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삶의 이야기】
‘글 도둑 잡기’를 포기한 이유
― 남의 글 ‘표절’은 영혼의 절도행위
― 하지만 관대하게 용서하는 까닭은?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오늘 조간신문에서 ‘서툰 도둑은 쉽게 잡힌다’ 제하의 칼럼을 읽었다. (조선일보 2025년 1월 31일 자 ‘一事一言’)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의 글(아래 지면 캡처와 링크 글 참조)이다.
[일사일언] 서툰 도둑은 쉽게 잡힌다
▲ 조선일보 2025년 1월 31일 자 ‘一事一言’ <서툰 도둑이 쉽게 잡힌다>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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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칼럼이지만, 나는 원로 학자의 글을 읽으면서 최근에 실제로 ‘당한’ 글 도둑이 떠올랐다.
도둑을 ‘당하면’ 어찌해야 하는가.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잡기가 쉽지 않다. 번거롭다.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로서 은근히 화가 난다.
경찰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도둑맞은 사람’이 직접 방망이를 들고 나섰다. 조규익 교수의 칼럼 제목처럼 ‘서툰 도둑은 쉽게 잡힌다.’라는 말을 믿는 까닭이다.
잡고 보니, 서툴기가 마치 어린애 장난 같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살펴보니 교묘하고 치밀했다. 절도 솜씨가 탁월하다. 남의 글을 망가뜨리는 재주가 비상했다.
해당 블로그 글을 캡처했다. ‘글 상처’를 입은 필자로서 일단 ‘물증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 필자의 글을 무단으로 퍼다가 임의 편집하여 원형을 훼손한 글 일부 캡처(이○○ - 블로그 『추억을 뒤집을 때』 부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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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세 마음을 고쳐먹는다. 장난 삼아 시도해 본 어설픈 도둑질이라면 너그럽게 용서해야 한다.
남의 글을 허락 없이 가져간 의도가 무엇일까? 어떤 득이 있기에 남의 글을 가져다가 훼손하는 걸까?
필자와 무슨 원한 관계라도? 아, 무섭다. 글 쓰기가 두렵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수필>이란 그릇에 담아 온 지 30여 년이 넘는다.
나의 블로그 프로필에는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박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수필문학인’이라고 소개했다.
필자의 글에는 고향 이야기, 가족 사랑 이야기, 따뜻한 인정의 이웃 이야기, 독서 이야기 등이 바탕을 이룬다.
그 누구라도 마음 불편해할 만한 소재를 다루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민감한 주제의 날카로운 시사평론이나 갈등을 빚을 만한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
의도적인 ‘해코지 성격’의 글 도둑은 아닌성싶었다. 그렇다면 독자로서 특별히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퍼간 것일까? 가만히 살펴보니, 그런 단서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그렇다면 영광스러운 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서운하면서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화가 나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역설이 과연 말이 되는 표현인가?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로 절도범 신고나 검거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하룻밤 자고 나서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 봤다.
결론은 ‘그냥 두자’였다. 누리 소통망에서 악성 댓글로 시달리는 유명인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약과지 않는가.
그동안 나름대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글을 꾸준히 써왔으므로, 어느 정도 ‘유명세(有名稅)’를 타는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이자.
그리하여 관대하게 용서하기로 했다. 그분의 글 절도행위가 나의 명예에 크게 손상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필자로서 마음을 바꿔 긍정적인 시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나의 글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대부분 필자의 허락 없이 ‘퍼간 글’들이다.
남다른 관심과 사랑이라고 여기자. 마트에서 마음에 드는 좋은 물건, 꼭 필요한 물건을 보면 장바구니에 담고 싶지 않은가.
장바구니에 담긴 했으나, 계산대를 거치지 않고 나왔을 뿐이다.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정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범죄 행위에 속한다.
아마도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옛 선비의 말씀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지도 모른다.
언젠가 ‘시집을 베끼는 여학생’ 제목의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수필전문지 《한국수필》 1999년 9·10월호 / 윤승원 수필)
▲ 수필전문지 《한국수필》 1999년 9·10월호에 실린 필자의 수필 ‘시집을 베끼는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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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개된 수필이다.
==== 시집 코너에서 무언가 열심히 메모하는 두 여학생을 보았다. 그들은 책을 사려고 책방에 온 학생들은 아닌 듯 보였다.
서성이던 두 학생 중 한 여학생은 연신 무엇인가 메모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여학생은 친구의 이 같은 행동을 돕기 위하여 곁에서 말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애써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고르려다 말고 호기심이 일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책을 고르는 척하면서 무엇을 메모하는지 곁눈질했다. 그러나 확인은 쉽지 않았다.
누구의 책일까? 어떤 문구가 그리도 좋아 베끼는 걸까? 그렇게 좋으면 선뜻 한 권 사지, 왜 한 사람은 ‘가림막’이 되어주고 또 한 사람은 연신 베끼는 걸까? ===(下略)===
요즘 카톡으로 보내오는 지인들의 글도 자신의 창작물이 아닌 것이 많다. 출처나 필자의 이름도 없이 <퍼온 글>, <좋은 글에서>라는 남의 창작물이 너무 많이 떠돌아다닌다.
<복사가 허락된 글>, <스크랩이 가능한 글>이라도 출처를 꼭 밝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나는 도둑 잡는 것을 업으로 했던 사람이다. 현직이라면 관용이 아니라 직무유기가 될 터이다.
하지만 어느 저명 문인들처럼 자신의 글이 세상에 회자하는 것을 보고 “내 글 도둑이야”라고 소리치진 않는 것처럼, 자신의 글에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주는 독자에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여 부처님처럼 관대해지고 싶은 것이다.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필자의 글을 퍼다가 교묘하게 이리 섞고, 저리 뒤집고, 원형을 마구 변경하거나 임의 편집하여 글 쓴이의 의도와 삶의 정서, 그리고 본 뜻이 왜곡되거나 훼손되지 않았으면 바라는 것이다. ■
2025. 1. 31.
윤승원 창작 노트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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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이ㅇ희 - <추억을 뒤집을 때> 님에게
윤승원 수필가의 글을 여러 편 가져다가 편집하셨군요.
저의 글에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출처를 밝히고 원형을 잘 살렸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 원본 글 필자 윤승원
윤승원의 '인생삼락 청촌편지' 독자 댓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