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한국인 슈바이처로 추앙받는 이용만 박사
나는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쳐들’이란 책을 준비하기 위해 <정부파견의사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 현장조사 방문을 하였다. 여러 가지 제약상 겨우 두 나라, 스리랑카(한규원, 2010.12.7~12.11), 네팔(이용만, 2010.12.11~12.15)를 방문하였으며 김호균 교수와 동행하였다. 공식적인 기록은 책으로 발간하였다.(한국국제협력단(심의섭 외),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쳐들, 2011, 256쪽). 여기에는 당시의 여행낙수를 남기고자 한다.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 인술을 실천한 이용만 박사
이용만 박사는 국내에서 안정적인 병원을 운영하던 중, "의술은 가장 필요한 곳에서 빛을 발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KOICA 정부파견 의사로 개발도상국 의료봉사의 길을 선택했다. 1993년 가족과 함께 방글라데시로 떠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만큼 강한 사명감을 품고 현지 의료에 헌신했다. 의료시설과 장비가 크게 부족한 환경에서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현지 의료진을 교육하며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데 힘썼다.
이후 그는 네팔에서도 의료봉사를 이어가며 오지 주민과 빈곤층에게 따뜻한 인술을 베풀었다.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보건의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 예방의학 교육과 의료인력 양성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환자의 손을 먼저 잡아 주는 그의 진료는 현지 주민들에게 큰 신뢰를 얻었으며, 한국인의 따뜻한 나눔 정신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의 역할도 수행했다.
이용만 박사의 삶은 의술이 생명을 치료하는 기술을 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실천임을 보여 준 감동적인 사례이다. 그의 봉사는 국경과 인종,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의 실천이었으며, 한국 의료봉사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오늘날에도 개발도상국 의료협력의 선구자이자 '한국의 슈바이처'로 기억되며, 많은 후배 의료인들에게 봉사와 헌신의 귀감이 되고 있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서 만난 사람과 삶
2010년 12월 11일 (토), 새벽 3시에 일어나 콜롬보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인도 제트항공편을 이용해 델리를 거쳐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공항에서는 25달러를 내고 간단한 절차만으로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숙소인 안나푸르나 호텔에 여장을 푼 뒤 KOICA 직원들과 함께 현지에서 11년째 운영 중인 한식당에서 동태찌개로 점심을 먹으며 낯선 땅에서 한국의 정을 느꼈다. 당시 네팔의 한국 교민은 약 300명 정도였으며, 호텔은 밤공기가 제법 차가웠고 온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개발도상국의 생활환경을 실감하게 했다.
2010년 12월 12일 (일), 카트만두 시내를 둘러보며 네팔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빠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일요일에 이용만 선생께서 우리를 위해 히말 드라이브와 피크닉을 마련해 주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고도 5000미터의 전망좋은 산위에서 히말라야 연봉을 바라보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마련해 주었다. '히말(Himal)'이 곧 '산'을 뜻한다는 사실처럼, 히말라야는 네팔인의 삶 그 자체였다. 토요일이 휴일이고 일요일이 정상 근무일인 독특한 제도, 오토바이로 가득한 거리, 매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는 경찰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몽키사원과 오래된 사원, 화려한 탱화, 그리고 사람들로 붐비는 재래시장은 오랜 역사와 종교문화를 보여 주었다. 자동차는 끊임없이 경적을 울렸는데, 이는 위험을 알리는 일상적인 운전문화였다. 사람들은 '미안하다'나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았지만, 대신 환한 미소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12월 13일 (월), 박타푸르 병원을 방문하여 병원장과 면담을 갖고 의료체계를 살펴보았다. 의학교육은 영국식 제도를 따르고 있었으며, 한·네팔 친선병원 등 한국과의 의료협력 사례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오랫동안 네팔에서 의료봉사를 이어 온 이용만 박사를 만나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도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였다. 의료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모습은 국경을 초월한 인술의 참된 의미를 보여 주었다. 또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도 높아 호텔 TV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모습이 자주 소개되는 등 한류의 확산도 실감할 수 있었다.
12월 14일 (화), 귀국길은 순탄치 않았다. 항공기 정비 문제로 출발이 지연되어 공항 인근 호텔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공항의 출국장은 정말 지루하고 힘들었다. 시계도 없은 공항이고, 승객은 한곳에 몰아놓아 몹시 혼잡하였다. 왁자지껄,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대개가 중동으로 떠나는 근로자들이어서 한밤에 떠나는 것이었다. 네팔 사람들은 자존심 강하고 배타적인 느낌도 받았다. 이들에게는 시간도 내일도 의미 없고, 아니다(no!) 란 단어가 없다고 한다. 자기의 실수를 좀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당연히 식민 통치의 후유증 일 것이다. 긴 기다림 끝에 홍콩을 경유하여 12월 15일 (수)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히말라야를 품은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봉사하는 한국 의료인들의 헌신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네팔은 화려함보다는 사람의 따뜻한 미소와 나눔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나라였으며, 이번 방문은 개발도상국 의료협력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소중한 여정이었다.
<더읽기>
‘방글라데시/네팔의 이용만, 방글라데시의 슈바이처 이용만, 즐겁지 않으면, 이 일을 못한다’,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쳐들, 한국국제협력단(심의섭, 김호균, 최영로, 박장원), 휴먼드림, 2011.03.14.: 122~129 참조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집'이라는 뜻이다. 네팔 사람들은 눈 덮인 높은 산을 '히말'이라 부르며, 히말라야는 곧 그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안나푸르나 히말 : 안나푸르나 산의 연봉, '히말'이 붙으면 눈 덮인 산맥 또는 높은 산이라는 의미이다.(Chat GPT)
첫댓글 교수님, 이용만 박사님과의 네팔 현지 기록을 읽으니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 역시 십이삼 년 전 해외에서 교육 봉사를 하던 시절이 떠올라 더 깊이 몰입하며 읽었습니다. 낯선 오지 환경과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며 느꼈던 그 특유의 온기, 그리고 '나눔'의 참된 의미를 고민하던 그때의 제 모습이 교수님의 일기 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듯합니다.
타국에서 청진기 하나 들고 가난한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신 이용만 박사님의 헌신도 대단하지만, 2010년 그 추운 네팔의 밤공기를 견디며 그 귀한 발자취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책으로까지 남겨주신 교수님의 노고와 열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도 5,000m에서 바라보셨다는 히말라야의 장관처럼,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환한 빛을 발하네요. 잊고 지내던 당시 봉사 현장의 초심과 따뜻한 기억을 다시금 깨워주신 명문,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