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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통합병원에서 보낸 한 철.
그때 국군대전통합병원은 대전시가지에서 조치원으로 막 이전했었다. 일제 때 지어져 빗물이 샌 얼룩이 벽에 덕지덕지했던 우중충한 단층 목조건물에서 깔끔한 4층 신축건물로 옮겼으니 부대 내에 활기가 가득 찼다. 5층 옥상에는 옥탑방처럼 작은 방 하나가 오뚝 솟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입원중인 병사들의 휴게실이었다. 6월 하늘도 맑고 상쾌한 어느 날.열어졌힌 창문에서 봄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오는 휴게실에서 나는 아침부터 조규상병장과 마주 앉아 바둑을 뚜고 있었다.여러 판을 연속해서 뚜다 보니 머리도 띵하고 승부의 긴장도 많이 풀어져 있었다.내가 한가하게 입을 열었다.
“어이 조병장.청주여자간호전문학교에서 실습나온 간호사들 있지?”
그는 바둑돌을 놓다말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눈만 꿈벅거렸다.
“우리병실에 온 간호사있지? 최영희하고 최영숙이란 간호사.”
“봤지...걔들은 꼭 자매같더라.그런데 요즘 그 간호사가 안보이데?”
며칠 전부터 그 간호사들은 내과병동에 나타나지 않았다.실습과가 바뀌어 다른 간호사가 내과로 오고 그들은 다른 병동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왜? 그 여자가 마음에 들어? 흐흐...둘 중 누군데?”
난 속마음을 들킨 듯이 계면쩍게 히히 웃었다.
“최영희라는 간호사.”
“으흠...그럼, 말 좀 걸어 봤겠네?”
“에이 참! 만날 때라고는 회진(回診)을 돌 때뿐인데 여러 사람들이 보는데서 그란 말을 어떻게 하노?”
“김철수병장!너는 등치는 커다란데 이렇게 쑥맥이냐? 쯧쯧....여자란 말이야, 일단 다가가서 입을 열어! 귀가 있으니 일단 들을 것아니야,알겠나?그럼 무슨 반응이 있을 꺼 아니야?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야.알겠나?”
신병교육대 조교를 했다는 조병장은 숙달된 조교처럼 말했다. 그건 그렇지.그래서 나도 내 나름대로 그런 기회를 가지려고 꾀를 낸 적이 있다.그러나 말을 걸어보기는커녕 난데없이 그 간호사에게서 고혈압이라는 엉뚱한 판정을 받은 희극이 있다. 회진(回診)이란 의료진이 환자를 직접 살펴보는 의료행위이다. 간호장교와 위생병을 대동한 군의관이 병상 끝에 부동자세로 앉은 병사마다 현재 몸상태를 한두 마디씩 문답하며 지나가는 과정이다. 실습을 온 간호사는 맨 뒤에 따라 붙었는데 사뭇 긴장되고 진지한 표정인 그 실습간호사에게 결코 말을 붙여 볼 기회나 엄두는 나지 않았다. 회진 때마다 나는 그 간호사의 얼굴만 쳐다보며 속만 끙끙 앓았다.어떻게 아무도 없는 상항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를 숙고하다가 한 묘안이 떠올랐다. 내과병실 바로 옆에 병상이 4개뿐인 작은 병실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입원자는 단 한 사람이었다.그는 내과 특실에 격리된 사실로 보아 우리보다는 더 중한 병이 있었을 것이다.그병실에 실습간호사가 주기적으로 들러 그 병사의 혈압과 맥박,체온 등을 재는 장면을 보고 일부러 그 병사에게 접근하였다.그도 혼자 누워있는 것보다는 누가 옆에서 말동무를 해주는 것이 좋았으므로 그 병사와 곧 친해 졌다.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타 병실에 출입을 금한다는 환자수칙은 당연히 무시됐다.그 다음 날인가 그 병실 빈 병상에 누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똑똑 노크소리가 나고서 그 간호사가 들어왔다.내가 기획한 순간이었다.그녀는 그 병사의 혈압과 체온을 재고 내가 누운 병상으로 곧장 다가와서 고운 손가락을 뻗어 스스럼없이 내 손목 안쪽에 붙이고는 가녀린 제 손목위의 앙증맞은 시계를 힐끗 보며 맥박수를 재는 것이었다.나는 그녀의 동작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마음 속으로 긴장과 격정이 격렬했다. 맥박을 잰 다음에 내 환자복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맨 살에다 혈압대를 붙여 감았다.혈압대가 차디차다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그때 내 살갗은 몹시 상기되어 있었을 것이다.그녀가 고무공을 눌러 공기를 주입시켰다가 서서히 빼면서 혈압계를 주시했다.나의 팔뚝에 혈맥이 세차게 뛰는 충격이 세세하게 전해지는 느낌을 나는 똑똑히 받았다.혈압계를 주시하던 그녀는 이상을 감지한 듯이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두 번이나 더 혈압을 재었다.혈압대를 풀어 챙긴 다음 그녀는 다소곳히 “혈압이 꽤 높아요.”하고는 훌쩍 나가버렸다.혈압이 높게 측정된 것은 그녀의 손에 내 손목이 잡힌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말을 걸어 보려고 만든 기회였으나 말할 생각은 전혀 나지도 않은 채 시간만 사라지고 말았다.이런 기회를 노치다니! 아이구 맹한 놈. 언제 어디서 그런 기회를 다시 만날래?
“나는 말이야 한번 찍은 여자는 절대로 안놓쳐! 알겠나?마음이 그렇게 약해서야... 가만히 보니 입대 전에 연애해 본 경험도 없지?”
조병장은 단호하게 말끝을 높혔다.
“....없어. 사회에서 짝사랑은 많이 했지만.히히”
“기회가 왔다싶으면 거침없이 대들어봐! 여자는 말이야 밀면 밀려.내 경험상.”
“글쎄.오다가다 복도에서 단 둘이 딱 마주치는 그런 기회가 있으면 모를까...”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그녀는 다른 병동으로 가버렸고 내과병동에 올 일도 없을 텐데.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그의 능력이 부럽기도 해서 시무룩히 대답했다.조병장은 집고있던 백돌 한 개를 반상의 흑백돌이 빼곡히 엉킨 사이에 놓으면서 말했다.
“대마를 잡은 것 같은데?”
정신차려 들여다보니 내 돌이 잡혔다.그여자 생각에 건성으로 뚜다보니 맥자리를 빼앗겼나 보다.대화를 나누면서도 수를 읽고 있었던 조병장의 집요함이 매서웠다. 바둑을 더 뚜기가 슬그머니 싫증이 났다.
“졌다! 밥먹으로 가자.점심 때가 되었네.”
“하하하...돌은 잡혔어도 김병장은 그 간호사나 잡을 궁리나 잘해.기회가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
돌을 거두어 정돈하고 일어섰다.창문으로 신록의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왔고 아직도 공사 중인 부대 내 어지러운 풍경이 내다 보였다.계단을 천천히 내려가 U턴을 해서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한두 번 밟았을 때였다. 앗! 나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자리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동작그만이 되고 말았다.푸른색 상의,넓은 어께 띠로 걸쳐 입은 긴치마,머리 끝에 날렵하게 꽂힌 간호사 모자.실습간호사 한사람이 4층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가까워지는 그녀가 그 간호사임이 확실해지자 내 얼굴 살갗은 뜨거워지고 동공은 급히 팽창했다.그녀를 바라보기가 눈이 부셨다.그러나 나는 눈도 깜박거리지 못한 채 전신이 냉동되어 버렸다.4층 복도에는 주시하는 아무 눈도 없다.방금 전에 그녀에게 말을 걸기에 가장 바람직한 순간이라고 조병장에게 말했던 바로 그 순간에 내가 맞딱뜨린 것이다.고개를 힐끗 뒤돌아보니 조병장이 소리없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다가가라고 맹열히 손짓을 하고 있다.그런데 옮기려 힘을 줘도 내 발이 계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4층에 올라와서는 복도 오른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좋은 기회잖아? 왜 그러구 있어?”
조병장은 빙글빙글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채근했다.타 병동에 가있어 내과병동에 올 일도 없는 그녀가 지금 이곳에 나타났음은 다시없는 찬스였다.그 찬스를 무기력하게 날려버린 것이다. 이런 맹한 놈! 자책하는 중에 뜻밖에도 기회는 한 번 더 주어졌다.잠시 후 그녀가 사라진 방향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이때야 이때! 빨리 그녀에게 다가가라!한번 만나자고 말을 해라! 나는 내게 엄하고 단호히 명령하고 또 명령했다.그러나 입은 벙긋거리지도 않았고 발바닥도 전혀 꿈적거리지도 않았다.그녀는 힐끗 내게 눈길을 한번 주고 3층으로 또박또박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나플거리는 긴 치마와 X자로 엇갈린 등 뒤의 어께 띠.하얀 간호사 모자.그녀의 뒷모습이 멀어져 갔다. 그녀가 U턴하여 3층 계단으로 내려섰을 때 그녀의 모습이 난간에 막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때서야 굼뜬 발바닥이 움직였다. 난간에 뛰어가 배를 난간대에 대고는 허리를 ㄱ자로 꺽어 막 사라지는 그녀의 머리 꼭대기만 살짝 보았다.조병장이 웃음과 노기가 썩인 눈초리로 나를 쏘아 보았다.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이 바보! 이 머저리! 비틀거리며 겨우 벽에 기대어 섰다.세상에 대한 절망감이 마음을 때리고 나 자신을 향한 혐오감이 속을 들쑤셨다.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한 것은 둘째치고 꽁지빠진 수탉같이 당황함만 노출하여 그녀에게 실망감만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가? 이따위 쓸모없는 몸뚱아리를 살려서 무엇 하랴! 나는 전신에서 모든 의욕을 빼버렸다. 벽에 기대었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리고 바닥에 나둥그러진 몸뚱아리를 도리짓하듯 몇 번 뒤척였다.그때였다.무슨 비명같은 외침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끼아악! 환자가 쓰러졌다! 야 이 년놈들아 뭐해?환자가 쓰러졌단 말이다!”
그 말이 나와는 상관없는 딴 말인 줄 알고 마냥 엎어져 있는데 곧 우르르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내게 몰려오더니 곧 내 몸은 일으켜지고 위생병들이 어께에 올려졌다.나는 각중에 몸도 가누지 못하는 중환자가 되버렸다. 실제 상항과는 전혀 엉뚱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내 몸뚱아리가 위생병에게 떠들려 이동될 때 한 구석에서 조병장이 허리를 붙잡고 깔깔깔 웃고 있었다.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웃음이 나와도 웃으면 않되기에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다.국군대전통합병원 간호과장 황문영 소령은 4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집무하던 중 날씨가 더워 출입문을 열어 놓았다가 복도에서 환자 하나가 맥없이 쓰러져 몸부림치는 위급한 상항을 목격하고 그 병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소리친 것이었다.간호장교라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나이팅게일의 사상을 만천하에 펼쳐 보인 장거(長擧)라 할만 했다. 병상에 눕혀진 내게 임직 간호장교와 위생병들이 혈압과 체온을 잰다고 쓰잘 데 없는 부산을 떨었다.깐깐한 위생하사관 이성길 하사는 이렇게 내뱃었다
“그런 몸을 가지고 나 다니다니...”
실습간호사에게 애정표현을 못한 자괴감이 돌발시킨 이 희극적인 상항은 불측한 방향으로 자꾸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나는 내 몸 상태가 내가 인식하지 못함에도 위중하다고 은근히 알려야하는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그때 나는 병원이 나에게 취할 어떤 조치를 기다리는 자못 불안한 처지에 있었다.그런 중에 내가 쓰러지는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쓰러짐에 대해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향후 병원의 응답이 내게 유리할지 곰곰이 계산해야 했다. 내과 수간호장교 차유정 대위가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와서 근심이 가득찬 표정으로 내 상태를 물었다.
“지금 기분은 어때요?”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아무 생각이 없어요.”
일부러 더듬거리며 말했다.세상이 노랗게 보일 리가 없었고 아무 생각이 없을 리가 없었다.실습간호사 그 아가씨 생각이 가득할 뿐이지.내과과장 정운필 소령도 뒤늦게 와서 혀를 끌끌 찼다.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쓰러질 때 쓰러진다는 것을 알았나?
나는 통빡을 굴렸다.알았다 할까 몰랐다 할까?
“몰랐는데요.”
알았다는 쪽이 더 위중함이 표시되는지 헷갈렸는데 어쨌든 내 감각과는 반대로 말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정소령은 이하사에게 나를 감시 잘하라고 엄명을 내려... 나는 화장실을 제외하고 병동 밖 출입 시에는 간호실에 신고하고 나가게 되었다.
며칠 전에 병실에 퇴원병사의 명단이 게시되었다.그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는데 내게 주어진 ‘원대복귀’라는 명령이 문제였다.1973년 3월 나는 월남에서 철수 후 또 공병대 말단중대에 떨어졌다. 공병대 근무가 싫어서 공병대대 군의관에게 담배 몇 보루를 뇌물하면서 대전통합병원에 입원했다.병명은 진단이 어중간한 ‘위궤양’이라 칭했다.국군통합병원 소속은 군적이 국방부로 빠지므로 통합병원을 거쳐 전방부대로 가서 철책선 근무를 해보려는 의도였다.입원 후 환자중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하여 전방부대에 가야하는 이유와 나의 심적 상항을 토로하고 나를 전방부대로 보내 내달라고 애원했다. 내 말을 듣던 환자중대장은 그냥 짧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그 인상에서 군무에 노련함이 느껴졌고 병사 하나 전방부대로 명령내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싶었다.그렇게 안심했는데 아뿔사! 약속과 다른 명령이 난 것이다.원대복귀라니? 공병대에 다시 돌아가라고?열이 머리끝까지 뻗쳤다. 나는 즉시 명령서를 찢고 병동을 빠져나갔다.우박처럼 막 쏟아지는 햇살을 짓밟고 연병장을 가로 질러 중대본부에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근무자들이 이런 무뢰배가 있나하고 놀라는 순간 한 벽면을 등지고 서서 단도 한 자루를 빼어 들었다.
“중대장님! 이거 뭡니까? 절더러 공병대로 다시 가라고요?”
서슬이 퍼렇게 되어 고함을 지르고 칼이 아니라 칼을 든 팔을 휘둘렀다.근무병들은 멍하니 있는데 중대행정관 최영수 상사가 먼저 반응했다.역시 짬밥의 경력이 약여(躍如)했다.
“그 칼 내려놓아!”
최상사가 의자에 앉아있던 뚱뚱한 몸을 비호처럼 날려 나를 제지하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몸을 피하고 다시 단도 날을 번쩍였다.
“저를 전방에 보내주지 않으면 여기서 자해해 버리고 말겠습니닷.”
자살해 버리겠다고 하면 상항을 좀 더 극대화할 수 있겠지만 이딴 일로 자살까지 감행하겠다는 폭언은 좀 공허한 의사표시임을 그들에게 간파당할까 봐 나는 분명히 자해라는 단어를 골라 썼다.자해나 자살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한 환자중대장 이학기 대위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칼 내려놔! 김병장!”
나는 강열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이대위는 노기를 천천히 거두며 자신의 눈길은 내렸다.
“우선, 퇴원명령부터 거두지.”
그는 전출명령지를 책상위에 놓고 자를 갖다 대고 빨간 볼펜으로 내 이름에 금을 두 줄 긋고 도장까지 찍었다.
“자,봐라.퇴원명령은 취소되었다.빨리 그 칼을 이리 내려놔!”
어떤 부대로 간다하더라도 퇴원취소가 순서이므로 나는 더 난동을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단도를 중대장님 책상에 순순히 내려놓았다.
“자아, 그럼 병실에서 기달려.됐지?”
중대장과 최상사가 뭐라고 말을 더 했으나 기억에 없고 나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뒤돌아 나왔다.등 뒤에서 중대장이 소리쳤다.
“이 칼 어디서 난거야?”
“...화장실에서 주웠습니다.”
그 칼은 해군병사가 병상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나무로 군함모형을 깎을 때 쓰는 작은 칼이었는데 내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주워 갖고 있던 것이었다.상대가 무방비할 때 마음먹고 찌르면 찌를 수는 있겠지만 칼날을 접으면 10cm를 좀 넘는 인마살상용은 전혀 아닌 장난감 수준이었다. 이후 병실에 어떤 칼도 소지가 금지되는 환자수칙이 재강조되고 군함모형을 깎던 병사는 그 재미를 잃었다.쓰러진 다음 날 오후 병상에 몸을 깊숙히 쳐밖고 있던 내게 이성길하사가 왔다.
“행정부장님이 널 부르신다.가자.”
행정부장님이? 나를? 왜? 아이고, 처벌하려는가 보다.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시건방을 떨더니...이젠 정통으로 응징당하게 됐네! 이하사의 뒤를 죄인처럼 쫄레쭐레 따라 긴 낭하를 걸어 행정부장실 앞에 섰다.이하사가 당번병에게 무어라 말하고 당번병이 행정부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내게 들어가라고 했다.나는 쭈삣쭈삣 들어가 섰다. 행정부장님은 담배를 부벼 끄면서 앉으라고 소파를 가르켰다.행정부장은 병원장 대령 밑에 의무행정을 총괄하는 장도영 중령이었다.탁자에서 중령 계급장이 붙은 군모가 나를 위압했다.행정부장실은 산사의 법당처럼 조용했다.그래서 말똥 두 개의 권위에다 내 마음이 더 얼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라 생각하고 침착하려고 애썼다.그는 나직히 말을 시작했다.
“어제 복도에서 쓸어졌다지?그래 어떤가?”
“괜찮습니다.”
“군대와서는 스스로 몸조심해야되. 잘못되면 가족도 그렇고 국가로도 손해야.”
당번병이 차를 두잔 갖다 놓았고 그는 차를 권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말을 하자고 했다. 나의 속셈을 파보려는 의도로 보였다.
“환자중대장 보고를 들었어.김병장이 전방부대로 가고 싶다면서?왜 그런가?”
나는 정신 줄을 단단히 잡고 분연히 말했다.
“저는 분단국가를 지키는 병사입니다.분단의 현장을 직접 보고 그 정서를 저의 인격형성에 포섭(包攝)하려는 생각입니다.그것이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고 봅니다.그렇게 생각해서 월남에 자원하여 갔다왔습니다.월남파병의 경험도 이 시대를 사는 자에게 강요되지 않은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꼭 전방에 가야 느끼는 것은 아니 않는가?후방부대에서는 안되는가?”
“아닙니다.안보위협은 북쪽에서 내려옵니다.서울이 대전보다 북쪽 위협에 더 가깝습니다. 서울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저는 대전에 있으면 누가 누구를 지키는 셈인가요?제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아니고 부모님이 군대간 아들을 지키는 꼴이 됩니다. 저는 그것을 불명예로 여깁니다.”
“흐흠,모두 전방을 피하려는데 자네는 오히려 고생을 찾아가려하니 건전한 생각이라 보겠네.그러나 국가 전체로 보면 각자가 제 역할을 다하면 만족하지 금지된 사항을 역으로 고집하는 태도는 현존체재를 부인하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맞다고 생각하면 맞는 말이지만 나는 곧장 반발했다.
“뜻이 좋으면 금기(禁忌)라도 열어주는 게 집단생존에 더 유익하다고 배웠습니다.나라에 위난이 있를 때 국민이 자발하여 나서는 전통이 한민족에 있음을 저는 기억합니다.그것과 비슷하지요.월남전도 경험했고 전방부대만 경험하면 저는 군대생활을 완벽하게 치르게 됩니다.그리고 전방을 피하려는 시정(市情)의 풍조에서 이것은 청신한 기풍을 높이 세우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자네를 전방으로 보내려면 현행 육군내규를 바꿔야 해.내규를 어기면 내가 처벌대상이 되네.자네는 내 육군생활에 누를 끼칠 권리가 있는가?”
그는 식어버린 차를 한을 쭉 비우고 나를 쏘아 보았다
“제게 그럴 권리는 당연히 없지요.그러나 뜻이 불순하지 않고 집단생존에 유익하다면 예외로 쳐도 되는 여유가 이 군대에 없을까요?”
“그래서 자네 문제가 오늘 참모회의에 올라왔지.”
그는 청자 담배 한대에 불을 붙이며 내게 한 대 권했으나 나는 피지 않았다.
“환자중대장은 자네의 의도가 월북하려는지 불순하지는 않다고 말하더군.그러나 칼을 들고 중대장을 위협한 사실은 가벼운 일은 아니지.자네는 그것이 육근교도소에 가야하는 큰 범죄인지 알고 있나?”
“저는 중대장님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자해한다고 했지요.그것은 오히려 저 자신을 위협한 것이지요.”
“그거야 당한 사람이 말하기 나름이 아닌가?”
“중대장님은 사실을 다르게 말할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자네가 사회생리를 모르고 하는 말이야.개인과 조직간에는 항상 긴장관계가 있게 마련이지.국가와 국민간에도 마찬가지야.조직운영은 현실에 적응해야해. 개개 구성원의 이상주의적인 반발은 무시하라고 나는 배웠네! 더구나 내가 자네의 행위를 그렇게 이해하고 징치(懲治)하려면 안될 것 같은가?”
내 행위가 그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 큰 범죄로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간호과장이 다른 의견을 내었어.환자의 행동이니 용서하자는 거야.내과과장은 환자라서 판단이 흐릴 수도 있다하고...”
그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묵묵히 앉은 내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환자중대장도 그 말에 동의했어.모두들 제 부하를 아끼려는 마음이야.그래서 내가 자네를 한번 만나 보겠다고 했지.”
나로서는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군대에서 쫄병에게 이런 배려가 없다.
“그래,어떤가?자네가 일보 양보하고 내가 일보 전진함세.자네가 이병원에 있겠다면 제대할 때까지 여기 있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 달라면 그렇게 하지.”
쫄병의 당돌한 의사를 뭉게버리지 않고 칼을 든 난동이 벌어진 당면한 과제를 해소하는 좋은 타협안이었다. 그런데 대전병원에 그냥 있겠다고 했으면 좋았을 껄 나는 당돌함에서 한발 더 뻗댄 과한 말을 지껄였다.
“수도통합병원으로 보내주세요.”
지방병원에서 수도통합으로 갈려면 육군내규는 아니지만 조건이 맞아야 한다.응급환자라든가 이 병원이 처치할 수 없는 병(病)이 있던가 해야 하는데 나는 그 조건에 아예 맞지 않을뿐더러 조건을 어기면서까지 행정부장이 내게 은혜를 베풀 필요가 없었다.그런데도 그는 논의해 보겠다고 말하면서 웃으며 나를 방에서 내보냈다.내 병상에 돌아와 깊숙이 누워 생각해 보았다.내가 말을 잘했는지 못했는지.자못 먹물 티를 내면서 행정부장과 열띈 토론은 전개했다 싶지만 그는 내가 바라는 응답이 할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현재까지 흘러온 회한에 찬 군생활의 기억을 돌이켜 보았다.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순직한 강재구 소령의 책을 중학교 때 읽고 이런 죽음이야 말로 극기복례(克己復禮)의 표본이고 남아가 선택해야 하는 길이라는 사상을 머릿속에 박아 넣었다.강재구 소령을 나는 나의 예수, 아니 그 이상으로 받아 들였다.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예수는 ‘주여, 왜 나는 버리십니까?’원망을 말하여 잠시 흔들린 신심을 나타냈지만 강재구 소령은 거침없이 죽음에 뛰어들지 않았는가? 그것이 조건반사적인 행위라 해도 그의 숭고한 행위가 퇴색되지 않는다. 사실 그때 예수는 인류의 원죄를 대속한 속죄양으로 죽는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刑場을 구경하려고 겟세마네 동산을 가득 매운 자민족에 역선택 되었다는 억울함을 갖고 죽었다.그래서 ‘주여, 저들은 저희들의 잘못을 모릅니다.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자못 위인다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성서학자들이 자비심의 극치라고 평가하는 그 ‘말씀’에 비해 강재구는 몸이 사분오열됨을 각오하고 몸을 날려 수류탄 파편의 확산을 막음으로서 수십명의 목숨을 직접 구하는 ‘행위’를 보이지 않았는가?예수보다 그가 한 수 높음이 분명했다. 나는 집안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는 다니지 못해 사관학교에 갈 꿈도 못꿨지만 장교는 못해도 사병생활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징집영장에 바로 응했다. 시력검진표를 대강 외워 훈련소 신체검사를 통과했을 때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군대에서 힘든 과정은 다 거치고 싶었다.그것은 내 돈을 안내고도 특기를 익힐 기회를 줄 것이다.논산훈련소를 거쳐 대구 군의학교에서 특기번호팔일공, 제645기 위생병교육을 받았다.그때 공수특전단에서 나온 직업하사관 한 사람이 645기의 야외교육장에 와서 “너희들 중 공수단에 오고싶은 사람 있냐?”했다. 옆의 동료가 대뜸 “얘요!”하며 나를 일으켜 세워 그가 내 군번과 이름을 물어 수첩에 적고는 “너가 어느 부대에 있건 육군특명으로 너를 불러올릴 것이다.기다려라.”했다 그게 2년 전인데 아직까지 그 특명은 감감 무소식이니 웃기는 사기행위였지! 원주에서 양평 공수5사단으로 배치될 때 남들은 다 울었지만 나는 뛸 듯이 기뻤다.공수특전단이 아니라도 낙하산을 타보겠네.창공을 나는 기술과 재미를 어떻게 돈 주고 살 수 있는가?그러나 내 기대는 곧 깨져버렸다.5사단 공병대대 1중대 삽자루중대에 배치된 것이다. 나는 공병대 생활이 죽도록 싫었다. 국민학교 시절 상기하자 625의 그림을 그릴 때면 나는 착검한 소총을 옆꾸리에 끼고 경계를 서는 병사를 그리곤 했다.그것이 군인의 본 모습이지 삽질하는 군인은 상상 외였다.공병대가 싫어 탈영도 감행할 뻔했지만 결행 대신에 이런 일을 벌렸다. 양평군 대신면의 두부를 만들어 부대에 공급하는 공장에 작업을 나갔을 때 현장을 순시하러 온 5사단 참모장을 불러 세워 36연대로 보내 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다.공수5사단이라 불려도 3개연대중 36연대만 공수교육을 받도록 지정되었기에 사병들이 가기를 꺼리는 부대였다.참모장은 ‘알았다’고 말하고 갔지만 공병대대에서는 난리가 났다.작업군기가 얼마나 빠졌기에 일등병 놈이 대령인 참모장에게 그런 말을 다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나는 중대장한테 위계질서도 모르는 놈이라는 된욕을 먹고,고참병들한테 직사토록 얻어터졌다. 문제사병으로 찍혀 거기서 군대생활을 끝낼 운명을 딴 일이 나를 구했다. 5사단 의무중대장이 사단 부관참모부에서 위생주특기 병사가 의무대가 아닌 부대에 배치된 경우가 여럿 있음을 확인하고 사단장에게 특별조치를 품의하여 그런 의무특기병을 의무중대로 불러 모을 때 나는 지겹디 지겨운 공병대대를 떠나게 되었다.5사단 의무참모부 서기병에 발탁되어 1972년 양평 홍수 때 벅찬 열정을 불태웠다. 수색중대의 고무보트가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홍수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했는데 큰물이 빠지자 군민 모두에 대한 전염병 방역작업과 예방접종, 오염된 식수관리로 의무중대가 바빠졌다.예하부대에 전통을 치고 군단에 보고하고 불철주야 노력했지.그렇게 한 철을 보내고 나니 고된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의 노곤한 느낌이 들었다.사단 의무중대에서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월남 지원병들의 신체검사가 있었다.신체검사에 합격한 병사보다 떨어진 병사들이 더 많을 정도였는데 그달은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다.월남 안케페스 전투에서 수많은 전사자에 부상병들이 쏟아 들어와 군단병원까지 꽉 찼다는 소문이 돌아 월남에 가서 전사할까봐 지원자가 뚝 끊긴 것이었다.나는 월남전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졌다.이때다 싶어 파월을 지원했다.그 때문에 의무참모부 행정관 전병만 중위에게 얼마나 얻어 터진지 몰라.그는 눈깔이 시퍼래져서,
“이 새끼야, 참모부 서기병이 빠지면 어떻게 해?”
그때 나는 의무참모부 25대 서기병이었다.한낱 사병을 25대라고 존칭하고 기억하는 것은 서기병의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위생병 한명은 차출해야 하는 책임에 기(基)하여 의무중대장은 행정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강원도 오음리 월남전투교육대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장남은 월남에 보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은 내가 가볍게 부셔버린 셈이었다.나는 베트남 나트랑소재 제102후송병원에서 작전병으로 근무했다.후송병원은 자유진영을 수호하다가 부상당한 생명을 구하는 장한 일을 하고,나는 그 병원을 방어하는 작전병 임무를 맡았으니 ‘더 장한 일을 하는군!’ 그러나 곧 휴전되는 바람에 8개월 만에 귀국했고 나는 철책선을 경계하는 전방부대에 배치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후방에 있는 육군 제1202건설공병단 곡괭이중대에 또 떨어졌고 이것은 의기양양한 나의 군대생활 구상을 분질러 놓았다.의무주특기 교육을 받은 병력을 왜 자꾸 공병대에 배치하는가? 이거 사병인력관리에 낭비가 아닌가? 나는 전방부대에 가고 싶다!그러기 위해 내가 지금 대전병원으로 와있는 것이다.나는 환자중대장과 행정부장에게 내 경력과 희망을 피력하는등 쫄병에게 가능하지도 않은 능력 이상을 행했으니 이제 국가가 응답할 차례이다.국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려는 국민의 의지를 북돋아 줘야 마땅하다.그날 밤 나는 일단 편안한 잠에 들었다.
이튿날 오후 이성길하사가 내게 와서 종이 한 장을 툭 던졌다.전속명령서였는데 전속될 자는 단 한 명, 나 혼자였고,전속될 부대는 광주 국군통합병원 정신과였다! 내 소원에 대한 국가의 응답은 이거였나? 나더러 정신이 나간 놈이라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오늘 밤 조치원역을 지나는 군용열차를 타고 광주로 가라는 것이다. 병실내 동료환자들도 침울해 했지만 무슨 위로의 말을 내게 해줄 것인가? 환자복을 벗어 군복으로 갈아입고 따블백을 챙겨 떠날 준비를 마쳤다.전방부대가 아니라 정신과 병동에서 미지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상항은 자못 심각해 졌다.내 스스로 해결할 힘이 부친다고 결론하고 집에 알려야겠다 싶었다.그런데 어떻게 알리나? 그날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병실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감겼지만 뾰죽한 수는 없는데 이성길 하사가 행정부장실에 민간전화가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 보라 했다.그는 덧붙이기를 내 문제가 다시 참모회의에 올랐는데 쓰러지는 순간 쓰러짐을 본인이 인식하지 못했다면 정신병의 소질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채택되었다고 했다.더구나 쓰러진 다음 맥박과 혈압이 정상적임은 정신병력임을 명백하다고 했다.그래서 언제 정신발작할지 모르므로 환자보호의 차원에서 나를 정신과로 보내기로, 정신과가 개설된 광주병원으로 가는 것이라 했다. 행정부장실의 당번병은 전화하려면 일과 후에 오라했다. 그러나 일과 후 겨우 연결된 전화는 자주 끊겼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분명한데 잡음이 심해 대화가 되지 않았다.당번병은 폭우가 쏟아져 통화상태가 더욱 좋지 않다고 했다.결국 통화는 못하고 나는 雨中에 조치원역으로 떠나야 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열차는 불안함에 쩌든 나를 광주역 뿌연 새벽안개 속에 부려놓았다.괴물처럼 보이는 군용트럭은 위병소라는 출구를 단단히 걸어 잠그고 광주통합병원 미지의 불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안개 속에서 서서히 들어나는 스산한 2층 병원건물이 공포감을 팽창시켰다. 정신과 병동은 더욱 괴괴(怪怪)했다.일반병동과 통행을 차단하는 쇠창살 안으로 들어가서 신원을 확인받으려 복도에 앉았다.저쪽에 또 하나의 쇠창살이 처져 있었는데 그 안은 정신환자병실이었다. 아~ 2중쇠창살 속에서 감옥살이를 해야하는 구나! 기가 딱 막혔다.머릿속은 헝크러져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이 현실에 마냥 몸부림을 치고 싶었다.그때 어떤 병사 한 명이 나의 어께를 툭 쳤다.
“야, 너 나를 모르겠냐?”
누군지 알 수 없어 눈만 껌벅거렸다.이 낯선 전라도 땅 광주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다 있나?
“너 25연대 나왔지? 나도 거기 나왔어.거기서 너를 보았다.”
논산훈련소 때 나는 25연대 5중대 2소대에서 향도(嚮導)를 했으니 너는 나를 기억하는 가 보네...
“응 그래? 지금 뭐하는 중이냐?”
“퇴원할려구 그래.”
“그래? 정신과는 왜 왔는데?”
“응, 나는 포병인데 포탄을 마을에다 쐈다구 해서 여기로 보내드만...”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다? 왜 거기다 쐈는데?”
“나도 몰라.”
이런 미친놈을 봤나!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놈이 국민을 살상할 뻔했어? 이렇게 정신 빠진 놈들이 정신과에 들어오는 구나.나는 전혀, 결코 정신이 돌지 않았어.그렇게 확신했지만 나는 정신이 돌지 않은 놈이 아니었다. 정신과 위생병들은 입원병사들에게 욕설을 함부로 내지르며 멸시했다.
“이새끼들, 정신이 돌지 않았으면 너가 여기 왜 왔어?”
이 새꺄,너도 미친놈이구나.너는 내가 내 의지로 여기 온 것처럼 말하는구나. 국군대전통합병원의, 나아가 국가의 판단오류가 보낸 거다!그러나 이런 반항은 전혀 가당하지 않은 여유이고 사치였음이 곧 입증되었다. 위생병들은 신입환자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무슨 실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따지지 않았다.신입환자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심산이지만 이런 폭행은 너무나 비정상이었다.군대생활을 하면서 무수하게 빳따나 주먹질을 받아 봤어도 최소한의 정당성도 없는 이런 폭행은 처음 당했다.병동 밖으로 나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항상 침상 끝에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라. 화장실에 갈 때 두 명씩 움직여라. 누가 똥을 눈다면 끝까지 기다렸다 같이 와라. 담배를 필 때는 병실내 재떨이 앞에서 두 명씩 피워라. 취침시간에 너희가 불침번을 서야 한다.왜 이렇게 해야 하나? 미친놈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르니까.두 놈씩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한 놈이 미친 짓을 보이면 딴 놈이 만류해야 하니까. 그런 정신과 환자수칙을 위생병으로부터 설명 아닌 경고받고 내 병상에 앉았다.병실은 미친놈들의 투신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이 아예 없었다.나는 병실에 연기처럼 가득 찬 불안에 숨이 막혀 몸서리를 쳤다.까닭없이 얻어터진 데에 대한 분함과 이 더러운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침통함, 불안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데 내게 면회가 왔다고 위생병이 알렸다.이른 아침 이런 곳에 나를 면회온 사람이 있다니? 얼떨결에 면회실에 들어섰더니 뜻밖에 아버지가 혼자 오두마니 앉아 계셨다.절망 중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대하는 듯 했다.아버지가 오시게 된 사유는 내가 어제 조치원역으로 떠난 뒤 전화가 연결되어 행정부장 당번병이 통화상태 불량으로 내용만 간단히 큰 소리로 ‘육군병장 김철수가 정신이 분열되어 광주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라고 복창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벼라 별 걱정으로 밤을 지샌 후 새벽에 광주행 첫 고속버스를 타고 급히 오신 것이었다.아버지는 잠시 내 안색을 살피고는 대뜸 너 정말 미쳤냐고 물으셨다.그런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 여기서 빼달라고 말씀드렸다. 이 현실을 헤쳐 나갈 어떤 능력도 아버지에게는 없었으니 면회는 짧게 끝났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 또 내게 면회가 주어졌다.이번에는 면회실이 아니라 정신과장실로 인도되었는데 면회를 온 사람은 군복차림의 사촌형 김신우 육군대위였다.
아버지는 어제 광주병원에서 곧장 광주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수영비행장에 내린 다음 국군부산통합병원 신경외과 군의관으로 근무중인 사촌형을 찾아가셨다.아버지는 내 상항을 이야기하고 서울로 가시고 형은 다음날 비행기로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광주병원 정신과장과 사촌형은 대구군의학교에서부터 서로 알고지내는 사이였다 한다.정신과와 신경외과가 사람의 뇌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니까 의학적인 소견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가끔 만났던 모양이었다.사촌형은 내 대답을 듣고서도 "정신질환은 일생에 여러번 발작하는 사람도 있고 단 한번만 발작하고 다시 증세가 없는 사람도 있다."면서 내가 일부러 쓰러졌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그는 정신과장에게 내 성격이 좀 고지식할 뿐이지 정신이 돈 놈은 결코 아닐꺼라고 좀 완화시켜 말을 했을테고, 정신과장은 일단 자신에게 맡겨진 환자이므로 최소한의 관찰기간에 정신상태를 보고 이상이 없으면 퇴원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사촌형이 돌아간 후 국군광주통합병원 정신과장 김이수 대위는 새로 입원한 환자를 집합시키고 어제 구타당한 놈은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저희들 끼리는 다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꾸미는 의도로 보였다. 나오는 놈이 아무도 없자 정신과장은 나를 지목하여 나오게 하고 구타당한 내용을 고하라 했다.군대생활을 할 만큼 한 놈으로서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사실을 실토할 수는 없었다.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사촌형에게 말하였더니 형이 정신과장에게 그 사실을 전하며 유감을 표했던 모양이다.폭행을 당하라는지 말라는지 분간 못할 정신과장의 훈시를 다 듣고 환자들이 병실로 돌아가자 즉시 위생병들의 구타가 시작되었다.신입환자를 모두 집합시켜 짧은 기합을 준 후 차렷자세가 흔들렸다는 이유로 나에게 집중적인 폭행을 가했다. 정신과장이 집무중임에도 폭행이 감행되는 점을 미루어 보면 정신과장은 정신과가 조직적으로 실행하는 폭행사실이 외부에 알려졌음에 대한 보복을 은근히 교사하거나 묵인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위생병의 폭행이 없을 때는 위생병의 권한을 대신하여 고참환자들의 폭행이 가해졌다. 가해자들은 구타하는 순간에 얻어맞는 피해자가 발하는 고통의 떨림을 손끝감각으로 즐기는 광기에 찬 야차였다. 구타하는 이유도 없고 구타로 얻으려는 목적도 없었다.그들은 폭행이 정신과 환자의 치료법 중에 하나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그런 믿음을 媒介로 하여 징집에 응한 병사에게 국가의 통치력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었다.그들의 폭력을 받을 때마다 나의 몸에서 삶의 의욕이 뭉턱뭉턱 뜯겨 나갔다.아플 것도 없었고 비명을 지를 것도 없었다.폭력이 뜸해진 후에도 나의 정신은 나무결이 대팻날에 벗겨지듯 한거풀 한거풀 생살점이 벗겨져 나갔다. 나는 점차 여위어 지고 한낮에도 눈이 먼 굼벵이가 되어갔다.정신과는 폭행치료법 외에 투약치료도 있었다.위생병 앞에서 환자들은 좌로 정렬한 후 주는 약을 먹고는 입안을 활짝 벌려 다 삼켰음을 확인시켜야 했다.약을 안먹거나 혓바닥 밑에 숨겼다가 한꺼번에 먹어 음독하는 놈을 적발하려는 조치라고 했다.그들이 우리에게 멕이는 약은 필경 나가버린 정신을 불러들여 제 자리에 着席하게 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그러면 제 자리에 멀쩡히 있는 내 정신에게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약리작용이 있을 수 있을까? 그때 착석해야 할 내 정신의 자리는 어디인데? 그 약은 혹시 제 자리에 잘 있는 내 정신을 다른 데로 내쫓는 작용을 하지 않을까? 보약도 상복하면 독성이 생긴다고 하더라.그런 약을 하루 세 번씩 계속 복용하면 내 뇌에 누적될 어떤 반작용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내 정신을 분열시키기로 결심했다. 분열수단은 모르겠지만 정신과가 곧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래야 내 대가리에 약효가 제대로 投射된다.더구나 내가 정신이 돌지 않았다고 고집하면 곧 국가가 정신이 돌았다는 말로 논리상 귀결된다.그러나 국가를 글렀다고 타박할 이 누구인가? 우리나라 헌법은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정신을 전통으로 하여’라는 문장을 갖고있다.그 문장을 근거로 그릇된 국가에 반항할 국민의 권리가 ‘저항권’이란 명칭으로 보장이 되어있다는 학설이 헌법학상의 通說로 굳어져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면 지금 내가 그 저항권을 발휘하랴? 어떻게? 갸날픈 저항을 하다가 오히려 응징을 받아 정신과에 투옥되었는데? 결국 나는 정말 내가 돌았다 사실을 벌써 인정했어야 했다.나는 그때서야 비로서 이 정신과에서 정신나간 현실을 피할 도피처를 찾았다.加害에는 무력하고 被害에는 무감한 인간으로 馴致되어 갔다. 그것이 내 육신을 찌르는 실존적인 회의에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정신과는 가끔 환자에게 쇠창살을 벗어나 연병장을 몇 바퀴 뛰는 구보시간을 주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미친놈들을 위한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었다. 아~ 가슴벅찬 태양과 햇빛, 싱싱한 신록의 냄새를 싣고 오는 바람,폭신하게 밟히는 황토흙,담 밖에서 들리는 동네아이들의 고함소리! 그런 것들이 집합체가 환자집단을 삥 둘러 싼 간호장교와 위생병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와 나를 에워 쌓았다.나의 심신은 그것들에 포근히 감싸안겨 뜯겨나간 상체기와 마비된 신경을 소생받았다.그러나 쇠창살속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면 소생된 상체기는 곧장 枯死했다.하루중 가장 편안히 잠을 자는 寢牀도 온몸을 찌르는 針床이던 어느 날 뜻밖에도 퇴원하라는 전갈을 받았다.10년이 지난 것같은 데 정신이상 여부에 대한 관찰기간이 지났나 보다.환자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고 대기 중인데 행정병이 나를 행정실로 불렀다.순순히 내보내주지 않을 무슨 사유가 생겼나?먼저 겁부터 났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행정병 앞에 섰다.그는 내가 돌아갈 자대(自隊)인 육군 제1202공병단이 어디에 주둔하느냐는 맥없는 질문을 했다.최전방 어디라고 말하면 혹시 전방보충대를 경유하여 전방부대로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쳐지나 갔으나 그냥 묵묵히 대전이라고 말했다.전방부대고 뭐고 의욕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가치도 없다.마냥 귀찮다! 護民保國하려는 나를 정신병자로 몰고 정신병자로 만든, 국가 통치력이 제공한 이 모욕과 모순, 부조리의 세계로부터 빨리 달아나서 내 생존을 보존하려는 생각뿐 이었다.어떻게 광주병원을 빠져 나왔는지,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해 전남 광주시를 벗어났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그것은 정신과로부터의 탈출만이 그때 나의 숨가뿐 소망이었을 뿐 다른 데에 관심을 줄 감각이 말라버렸기 때문일 것이다.월남전에 이어 휴전선 근무로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의 위험에 굴하지 않으려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인격을 갖기를 원했던 나는 난데없이 정신과에 감금된 호된 역공을 받고 냉소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이 심어졌다.군말없이 공병단에 복귀하고 중대본부는 내 주특기에 맞게 대대의무대로 가라했으나 나는 위병소로 갔다. 누구와 말을 썩기도 싫고 병장계급의 무게도 싫었다.몸을 한껏 낮추어 주야 근무시간만 잘 지키고 ‘단결,근무중 이상무!’ 고함소리만 잘 내지르면 아무런 참견도 받지 않는 위병근무로 말년 몇 개월을 보냈다. 동료위병들은 내게 銅像이란 별명을 붙였다.내가 衛兵臺에 올라서 초병자세를 잡으면 교대자가 와서 흔들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서있기 때문이었다.그때 나는 내 정신을 몸으로부터 분리시켜 이 부대 밖 어느 다른 곳으로 소풍을 보내곤 했었다.
제대할 때 나는 타인들이 보기에 두 눈이 정기를 내쏘는 좀 특이한 정상인으로 보였어도 한 눈은 시력이 박탈된 애꾸눈이었다.아마 그 애꾸가 된 눈알에는 훼손된 자존심에 대한 반작용으로 좌절된 분노가 감금되어있을 것이다. 그 좌절된 분노는 내 미간을 향해 달려드는 어떤 인생과제에도 아예 ‘나는 잘 난 게 없어요.’라고 지레 의욕을 잃고, 안전하다고 관측한 나만의 구역로 도망치게 했다.그러나 그곳은 날아오는 포탄이 포물선의 탄도를 따라 떨어져 폭발하는 탄착점이었다.한 개의 눈알로는 포물선 밖은 보이지 않았나보다. 전후좌우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하려 우왕좌왕하다보면 탄착점에 만신창이로 내동뎅이처진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내 삶의 열정은 싹이 트자마자 번번히 폭파되고 말았다.인생론적 懷疑 앞에서 나는 내내 피하기만 했다.매일매일 내 삶은 항상 내겐 낯설었다.당연히 직업생활이나 가정생활이 정상 궤도에 정착될 리 없었다.
몇년 후 보다못한 타인에게 등을 떠밀려 병원에 갔다.병원은 나의 증세를 정신과로 분류하고 ‘알콜중독에 의한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젊은 주치의는 별다른 검사나 측정을 하지 않고서도,
“술을 끊지 못하면 인생에 더 곤란에 부딧칩니다.”
두 번이나 입원을 권유하여 나의 알콜중독의 심각성을 상기시켰다.그러나 나는 내게 입원명령을 발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내 삶을 할퀴려는 집요한 공격들에 맥없이 구박당해 온 내 피학적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하지만 정신과 감금기억의 트라우마가 遠因일 것이다.밤잠이 쉬들지 않아 항우울증 약에 수면유도제가 첨가되었다. 제발! 이제는 이 약이 제 약효를 발휘하기를 바랬다. 이런 투약치료만 받았어도 치료비가 상당했겠는데 대한민국은 국가보훈처 보훈병원을 통해 거의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국가는 나를 참전유공자로 추켜세웠다.그런 국가에게 더 따질 생각은 나지 않았다.모든 것이 마냥 귀찮을 뿐이었다.그냥 나에게 제공되는 작은 은급의 징표인 참전유공자 카드를 다소곳히 감격하는 타성(惰性)에 젖어, 술에 쩌들어 술냄새를 풀풀 풍기는 시체가 되어 이 사회 한구석에 안치(安置)되어 있다.
20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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