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ㅇ 창조는 신앙고백의 처음에 나오는. "천지에 창조주 예수님을 믿사오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ㅇ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설교가 상대적으로 적음
ㅇ 그것은 '구원'을 강조한 기독교(15세기 종교개혁 이후), 사람에 대한 구원, 구원 중에도 영혼 구원에 집중. 유대인에 대한 경멸, 예수님을 죽인 이들이 유대인 아닌가? 정치, 사회적인 것 등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들어와서
ㅇ 구약(유대경전, 히브리 경전)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신약에 대한 것만 증대... 20세기 초반까지 그랬다. 전후 유태인에 대한 만행을 반성하면서 조금 구약에 대한 관심.
ㅇ 하나님과 인간, 인간의 구원, 영혼 구원 외에 하나님과 자연 등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더 갖게 됨. 인간 없이 자연은 잘 살지만, 자연 없이 인간이 잘 살지는 못한다. 인간의 문제에만 집중했다. 창조에 대한 새로운 관심. 최근 기후위기의 주범은 인간(종교인이 아니라 과학자가 규정), 이제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강조, 유도
ㅇ 본인은 창조라는 주제가 엄청난 주제임을 알아. 이 주제야 말로 성경 전체를 덮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
<창조를 둘러싼 물음들>
ㅇ 창조란 무엇인가?
ㅇ 하나님은 창조 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고 있다.'라고는 답하지 말라.
* 질문 자체가 틀렸다. 시간과 공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시간 이전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것.
* 7일 또는 6일 동안 창조, 그러면 8일 후에는 무엇하셨나?
ㅇ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은 더 이상 창조하지 않으시는가?
ㅇ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ㅇ 창조와 진화는 대립, 모순, 양자택일의 관계인가?
ㅇ 현대과학은 성서의 창조신앙과 모순되는가?
<창조-성서의 중심주제>
ㅇ 성경은 창조로 시작해서 창조로 끝난다.
*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계시록 마지막)
* 사 43,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ㅇ 창조는 항상 과거와 연관짓지만 이사야 45장, 나는 빛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ㅇ 시편 104편, 자연 만물을 지으시고 먹이시는 '구원'의 하나님. 동물의 세계 등을 표현.
ㅇ 공중나는 새를 보라. (이 말씀에 은혜 받아, 존 스토트 목사님 아마추어 조류학자)
ㅇ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ㅇ 행 17장,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ㅇ 만물이 그에게로(창조의 중재자)
** 엄밀하게는 중심주제가 창조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창조분문 읽기>
ㅇ 샤갈(러시아 태생, 유태인), 십자가의 예수님 그림. 2차원 평면 위에 2천 년 전의 예수님 십자가 사건과 더불어 주위의 사건들은 샤갈의 시절 사건을 동시에 그려 넣어....
ㅇ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 그 노래는 작가의 잘못된 경험에서 나온 허구이다.. 라는 주장. 기찻길 옆 오막살이 집도 없고 아기가 잠을 잘 잔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라는 주장 : 이 노래는 미래형으로 기차가 자기부상 기차. 이거는 장애인을 위한 이야기야. 아기는 장애를 가졌어..라고 등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 역사적 배경으로 들어가면, 1948년 일제시대, 일제 폭정 중에 아이들은 잘 성장하고 있다는 해석 가능. 21세기에 불려진다고 해서 21세기의 노래가 아니다.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함.
ㅇ 성경에 대한 관점. 모세 5경 시절이 아님. 기록은 더 이후. 모세 시절은 양피지나 필기 도구조차 변변히 없음. 성경은 역사적 맥락에서 읽고 그것이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을 도출해야 함 : 해석적 관점
ㅇ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역사적 맥락을 읽으면 완전히 달라짐. 전시, 형도 징용 등.
그리고 '문학적 구조'도 살펴야 함.
ㅇ 첫째 날 : 어둠과 빛,
둘째 날 : 궁창의 물(아래 위로 나눔),
셋째 날 : 바다와 육지를 나눔
네째 날 : 광명체를 만드심(해, 달, 별)
다섯째 날 : 새를 만드시고 바다에 물고기
여섯째 날 : 바다와 땅, 짐승
* 1~3째 날은, 나누는 일..... 4~6째는 채우는 일
ㅇ Therefore, "역사적 맥락", "문학적 구조"를 이해해야 함.
ㅇ 포로기의 배경에서 창세기 1장 이해하기
<우주적 성전 건축>
하나님과의 안식 -창조의 미래-
ㅇ 창세기 1장은 6~7세기 바벨론 포로기에 기술됨.
디딜 땅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주신다는 의미로..기술
흙보다 보잘 것 없는 티끌로 인간을 창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희망을 주시는 창조 이야기. 성서에서의 시간은 하나님께 양보할 수 없이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제시한 것. 완전한 수 7일... 숫자를 꼭 맞추는 것이 그리 중요한가?
ㅇ 창세기 1장, 성경 전체를 요약한 것(논문의 서문처럼), "생명의 충만, 안식, 복됨과 거룩함" 이것이 중요
ㅇ 성서의 창조(바라)의미의 풍성함.
ㅇ 히브리 '바라'를 창조로 해석. 바라와 아사, 야차르의 구분.
ㅇ 3 단어가 문법적으로 구분한 것이지, 의미상으로는 구분 없음.
ㅇ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바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아사)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성경은 바라라는 것을 이스라엘이 이미 있는데도 특별히 선택하신 것도 바라로 표현. 창조는 갑자기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지속되는 연속적 사건들을 창조로 일컫는다.
ㅇ 창조(바라) 옛날의 일, '뽕'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됨. 창조는 매직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창조하는 것들.... 예루살렘도 창조하고, 백성도 창조하고, 마음도 새롭게 창조하는 등,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음.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고 있음.
ㅇ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아버지임.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이 자연은 아들과 딸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부자, 또는 부녀, 모녀 관계로 설명함. 자녀가 아프면 부모가 아파. 질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아파함. 창조의 역사는 옛날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ㅇ 태초의 창조-계속되는 창조-새 창조
보존-협력-통치,
창조하고 돌보시지 않으신다면 하나님 아니다.
'나'를 만드시고, 먹을 것과 아내와 소와 가축과 물과 모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루터는 하나님을 만드신 분으로 설명하기보다 '주시는 분'으로 설명한다.)
ㅇ 계속적 창조 : '섭리'
ㅇ 협동 : 혼자 하실 수 있으나, 우리와 함께 창조해 나간다.
ㅇ 매개적 창조 : 누구를 통해서 창조하는 것.
ex) 아이를 낳는 것, 병을 고치는 것, 농사해서 수확하는 것 등...
땅 밑의 미생물의 아주 작은 몸짓에도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고 있는 것임.
ㅇ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