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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향일암.돌산공원.오동도.보성녹차밭.낙안읍성
일시: 2004년 4월 24일 토요일∼4월 25일 일요일
장소:여수산업단지.향일암.돌산공원. 오동도.보성녹차밭.낙안읍성(가족 여행)
*여수 산업 단지 야경
여수 산업 공단 야경. 수은등 풍경. 차 안에서 찍은 추상 사진
여수 산업 단지는 여수에서 좀 떨어진 외곽지역에 있다. 시내를 좀 벗어났을 때 아직 미명의 새벽을 환히 밝히는 산업단지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그 곳에 민간인 차의 진입을 막았는데 지금은 허용하고 있었다.
그 단지의 가운데 길을 지나며 양쪽에 펼쳐지는 수은등의 높고 낮은 탑모양의 야경들이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24시간 full 가동하고 있었다. 주로 기초산업단지다. 화학계열이 대부분이다. 70년대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이곳에 설립되어 여수의 발전에 기여한 공단이다.
지금은 사양길에 접어든다고 한다. 주로 중국으로 옮겨 떠나가고, 남아있는 공장들도 주변 주민들의 환경오염에 대한 염려로 이곳에 머무르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조금 나쁘게 보면 어렵던 보리고개 시절의 아픔을 잊은 듯하다.
차 창에서 찍어온 야경이 불꽃축제로 아름답다. LG 화학이 가장 높은 비율로 들어와 있다. 자동차로 관광 후 다시 한바퀴로 돌아 나왔다. 여수의 아침은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여수 향일암 해돋이 풍경
원래는 여천군 돌산읍이었으나 여수시의 3개군 통합으로 여수시 돌산읍에 소재. (율림리)
여수시의 끝자락 남해 바다 도시, 돌산에서 언덕을 오르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기이한 암자가 있다. 돌산 갓김치의 향기가 언덕에서 새벽의 풍요를 노래하고 잘 다듬어진 계단이 좀 가파르게 드러누웠다.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조금 올라가면 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져 겨우 한 사람만이 들어서 지나갈 수 있는 바위문이 있다. 비경이다. 겨우 몸하나 빠져나가는 이 정도의 문. 맑아진 정신과 깨끗한 몸으로 돌계단을 오르면 바위 사이, 사이에 부처가 사는 집이 있다.
해를 사모하는 부처가 살고 있다. 가파른 절벽, 어떻게 지었을까. 바위 사이에는 금오산 젖줄의 자로운 물이 흐르고, 절벽에는 동백나무가 오롯이 서 있다.
이 암자가 전국 4대 기도의 효력이 영험하다는 절 중의 하나라고 한다.(낙산사, 보리암, 강화도 무슨재, 향일암) 그만큼 기도의 효력을 본다는 것이다.
빛좋은 햇살을 눈부시게 끌어안고, 여수 앞바다 해벽을 가르고 솟은 태양, 장관이다. 사월의 나무 순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 향일암(해를 향해 앉은 암자라는 뜻) 비원의 기도 푸르다. 어느 곳을 들러나아도 모나지 않은 바위들. 하나의 사찰이 아니고 곳곳에 지어진 암자들.
<해를 바라보는 암자〉라는 향일암. 그 해돋이가 정동진 못지 않게 장관이었다. 바다를 가르고 올라오는 해오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뜻깊은 향일암 해돋이였다.
여수 향일암(여수시 돌산읍 금오산) 해돋이 가는 길 암자로 들어서는 문
*돌산공원
돌산 공원에서. 좌측 돌산 대교와 우측 장군도의 일부분
좀 높으막한 산 중턱에 있는 공원이다. 향일암에서 오동도로 가는 길에 들렀다. 그 아래에는 돌산대교가 보인다. 1984년에 건립되었는데 총길이 450m, 높이 114m, 폭 67m다. 교각 난간이 예술적으로 아름답다.
바로 그 옆에는 「장군도」가 있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던 섬으로 동그랗게 잘 다듬어 보존되고 있다. 보기보다 그 곳에 물살이 세어서 왜군을 물리치는데 목이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호령으로 지휘하시던 장군의 음성이 여수 앞바다에 흐르고 있다. 전에는 낚시꾼이 배를 타고 그 섬에 들어가 낚시를 하였으나 지금은 보존을 위해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다.
저 멀리 주택가에 진남관이라는 큰 기와지붕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의 지휘본부다. 유일하게 목조 건물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공원의 중간 쪽 위치에 돌산공원 기념탑과 기념시가 적혀있다. 위치가 높은 곳에 있어 여수 시내와 바다와 대교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여수 오동도 가는 길목 돌산공원 '장군도'(이순신장군이 승전한 섬) 근경
*오동도
여수 오동도 유람선에서. 저멀리 오동도 전망대
여수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도착했다. 가는 길의 풍경은 한쪽은 여수 시내 한 쪽은 오동도가 보인다.
오동도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700여년전에는 오동나무가 많았다 한다. 꽃은 보라색이고, 그 오동나무 열매를 봉황이 먹는다. 봉황은 왕권을 상징하는데, 봉황이 그 열매를 따 먹는다는 것은 왕권이 무너진다 하여 오동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렸다(왕명으로) 고려 공민왕 시절 후반에.
지금은 시누대나무가 아주 많다. 오동나무는 10여년전에 몇 그루 심음. 사시사철 관광이 가능한 아름다운 섬이다. 「신돈」이라는 사람이 오동나무 숲의 섬을 발견. 상상의 새 봉황이 오동나무 열매를 따 먹었고, 반란이 온다는 속설. 즉 봉황이 있는 곳은 모반의 징후가 있다고 믿었다.
오동나무가 사라진 후에는 어느 부부가 살았다. 오동나무 부부의 부인이 정조 위험을 느껴 자결하고 결국 남편은 이곳을 떠나고, 후일이 남편이 눈보라칠 때 찾아오니 그 자리에 붉은 꽃에 새순이 나더라고. 그래서 여인네로 시 지었다고.
입구에 오동나무는 한 그루는 20년전에 심었다고 12월에 꽃 개고 봄에 안 핀다고 한다(금년엔) 그건 작년 12월 이상 고온으로. 오동도 중턱에 후박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서 있다.
나무의 갈라진 부분에 남자성기 모양의 둥근 모양이 붙어 있다. 신기하다. 봄에 다 하루만 꽃이 핀다. 새순은 연갈색으로 남정네의 팬티 3장을 적실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그 모습이
외도가 인공으로 꾸민 아름다움이면 오동도는 꾸미지 않은 순수의 아름다움이다. 외도는 70%가 인공 30%가 자연, 오동도는 70%가 자연, 30%가 인공이다. 특이한 점으로는 시누대나무가 상당히 많았다. 그 대숲 앞에는 야외 음악당이 있다. 의자도 있고 둥글게 꾸며져 있다.
70년대에는 자연적인 라이브 카페로 대학생들의 시름을 사르는 장소라고. 그 곳에서 색스폰 연주자의 독주가 너무 좋았다. yesterday. 그 절절한 선율에 나는 곁에서 속으로 그 가사를 읊고, 사진도 찍어보고 그랬다.
시누대나무 숲은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어 그 사이로 “나 잡아 보라”는 길이란다. 앞 사람의 머리만 보고 따라간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낭만적인 길이다. 끝이 없는 긴 시누대나무 터널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오동도 전망대에 올라보니 먼 바다까지 보이고 곳곳에 떠 있는 어선도 보인다. 하산하여 내려오니 이순신 장군의 친필 어록이 시비로 서 있고(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뜻의) 모형 거북선도 있다.
곳곳을 돌아보고 동백 열차로 육지와 연결된 포장 도로를 따라 오동도를 떠나 왔다.
만성리 해수욕장 여름 풍경
여수시에는 2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그 중 이 만성리 해수욕장은 검은 모래라고 한다. 또 하나는 방죽포 해수욕장에는 적송이 많았다. 가족 휴양지로 아담하고 좋은 곳이다. 내려보지는 않았지만 차창 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아름답다.
*보성 녹차밭
보성 녹차밭의 싱그러운 풍경
작년 여름에 방영된 드라마 「여름 향기」 촬영지다. 그 때 그 드라마를 보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여행코스를 택하였다.
오동도에서 순천시내를 지나 몇 시간을 달려왔다. 가면서 보리밭을 보았다. 요즈음 보리농사를 짓는 곳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데 들판에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국내 보리산지 1위라고 한다. 보성 득량만 간척지의 쌀도 유명하다. 예당 저수지 물로 생산하여 질이 좋다.
TV 드라마에서 송승헌이 그 사랑하는 여인 손예진을 찾아내려 갈 때 좁은 시골 도로도 그대로이고, 버스가 멈추던 곳도 똑같고 참 신기했다. 아스라한 젊은 날의 추억을 더듬는 듯, 사랑의 향기가 나는 듯. 아직 5월이니 완전한 여름은 아니어도 짙푸른 들녘, 특히 상록림으로 우거진 보성 녹차밭의 정경은 벌써 여름 향기로 가득하다.
녹차밭에 도착하기 전에 녹차의 종류에 대해 안내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차에는 우전차, 세작, 종작, 대작 이 네 종류가 있다.
우전차는 우전 해차라고도 하며 곡우(4월 20일) 후 1주일 내에(4/20 ∼ 4/27일까지) 차잎을 딴 것이고, 세작은 우전차 딴 후 일주일 이내(4/27 ∼ 5/3일까지, 종작은 세작 딴 후 일주일 이내(5/3 ∼ 5/10일까지)) 대작은 종작 딴 후 일주일 이내(5/10 ∼ 5/17일까지) 딴 것을 말한다. 원래는 하동 작설차가 원조인데 25년전에 재일교포가 땅을 사서 이곳에 재배했는데 대성공하여 현재는 대한다업(주)로 성공했다. 이 근처 차밭 중 보성 녹차밭이 최고다. 전남 보성군 미병리 해발 353m의 산에 가꾼 국내 제일의 차농원이다.
관광버스가 차밭 입구에서 깊숙히 올라가 주차했다. 그 곳에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상록수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크기도 굵고 일렬로 줄 서 있어서 풍경이 아름답다.
한 동안을 걸어 오르니 보성 녹차밭이 나왔다. 비스듬한 산 중턱은 모두 차 밭으로 만들었다. 영화에서나 본듯한 그런 풍경이다. 이국적이다. 중국 용정차밭과 유사하다. 생김새도 산의 형상도 모두 다 유사하다. 일요일이라서 관광 온 관광객이 초록의 차밭 사이길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사진을 찍으며 한 바퀴를 돌아나왔다. 많이 찍었다.
내려오다가 차직판장에 들러 보성녹차를 사고, 즉석 녹차물을 한 병씩 사서 마셨다. 내려오면서 만나는 싱그러운 상록수가 아름다움의 극치다. 관광버스를 타고 다음의 관광지인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낙안 읍성
낙안읍성 민속마을 정문(동문)으로 입장하여
보성 녹차밭을 떠나 낙안읍성으로 가면서 벌교읍을 지났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은 전남 보성군에서 제일 큰 거리가 있는 읍이다. 서울의 명동거리라며 버스기사는 우리 일행을 벌교읍의 가장 번화한 거리, 번화가로 안내했다. 이 곳에 와서는 주먹자랑을 말라고 했다 한다. 그만큼 깡패가 많다고 했다. 이 지역의 산물로는 참꼬막과 딸기가 유명하다.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여기서 낙안읍성까지는 10분거리다.
낙안읍성의 소재지가 현재는 순천시다. 승주군이 순천시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이 세 개 행정구역이 여수시 하나로 통합되었다. 낙안읍성은 벌교와 낙안의 경계지역에 있다. 낙안은 배가 유명하다. 또 낙안 오이도 유명하다. 구례오이도 유명하지만 낙안오이도 유명하다. 20kg에 2만원 정도이고 1box에 80∼90개가 들어있다고 사가라고 권한다. 낙안읍성 안에 66가구 261명이 살고, 읍성 밖에 25가구가 산다. 총 91가구가 산다. 임경업 군수가 이 고을에 오면서 마을을 만들었다. 이 곳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며 낙안읍성을 관리하고 있다. 성 관리와 6만 4000평(내부 48000평)을 옛날 자연 그대로 지키고 있다. 대장금 MBC TV 드라마 촬영지기도 하다. 구옥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단지 토성이었던 것을 석성으로 바꾼 것 뿐이다. 석성을 높이 쌓게 된 원인으로는 왜구를 막으려고 그렇게 설립한 것이다.
나무, 수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남문, 북문, 동문 세 개로 성을 지키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민가에서 외지 손님이 오면 민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개는 민속촌 마을만 형성해 놓고 마네킹이 모양만 흉내내고 있는데, 이 낙안읍성은 민속 마을에 실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큰 자랑거리다. 이색적인 관광지다. 더구나 오픈시켜 누구든 숙박비만 내면 자면서 이곳 사람들과 지낼 수 있다니 어디 이게 예사로운 일이던가. 다음 기회에 우리 네 가족 내려와 민박을 하며 골골마다 다 돌아보자고 다짐했다.
여기까지 여행을 모두 마치고 곡성역에 와서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