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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2:1~14(27) 내가 드릴 번제는 무엇인가? 2023. 9. 10
토미 테니(Tommy Tenny 1956~ )목사님이 저술한 ‘하나님의 관점(God’s eye view)’이라는 책에 보면‘아빠 안아줘요. 밑에서는 안보여요’소제목이 있습니다. 여기에 실린 내용입니다. 테니 목사님의 막내딸이 서너 살쯤 되었을 때,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은 예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어린 딸은 잘 장식된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서 곧 엘리베이터 사람으로 꽉 차버립니다. 엘리베이터의 예쁜 장식을 구경하던 어린 딸은 장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무릎을 보고 엉덩이만 보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아이가 아빠에게 말합니다.
무슨 말을 했을까요?‘아빠, 안아주세요. 답답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잘 보였으면 좋겠어요.’딸아이를 성큼 안아 아빠의 눈높이만큼 올려줍니다. 그러자 아이는 아빠가 보는 것만큼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테니 목사님은 어린 딸이 자신에게 하였던 “아빠, 안아주세요. 아빠 눈높이만큼 보고 싶어요”라는 말에서 성도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 딸이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갑갑한 상태에서 아빠에게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아빠가 듣고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서 아빠가 보고 있는 것을 보게 합니다. 테니 목사님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모습이요,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높은 상공에 올라간 분들은 다들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자주 타보지 못한 사람이거나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사람들은 창가좌석을 매우 선호합니다.
창가 좌석에 앉아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비행기가 뜨는 모습을 구경하고, 비행기가 더 높이 올라가면 점점 작아지는 지상의 여러 구조물을 관찰하려고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높은 창공에 오르면, 아래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작게 보입니다. 사람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고, 자동차도 점으로 보이고, 집도 학교도 아파트도 산들도 작게만 보입니다.
땅에서는 그렇게 크게 보이는 아파트와 매우 큰 건축물도 하늘에 올라 내려다 보면 내우 작게만 보입니다. 비행기가 더 높이 올라가게 되면, 지상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은 구름위에 날라 가는 비행기의 모습만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제가 왜 설교 초두에 이런 비행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래에 머물러 있던 어린 딸이 아빠가 안아주면서 번쩍 들어 올려 줄 때에 보이는 눈높이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보지 못하였던 풍경을 높은 창공으로 올라가서 보게 되면, 이 땅에서 우리가 머물고 몸 담았던 것이 너무나 작게 보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거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내가 지상에 머물고 있던, 또는 내가 비행기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는 나의 관점이 변하였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의 변화, 내가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신앙생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시선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나는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내 시선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러 있다면, 나는 세상의 것들을 눈 아래에 두고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품에 안아서 높은 곳에 올려 주려고 하는데 내가 거절합니다. 그렇게 내 고집만 피우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나는 결단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에 얽매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문제에 둘러 쌓여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시선에서만 바라본다면, 그 눈높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관점으로 여러분의 시선을 높이시고, 자리를 옮겨 보시기를 강권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에게 번제물로 드릴려고 하였던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보게 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들이지만,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시선에서 아들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바라 봅니다. 내 마음으로 이해되지 아니하고, 나의 관점에서는 풀수 없는 미스테리한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 봅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놀라운 믿음의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너 아들 네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하나님은 분명하게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자식이지만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의 아들이 너무나 사고를 많이 칩니다. 경찰서에 자주 불려가고 동네에서도 사고를 많이 쳐서 문제아로 찍혀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사고만 칩니다. 10대 때부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10대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사고와 죄를 저지릅니다.
그야말로 징글징글할 정도로 사고를 칩니다. 게다가 이 아들은 목사님이 낳은 자식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에 입양한 아들입니다. 입양한 아들이 목사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형국입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동기목사님들에게 아들 말을 할 때면,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저도 아들 둘을 키우고 있지만, 정말로 대단한 인품과 믿음을 보여 주고 있는 목사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제발 없으면 좋겠거나, 아니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판단될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표현 그대로 아브라함이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하나님이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면, 우리의 행동과 결정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내 아들과 내 딸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번제물로서 하나님에게 드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오늘 내가 하나님에게 드릴 번제물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도록 합시다.
1. 내 순종의 번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3절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고 순종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3절 말씀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행동을 세부적으로 살펴 봅시다.
1)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잠시나마 인간적인 고민에 빠집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보여야 하는 갈등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밤새 고민하고 기도하였던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에 철저히 복종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순종의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말은 달리 생각하면, ‘온 밤을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하얗게 지새웠다’는 말로 달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순종이 출발하는 부분입니다.
2)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구체적 행동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기 위하여 무엇하나 차질이 없이 꼼꼼하게 준비하고 행동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너무나 치질하게 준비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순종함에 있어서 대충대충 허투루 하지 아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장소로 아브라함은 이동합니다. 온전한 순종이란 시작하는 처음부터 마무리하는 마지막까지 완전하게 드리는 순종을 말합니다. 일찍이 일어나 모든 것을 준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령한 장소까지 이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다가, 시가닝 조금 흐른 뒤에 내 생각이 들어가고, 내 판단이 첨부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순종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온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순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가는 순종임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92년 마이클 플랜트(Michael Plant 1950-1992)라는 요트선수가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횡단하기 위해 코요테라는 중형급 요트를 주문 제작합니다. 코요테는 멋있게 생긴 날렵한 몸체와 함께 최신 장비들이 장착된 배였습니다. 완벽한 상태로 요트를 제작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마이클은 미국을 출발하여 대서양을 횡단하고자 출항합니다.
그런데 항해한 지 11일째 되는 날 요트가 행방불명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배를 찾기 위해 수색하면서 모든 힘을 모읍니다. 그렇게 실종 된지 32 째 배는 포르투갈에서 남쪽으로 720Km 떨어진 바다 가운데 뒤집힌 채 떠다니는 요트를 발견합니다. 배안에는 마이클이 없었고, 주변 해역을 며칠을 수색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이클은 실종된 상태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이 됩니다.
그런데 정작 마이클이 탔던 배를 발견한 수색대는 요트가 뒤집어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더 놀랍니다. 왜냐하면 요트는 구조상 전복이 되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해 보니 중심을 잡기 위해 요트의 수면 아래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ballast)가 없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밸러스트는 요트를 안전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부품인데, 어떠한 연유로 그것이 파손되어 떨어져 나가면서 배가 전복된 것입니다.
조사단은 사고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습니다. “마이클 플랜트가 자신의 뛰어난항해 기술만 믿고, 배를 만들 때부터 수면 위에 있는 보이는 부분은 굉장히 신경을 썼지만 수면 아래 있는 부분에 신경을 덜 쓴 것 같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내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순종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아브라함처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완전한 순종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뛰어난 항해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배 아랫부분의 밸러스트제작에 소홀히 한 결과, 허망하게 생을 마무리한 마이클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순종에 조금이라도 소홀하거나 부족함이 없도록 오나벽하게 준비를 합니다. 비록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는 참담한 상황속에서도 핑계를 대거나 대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완전한 순종의 모습 때문에 아브라함을 두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후대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도도록 노력합시다.
2. 행동하는 믿음의 번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6절,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6절 말씀 집을 떠난지 3일이 지난 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기 직전의 상황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하반절에 두 사람이 동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이 함께 움직이고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행동하였고, 아들 이삭은 아버지의 행동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행동하였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역시 아버지의 이해되지 않는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불평하거나 항거하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함께 동행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런 순종의 행동의 모습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수풀사이에 뿔이 걸려 있었던 숫양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행동하는 믿음을 하나님은 원합니다. 기도는 많이 하되 행동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을 주저하면서 옮기지 못한다면, 온전한 순종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행동으로 실행하는 온전한 순종의 실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육상 경기가 열렸을 때,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 대표 육상선수 이름 중에 ‘여호수아’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선수가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면서 흥미롭게 시청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선수는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남자 단거리 선수로는 28년 만에 메달을 차지합니다. 남자 200m 결선에서 20초82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1986년 이후 28년 만에 한국 남자 단거리(100m·200m) 메달리스트가 됩니다. 그리고 남자 1,600m 계주에서 최종 주자로 나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며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됩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육상에 두각을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육상 100M 대한민국 국가 대표 선수로 훈련하는 도중에 부상을 당하면서 큰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슬럼프를 겪던 시기에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부상으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울면서 기도하던 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붙들어 주심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견딘 후에 시합에 출전하게 됩니다. 달리기 전 출발점에서 ‘하나님, 이 시간에 평안을 주소서’ 기도하며 경기에 임합니다.
그 결과, 역경 속에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더니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 역전극을 펼치면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경기장에 울리게 됩니다. 기도만 하고 뒷짐 지고 아무것도 안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에게 매달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부단히 노력한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믿음의 결과가 기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에게 드릴 번제물은 무엇인가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번제물로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