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와 심화,
혼란과 좌절의 1930년대, 일제 말 암흑기의 시문학사
양상들
1. 문단 내외의 상황
1) 일본 문단의 움직임
1930년대가 격동기였던 것은 비단 식민지 조선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물론 아니었다. 미증유의 세계대전을 목전에 둔 이 시기의 특성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혼란스런 국면들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단에 있어서도 이 점은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인데, 그런 까닭에 당시 우리 문단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관계에 있던 일본 문단의 경우를 살피는 일은 기왕의 논의를 위해 유용한 작업이 될 것이다.
1929년은 일본 근·현대 문학사에 있어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² 많은 작가들이 잇달아 좌경화의 길을 택하였으며, 그런 만큼 문단에서의 프로문학의 영향력 또한 상당한 정도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 시기를 전후하여 공산당원 및 그 동조자들에 대한 탄압이 조직적으로 행하여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1928년 3월 15일과 1929년 4월 16일에 있었던 대규모 검거사건이었다. 이들 두 차례 검거사건은 물론 일본공산당 조직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그로 인해 프로문학운동의 위축 또한 불가피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긴장 속에서나마 불안한 융성을 구가하던 프로문학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된 것은 1933년 무렵이었다. 그 해 2월, 『부재지주』·「해공선」 등의 프로 작가 고바야시 타키지小林多喜二의 체포와 의문사는 프로문학계 내부의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어서 공산당 핵심 간부들의 잇따른 옥중 전향 성명 발표와 일본주의로의 귀의 천명은 프로문학 자체의 구심점을 상실케 했던 대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듬해인 1934년 3월, 일본 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의 해산과 함께 이른바 '전향의 계절'이 도래하게 되었다. 10여 년 간을 일본 문단에서 거대한 세력으로 군림하던 계급주의문학이 더 이상 일본 내에서 설 땅을 잃게 된 것이다.
그 시기나 사정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이와 같은 사정은 다른 유파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학사에서는 흔히 1933년부터 1937,1938년까지를 문예부흥기로 규정하고 있다.³ 프로문학의 해소를 전후하여 다양한 유파의 주의 주장과 활동들이 만개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1930년을 전후하여 바람이 일기 시작한 각종 문예지와 종합지들의 등장은 이미 유행처럼 번지다시피 했고,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을 비롯한 권위있는 문학상의 신설이 그 뒤를 따랐다. '13인 구락부'의 성립과 때를 맞추어 소위 순정예술파나 신흥예술파 등이 새롭게 득세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그러나 외견상 보이는 이와 같은 문단의 활성화 양상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외적 정황은 점차 열악해져가고 있었다. 좌익사상과 더불어 자유주의사상들에 대한 탄압 또한 점차 강화되어가는 추세였던 것이다. 물론 이후의 시대와 비교한다면 아직 그런 대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자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시대는 분명 국가적 '비상시국'체제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937, 1938년경에 이르면 프롤레타리아 문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들이 넓은 의미에서의 '전향'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위 국책문학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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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쇼 마사오 외, 고재석 역, 『일본 현대 문학사』 상, 문학과지성사, 1998, 86쪽.
3 위의 책, 170쪽.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외 지음
2024. 10. 17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