양 조동완. 박수로 환영한다. 첫발 내디뎠으니 다음 모임엔 틀림없이 참석하리라 믿는다.
‘세상은 재미있고 미래는 설렘이 있다’ 를 출간한 홍정수가 열심히 저자 서명을 하고 있다. 친구들에게 책을 선물하기 위해 일부러 온 그 성의가 가상하다. 사람 통해 전달하거나 우송하면 될 것을 굳이 돈 들여가며, 시간 들여가며, 발품 팔아가며 낮선 서울거리를 물어물어 찾아 온 것은 따듯한 심성을 지닌 홍정수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한 모습이겠다. 아마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놓쳤던 일들이 새삼 송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고마움 느낄 것이다. 좋은 책 주신 저자에게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가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투정 아닌 투정이다. 하지만 어쩌랴. 저자가 한창 사인 중인 것을. 사인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도 친구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모를리 없으련만...
강성구 김일권 김일웅 김종오 김창석 김태국 김홍수 박동진 박영조 박일두 박태원 서상욱 손희광 신부길 안재홍 염갑형 유태전 이송하 이수봉 이순표 이승홍 이유화 이윤국 이준양 이충남 이충복 이충표 장주석 전재완 정성영 정윤양 정찬조 조동완 조웅인 진영달 최상태 최창만 최홍순 현건호 홍정수 홍의순.
음식이 맛깔스럽다. 시장기 탓일까? 입이 즐겁다. 와인 잔 부딪치는 소리가 즐거운 메아리로 돌아온다. 고급 와인 11병을 비웠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고급 호텔 수준의 식사와 고급 와인을 그렇게 많이 비웠으니 홍평우 사장의 표정이 어떠했으리란 건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것도 주인 없는 집에서 나 몰라라 나그네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했으니...
많은 친구가 한솥밥 먹으며 이런 일 저런 일 얘기 나누며 정보 교환하는데 어찌 우정이 쌓이지 않으리. 세상에 피붙이가 가장 끈끈하다고 하는 것은 한솥밥 먹은 횟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잖은가?
이번 모임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예약문화가 완전 성숙했다는 사실이다. 100% 참석하겠노라 알려왔다. 권유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결정이다. 그것도 10, 20명이 아닌 40여명임에랴. 얼굴이 붉어진다. 혹시나 하고 염려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친구들 인격을 모독했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혜화골을 한동안 함께 누볐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겠다. 또한 고마운 것은 친구들이 말 할 때 끝까지 들어준 것이다. 상대방에게 말 할 기회를 주는 것은 포용이다. 지방방송은 무식을 드러내는 것이요,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건 아집이고 독선이라니 상대방의 의견 받아들이는 아량을 갖는 연습을 해야겠다.
계절의 옷이 바뀌고 있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외롭다고 여길 때 문득 생각나는 친구 얼굴 떠올려보자. 그리고 위안 줄 수 있는 친구 만날 생각해 보자. 마음 설레고
가슴 떨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