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낙타의 하루'의 촬영감독을 만났다. 오랜만에 본터라 서로의 기쁜 소식도 나누고 어찌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보았다.
" 드라마 알바 나갔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
" 그래요? 무슨 드라마요? "
" SBS의 여인의 향기 라는데...아세요? "
" 당연히 알죠. 제가 탱고하고 있잖아요. 요즘 동호회에서 얼마나 인기인데요."
" 그 드라마가 탱고에 관한 드라마인가요? "
" 예..? "
드라마.... 그것을 보는 시청자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만드는 스태프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날 촬영은 바로 이번 주 주말에 방영할 분량이라고 했다.
총 런닝타임 63분의 드라마를 그것도 2편을 일주일만에 촬영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촬영현장에서는 총 기본 3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촬영이 진행된다.
각 팀의 스태프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하루 23시 50분이다. 24시가 넘어가면 2일치로 간주되기때문에 보통 23시50분까지 몰아붙여 일을 시킨다고 한다. 드라마 스태프들은 평균 3~4일 그렇게 일을 한다고 한다.
잠 한숨 자지 못하고 3~4일 일한다고 상상해보라...그리고 이것은 드라마가 촬영되는 동안 매주 반복된다.
현장의 상황이 이러다 보니 드라마 촬영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다.
인격은 고사하고 '18' 이란 단어가 빠지면 대화가 안될 정도이고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서열상 '막내' 급이면 5살 어린 친구한테 " 야 막내야 " 란 소리를 듣는 곳이 그곳이다.
이뿐인가...스태프들은 이 드라마가 무슨 드라마인지도 모르고 촬영에 임하고 촬영감독과 감독은 장면에 대한 협의도 없이 기계적으로 촬영을 한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현장은 원초적이다.
스태프이나 제작진에게 가장 인기있는 연기자는 매너가 좋거나 미모가 뛰어난 연기자라기 보다는 NG를 안내는 연기자이며 지각하지않고 성실한 연기자이다. 그래서 여인의 향기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는 김선아 도 이동준도 아닌 엄기준이란다. 그럼 가장 싫어하는 배우는 세경역을 맡은 신인여배우...이름도 생각안나지만 NG의 여왕으로 등극했다나...
왜 한국의 드라마는 이런 혹독한 방식으로 제작이 될까?
미국의 허리우드에서 작업하던 스태프가 한국의 영화현장에 스태프으로 결합하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이런 식으로 일시키면 감옥가지않느냐 "
허리우드의 미드는 시즌이 나누어져 제작되며 철저히 사전제작시스템이다. 드라마가 방영될때면 배우와 스태프들은
집에서 편안하게 혹은 휴가를 즐기며 드라마를 볼수 있다. 그리고 배우들의 개런티와 스태프인건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머어머하게 받는다. 그렇게 주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드라마를 찍기때문에 퀄리티가 뛰어난 것이고 그렇기때문에 미국내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다. 다시 말해 충분히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
그럼 한국 드라마의 전성시대에서 과연 한국드라마는 남는 장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라마를 제작하는 프로덕션들은 매번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배용준이 출연하며 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자된 ' 태왕사신기 ' 또한 아직까지 투자비를 건지지못해 제작사는 재정난으로 허덕이고 있다. 배용준이란 특급배우의 개런티가 엄청났던 이유도 있지만 당초 제작비가 너무 많이 투자되었다.
그럼 적자볼 것을 뻔히 알면서 왜 이런 드라마를 제작할까?
그것은 드라마 자체의 수익보다 부가상품시장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때문이다. 태왕사신기를 통해 캐릭터상품을 판매한다거나 관광상품을 개발한다거나 PPL을 통해 상품을 홍보한다거나 이런식으로 부족한 제작비를 보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률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시청률에 따라 광고가격이 차이가 나기때문에 어떻게든 시청률을 끌어올려 적자의 폭을 줄어야 한다.
그럼 적자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한국 드라마의 수출?...우리나라 드라마가 많이 수출되고는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등...
그런데 일본 중국 동남아에서는 같은 값이면 미드를 살까? 한드를 살까?
특히 동남아와 같은 상대적 빈국에서는 덤핑에 가까운 할인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판매하고 있다. 그 나라 자체의 방송시장규모 자체가 크지않고 경제규모 또한 작기때문에 통상적인 가격으로 판매는 불가능하다.
" 겨울연가 "의 히트로 한국 드라마는 한류의 중심이 되어 관광수익등 부가적인 판권시장이 확대되었지만 " 겨울연가"를 이어 후속타들은 " 겨울연가 " 만큼의 성적은 못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여전히 드라마의 강국이다.
이렇게 제작비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그 적자를 다른 곳에서 메끌수 있기때문에...그 대상은 상대적인 약자인 스태프와 협력업체를 통해 메꾸어 나간다.
드라마나 영화가 제작회차가 넘어가는 것은 그만큼 제작비지출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때문에..제작일수를
줄이는 것이 제작사로서는 가장 큰 고민이다. 그렇기때문에... 제작사들은 스태프와 배우들을 촉박한 시간속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없어..빨리 찍어야 돼...그것이 만연되다보니...당일 찍어 당일 편집하고 당일 방송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런일이 반복될 수록 새로운 시도나 도전은 생각도 할수 없고 공장처럼 기계처럼 제작할 수 밖에 없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들은 드라마 촬영현장을 떠날수가 없다. 그들자체가 영화현장에서 일거리가 없어 드라마로 쫒겨간 경우들이기에 이현장을 나가서는 다른 곳으로 갈수가 없다.
이 열악한 촬영현장의 실태는 '스파이명월' 한예슬 사태로 깜짝 이슈가 되었지만..그것도 방송과 자본에 의해 묵살되었다. 방송스태프들 또한 한예슬사태에 통해 드라마제작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지만...이 또한 스파이명월 방송스태프들이 반박성명을 발표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과연 스파이명월팀의 스태프들이 이런 성명을 발표했을까? 내용은 자세히 모르지만 그 시스템을 안다면 그것은 안봐도 비디오다. 방송국에서는 스태프이름으로 연출부등 방송국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사람을 시켜 성명서를 쓰게 하고 방송국에 밥줄이 달려있는 스태프들은 그런 사태를 묵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이다.
이처럼 곪을대로 곪은 제작현실이 과연 얼마나 유지될수 있을까?
이와 같은 제작현실때문에 드라마는 클리쉐의 향연이라 할수 있을만큼 비슷한 내용과 형식으로 포장만 바꿔 찍어내는 공장처럼 변했다. 요근래 색다른 내용과 소재의 드라마...백마탄 왕자와 신데렐라가 나오지않는 드라마가 어디 있었는가?
시청자들이 그 뻔한 스토리에 질리게 되니..하는 수 없는 꺼내든 것이 더 자극적인 막장코드였다.
그러나 그것 또한 약발이 오래 먹히지는 못할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그 본질은 스토리에 있다. 훌륭한 대본과 그것을 구현할 제작시스템..그리고 배우와 연출자
그나마 드라마시장이 영화시장보다 더 컸던 이유 중에 하나가 능력있는 작가군을 보유하고 있기때문이었지만...이런 제작환경 속에서는 작가들도 버티기가 쉽지않을 것이라...땅속의 무궁무진할 것 같은 석유는 어느순간이면 말라버릴테니까
그럼 이 열악한 제작시스템을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방법으로 법으로 강제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자본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않을 것이다.
법보다 위에 있는 자본...
자본...정치를 움직이고 국가를 움직이는 이 자본의 힘 앞에 우리는 너무도 초라할 뿐이다.
여인의 향기...재밌으신가요?
그러나 그 아름다운 장면 하나에는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 있고 그들은 오늘도 목숨을 걸고 드라마를 찍고 있답니다...이것은 그들의 열정일까요? 아니... 생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