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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뱀 소동
그러던 하루, 기로에겐 경악할 만한 사고가 터졌는데......
# 뱀소동 I
밤에, 언뜻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핸드폰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
비몽사몽 전화를 받아 보니, 김 선생님이셨습니다.
"무슨 일여? 집에 전화를 몇 번씩 걸어도 없어서, 핸드폰을 혔는디..." 하시기에,
"예, 저 지금... 다른 곳에 와 있거든요. 산장집요."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무슨 일로?"
"집에... 뱀이 나와서요. 뱀이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도무지 찝찝해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산장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있는 중이었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여?"
저 쪽에서 자고 있던 산장 아저씨를 깰 것 같아서(이미 잠이 깨어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녁에 방에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격이 짖기에... 나가 보니,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다가,
언뜻, 격이 바라보는 곳을 보니, 웬... 검은 물체가 있기에, 자세히 보니...
뱀이잖아요! 뱀!! 그것도, 검은 뱀......
그래서 얼른 마루의 전기를 켰습니다.
그랬더니 뱀이, 스르르륵...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차라리 밖으로 나갈 일이지, 왜? 안으로 들어가느냐구요.
그 것 참, 낭패더군요.
아니, 이 게 무슨 일인가!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고... 근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기분 나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냥 미치겠드라구요.
그런데도 그 와중에 나는, 순간적으로 마루 구석에 있었던 백반 봉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랬던지, 며칠 전에 나는 백반을 사와 집 주위에 뿌려 놓았는데, 그 때 남은 게 있었거든요.
아니, 그렇게 백반을 뿌려놓았는데도 뱀이 있다니, 게다가... 그 것도,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다니......
그동안 몇 년, 이 집이 방치되어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뱀이 들어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내가 집 주위에 백반을 뿌려놓으니, 나갈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집안에 남아있었던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여태까지 뱀과 함께 생활했다는 얘긴가요?
"아이고!"
나는 얼른 뱀이 있던 곳에, 봉지에 남아있던 백반을 뿌렸습니다.
그 중 한 덩어리가 뱀의 몸통에 떨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뱀도 움찔하더군요. 그리곤 스스슥... 땔감으로 쌓아놓았던 나무 틈 사이로 모습을 감추는 것이었습니다.
"아, 안 돼!" 하고 소리까지 쳤지만,
이미 꼬리만 남긴 채 들어가는 뱀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구요?
아, 어떻게든 밖으로 내쫓아야 했는데,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한담?
아무 정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루를 발로 차며, 위에서 쿵쿵 소리를 내어보았지만, 그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래서 얼른 새로운 백반 한 상자를 들고도(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무기는 백반밖에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오후에 미술 도구 상자 안에 있던 석유통을 꺼내는데, 서울에서 가져온(지난번에 샀던 백반은 그 것을 찾아내지 못해서 샀던 것임) 백반이 눈에 띄어, 역시 마루에 내 놓았었거든요.),
내 발 밑으로 뱀이 기어오를 것 같은 상상에...
그걸 피한답시고, 펄쩍펄쩍 뛰면서... 얼른 고무신을 걸친 뒤, 마당에 내려오자마자 격의 줄을 풀어주는 등(이럴 땐 격이가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했답니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도 있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그런데 그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루 밑에 땔감 속으로 몸을 감춘 뱀이, 이제는... 보일 리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없어져버린 게 아니라(차라리 어딘가로 사라졌다면 모를까), 그 틈바구니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 뱀을 떠올리니, 소름이 끼치고... 아무리 백반을 손에 들고 있었다고는 하나, 내가 머무는 안방과 붙어있는 마루 밑에 뱀이 들어갔는데,
내가 어떻게 방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아이고!"
끔찍하기까지 하더라구요.
그렇게 초긴장한 상태로 마당에 서 있다가, 생각 끝에... '산장 아저씨께 연락을 해 보자'고 마음는 먹었는데,
아, 하필이면... 핸드폰도 전화도 방에 있기 때문에,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면, 마루를 통과해야하는데...
아,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러지도 못하고... 나는 마당 한 가운데서, 백반 한 상자만 손에 쥔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안절부절못하고,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업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나 참! 이 게 뭐 하는 짓인가?' 하고, 겨우 정신을 차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신발을 신은 채, 마루로 후다닥 뛰어 올라가, 신발을 내팽개치듯 벗어버리고는... 방까지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찾긴 했는데, 그리고 들고 뛰어나오려고 했었는데, 일단 방에 들어왔더니... 전화를 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전화부터 걸었습니다.
내 얘길 들은 산장아저씨는,
"기둘려! 바로 갈께." 하며 전화를 끊더군요.
그러고나서도 문제였습니다.
나는 다시, 마루에 있던 고무신을 신고... 또 다시 (아까처럼)펄쩍펄쩍 뛰어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개줄에 묶여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선 뱀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줄을 풀어놓았던 격은,
꽃을 심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날더러 장난을 치자고 하던데...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겠드라구요.
그 뱀이 나무 틈사이에서 웅크린 채,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정말... 난감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일은 또 처음이어서, 머릿속이 혼란스럽기까지 하더라구요.
그 뱀이, 그 뱀이... 나를 노리고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방으로 기어들어간다면?'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쪽에서 랜턴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산장아저씨가 오는 것이었지요.
"무슨 일인디?"
"아, 예... 어서 오세요."
나는 그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드렸고, 산장아저씨는 겁도 없이,
"그러믄... 저 나무를 다 꺼내야겠구만." 하시면서, 정말 서슴없이 뱀이 들어간 마루 밑의 땔감 나무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심하세요!"
나는 몸을 움츠리며, 아직도 마당 한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괜찮여!" 하시면서 아저씨는 계속 나무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땔감 나무들은 어지럽게 마당에 쌓이기 시작했고, 아저씨는 마루 밑에 랜턴을 비추면서... 이리저리 확인해보곤 했는데, 한참 만에 드러난 마루 밑바닥엔... 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니, 이런 일이 있나!
차라리, 뱀이 그 곳 어디엔가 있어서, 잡아냈다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는데,
마루 밑에서 부엌으로 난 구멍이 있던 것 같았는데, 거기로 이미 빠져나간 뒤였던가 봅니다.
이런 게, 흙집의 단점이지요.
쥐든 뱀이든, 흙으로는 어디든 구멍을 뚫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 집 부엌은, 걱정스럽게 생겼거든요.
몇 년 동안 방치해 놓는 사이에, 아궁이가 꺼져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데,
'그걸 메우고 입식부엌으로 만든다'며, 친구가 집을 정리하면서 생긴 자갈들을 온통 거기에 갖다가 부어놓기만 한 상태여서(언제 일이 진행될 지도 모름), 겉문만 굳게 닫아 놓은... 이 집의 치부거든요.
산장 아저씨는 이번에도 부엌을 한 번 훑어보더니,
"그러게도 생겼구만..." 하시는 겁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론... 뱀은 '夢想?'의 부엌 어딘가로 숨어버렸고, 마루 밑에 차곡차곡 저장되어있던 땔감 나무들이 내팽겨진 마당하며, 어질러진 마루며... 여기 '夢想?'의 분위기가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드라구요.
'쳇! 현판만 멀쩡하게 달려 있으면, 뭐 해? 뱀이 사는 집인데......' 하는 생각이 드니, 제 몸이 다 굼실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걱정스럽게 서 있는 나에게,
"비암이 괜스리 사람을 헤치지는 안혀. 그렁게 너무 걱정허지 마." 하고 산장아저씨가 나를 안심시켰는데,
그래도 엉거주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나에게,
"근디, 어쩔 참여?" 하고 묻더라구요.
"예? 아... 근데, 뱀이 나오는 집에서 어떻게 살지요?"
마치 나는, '이런 집에선 앞으로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괜찮여... 살다 보믄,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하고 산장아저씨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을 하셨는데,
"아이, 걱정이네! 어쨌거나, 오늘 밤 여기서는 못 자겠는데요?" 하면서, "아이! 도무지 찝찝해서... 이 상태로 어떻게, 저 방에 들어가 있을 것이며, 하물며... 또 잠까지 잔답니까?" 하는데,
"그러믄... 어뜩할 참여?" 하고 묻더라구요.
그런데 갑자기,
'이러다 산장아저씨가 돌아가면... 어떻게 된다지?' 하는 생각이 스쳤고, 앞이 캄캄해졌던 나는,
"저, 죄송하지만요... 저 좀, 재워주세요." 하게 되었답니다.
내가 그런 말을 산장아저씨께 선뜻 할 수 있었던 것은요,
지난번에, 산장 아저씨는 나에게, 혹시... 누군가 손님이 많이 와서, 잠자리가 부족하면... 산장으로 오라고, '그러면 얼마든지 재워주겠다'는 얘기를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장집은 '손님 방'이 많거든요.
그 순간에 그 생각이 떠 올라, 염치고 뭐고 따질 것도 없이... 그렇게 말해버렸던 것인데요,
"그려? 그럼, 가." 하고 앞장을 서시기에,
나는 대충... 문은 닫아놓고, 격도 다시 묶어놓고는... 산장아저씨를 따라갔던 것입니다.
"근데... 어째, 뱀에 쫒겨서... 도망가는 것 같아... 이상하네요......" 하고, 내가 민망하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해서 얘길 하자,
산장아저씨는 웃기만 하드라구요.
그렇게 나는 산장아저씨를 따라 그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집에 도착해서는, 날 안심시키려고 해서인지... 본인이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뱀 때문에 겪었던 몇 가지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집안에 뱀 두 마리가 들어와, 한꺼번에 두 마리를 잡아 죽였다는 둥,
이 지역이 수몰지역이라, 일정기간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거한 적이 있는데... 거기의 바닥이 마루였는데, 나중에 마루를 뜯어보니... 그 안에 뱀들이 시글시글해서,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뱀 위에서 잠을 자고 살았다는 둥... ( 그 순간, 나도 지금... 그러고 살게 될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나는 진저리까지 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아이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뱀 얘기'......
내 몸에서 소름이 돋고 있는 기분이기도 했답니다.
"근디, 어떻게 잘 판여? 이 방이 킁게... 나하고 같이 잘판여, 저기 다른 방에... 보일러를 넣어줄 팅게, 따로 잘판여?" 묻더군요.
"글쎄요. 저야, 뭐... 아무렇게나......" 하는데,
"지금, 보일러 넣을라믄... 조금 복잡헝 게, 그냥... 나허고 이 방에서 자도 될까? 방이 넓어서, 괜찮을 거 같은디..." 하시기에,
"그러지요, 뭐......" 하고 정말 눈치만 바라보았지요.
어쨌거나 오늘은 산장 아주머니가 전주의 아이들에게 가는 날이었던지, 아저씨 혼자 주무시는 날이어서... 그렇게 자게 되었답니다.
물론, 아주머니가 계셨다면 다른 방에서 잤겠지만요......
아무튼,
모처럼 TV 뉴스(내가 도착하니 곧 뉴스가 나왔습니다.)를 보았고, 뉴스를 보다가... 산장아저씨는 먼저 잠이 드셨는데,
아저씨께 미안해서, 뉴스가 끝나자마자... 나는 TV를 껐고,
잠을 청하다, 얼마 뒤에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던 겁니다.
남의 집에 잠 자러 와서, 시끄럽게 굴며... 자는 사람(산장아저씨)을 깨워놓은 꼴이지요......
그런데, 김 선생님은 내 전화를 받으시면서도,
"그렸어? 하 하 하" 하고, 너무 즐겁다는 듯(?) 웃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니, 호수에서는... 아무 겁도 없이(내가 선생님께 배를 태워드릴 때 그렇게 느끼셨는지) 노를 잘만 저어 배를 타는 사람이, 게다가... 호수에서, 헤엄치는 뱀도 보았다던 사람이... 그깟, 뱀 한 마리 나왔다고... 집에서 펄쩍펄쩍 튀쳐나와서 도망가? 와 하 하 하......" 하고 박장대소를 하는 겁니다.
듣고 보니, 내가 참... 면목도 없드라구요.
"글쎄요, 선생님... 그렇게 됐습니다."
"아이고, 우스워서......" 하시더니, "뱀이, 공연한 사람 헤치나?" 하고 핀잔까지 하시던데,
"그래도, 선생님! 어떻게, 뱀이 구들장 밑으로 들어간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겠습니까? 부엌으로 들어갔으니, 어쩌면 방 구들장으로 들어갔을 텐데요...... 그렇다면, 제가 자는 방바닥 아래에 뱀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 그건,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인데요......" 하고 그 밤에도 약간 소리를 치고 말았는데,
"그렇다고, 소녀처럼 도망 나오면 어떻게 혀!" 하고, 선생님은 여전히 날 놀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에? 소녀처럼요?"
나, 참... 사실, 전화를 받으면서 내가 생각해도 좀 체면이 구기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뱀이라면, 끔찍하게 싫은데, 어쩌란 말이냐구요?
그래서 산장아저씨도 웃기만 하셨나?
아이! 이거, 사람 체면이... 영 말이 아닙니다. 그 놈의 뱀 한 마리 때문에......
어쨌거나, 나는 뱀이 싫습니다.
얼마 전 뒷집 영감님이 돌아가시고, 그 집 사람들마저 집을 며칠 동안 비운 밤(하필이면 그 즈음엔 안개비가 내리는 등 분위기가 괴기스럽기만 했었습니다.)에도 끄덕없이 집을 혼자 지키고 있던 나지만,
뱀은 아닙니다.
글쎄요. 꼭 무서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내 몸 어딘가에... 내가 싫어하는 이 물질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찝찝한 것 같은 마음,
이 집 어딘가에, 스스슥... 기어다니며 눈치를 살필 뱀이 있다는 사실에,
내가 어떻게 마음 편히... 잠을 자겠느냐 말입니다.
물론, 뱀이 스스로 나를 헤치러 방까지 들어오진 않겠지요(?).
그리고, 나에겐... 아직도 백반이 있잖습니까? 격도 있구요......
그렇지만 뱀과 함께 생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턱, '夢想'이란 현판까지 걸어놓았는데, 이를 어떡한다지요?
아이, 왜 이런 일이 생겨가지고는......
5 . 23
# 뱀소동 II
산장 집에서 자고 '夢想?'으로 돌아오는데, 옆집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날 부르시기에, 가 보니,
"어디서 오는 거여?" 하고 물으시기에,
"예, 산장집에서 자고 오는 길입니다."
"무슨 일여? 남의 집에서 잠을 다 자고..."
"어젯밤에, 집에... 뱀이 나와서요."
"뭐여? 비암이?"
"예..."
나는 할머니께, 간략하게 어제밤 상황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 게 무슨 일여?"
"그러게요. 뱀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네요. 집에 다시 들어가기도 싫고......"
"근디, 너무 그렇게 생각허지 마."
"예?"
"꼭 그렇게만 생각허지 말라고..."
"......"
"어쩌믄, 부자 될라고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몰릉게..."
"아이고, 할머니도... 뱀이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부자하고 무슨 관계가 된다구요? 저는 부자고 뭐고, 뱀만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뱀을 집안에 두고 살아요?"
"내 말대로 혀! 이제 재수가 좋을 거여..."
그렇게 심란한 마음으로 '夢想?'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지 않고서야, 어쩌겠습니까?
토요일 오전 내내 나는, 마루 밑에서 나온 땔감나무를 집 옆쪽으로 옮겨 쌓는 작업을 했습니다.
다시 마루 밑에 넣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이젠, 마루 밑은 깨끗하게 비워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뱀 때문에요......
그러다 보니, 괜한 일이 생겨... '시간만 뺏겨, 내 일도 못한다'는 불평을 해대며 말입니다.
게다가, 일기 예보로는 비가 올 것 같다고도 해서, 더욱 걱정스러웠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작업방엔 군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혹시 뱀이 구들장 속으로 들어갔다면, 도망가라고요......
그러는 사이에 키큰 아저씨가 나오시며,
"뭔 일인디, 집안이 이렇게 어수선혀?" 하시기에,
어젯밤 얘길 해 드렸더니,
"다, 그런 것여!" 하시는 겁니다.
"그래도, 뱀이 들어간 집에서 어떻게 살지요?" 나는 또 그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 건 그려. 조금 맘이, 껄적지근허긴 헐 거여... 그려도, 이런 시골에서는 흔한 일잉게, 참고 살어야지 뭐. 근디, 산장집에 가서 잠을 잤다고?"
"예... 뱀이 방구들 아래에 있을 텐데, 어떻게 그 위에서 잠을 잔답니까?"
"허허허허... 도시 사람이라 다르구만..."
이렇듯, 내 얘기를 듣는 사람마다, 다... 나를 놀리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이고, 체통머리 없이... 뱀에게 쫒겨난 꼴만 되고 말았네요, 참!
그런데, 일이 생겨... 결국은 오늘도 나는 '夢想?'에서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루 밑을 정리를 하고, 배가 고파서 점심을 해 먹었는데,
한 지인이 오는 바람에 그의 차로 정읍의 김 선생님 댁에 같이 간 것입니다.(따지고 보면, 오늘도 도망간 거지요.)
가는 길에 빗방울이 뿌리던데, 많은 비는 아닐 것 같아...
"기왕에 올 비면,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비가 더 와야 하는데......" 하면서 갔는데,
저녁 무렵이 되면서 비는 제법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뱀이 들어간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면서, 모처럼 단비가 오는데 그냥 말 수 없지 않겠느냐(?)는 둘러 붙임으로)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시며 밤을 지낸 것입니다.
물론, '夢想?'을 떠나기 전에, 격에게 밥을 주고 가긴 했습니다.
그렇게 뱀을 피해 또 다시 하룻밤을 다른 곳에서 보낸 뒤 돌아와 보니,
일요일을 맞아 친구가 처와 함께 와서, 통나무집의 잔디 밭 풀을 뽑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뱀 때문에 일어났던 일을 얘기하게 되었는데,
"야, 나라도 그랬겠다!" 하며, 친구는 선뜻 내 행동에 동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반색을 하며,
"그렇지? 너도 그랬겠지?" 하고, 오랜만에 동지를 만난 기분이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 그 놈의 뱀 때문에 마음잡지 못해 하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로 전락했던 얘기가, 나와 동갑이면서도 같은 생각이라는 친구의 말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던 순간이기도 했답니다.
체통머리 없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동질감' 말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젯밤 내가 김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산장 아저씨는, 내 걱정에(비는 내리는데, 그 전날 밤에 그런 일도 있어서) 집 전화로 몇 번 걸어보았는데, 받지를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쪽을 살펴봐도 집엔 전기 불이 꺼져 있는 상태라서, '어딜 갔나보구나...' 했다면서, 오늘 아침에도 확인하러 '夢想?'에 직접 와 보니, 개만 있고 방문엔 열쇠가 잠겨져 있어서... 나름대로는 걱정을 많이 하셨던 모양입니다.
고마웠습니다.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 내 걱정을 해준 일이 있었다는 게... 어쩐지 고맙고 또 마음 한 편으론 푸근한 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런 게 감동일 거구요.
근데요, 산장아저씨가 그 말을 할 때 옆에서 들었던 내 친구는요, 나중에(산장 아저씨가 돌아간 다음에),
"너는 참, 재주도 좋다. 여기 온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너를 생각해 주는 이웃도 생겨있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허기야, 옆집 할머니는 틈나는 대로 '夢想?' 쪽을 살피면서, 내 모습이 안 보이면... 불안해져서,
'어딜 갔나? 언제나 오나?'하시면서, 더 자주 내 모습을 찾으신다더군요.
그리고 키큰 아저씨도, 이 앞을 지나다가 내 모습이 안 보이면... '허전하다'고 하시거든요.
그렇게 내가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정말, 그 놈의 뱀 한 마리 때문에...
'여기서 어떻게 살지?(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것처럼)' 하고, '떠나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내가,
경박한지도 모릅니다.
그 분들 말처럼, 여기는 시골이니까, 시골에선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으니까...
(다, 나보다 오래 사신 분들이, '사는 게 다 그런 거여...' 하시니, 그렇게 믿고......)
마음을 조금 비우고,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어느새... 그렇게나 정이 든 이웃들이 있는데, 그깟... 뱀 한 마리 나왔다고, 우스꽝스럽게 이 마을을 떠날 순 없지 않겠습니까?
어제 오늘 비가 내리고,
지금은 맑은 공기에 더욱 깨끗한, 이 아름다운 마을이, 오늘따라 더욱 빛나 보이는 건...
다, 사람들의 정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 정은, '뱀 소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도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5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