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싣고 싶은 시조 · 33
서석찬의 시조
김우연
(문학평론가)
서석찬 시인은 경주시 현곡면 하구에서 태어났다. 1979년부터 <맥시조> 창립 회원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1988년 『하늘아 하늘아‘로 등단하였다. 시조집으로 『서라벌』(2018), 『사랑 꽃 그리고』(2018)이 있다. 서석찬 시인은 한마디로 ’서라벌‘ 시인이다.
그는 『서라벌』 서문에서 “나는 서라벌에서 나고 서라벌에서 자랐고, 이후의 삶도 그러리라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약 40년 전에 연작시「서라벌」서시「문열 열면서」에서 “외롭거나 아니면 잊히는 것의 두려움”, “혹시나 천 년을 울릴/ 에밀레종 소리가 될지”라며 서라벌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데, 시조집 『서라벌』을 펼쳐드니 에밀레종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의 시조집 『서라벌』은 서라벌을 주제로 한 250편의 연작시조집으로 한국 시조사에 영원한 고전이 될 시조집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 믿으며 몇 작품을 살펴본다.
1. 장항사지 5층 석탑
연하게 감물이 든 한복을 걸친 총각
터벅터벅 더딘 걸음 걷다가 쉬는 모습
스치는 한 점 바람도 감히 범치 못할 고요
발그레 귓불까지 수줍은 시골처녀
살포시 치맛자락 날릴 듯 말듯하며
설익은 산골처녀의 젖가슴이 뵐 듯 말 듯
-「徐羅伐 158-장항사지 5층 석탑」 전문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의 장항사지에는 동서에 각각 석탑이 있다. 장항사지의 서쪽 5층 석탑은 국보 제239호이다. 서탑은 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웅장하며 동탑은 지붕돌만 낮게 쌓아두고 있다. 원형이 파괴된 모습이다. 장항사지는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뒤쪽이며 토함산에서 넘어가는 길이 잘 닦여 있다. 장항사지는 7세기 후반 신라문화의 특질을 반영하고 있으며 소불 정양호 선생이 경주에서 가장 잘 음미해야 한다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첫째 수는 서탑을 초장에서 “연하게 감물이 든 한복을 걸친 총각”이라고 묘사하였으며 천 년을 이어오는 우리 전통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중장에서는 ‘터벅터벅 더딘 걸음’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를 연상케 한다. 종장에서는 “스치는 한 점 바람도 감히 범치 못할 고요”라며 도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이미 승속의 구별을 넘어선 선(禪)의 경지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변에 흔한 남성의 모습이기도 하다.
둘째 수는 장항사의 동탑을 “수줍은 시골처녀”라며 전체적으로 묘사를 통하여 탑의 아름다움과 관능적 상상력이 동원되고 있다. 평범한 눈으로 본다면 사실 동탑은 서탑에 비하여 볼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동서탑을 연인으로 상상이 되면서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설익은 산골처녀’가 된다. “젖가슴이 뵐 듯 말 듯”이라며 관능미와 상상력이 고도로 비약되면서 이 작품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장항사지 동서탑을 처녀와 총각으로 표현한 것이 낯설게 하기의 표현이며 시인의 개성적인 눈에서 시적 형상화를 이룬 것이다. 특히 관능적인 표현은 다음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어 서석찬 시인의 개성적인 특징 중의 하나이다.
2. 무장사지 억새꽃
갑옷과 투구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억새가 일어선다
붉은 피를 흘린다
은장도 끝에 매달린
여인의 정절과 같이
하늘에 그려지는 전투기의 꼬리 같은
임신한 억새들의
새 하얀 그 출산들
하늘로 승천하는 꽃
꼬리가 흰 수정란들
-「徐羅伐 247-무장사지 억새꽃」 전문
이 작품은 서정시의 본령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무장사지에서 억새꽃을 바라보고 있다. 불교의 성지에서 불교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억새꽃을 노래하고 있다.「서라벌」의 250편의 마무리 단계에 와서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 불교와 불교 아닌 것의 구별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불법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시는 말하기가 아니고 보여주기라고 한다. 설명이 아니라 묘사를 동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작품의 첫째 수에서는 가을에 태풍이나 센 바람에 서걱거리는 억새들이 꺾이고 일어서는 것을 옛 무사들이 백병전을 연상케 한다. 둘째 수에서는 하얀 씨앗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하늘에 그려지는 전투기 꼬리 같은”이라고 표현한 것도 독특한 발상이다. ‘갑옷’, ‘투구’, ‘전투기’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면서도 내용을 살펴보면 “하늘로 승천하는 꽃/ 꼬리가 흰 수정란들”이라면서 생명의 신비를 아름답게 독창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서정시의 진수를 찾은 것이라 볼 수 있다.
3. 양남 주상절리
아득히 멀고 먼 날 뜨거운 심장의 피
지축을 뚫고 솟구치며 바다에 홀로 빠지다
한 송이 굵은 돌 꽃을
부채로 활짝 펼치다
하얀 파도에 새까만 입맞춤을 하면서
두 팔을 활짝 벌려 온 몸을 드러내다
마침내 세상을 보다
주상절리 자유를 찾다
-「徐羅伐 212-양남 주상절리1」 전문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에 소재한 주상절리는 2012년 9월 25일에 천년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되었다. 이곳 주상절리군柱狀節理群은 신생대 제3기의 에오세(5400만 년 전)에서 마이오세(460만 년 전) 사이에 경주와 울산 해안지역 일대의 활발했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 시는 매우 시적 형상화와 시인의 개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활짝 펼친 부채 모양의 양남 주상절리柱狀節理를 한 개인이 사랑을 완성한 것에 비유하였다. 작품의 구성도 탄탄하며 개성인 표현도 돋보여 현대시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서석찬 시인은 이 한 작품만으로도 한국문단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긴 것이다.
4. 일광문
울 할배 깨친 흔적 한 권의 책 부족하나
솟을 대문 아니어도 칭송 받는 그 자리
가난한 선비의 정신 닫혀 있는 일광문아!
시 한 수 물려 받아 가문의 뼈대 삼고
문전옥답 맞바꾼 책 한 권 지붕 삼아
아들 딸 기둥을 삼아 열고 싶은 일광문아!
-「徐羅伐 250-일광문(一光門)」전문
문門이란 열기 위한 것인가? 닫기 위한 것인가?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만 집착할 때 문의 기능은 사라지고 만다. 문의 기능은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곳이다.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시인은 한동안 닫혀 있었던 일광문을 다시 열고 싶다고 하고 있다. 그것은 할아버지 때는 수많은 묵객들이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자신은 주손(冑孫)으로서 그렇지 못했는데 앞으로 그 정신을 본받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이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시인에게 시詩는 단순히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흘러오는 문文의 물결과 한 몸이 되겠다는 것이다.
첫째 수 초장과 중장에서는 할아버지가 학문과 학덕으로 칭송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는 과거를 준비한 마지막 세대의 대유학자였다. 그러나 선비는 물질보다는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가난하다고 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할아버지가 남긴 글을 가문의 뼈대로 삼고자 하고 있다. 선비가 공부를 위해서 문전옥답도 책과 바꾸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할아버지 정신세계가 물질보다 중요함을 확실히 깨닫고 있다. 그래서 “아들 딸 기둥을 삼아 열고 싶은 일광문아!”라고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두 자녀 역시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고 이해할 날이 있으리라 본다.
할아버지의 유고집으로 하봉잡초下峰雜抄가 있다. 이것은 서석찬 시인의 선친이 쓰신 발문跋文을 읽어보면 30 년만에 발간한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문집 초안을 친히 다 만들어 두고서도 절대로 문집을 내지 말라는 유언들 받들기를 30년이었다고 한다.
‘손아석찬생조孫兒碩燦生朝’에는 손자 서석찬 시인에 대한 큰 사랑과 기대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조상들을 모신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에 있는 구산서원에는 정민공(서필), 양경공(서유), 귀봉공(서일원), 모암공(서사적)의 네 분의 위패를 모셨는데, 서석찬 시인은 조선 초 명재상 양경공 서유의 주손(冑孫)이라고 한다.
서석찬 시인의 『서라벌徐羅伐』 연작시조 250편은 다양한 소재로 박물관을 연상케 하였다. 시조집 발간 이후에도 ‘서라벌’ 연작시조는 계속 발표 되고 있다. 서석찬 시조시인이 있어 ‘서라벌’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들 정신 세계에서도 살아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