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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48구간 제1부
물미-하장암-쑥댕이-
수진-대티-새터
20260806
1.운곡천을 따라 흘러가며
내가 만나는 모든 풍경이 길이다
지난 7월 2일 동서트레일 47구간을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물미마을 황터1교에서 출발하여 역방향으로 탐방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 다시 도심3리 물미마을에 왔다. 이번에는 황터1교에서 출발하여 동서트레일 48구간을 탐방한다. 그런데 동서트레일 47구간과 48구간의 시종점이 불분명하다. 도심3리마을회관 앞 47구간 안내도에서는 47구간을 도심3리마을회관-오전약수관광지, 거리 14.8km로 소개한다. 그런데 애당리 수진교 앞에 설치되어 있는 동서트레일 47·48구간 안내판에서는 47구간을 오전약수관광지-수진교, 48구간을 수진교-춘양면사무소라고 안내한다. 어느 안내판이 정확한 것인가? 어느 한 안내판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동서트레일 48구간을 수진교 앞에 설치된 안내판에서는 이렇게 안내한다. "동서트레일 48구간은 수진교에서 시작하여, 신기교, 서동리, 한국산림과학고를 지나며 숲과 농촌 마을의 정취를 따라 걷는 구간입니다. 조선시대 고가옥인 권진사댁과 만산고택, 전통시장인 억지춘양시장을 지나며, 춘양면사무소에서 마무리됩니다. 문화와 일상이 살아 숨쉬는 마을길로, 옛 정취와 지역 공동체의 삶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이 안내판에 따른다면 수진교-도심3리마을회관 3.4km는 47구간에 속하게 되어, 47구간 거리는 현재의 14.8km에서 18.2km로 늘어나며, 48구간은 현재의 13.3km 거리에서 9.9km로 줄어든다. 48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물미마을-새터농원) : 황터1교 아래를 흐르는 소하천은 이름이 없다. 문수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춘양면 도심3리 황터마을과 물미마을을 거쳐 운곡천에 합수하니 황터천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황터천 둑방길은 칠자화나무와 호두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되어 있다. 칠자화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 있다. 꽃은 화려하지 않고 자잘한 송이들이 앙증스럽다. 황터천 남쪽 도심3리 들녘에는 수박밭과 사과나무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수박은 신문지에 싸여 자라는데, 어서 종이를 걷어내고 자신을 수확하라는 듯 신문지를 찢어낼 정도로 크게 자란 둥그런 모습을 드러낸다.
황터천이 합수한 운곡천 둑방길로 나갔다. 운곡천을 경계로 동쪽은 춘양면 애당리, 서쪽은 도심리 지역이다. 운곡천에는 애당리와 도심리를 이어주는 여러 다리들이 놓여 있다. 애당리 지역은 북쪽 태백산에서 깃대배기봉, 신선봉, 구룡산, 옥석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서쪽에 자리하고, 도심리는 문수산에서 벋어내리는 문수지맥 동쪽에 자리한다. 이 두 지역을 운곡천이 경계하며 흐른다.
운곡천(雲谷川)은 백두대간 옥석산-도래기재-구룡산 능선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발원하여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에서 낙동강에 합수한다. 하천 이름은 춘양면 면소재지 의양리 춘양역 인근의 운곡(雲谷)마을에서 유래했다. 운곡마을은 동쪽으로 높은 산이 둘려 있고 산은 항상 구름에 가려 있다. 이 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하며, 이 신선을 雲中仙人(운중선인)이라 하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구름이 덮인 골이라는 뜻의 운곡(雲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봉화군청 참조) 산에 둘러싸이고, 그 사이의 들녘과 골짜기에 자리한 춘양면 도심리와 애당리 지역을 가르며 운곡천은 춘양면 읍내로 흘러간다. 동서트레일은 춘양 면민의 생명수이며 아름다운 운곡천과 함께 흘러간다.
춘양면 도심2리마을 갈림길에서 운곡천의 도심교를 건너 애당리 하장암으로 넘어갔다. 이제부터는 애당리 지역의 운곡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둑방에는 벚나무 가로수길이 조성되어 있고, 들녘과 산비탈에는 벼논과 들깨밭, 사과농원이 펼쳐진다. 노란 달맞이꽃과 눈맞춤하고, 뒤돌아보면 백두대간 옥석산이 손짓하며, 운곡천 건너편에는 문수지맥 능선이 벋어내린다.
애당리 쑥댕이마을과 도심1리 감동골마을을 이어주는 운곡천의 애당교 앞에서 잠시 지방도 제88호선 춘양로 쑥댕이마을로 나가보았다. 춘양로 길가에 文敬公謙菴柳先生道心村遺蹟碑(문경공 겸암 류선생 도심촌 유적비)가 있다. 알아 보니 겸암(謙菴)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의 형님인 류운룡(柳雲龍, 1539~1601) 선생이며, 겸암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여든 노모와 백여 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춘양면 도심1리 감동골에서 피난살이를 했으며, 그 흔적으로 겸암 선생이 나라를 위해 기도했던 기도단과 그가 심은 감나무가 있다고 한다. 특히 1598년 정유재란 때는 동생 류성룡 선생이 영의정에서 파직되어 감동골에서 형 운룡과 반년을 함께 기거하며 징비록(국보132호)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오언율시 '寓居道心里民家偶題(우거도심리민가우제, 도심리의 민가에 우거하여 우연히 지음)'는 정유재란 당시에 지은 것인지, 전쟁이 끝난 뒤 도심리를 방문하여 지은 것인지 궁금하다. "我來道心里(아래도심리) 愛此道心名(애차도심명) 臨溪弄泉水(임계농천수) 心與水較清(심여수교청) 溪深可垂釣(계심가수조) 谷邃宜躬耕(곡수의 궁경) 三復欽明訓(삼복흠명훈) 誰知千載情(수지천재정) 내가 도심리(道心里)에 왔는데/ '도심'이란 이 지명이 사랑스럽네./ 계곡에 가서 물을 즐기노라면/ 마음과 물이 서로 맑음을 겨루네./ 계곡이 깊으니 낚싯대 드리울 만하고/ 골짜기가 깊숙하여 밭을 갈기에 마땅하네./ 세 번씩 되풀이하여 '흠명'의 교훈을 우러르는데/ 그 누가 천 년의 뜻을 알겠는가? *흠명(欽明)은 '흠명문사(欽明文思)'의 뜻으로, 요(堯) 임금의 덕을 말함. - 다음 카페 '심재 서예연구원'에서
도심1리 우촌마을과 애당1리 수진마을을 이어주는 수진교 북단 앞에 동서트레일 47·48구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을 읽어 보니, 동서트레일 47·48구간 시종점이 도심3리마을회관 앞이 아니라 수진교 북단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동서트레일 47구간에 속한다. 이제부터 춘양면 애당리 수진교 앞에서 실질적인 동서트레일 48구간을 출발하게 된다.
애당리 수진교에서 우촌길을 따라 지방도 제88호선 춘양로 쪽으로 나간다. 무지개펜션 출입구에 애당초등학교 교적비가 세워져 있다. 애당초등학교는 1946년 10월 1일 개교하여 1999년 3월 1일 폐교하였다. 무지개펜션 2층 건물은 옛 애당초등학교를 개조하여 사용하는것 같다. 그런데 이 일대를 현재는 수진(水津)이라고 하는데 옛 지명은 '당모랭이'인 것 같다. 봉화군청의 지명 유래를 옮긴다.
"당모랭이는 애당리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앞으로는 큰 냇물이 흐르고 뒤로는 숲이 우거져 일찌기 마을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모랭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는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 있었는데 그 신당에 이르지 못한 모퉁이라는 의미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농촌인구가 도시로 이주하기 전에는 학생수도 많았으나 지금은 많은 인구가 도시로 떠나서 학생수도 많이 줄었다." 봉화군청의 이 자료를 읽으면 애당초등학교 폐교를 모르고 적었거나 폐교 이전에 기록한 것 같다.
애당리 지명은 쑥댕이에서 유래했다. 쑥댕이 마을은 당모랭이(수진) 북쪽에 자리한다. 쑥댕이의 지명 유래를 봉화군청에서 옮긴다. "애당리는 본래 봉화군 상동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현리 일부를 병합하여 춘양면 艾堂里가(애당리)가 되었으며, '쑥댕이' 혹은 '애당리' 지명은 마을의 신을 모셔놓고 마을의 안녕을 빌던 사당 주위에 쑥들이 무성하여 '쑥으로 싸인 사당'이라는 뜻의 '애당(艾堂)'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봉화군청)
춘양교회 앞에서 춘양로를 따라 춘양면 애당리 중심지 애당1리 수진마을로 내려갔다. 중심지 수진마을은 석문동 갈림길인 춘양로 삼거리를 중심으로 북쪽 춘양교회 사이에 자리하며, 애당보건진료소, 애당경로당&복지회관, 식당가들이 자리한다. 석문동길 위쪽에 봉화댐이 건설 중이며, 그 북쪽에 백두대간 신선봉이 우뚝하다. 봉화댐은 백두대간 깃대배기봉과 신선봉 능선 남쪽 자락의 석문동(石門洞)에서 흘러내리는 월오천을 막아 운곡천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 같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은 석문동으로 탈출하는 경우가 많으며, 석문골이 상당히 험하다. 길손 또한 백두대간 능선의 석문동 갈림길에서 여러 차례 석문동으로 탈출하였으며, 참새골까지 힘겹게 걸어온 추억이 있다. 춘양로의 애당교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봉화댐 맨 뒤쪽에 백두대간 신선봉이 보이며 그 자락에 석문동이 자리한다.
봉화군청에 소개된 춘양면 애당2리 석문동을 옮긴다. "석문동(石門洞)은 애당 북쪽 골짜기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동권씨 8가구와 하회류씨 1가구가 살며 砂布(사포)의 재료인 돌가루 가공공장 두 곳이 있다. 마을 입구 양쪽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있어 그 사이로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석문 역할을 한다고 하여 石門洞(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천연의 요새지로 전쟁시 피난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이 석문동이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바위를 쪼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길이 험하고 통행이 적어 찾아가는 사람이 극히 적어 석문이 닫혀질까 걱정이 앞선다."(봉화군청) 석문은 마을 입구에 있지 않고 마을 맨 끝 골짜기에 자리한다.
춘양로 수진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월오천의 애당교를 건너 월오천 둑방길을 따라 운곡천으로 내려간다. 월오천이 운곡천에 합수하는 곳에서 건너편 도심1리 우촌(隅村)마을은 손짓할 만큼 가깝다. 이제부터는 운곡천 동쪽 둑방길을 따라 내려간다. 둑방 안쪽 들녘에는 사과농원이 넓게 펼쳐지고, 그 위쪽에 마을이 자리한다. 애당리 대티마을이라고 하는데, 대티마을은 대나무가 우거진 고개라고 하여 대티 또는 죽티(竹峙)라고 불렸다는데, 지금은 대나무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운곡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서쪽 둑방길을 따라 내려가면 새터농원이 가깝지만, 계속 동쪽 둑방길을 따라 내려간다. 둑방에 홍자색 칡꽃이 은은한 향기를 날린다. 꽃빛이 곱고, 은은하게 향기로운 칡꽃이 둑방에 흐드러진다. 칡꽃 향기를 잃어 버린 사람들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돈 내음이 철철 넘치는 곳일까?
잔디마당 열린책방 표지판이 감촉을 곤두세운다. 아, 운곡천 강변에 잔디마당 열린책방이 있구나. 그곳에 어떤 책들이 준비되어 있을까? 200m 아래에 있는 잔디마당에 캠핑장, 카페, 펜션, 열린책방이 있다고 하는데, 잔디마당 열린책방이 궁금하다. 잔디마당 열린책방 표지판을 지나면 신기교가 운곡천 위를 가로지른다. 신기교는 애당리의 배고개와 도심리의 새터를 이어준다. 신기교를 건너 도심리 새터마을로 넘어왔다. 이제부터 이번 48구간의 어려운 고갯길이 기다린다. 멀리 북서쪽의 백두대간 옥석산이 거포재는 걱정하지 말라고 고갯짓한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4.0km
전체 탐방 시간 : 4시간 16분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수산(水山)마을이라고도 불리는 물미마을에 도착하여 동서트레일 48구간 탐방을 출발한다.
물미마을은 도심3리 입구에 있는 마을로서 동네 뒷산 지형이 기러기가 물을 보고 내리는 평사낙안(平沙落雁)의 형상이라 해서 물미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으며, 동네 앞 강가에 있는 들을 갯들, 뒤쪽에 있는 들을 갈밭들이라 하는 이름도 기러기와 관계가 있다. - 봉화군청
맨 오른쪽 운곡천의 도심교를 건너 도심3리 말미마을 입구에서 도보여행팀 안내버스가 정차하였다.
황터천의 황터1교 북단에서 춘양면 도심3리 황터길을 올려본다. 황터길 양쪽에 칠자화나무와 호두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황터1교 교명주에 외씨버선길 로고가 새겨져 있다. 황토1교를 건너 황터천 남안(南岸)을 따라 내려간다.
이름이 없는 소하천을 황터천이라 불러준다. 황터천 상류 황터4교 양안(兩岸)에 도심3리마을회관과 노인회관이 있다.
황터천은 아래에서 운곡천에 합수한다. 동서트레일은 황터천 남안(南岸) 칠자화 가로수길을 따라 내려간다.
황터1교를 건너 황터천 둑방의 칠자화 가로수길을 따라 내려간다.
황터1교 남단에서 황터1교와 건너편의 도심3리 물미마을을 돌아보았다.
도심3리 황터천 양안(兩岸)에 칠자화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되어 있다.
황토천 둑방길의 가로수 칠자화나무에 하얀 꽃들이 피어 있다.
둑방길에는 호두나무도 가로수로 조성되어 호두나무에 호두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황터천 남안의 칠자화 가로수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수박밭에 수박들이 신문지에 싸여 자라고 있다.
춘양면 도심리 들녘이 드넓다. 앞에는 수박밭, 그 아래쪽에는 사과나무 농장이 펼쳐진다.
춘양면은 봉화군의 동북부 고산협곡에 위치하고 동쪽으로 소천면, 서쪽으로 물야면, 남쪽으로 법전면,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상·하동면과 접한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도력재를 경계로 북쪽은 남한강수계이며 남쪽에는 낙동강지류인 운곡천이 흐르며, 운곡천과 금정천을 경계로 동쪽은 태백산계, 서쪽은 소백산계로 양백지역 또는 이백지역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임산물은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으며, 남북으로 형성된 긴협곡의 지형적 특색으로 기온이 낮아 한국의 시베리아라고도 불리며 봄이 짧다. - 봉화군청
황터천 남안의 칠자화나무 가로수길을 따라간다. 동서트레일 48구간은 외씨버선 11길 춘양목 솔향기길과 동행한다.
둑방길 안쪽의 들녘의 사과농장에서 사과들이 익어가고 있다.
운곡천(雲谷川) 서안을 따라 춘양면 도심리 들녘을 지나간다. 운곡천 건너편은 춘양면 애당리 지역이다.
운곡천 둑방에서 돌아서서 중앙 뒤의 백두대간 옥석산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뒤에 백두대간 도래기재가 있다.
운곡천 둑방길을 따라 사과농장을 지나 도심교로 내려간다.
춘양면 도심2리 마을 입구에서 도심교를 건너 춘양면 애당리 화장암마을 앞으로 이어간다.
도심교에서 운곡천 상류 방향과 맨 뒤 백두대간 능선의 왼쪽 옥석산, 중앙의 도래기재를 확인한다.
운곡천은 춘양면 애당리와 도심리, 석현리와 서동리를 가로질러 춘양면 면소재지 의양리로 흘러간다.
도심2리 마을 입구에서 운곡천의 도심교를 건너간다. 건너편은 춘양면 애당1리 아랫장바우라고도 불리는 하장암마을이다.
하장암(下莊岩)마을은 애당의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서벽의 하장암 아래로 이 마을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병자년에 아주 심한 홍수와 번개로 바위가 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더러는 이 바위를 일컬어 개바위라고도 불렀다 하며 이 마을이 처음 조성될 때 바위가 많이 나와서 아랫장바우라는 일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바위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 마을의 주소득원인 사과는 전국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 봉화군청
도심교를 건너다 중앙 뒤 춘양면 도심2리 죽기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죽터마을 돌아본다. 중앙 뒤는 문수지맥 능선일 것이다.
도심2리 죽기리는 부족국가시대에 형성된 마을로 서쪽산 기슭에 대나무밭이 있어서 죽터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도 양지터 뒤 언덕에 대나무 군락지가 약 200평 가량이 남아 있다. 이 마을은 옛 상인들이 봉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는데 행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인심은 도심이요, 서벽이 죽터라" 이 뜻은 인심이 곧 도심인데 서벽과 죽터는 반어적으로 인심이 야박하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그러나 후엔 인심이 좋다고 하여 도심(道深 →道心)이라 불려지고 있다. - 봉화군청
운곡천 건너 왼쪽 뒤에 춘양면 도심3리 약수동마을, 중앙 뒤에 황터마을이 보이며, 중앙 뒤에 백두대간 옥석산이 우뚝하다.
수진교 1.6km, 도심3리마을회관 1.8km 지점, 도심교 북단에서 운곡천 건너편 왼쪽 나무숲 뒤의 노류촌 마을을 바라본다.
노류촌(老柳村)은 죽터 남동쪽 넓은 바닥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늙은 수양버들이 서 있어서 늘버디·늘버딩이라고 불렀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오래된 수양버들은 베어지고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마을 바로 앞으로 운곡천이 흐르고 있다. - 봉화군청
춘양면 애당리 운곡천 북안(北岸)의 둑방길을 따라 애당교로 내려간다.
운곡천 북쪽 둑방길은 벚나무 가로수길로 조성되어 있고, 왼쪽에는 들깨밭이 펼쳐진다.
운곡천 건너편 춘양면 도심2리 지역의 노류동마을을 다시 살핀다. 중앙 뒤의 산이 성불산일까?
동서트레일은 도심1리마을 출입구 애당교 북단을 가로질러 중앙 뒤의 수진교로 내려간다.
수진교 0.5km, 도심3리마을회관 2.9km 지점, 도심1리마을 출입구 애당교 북단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춘양면 도심1리 감동골마을은 애당교 건너편에 있고, 왼쪽은 애당1리 쑥댕이마을이다.
애당교 북단에서 지방도 제88호선 춘양로로 나가 춘양면 애당1리 쑥댕이마을을 살펴 보았다.
쑥댕이는 본래 봉화군 상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현리 일부를 병합하여 춘양면 애당리(艾堂里)가 되었다. 이곳의 마을 지명이 쑥댕이 혹은 애당리로 불리는 것은 이곳에 마을의 신을 모셔놓고 마을의 안녕을 빌던 사당이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쑥들이 무성하여 쑥으로 싸인 사당이란 뜻으로 애당이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 자리에는 쑥 대신 느티나무 등 고목이 여러 그루가 있어 여름철에는 훌륭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어 평상에 누워 있으면 절로 옛날의 전설이 떠오를 것만 같다. 이곳에는 현재 횟집이 있어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그 음식 맛과 풍광에 애당의 추억 한 가지를 더 간직하여 돌아간다. - 봉화군청
지방도 제88호선 춘양로의 애당1리 수진마을 방향을 내려보았다. 바로 앞에 쑥댕이 버스정류소가 있다.
겸암(謙菴)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의 형님인 류운룡(柳雲龍, 1539~1601) 선생이다. 이 유적비는 후손들이 2000년에 춘양로 길가에 세웠다고 한다.
운곡천의 애당교 건너편 중앙 뒤에 도심1리 감동골이 자리하고 앞쪽에는 감동골마을이 자리한다.
운곡천 건너편에 춘양면 도심1리 감동마을이 자리하는데, 겸암 선생이 나라를 위해 기도했던 기도단이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의 백씨 겸암 류운룡이 지금의 감동골에 움막을 짓고 부모님을 모시고 피난을 하면서 뒤곁에 감나무를 심었는데 큰 나무로 오랜 세월 동안 생육하면서 그곳을 감나무모태(모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봉화군청
운곡천 건너 오른쪽에 감동골마을이 자리하고, 왼쪽 뒤 골짜기를 큰감동골이라 이르는 듯.
운곡천 북쪽 둑방길을 따라 춘양면 애당1리 수진교로 내려간다.
애당교를 지나와서 애당교와 감동골, 맨 뒤의 문수지맥 능선을 가늠하였다.
운곡천의 북쪽 둑방 벚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애당1리 수진마을로 내려간다.
수박 수확을 끝내고 수박을 쌌던 신문지를 수거하는 작업을 동남아 노동자 둘이서 하고 있다. 뒤쪽에 애당교회가 보인다.
춘양면 애당1리 수진교 북단에 동서트레일 47·48구간 안내도와 이정목이 서 있다.
동서트레일 47·48구간 시종점이 도심3리마을회관 앞인 줄 알았는데, 수진교 북단으로 조정된 것 같다.
●동서트레일 47구간은 오전약수 관광지 주차장을 시작하여 박달령과 주실령을 지나 수진교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며, 조용한 고산 숲길과 역사적 고갯길을 체험할 수 있는 구간입니다. 국내 최대 산림생태교육시설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희귀 수종이 군락을 이루는 춘양목 군락지를 통과하며, 숲의 깊이와 생태적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심3리 마을회관을 지나 수진교에서 마무리되며, 백두대간의 자연·문화·경관을 고루 담은 구간입니다. ●동서트레일 48구간은 수진교에서 시작하여, 신기교, 서동리, 한국산림과학고를 지나며 숲과 농촌 마을의 정취를 따라 걷는 구간입니다. 조선시대 고가옥인 권진사댁과 만산고택, 전통시장인 억지춘양시장을 지나며, 춘양면사무소에서 마무리됩니다. 문화와 일상이 살아 숨쉬는 마을길로, 옛 정취와 지역 공동체의 삶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 안내판
춘양면사무소 9.9km, 도심3리마을회관 3.4km 지점, 수진교 북단에 동서트레일 이정목과 외씨버선 11길 춘양목솔향기길 안내표지목이 서 있다. 운곡천 건너편 오른쪽 뒤에 춘양면 도심1리 감동골마을이 자리한다.
수진교 북단에서 맨 뒤 백두대간 옥석산과 그 능선을 다시 돌아보았다.
운곡천의 수진교 건너편 춘양면 도심1리 지역에 오른쪽 뒤에 감동골마을, 왼쪽 앞에 우촌마을이 자리한다.
수박 수확을 끝낸 수박밭에 너무 익은 수박은 버려져 있고, 동남아 노동자 두 사람이 수박을 싼 종이들을 수거하고 있다.
우촌길을 따라 무지개펜션 출입구를 지나 지방도 제88호선 춘양로로 나간다. 오른쪽에 애당초당학교 교적비가 서 있다.
애당1리 무지개펜션 출입구에 1946년 10월 1일 개교하여 1999년 3월 1일 폐교한 애당초등학교 교적비가 세워져 있다.
뒤쪽에 외씨버선길 지킴이의 집이 있는 것 같은데,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무지개펜션은 폐교한 애당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것 같다.
우촌길에서 춘양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건너편 언덕에 애당교회가 자리한다.
지방도 제88호선 춘양로를 따라 춘양1리 중심지 수진마을로 내려간다.
왼쪽 길은 석문동길로 봉화댐과 애당2리 석문동으로 이어지며 동서트레일은 춘양로의 애댱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간다.
애당리 삼거리에서 석문동길을 따라 위쪽의 애당보건진료소를 살피고 되돌아온다.
춘양면 애당리의 중심지 애당1리 수진마을에 애당보건진료소, 그 왼쪽 쉼터정자 뒤에 애당복지회관&경로당이 자리한다.
춘양로의 애당삼거리에 수진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봉화여객 서벽-봉화 농어촌 버스가 애당1리 수진마을 버스정류소에 도착한다. 봉화군은 2024년 1월부터 봉화군내 농어촌 버스를 전부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수진마을 버스정류소 옆에 '청산유수 수진마을 애당1리' 표석이 서 있고, 정류소 유리창 벽에 김숙의 '산' 동시가 붙어 있다.
화났을 땐/ 확 다가와/ 스르르 풀어주고// 기분 나쁠 땐/ 쓱 다가와/ 씩 웃어주고// 우리 아버지처럼/ 달려가서/ 안기고 싶은 산// 우리 엄마처럼/ 언제나 다정히/ 반겨주는 산 -김숙희의 '산'
지방도 제88호선 춘양로를 따라 월로천의 애당교를 건넌다.
월로천의 애당교에서 앞쪽의 봉화댐과 중앙 뒤의 백두대간 신선봉을 가늠한다. 그 오른쪽 뒤는 깃대배기봉일 것이다.
잎쪽에 봉화댐이 있고, 중앙 뒤에 백두대간 신선봉이 솟아 있다.
춘양로의 애당교 동단 서쪽에 태백산사고지 표지판이 서 있으며, 동서트레일은 표지판이 서 있는 둑방길을 따라 내려간다.
태백산사고지(太白山史庫址)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조선 후기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오던 태백산 사고가 있던 자리로 조선시대 5대사고 중 하나이다.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는 오대산·마니산·적상산·춘추관·태백산에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는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사고는 실록각과 선원각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밖의 부속 건물로 구성된다. 태백산 사고는 1606년에 태백산에 건물을 준공하여 실록을 봉안하였다. 중층건물에 팔작지붕을 올리고 지붕 각 마루에 양성을 하여 장중한 위엄을 지니고 있어 이 시기의 사고 건축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외관을 갖추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춘양면사무소 10.6km, 수진교 0.3km 지점, 애당교 동단 서쪽에 동서트레일 이정목과 외씨버선길 안내표지목이 서 있다.
애당교 동단에서 춘양로와 작별하고 월로천 동안(東岸) 둑방길을 따라간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낙동강홍수통제소에서 수문조사를 목적으로 설치한 수위관측소와 사과농장을 지나간다.
사과농장의 사과나무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 수확 시기를 기다린다. 사과 품종이 무엇일까?
월로천이 운곡천에 합수한다. 건너편에 '구억마, 구석마, 구석마을, 꿩마' 등으로 불리는 도심1리 우촌(隅村)마을과 도심1리마을회관이 자리한다. 왼쪽 뒤가 당재골인 듯. "당재로 올라가는 산밑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이어서 구억마라 부르게 되었다."(봉화군청)
운곡천 북안(北岸)의 둑방길을 따라 넓은 사과농장이 펼쳐진 애당1리 대티마을을 지난다.
애당리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옛날 마을에 대나무가 우거진 고개라고 하여 대티 또는 죽티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대나무는 찾아 볼 수 없으며 마을 뒤 언덕에 노송 두 그루가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지켜보기라도 하듯이 서 있다. 현재는 도로가 포장되어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교통이 불편하였던 시절 일상 생활을 지게로 혹은 달구지로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한다. 현재 마을 주민들의 생업은 농업으로 그 중에서도 밭에서 재배되는 엽연초를 생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밖에도 고추와, 채소, 과수를 가꾸며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 봉화군청
춘양면 애당1리 대티마을의 사과농장 앞에서 백두대간 신선봉을 돌아보았다. 중앙 맨 뒤에 백두대간 깃대배기봉이 가늠된다.
중앙의 백두대간 신선봉을 줌으로 당겨보았다. 오른쪽 맨 뒤에 백두대간 깃대배기봉이 가늠된다.
운곡천 동쪽 둑방길을 따라 징검다리 출입구를 지나간다. 맨 왼쪽 뒤에 각화산 능선이 보인다.
운곡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서쪽 둑방길을 따라 새터마을로 내려가면 동서트레일을 단축할 수 있다.
운곡천의 징검다리 출입구를 지나 백두대간 옥석산과 그 능선을 뒤돌아보았다.
동서트레일은 춘양면 도심리 오른쪽 능선과 그 뒤쪽 능선의 골짜기, 작은숯골과 거포재골을 올라 거포재를 넘어 서동리로 넘어간다.
운곡천의 동쪽 둑방길을 따라 신기교 앞으로 내려간다. 위쪽에 버스가 춘양로의 애당1리 배고개를 넘고 있다.
잔디마당 열린책방은 운곡천 둑방길을 따라 신기교 앞을 지나 더 내려가야 한다.
춘양면사무소 9.1km, 수진교 1.8km 지점, 잔디마당은 둑방길을 따라 200m 내려가야 하고, 동서트레일은 신기교를 건넌다.
새터길을 따라 운곡천의 신기교(新基橋)를 건너 춘양면 도심1리 새터마을로 넘어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새터마을 또는 신기(新基)마을은 조선 말기에 김녕 김씨가 와서 새로 개척한 터라고 해서 새터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40여 가구가 살았으나 70년대 화전민 이주로 지금은 15가구가 살며 각 성씨가 살고 있다. - 봉화군청
신기교(新基橋)에서운곡천을 올려본다. 왼쪽에 새터농원이 보이고, 중앙 뒤에 옥석산 능선이 보인다.
신기교에서 아래쪽 새터길을 따라 새터마을을 지나 올라가도 길은 통하는 듯.
새터길을 따라 새터농원 출입구로 올라간다. 오른쪽 뒤에 백두대간 옥석산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