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 마누라보다 좋은 내 친구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아주 오래 전, 해남 땅끝에 있는 관광호텔 면접 때였다.
그때 그 호텔 홈페이지를 구축하던 나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장의 부탁을 받고 매니저 면접을 보던 중이다.
나와 동갑의 나이의 이력서를 발견하고 꽤 늦은 나이에 취업을 원하는 그의 이력이 자못 궁금했다.
나타난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단정 그 자체다.
호남형이지만 점잖고, 양복이 어울리는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고 한다.
3년 정도 호텔에서 근무하는 동안 우리는 참 절친해졌고, 어느 덧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얼마나 다정했는지, 간혹 게이들이 아닌가 의심받을 때도 정말 있었다.
주로 내 차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던 추억도 있고,
내 차를 자주 타서 고마워하며, 경유를 사용하는 내 차에 휘발유를 한 가득 넣고 몰고 와서는 생색내던 기억하기도 싫은 추억도 있다.
(결국 내 차는 엔진을 모두 교체해야 했고, 그는 그에 대해서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다. 나쁜 넘...)
호텔 일을 쫑내고, 서울에 있는 큰 일식집 매니저로 가있을 때도, 나는 서울가면 그 녀석 집에서만 지냈다.
같이 밤을 보내지 않는다는 연로한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난 그와 어울렸다.
우연히 들렀던 무이네의 한 리조트에서 매니저를 구하는 말을 듣고,
난 그에게 그 말을 전했고, 성격 급한 내 친구. 일식집 쫑 내고 바로 달려왔다.
그렇다. 그는 보헤미안이다.
어디엔가 정착하는 것을 증오하는 역마살 낀 보헤미안이다. 장똘뱅이다.
또 한번의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판티엣에 집을 짓고 땅을 사서 과수원을 만들었다.
한국산 125CC 오토바이를 타고 마중 나온 그는 영락없는 베트남 현지인이다.
얼굴의 그을음은 내 수준을 이미 넘고 있었다.
이제 그 놈도 정착을 하고 싶은가 보다.
새로 얻은 딸을 바라보며, 예뻐 죽겠다는 눈길이 충분히 전해져 온다.
마누라 잔소리에 화를 내던 이전과는 달리, 이젠 마누라 무서워할 줄 아는 기색이 충분히 전해져 온다.
무이네로 놀러 오는 한국인들과 자기가 관리하던 베트남직원들을 꼴 보기 싫어하게 된 그는 이미 하던 일에 물렸나 보다.
한국에서처럼 아래 직원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싶어하던 그에게, 나는 베트남사람들을 알게 된 후에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라 분명히 단언했었다.
믿지 않더니, 이제 그는 내 경고를 넘어선 지 오래된 거 같다.
나도 그를 닮아가나 보다.
베트남 방문만 18번째, 5년동안 참 많이도 왔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베트남에 온 지 벌써 열흘. 난 아직도 이곳에서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만나지 않았다.
물론 떠날 때까지 안만날거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교민들 중 몇몇은 내 이런 기분을 이해하리라 본다.
또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고 너 잘났다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모두 이해한다. 그러나 상관없다.
한국에서의 지인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난 이곳 베트남에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방학때만 오가는 베트남은 내게 아내의 나라이자, 휴가를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나라다.
굳이 치열하게 살아가며 서로를 헐뜯는 교민들을 만나며 기분을 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친구는 나와는 다르다.
이곳에서 여생을 지낼 준비를 하는 친구가 정말 걱정된다.
올 때마다 반가움과 걱정이 교차하는 것이 벌써 3년째.
난 그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진정으로 바란다.
1년에 두 번만 볼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볼 수 있는 친구가 되기를 바라지만, 이기적인 생각이다.
더운 날씨 감기에 걸려 침대에서 배웅을 하던 친구의 아쉬움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친구야.
이번 겨울방학때는,
판티엣 과수원에서 그을려진 너의 손과, 달랏 남반에서 커피를 수확할 내 손이 만나서, 그 좋아하는 하노이보드카 나누는 가까운 미래를 만들어보자.
또 보고싶다. 친구야.
겨울까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야 해.
<장난감 마분지 상자처럼 지어진 친구의 집>
<응접실에서 더위와 함께 놀고있는 친구의 그의 딸>
<서울 내 강아지 짜샤와 이름을 똑같이 지어준 잡종 도베르만 짜샤>
<파내어진 무덤...무서워라>
<돈이 없는 집은 이렇게 비석만...>
<돈있는 집은 이렇게 집처럼 무덤을 지었다>
<길거리에 널려진 썩은 오징어 말림....냄새가 대단하다>
<각종 조개껍질을 갈아서 시멘트 만드는 데 섞는단다>
<무덤 빌라촌>
첫댓글 부럽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친구가 보고싶어지네요..ㅋㅋ
질러버리세요. 질러버려서 만나는 친구는 뒷일감당을 생각나지 않게 해주더군요.
돈이 더없는사람은 아예 화장을 해버리죠...
따뜻한 글이네요.두 분의 우정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