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강좌 34강
'이시향, 박해경, 박동환' 세 분 시인의 디카시 감상 평설을 소개한다.
현실속 생계의 현장을 통해 한계 상황을 극복해내고 있는 소시민의 초월적 자기의지를, 장독대 안에 숨겨진 어머니의 위대한 잠언을, 태화강을 누비고 있는 까마귀 때의 행복한 겨울나기를 그려내고 있다.
#디카시
아침 / 김종순
또 오늘이다
뚜벅뚜벅
밥 벌러 나간다.
-감상-
"또 오늘이다 뚜벅뚜벅 밥 벌러 나간다."
숫눈을 밟으며 차로 걸어간 발자국 따라 유리창에서 눈을 털어낸 차가운 손으로 시동을 걸고 밥 벌러 갈 준비가 끝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명쾌하게 새벽을 여는 시가 또 있을까? 도둑눈이 쌓인 날에는 하루정도 쉴만한데도 가장 먼저 밥 벌러 나가는 부지런한 저 차 주인과 그 풍경을 디카시로 담아낼 수 있는 시인은 며칠 밥벌이는 한 것 같다.
밥 벌러 나와서 종일 시달리다 만난 디카시 '아침'. 사진이 있어 시가 돋보이고 시가 있어 사진이 깊어지는 작품을 만나 배가 부르다.
글=이시향 시인
#디카시
잠언 / 김인애
당신 안 고요히 익어가는 것들과
삭이는 것들의 속 깊은 이야기
가만가만 귀 기울입니다
바람결에 흔들려가며
-감상-
김인애 선생님 디카시 《잠언》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따뜻한 마음이 겹겹이 깔려 있는 거 같아 눈 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갑니다.
저 무수히 많은 항아리 속에는 어떤 것들이 익어 가고 삭혀 가고 있을까요?
결코 짧은 시간에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 진정 저 항아리 속에서 무한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을 거 같아요.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우리와 만날 때에는 고요한 마음속에 진정한 맛을 던져주는 삶의 진리가 들려오지 않을까요?
오래전부터 항아리를 눈부시도록 말끔하게 세워두시던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마음 따위는 저 항아리 속에 넣어 익히고 삭히고 꽁꽁 숨겨두었던 어머니 마음을 봅니다.
세상에 어머니 마음보다 위대한 잠언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고요히 안아주는 어머니 품을 그리워해 봅니다.
글=박해경 시인
#디카시
까마귀 떼 / 이시향
겨울 저물녘 태화강 대숲은
자석이 되어
까맣게 쇳가루를 끌어당긴다.
-감상-
사진을 자세히 보아야 검은 점들이 까마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시향 시인은 검은 까마귀 무리를 쇳가루로 보았다.
러시아에서 대규모의 까마귀 떼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대한민국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을 선택했다.
어릴 적 누구나 과학시간에 막대자석 실험을 한 번은 경험했다.
실험에서 N극과 S극으로 향하는 수많은 쇳가루의 방향을 보았다.
저 시베리아 땅의 검은 까마귀는 지구의 자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따뜻한 남쪽 울산 태화강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날아왔을 것이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까마귀 떼처럼 어쩌면 우리도 저 무리와 다를 바 없다.
1960년대 공업화를 시작하며 잘살기 위해서 찾아온 울산은 나라를 부강하게 키워온 조국의 막대자석이 아니었을까.
태화강의 넓은 품에서 행복하게 겨울을 나고 이겨내는 까마귀처럼 울산은 나와 우리의 가족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다.
글=박동환 시인
'이시향, 박해경, 박동환' 시인 세 분의 평설을 통해 삶의 생활전선에 뚜벅뚜벅 투입되는 소시민의 소박한 삶의 단상을, 장독 속에 익어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까마귀 떼의 삶을 통해 1960년대 공업화에 헌신한 불굴의 산업 전사를 회자시키고 있다.
디카시는 가장 짧은 한편의 영화와 같다. 작가는 영화를 기획하는 영화 감독이다. 디카시는 디지털 영화의 시작점이다.
"디카시는 디지털 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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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디카시]에 전현주 님의 <당신을 찾아가세요>를 선정한다.
#금주의디카시
당신을 찾아가세요 / 전현주
전현주 님의 '당신을 찾아가세요'는 한마디로 디카시 생활문학의 산물이다. 무심코 지나가다 세탁소에 걸린 세탁물을 보고 극순간 예술의 결정체를 창조해 내는 내공이 참으로 대단하다.
또한 디지털 영상, 디지털 글쓰기, 디지털 제목 3종 세트를 연상시켜 대중과의 미적 거리를 좁혀주고 있다. 관찰은 창조적 상상력을 완성시킨다. 섬세한 디지털문학적 안목이 디카시 생활문학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세탁소에 걸린 세탁물을 가지고 삶의 존재적 가치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디카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공유하는 소통 문화콘텐츠다. 스마트폰이 켜져있을 때 디카시 심장소리 즉, 디카, 디카, 디카 소리가 들리면 디카시를 운명처럼 여기는 디지털 낭만주의자다."
정유지(부산디카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